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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부산엑스포 유치 A to Z(4)] 경쟁도시 리야드와 글로벌 정세 놓치면 안 되는 이유 

국력 떨어져도 똑같은 1표 ‘글로벌 사우스’에 공 들여야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정치적 사안 내세우지 말고 인류의 미래지향적 현안에 집중하는 선거전략 펼쳐야
아프리카 등 개도국에 식량·에너지·의료 등 공적지원과 교육·기술 투자 병행 필요


▎2023년 5월 대한항공 인천 정비 격납고에서 K팝 걸그룹 블랙핑크로 래핑된 비행기 공개 행사가 열렸다. 민감한 정치 이슈와 무관한 문화적 호감도를 앞세워 부산은 엑스포를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 사진:연합뉴스
'2030 부산 세계박람회(World EXPO 2030 BUSAN, KOREA)’ 유치를 위한 글로벌 경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부산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려면 오는 11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세계박람회기구(BIE) 정기총회에서 171개 회원국의 3분의 2 참석에 최종적으로 3분의 2 이상을 득표해야 한다. BIE 실사단이 지난 4월 2~6일 방한해 부산에 대한 실사를 마치면서 무게중심이 개별 득표전으로 옮아갔다.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 경쟁자인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 우크라이나의 최대 항구도시 오데사,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를 누르고 부산이 개최지로 확정되려면 어떤 글로벌 전략을 펼쳐야 할까? 부산은 실사 기간 전쟁을 딛고 일어섰다는 역사성, 주민들의 강력한 개최 의지, 바다와 을숙도 등 수려한 생태환경, 국제적인 교역도시이자 과학기술·산업의 중심지라는 미래지향적인 인프라 등에서 좋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부산이 내세운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라는 2030 세계박람회 주제, 그리고 ‘자연과의 지속가능한 삶’, ‘인류를 위한 기술’, ‘돌봄과 나눔의 장’이라는 3대 부제는 인류의 꿈을 제대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세계박람회의 이상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런 주제와 부제가 하나의 원대한 이상이라면, 득표전은 냉혹한 현실이다. 때론 이전투구가 될 수도 있다. 유치전에 뛰어든 다른 도시들도 유·무형의 외교 자산을 총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에 성공하려면 대한민국의 외교력·경제력·문화력과 부산의 매력 등 모든 유·무형 자산을 쏟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최대 경쟁 도시인 리야드의 장·단점을 잘 살펴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경쟁 도시 중 특히 사우디 리야드가 가장 맹렬하게 도전해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MBS) 왕세자의 의지가 실린 행사이니만큼 대단한 기세로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우디는 2030 세계박람회 유치에 국가와 왕조의 미래를 거는 분위기다. 사우디는 석유와 가스가 고갈되거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질 때를 대비해 현재 확보한 국부펀드 등으로 새로운 산업 건설을 모색하고 있다. 그 핵심은 신에너지 등 분야에서 네옴시티 등 미래형 생태도시를 건설하고, 석유·가스 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첨단 제조업과 관광업 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계박람회 유치를 필수적으로 건너야 하는 도약대로 인식하고 있다.

엑스포 유치에 사활 건 빈 살만

올해 87세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사우디의 실권자 MBS는 특히 관광업 진흥을 위해 지금까지 전통적이고 고답적인 이슬람 국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9년부터 전자 관광비자를 도입하는 한편, 자국에 거주하거나 여행하는 외국인 여성에 대해서는 얼굴과 손발을 제외하고 모두 가리는 전통 가운인 아바야 착용을 면제했다. 사우디는 [쿠란]에 여성이 자신과 관련 없는 사람에게 아름다움이나 장신구를 보이지 말라고 했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온몸을 덮는 아바야와 머리를 가리는 히잡,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얼굴을 가리는 니캅 착용을 강제했다. 하지만 관광비자 발급을 시작하면서 히잡과 니캅도 관광객은 물론 사우디 여성에게도 선택 사안으로 돌렸다. 다만 무릎과 어깨를 덮는 복장은 반드시 하도록 했다. 달리 말하면 미니스커트나 반바지를 비롯한 짧은 하의나 소매 없는 셔츠, 헐렁한 상의, 크롭(길이가 짧은 상의) 등은 금지한다는 이야기다. 모스크(이슬람사원)나 마스지드(학교가 딸린 이슬람사원)에 들어갈 때는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 거주자나 관광객도 아바야를 입어야 하며 수도 리야드를 비롯한 특정 장소에서는 머리에 스카프를 쓰도록 했다.

