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심층분석] 시험대 오른 김동연 경기지사의 ‘협치’ 

민주당 ‘인싸’ 됐지만 실력 입증할 성과 내놔야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정치색 빼고 ‘일하는 지사'로 이미지메이킹… 민주당 혁신 주도 의지 밝혀
“민주당 양대 축, 대주주 이재명과 중도 확장성 갖춘 김동연으로 재편될 것”


▎2022년 6·1 경기지사 선거에서 김동연 민주당 후보는 극적으로 생환했지만, 어떤 행정을 펼칠지에 따라 정치적 위상이 결정될 것이다.
6·1 지방선거에서 경기도는 더불어민주당에 ‘험지’였다. 전체 31개 시·군 기초단체장 가운데 국민의힘이 22곳, 민주당이 9곳에서 승리했다. 4년 전인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파란 물결이 경기도를 휩쓸었던 것(민주당 29곳,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2곳)과 완전히 상반된 결과다. 경기도의회는 4년 전(민주당 135석, 자유한국당 4석)과 달리 78 대 78 동수로 양분됐다. 경기도교육감도 보수 성향인 임태희 후보가 당선됐다.

지방선거에서 나락에 빠진 민주당에 그나마 한줄기 위안은 김동연 경기지사 후보의 극적인 승리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지는 선거라는, 민주당에 절대 불리한 프레임을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깨뜨렸기 때문이다. 경기도 유권자 중 기초단체장 투표 용지에는 국민의힘 후보에게 기표하고, 도지사 투표 용지에는 민주당 김 후보를 찍은 교차투표 숫자가 25만 표로 추정된다. 경기도민은 ‘윤석열의 입’이라는 프리미엄을 등에 업은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의 ‘배경’보다 김동연이라는 ‘인물’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흙수저로 출발한 34년 공직 생활과 경제전문가 커리어, 그리고 닳고 닳은 정치인과 거리가 먼 신선함이 통한 것이다.

남경필식 연정보다 낮은 ‘협치’ 단계부터 시작


▎2022년 6월 9일 경기개발연구원에서 경기지사인수위원회 현판식이 열렸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국민의힘과의 연정보다 협치에 무게를 두고 있다. / 사진:경기도지사인수위원회
선거 결과 8167표, 0.14%p 차로 신승을 거뒀지만, 그의 앞에 놓인 정치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다. 여당인 국민의힘과의 긴밀한 대화와 협치가 불가피하다. 선거 승리로 단숨에 야권의 차기 대권후보 반열에 올라섰지만, 김 지사의 민주당 내 기반은 취약하다. 김 지사의 공천과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한 이재명 민주당 의원과의 관계 설정도 과제다.

김 지사는 6월 7일 본격적인 당선인 행보에 나서며 국민의힘과 민주당 경기도당을 찾았다. 그는 국민의힘 경기도당에서 간담회를 갖고 협치공약추진위원회(이후 연대와협치 특위로 변경) 추진을 제안했다. 김 지사는 이날 간담회를 마친 후 “경기도와 경기도민을 위한 길에 여야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며 “경기도의 발전과 경기도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 함께 협치하자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곧 발족 예정에 있는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에 국민의힘 추천위원을 포함시키겠다는 제안을 드렸고, 김성원 국민의힘 경기도당 위원장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6월 8일 발표된 경기도지사인수위원회 조직은 기획재정·정책조정·경제·주택교통·사회복지·자치행정 6개 분과와 경기북부특별자치도·연대와협치·중기-스타트업 3개 특위, 그리고 미래농어업혁신TF로 구성됐다. 국민의힘 추천위원 2명이 연대와 협치 특위, 미래농어업혁신TF에 합류하기로 했다.

김 지사는 “인수위는 크지 않으면서 일 위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 큰 원칙”이라며 “가능하면 정치색은 빼겠다”고 말했다. 한 가지 유의할 대목은 인수위에 소위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인물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김 지사는 이날 인수위 구상 발표에 앞서 전임 경기지사인 남경필 전 지사와 이재명 의원을 만났다. 거대 양당이 경기도의회를 양분하는 상황에서 김 지사가 ‘남경필표 연정’을 꺼내 들지 않겠냐는 시선도 있었다. 2014년 당선된 남경필 전 지사는 취임 직후부터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의 전신)과 연정을 시작했고, 임기 말까지 이어갔다. 부지사직을 민주당에 내주며 권한과 예산을 나눴고, 진보 성향 교육감이 자리한 경기교육청과도 협력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지사는 남 전 지사와의 만남 후 “연정보다는 낮은 단계인 협치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남 전 지사가 협치와 연정에 대한 오랜 경험, 본인이 느낀 교훈을 말씀해줬다”면서도 “남 전 지사가 했던 연정 모델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협치보다 발전한 형태의 모델이다. 해당 모델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순 있지만, (당시 남 전 지사가 소속된)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이 경기도의회 내 소수당이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나는 정치공학이 아닌 경기도와 경기도민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 중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수도권 3자 협의체’ 가동해 교통·환경 문제 접근


▎김동연 경기지사와 이재명 의원의 관계 설정은 향후 민주당 권력 향배를 가를 포인트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5월, 수도권 매립지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며 인천과 경기도 포천 지자체 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당시 박남춘 민주당 인천시장이 KBS 라디오에 출연해 “대체 매립지는 경기도 북부 포천이라고 알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 발단이었다. 포천의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자 민주당 경기 포천 합동 유세에서 박윤국 포천시장 후보는 “목숨을 걸고 막아내겠다”고까지 말했다. 현재 서울·경기도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인천에서 받아 처리 중인데, 인천시는 대체 매립지 조성 여부와 관계없이 “2025년까지 현 수도권 매립지 사용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 갈등은 이제 경기도의 수장이 된 김 지사에게로 넘어가게 됐다.

경기도민의 고질적인 출퇴근 교통 문제 또한 이번 경기지사 선거의 핵심의제였다. 경기도에 거주하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도민만 170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버스 배차 간격이 길고 승차요금이 너무 높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서울로 진입하는 광역버스 노선을 증차하려면 현실적으로 서울시와의 업무 협약이 필요하다.

이처럼 수도권 매립지·교통문제·인천발 KTX 등 수도권 지자체끼리 공조해야 할 사안이 무겁기 때문에 서울·경기·인천 3개 광역자치단체장이 주축이 돼 지역 내 현안을 논의할 ‘수도권 3자 협의체’가 본격 재가동될 수 있다. 김 지사는 이를 위해 6월 13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정복 인천시장을 연달아 만났다. 김 지사는 “유정복 시장과 나는 같은 정권(박근혜 정부)에서 일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뜻을 맞추며 일한 경험이 있고 우정 관계를 유지해왔다. 오세훈 시장 또한 내가 국가 지원(2010년 당시 기재부 예산실장 역임)을 맡고 있을 때 서울시청에서 뵌 적이 있다"며 "서울·경기·인천 세 지역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좋은 성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희망했다.

도지사로서 업무 능력을 평가할 핵심 잣대가 될 부동산 문제 해결에 대해서 김 지사는 ‘집 걱정 없는 경기도, 출퇴근 시간 하루 1시간 여유, 100만 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이 가운데에서도 ‘1·3·5 부동산 정책’이 선거 공약의 맨 위에 올라 있다. 1기 신도시와 노후 지역의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주거환경 개선을 신속히 추진하고 3기 신도시는 일자리와 주거가 연계된 자족도시로 건설하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청년·신혼부부를 비롯한 무주택자를 위한 시세 50% 반값주택도 제공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여기에 더해 생애 첫 주택 구입 시 취득세 면제, 장기 보유 1주택자 종부세 폐지 등 부동산 세제 개혁도 추진할 방침이다.

교통 분야에서는 GTX 플러스(A·B·C 노선 연장 및 D·E·F 노선 신설), KTX·SRT 경기 북부 연장, 시내버스 준공영제 도입 및 요금을 서울 수준으로 인하하는 공약(1450원→1250원) 등을 발표했다. 인수위는 6월 13일부터 일주일 간 도청 실·국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청취한 뒤 주요 공약사업 시행 방안을 점검했다.