게다가 사우디는 주변 걸프(페르시아만 또는 아라비아만) 지역 다른 국가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국제행사 경쟁을 벌여왔다. 사우디는 한국의 기술과 건설력으로 중동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한 이웃 아랍에미리트(UAE), 2006년 12월 1~15일 제15회 아시안게임에 이어 2022년 11월 20~12월 18일 FIFA 월드컵을 이미 개최했고 2030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다시 여는 이웃 카타르에 대해 내심 상당한 경쟁 심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가 2030년 도하에 이어 2034년 제22회 여름 아시안게임을 수도 리야드에서 개최하기로 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사우디는 중동 국가 최초로 2029년 제9회 겨울 아시안게임을 건설 계획 중인 신도시 네옴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첨단기술과 에너지, 그리고 자금력으로 사막 국가에서 겨울 스포츠 국제행사를 열기로 했다는 데서 MBS의 의지와 집념, 그리고 야망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2030년 리야드 세계박람회 유치는 사우디를 글로벌 개방 국가로 올려놓겠다는 MBS의 꿈을 반영한 국제행사 유치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론 사우디가 2030년 카타르에 이어 2034년 같은 걸프 지역의 중동 이슬람 도시인 리야드에서 아시안 게임을 여는 것은 이번 세계박람회 유치전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어 보인다. 2025년 일본 오사카(大阪)에 이어 같은 동아시아 도시인 부산에서 세계박람회를 여는 데 대한 회원국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105표에 달하는 글로벌 사우스


▎2022년 11월 방한 당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대한민국 대기업 총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을 정도의 금력을 과시했다. / 사진:SPA 캡처
사우디에 오일 달러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강의 기적으로 이룬 세계적인 산업 생산력과 개방된 사회를 바탕으로 한 시민의 힘이 있다. 지도자의 의지도 한몫한다. 리야드가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MBS 왕세자를 내세운다면, 한국에는 경제력·외교력·군사력으로 글로벌 중추국가(GPS)로 올라서려는 윤석열 대통령과 부산을 글로벌 중심도시로 키우려는 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야심만만한 사우디 리야드에 대한 최선의 대책 방안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일 것이다. 한국에는 무엇보다 오랜 교육과 연구개발(R&D) 투자를 바탕으로 스스로 이룬 첨단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R&D 투자는 102조1352억원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96%로 세계 2위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전은 이처럼 든든한 배경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유치전에서 성공하려면 이와 더불어 무엇보다 국제 정세를 잘 파악하고 여기에 맞춰 기민하고 지혜롭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내부의 자신감과 함께 외부의 흐름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 2030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려면 BIE의 171개 개별 회원국의 표를 가장 많이 얻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일본 히로시마(広島)에서 5월 19~21일 열린 제49회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G7 정상회의의 각종 의제는 현재 국제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국제 정치에서 서방의 고민을 확인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의의 핵심 어젠다는 1년을 훌쩍 넘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단시키고, 격화하는 미·중 갈등을 완화하는 일이다. 기후변화와 인공지능(AI) 대책 등은 국제사회의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아시아·아프리카·남미·대양주의 신흥국·개발도상국인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서방의 달래기가 추가됐다.

인권 등 정치 이슈는 금기시


▎사우디 네옴시티의 트로제나 스키장 조감도. 사막에서 동계 스포츠 대회를 열겠다는 야망이 읽힌다. / 사진:네옴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에 뛰어든 한국이 주목할 사안이 바로 이 글로벌 사우스다. 국력은 떨어져도 국가 숫자가 많은 글로벌 사우스는 한 나라가 한 표를 행사하는 유엔총회 표결이나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BIE 정기총회 표결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숫자를 살펴보자. 전 세계 주권국가는 유엔 회원국 193개국과 옵서버 국가 2개를 기준으로 하면 대륙별로 크게 아시아 48개국, 유럽 44개국, 아프리카 54개국, 북미 2개국, 중남미 33개국, 대양주 14개국 등으로 나뉜다. 글로벌 사우스는 아프리카 54개국과 중남미 33개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10개국과 남아시아 8개국으로 이뤄졌다. 이 가운데 유럽과 북아메리카, 그리고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주권국가를 제외한 아시아의 거의 전체가 글로벌 사우스에 해당한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는 지역연합체를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협력기구인 아프리카연합(AA)의 55개국(유엔회원국 54개와 비회원국 서사하라 포함)은 모두 아프리카 대륙에 있고, 언어와 종교(이슬람)를 기반으로 하는 아랍연맹 22개국은 아시아·아프리카에 걸쳐 있다. 한국과 적극적인 협력 관계인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국은 모두 동남아에 있다.

인도는 최근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 국가를 자처하면서 외교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 1월 12일 125개국을 초청해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정상회의’를 회상으로 열었다. 인도는 올해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서 글로벌 사우스와 서방 중심의 경제대국을 연결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이 자리에서 “지난 80년간 계속된 (강대국 중심의) 글로벌 거버넌스 모델이 바뀌고 있다”며 “글로벌 사우스는 미래에 가장 큰 지분이 있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의 발언을 세계박람회 유치전에 차용하자면 “글로벌 사우스는 부산의 2030 세계박람회 유치에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바꿀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는 사실 서방과 협력을 원하지만, 외교적으로는 썩 좋은 관계가 아니다. 부산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대상으로 2030 세계박람회 유치전을 펼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새로운 대두는 코로나19의 종식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상징적인 새 모습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글로벌 사우스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유엔에서 비난 결의안을 추진하면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쥔 상임이사국 러시아·중국의 반대로 ‘대러시아 비난 결의안’ 채택이 무산되자, 서방은 긴급특별총회를 열어 비난 결의안 통과를 시도했다. 안보리 결의는 유엔 회원국이 준수 의무가 있기 때문에 법적인 구속력을 갖지만, 유엔총회 결의는 선언적이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집단 의사표시라는 점에서 상당한 외교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유엔총회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모두 다섯 차례의 대러시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엔총회는 3월 2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3월 23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이 초래한 인도적 결과’와 관련해 러시아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각각 채택했다. 4월 1일에는 ‘인권이 사회에서 러시아의 이사국 자격정지’ 결의안을, 10월 12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병합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영토보전: 유엔헌장 원칙 준수’ 결의안을 각각 통과시켰다. 11월 14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저지른 각종 전쟁범죄와 불법 행위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한 배상을 위한 국제기구를 설치하고 러시아에 배상 책임을 물린다는 내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의 구제와 배상 추진’ 결의안을 각각 통과시켰다.

아프리카 지역 현안 파악해야


▎2023년 5월 박형준 부산시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특사로 아프리카를 방문해 나즐라 부덴(좌측 사진 오른쪽) 튀니지 총리, 하게 고트프리드 게이고브(우측 사진 오른쪽) 나미비아 대통령과 만났다. / 사진:부산시
그런데 표결 과정에서 대러시아 비난이나 책임을 묻는 내용의 유엔총회 결의안에 글로벌 사우스를 중심으로 냉담함이 상당히 드러났다. 1차 결의안은 193개 전체 회원국 중 찬성 141개국에 반대 5개국, 2차 결의안은 찬성 140개국에 반대 5개국, 4차 결의안은 역대 표결 중 찬성이 가장 많은 143개국에 반대 5개국으로 각각 통과했다.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러시아와 함께 북한·벨라루스·시리아·에리트레아 등 5개국에 불과했다. 문제는 인권과 관련한 3차 결의안과 전쟁 범죄나 피해 책임을 묻는 5차 결의안에는 찬성표가 확 줄고 반대표가 늘었다는 사실이다. 3차 결의안에는 찬성이 93개국으로 전체 회원국의 48.19%이고 표결 참가국의 53.14%였다. 반대는 24개국에 이르렀다. 표결 참가국의 과반수만 얻으면 통과되는 규정에 따라 가까스로 총회를 통과했다. 러시아의 전쟁 범죄와 피해 책임을 따지는 5차 결의안에는 찬성 94개국에 반대 14개국이었다. 결과적으로 다섯 차례의 결의안 표결이 모두 통과되긴 했지만, 서방으로선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특히 예민한 인권 문제를 다룬 3차 결의안에는 기존의 결의안 반대 5개국에 더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아프리카의 알제리·부룬디·중앙아프리카공화국·콩고·에티오피아·가봉·말리·짐바브웨, 중동의 이란, 중앙아시아 옛 소련권의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동남아시아의 베트남·라오스, 중남미의 쿠바·볼리비아·니카라과 등 24개국이 반대표를 던졌다. 러시아가 주권국가이자 유엔 회원국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인권이나 전쟁 범죄, 배상 책임 등 예민한 문제 앞에서는 러시아 비난을 주저하는 분위기다.