6·1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유력 후보들은 줄줄이 낙선했고, 선거 전면에 나선 이재명 의원은 비록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내상을 입었다. 역설적으로 민주당이 몰락할수록 생존자인 김 지사의 존재감이 올라가는 상황이다. 김 지사는 6월 2일 당선 직후 소감에서부터 민주당 쇄신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 민주당에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변화의 씨앗으로 맡은 바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이번 선거에 대해 ‘졌지만 잘 싸웠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틀린 생각”이라며 “그렇게 생각하면 더 깊은 나락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진 이유도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국민께서 바라는 변화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지원받았던 이재명과의 역학관계 변화는 필연적


▎김동연 경기지사의 역대 민주정부에서 국정 운영에 참여한 경험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전임 대통령들의 지지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된다. / 사진:경기도지사인수위원회
6월 3일 MBC 라디오에 나와서는 “국회의원 면책 특권을 없애거나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는 등의 정치 기득권을 깨는 움직임을 민주당이 먼저 솔선해서 주장하고 나가야 한다”며 “정치교체위원장으로서 본격적으로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민주당은 향후 당내 선명성을 강조하는 이재명 계파와 중도 외연 확장의 방향성을 가진 김동연 지사, 두 축으로 갈 수밖에 없다. 두 세력 사이의 경쟁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김 지사와 이 의원 간 역학관계 변화는 필연적이라는 시선이 많다. 김 지사는 지난 3·9 대통령선거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했다. 이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 입당했고 경기지사 공천과 선거 과정에서 이 의원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6·1 지방선거에서 이 의원은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지만 역효과만 낸 채 참패를 면치 못했다. 경합지에서 살아남은 김 지사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틈새가 생긴 것이다.

이 의원은 국회 입성 후 당권 도전을 겨냥하고 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이 이처럼 부정적 이슈에 포위돼 있는 동안, 김 지사가 경기 도정에서 정치력을 입증한다면 선명한 대비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배 소장은 “2024년 총선 결과가 획기적으로 좋으면 이 의원이 탄력을 받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김 지사 쪽으로 힘의 균형이 쏠릴 수도 있다. 연거푸 전국단위 선거에서 패배한 상황에서 수도권 의원들은 이 의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그는 “향후 민주당 내에는 이 의원, 당 외부에는 김 지사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서로 경쟁하는 구도가 될 것”이라며 “이념이나 정치적 색깔 대결보다는 성과 위주 경쟁을 통한 민주당 내 대권 판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직 경험 무기로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층 흡입?


▎김동연 경기지사는 소셜네크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경제부총리직을 사퇴할 때 ‘야당 가서 정치하는 거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매번 ‘저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였다’라고 강조했다”며 문 전 대통령과의 의리를 강조했다. / 사진:경기도지사인수위원회
김 지사는 옅은 당색과 경제 전문가 이미지로 중도 확장성이 있고, 민주당을 실용정책 정당으로 바꾸기에 적합하다고 기대 받는다. 하지만 민주당 내 지지세력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자기 정치를 펴기 어렵다는 한계론도 나온다.

이 때문에 김 지사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지층에 구애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 지사는 김대중 정부 시기부터 공직자로서 국정 운영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민주당의 전임 대통령들과의 연결고리는 충분하다. 이 지점에서 친문 세력과 헤게모니 싸움이 불가피한 이 의원과 구별된다.

아울러 김 지사가 공략 가능한 대상은 MZ세대·여성·중도층 등 실리투표를 하는 이들이다. 경제 전문가이기 때문에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40대 화이트칼라에게도 통할 수 있다. 강력한 구심점이 없어 결속력은 약할지 몰라도 넓은 계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586세대나 처럼회 등 이념적 강경파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 의원보다 운신의 폭이 크다.

김 지사는 지난 4월 경기지사 경선 직전 월간중앙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경기도에서 진다는 이야기는 다른 지역에서도 참패를 의미한다.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되면 윤 정부가 독선과 독주로 흐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 선거라는 큰 산은 넘었다. 그러나 정치인 김동연의 앞은 여전히 오르막길이다. 스토리와 브랜드는 갖췄지만 실적을 추가해야 더 큰 산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202207호 (2022.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