러시아의 전쟁 범죄와 배상 책임을 거론한 5차 결의안 표결에는 기존의 5개 반대국에 더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중앙아프리카공화국·말리·짐바브웨, 중남미의 쿠바·니카라과·바하마, 중동의 이란 등 14개국이 반대했다. 눈에 띄는 또 다른 사안이 기권과 표결 불참이다. 1·2·4차 표결에선 각각 35·38·55개국이 참석했지만 인권을 다룬 3차에선 58개국이, 전쟁 범죄와 배상을 다룬 5차에선 73개국이 각각 기권했다. 불참도 1~5차에서 각각 12·10·18·10·12개국에 이른다. 기권과 불참 모두 러시아의 눈치를 봤든지,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하는 대러시아 비난 결의안에 불만을 품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표가 길을 잃었다는 뜻이다. 이를 2030 부산국제박람회 유치전과 결부시킨다면 인권이나 민주화, 전쟁범죄 등 박람회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부차적이고 정치적인 사안은 내세우거나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아쉽지만 국제정치 문제는 가급적 멀리하고 하이테크와 생태, 기후변화 방지 대책 등 오로지 인류 미래를 위한 중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현안에 집중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유치전은 정치전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하이테크 엑스포를 전면에 세워야


▎정의선(왼쪽 두 번째) 현대차 회장은 미국 워싱턴 DC에서 아프리카와 카리브 국가 대사들을 만나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했다. / 사진:현대차그룹
눈에 띄는 것은 아프리카 대륙이다. 아프리카는 옛 소련이 공산주의 혁명 수출과 서방과의 냉전 대결을 위해 적극적인 진출을 모색했으며,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그 뒤를 이은 러시아가 영향력 회복을 위해 공을 들여왔다. 러시아는 특히 아프리카에 석유·가스 등 에너지와 곡물 공급원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해왔다.

아프리카 국가 중 러시아산 곡물에 의존하는 국가가 적지 않다. 심각한 내전 속에 중앙정부가 제대로 존립하지 못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소말리아는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한 가뭄으로 국민 상당수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밀 수입에서 러시아산과 우크라이나산이 전체의 100%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흑해를 통한 러시아산·우크라이나산 밀 수출이 없으면 위기가 심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구가 1억 명이 넘는 아프리카의 대국 이집트는 2013년 7월 군부 쿠데타에 이은 2014년 3월 대선을 거쳐 집권한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이 친미 성향을 띠고 있지만 전체 밀 수입량의 60%를 의존하는 러시아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인도로 밀 수입국을 확대하려고 시도했지만 물량 문제로 여의치 않은 입장이다. 이집트는 러시아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원전 협력도 추진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주춤한 상태다. 러시아와 원자력 협력을 추진하는 나라로 아프리카의 대국 나이지리아도 있다.

러시아산 밀을 수입하는 아프리카 국가는 소말리아와 이집트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따라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닥치면서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마다가스카르와 지난 4월 새롭게 내전이 발발한 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콩고·르완다·부룬디·탄자니아·부르키나파소·베냉 등이 값싼 러시아산 밀에 의존한다. 이들 아프리카 국가의 러시아산 밀 수입의존도는 30%를 넘는다.

이태석 신부의 진심 계승할 때


▎이태석 신부는 생전 남수단을 위한 헌신적 희생으로 아프리카인들에게 울림을 줬다. / 사진:부산 서구청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러시아와 아프리카의 군사 관계다. 러시아는 자국산 무기 수출과 훈련 및 기지 건설 등 군사적 지원, 민간군사기업(PMC)을 표방하는 바그너 그룹(러시아어로는 그루파 바그네르)의 용병 파견 등으로 아프리카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왔다. 바그너 그룹은 분쟁이 벌어졌거나 현재도 진행 중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말리·콩고민주공화국·앙골라·모잠비크·마다가스카르·수단·리비아 등에 과거 파견됐거나 지금도 활동 중이다. 주로 정부군을 지원해 반군이나 집권세력에 반대하는 부족 등의 공격에 동원돼왔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말리에선 민간인 학살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선 이런 잔학 행위를 취재하러 온 러시아 기자들이 의문의 살해를 당하기도 했다.

바그너 그룹은 북아프리카 산유국 리비아에선 동부 벵가지 지역을 장악한 군벌인 리비아국민군(LNA)의 수장인 칼리파 하프타르를 지원해왔다. 하프타르는 유엔이 인정한 서부 트리폴리의 중앙정부인 리비아 통합정부(GNA)와 내전을 벌이고 있다. 2019년과 2021년에는 군사적으로 트리폴리 점령을 시도했을 정도다. 러시아는 이런 하프타르를 아프리카 지역 군사작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4월 15일 수단에서 최고기관인 과도주권위원회의 1인자 압델 파타 알부르한 의장과 2인자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 부의장이 내전을 시작하자 바그너 그룹은 리비아에서 수송기에 무기와 탄약을 싣고 날아가 다갈로의 민병대인 신속지원군(RSF)을 지원했다.

주목할 점은 아프리카 54개국 중 러시아가 군사협력협정을 맺은 국가는 26개국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러시아는 특히 인권 등 문제로 서방 국가들과 군사 관계를 맺기 어렵게 된 독재·권위주의 국가나 심각한 재정 문제를 겪고 있는 한계국가, 정권 유지가 불안정한 내전·내분 국가의 정부나 군벌 등을 대상으로 군사협력 관계를 확대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국제적인 전략적 요충지인 수에즈운하와 이어지는 홍해 연안의 수단과 에리트레아 등 지정학적 핵심 국가에 군사 보급기지나 해군 주둔항 건설을 추진해왔다. 에리트레아가 유엔 긴급특별총회의 대러시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고 수많은 나라가 기권이나 표결에 불참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생각할 점은 아프리카 상당수 국가가 식량·에너지·의료 등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과 함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교육·기술·인프라 등 투자를 바란다는 사실이다. 대회 협력사업을 주관하면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글로벌 사우스 활동을 늘리고, 공적개발원조(ODA)를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구체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 이태석 신부(1962~2010)가 봉사하던 신생국 남수단(2011년 독립)을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에 국제협력을 통해 이태석 기념 종합보건의료대학(의대·치대·약대·간호대·보건대학원)과 의료원을 세우는 등 지역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한국이 앞장서는 자세를 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로벌 사우스와 서방과의 외교적 대결에서 보다 세심한 태도와 자세도 필요하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월 남아공·에스와티니·앙골라·에리트레아를, 2월엔 말리·수단·모리타니를 각각 찾았다. 지난해 9월엔 이집트·콩고공화국·우간다·에티오피아(아프리카연합 본부 포함)를 방문해 지난 6개월 새 11개국을 순방했다. 아프리카 우방국 다지기다.

유치전은 정보전이다

이처럼 러시아는 G7 중심의 서방과 글로벌 사우스를 둘러싸고 치열한 외교전을 벌여 왔다. 올해 G7 의장국인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히로시마 정상회의를 목전에 둔 지난 5월 초 이집트·가나·케냐·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4개국을 순방한 것도 이러한 글로벌 사우스 달래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또 눈길을 줄 부분이 산유국들이다. 현재 러시아는 석유수출 가격 통제에서 사우디와 가까운 관계다. 사우디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통제하며, 러시아는 그 외 산유국이 손잡은 OPEC+를 주도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글로벌 원유 생산량과 가격은 OPEC과 OPEC+가 카르텔을 형성해 사실상 통제해왔다. 아프리카와 함께 중동을 비롯한 산유국에 대한 러시아의 발언권이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2030 부산 국제박람회 유치전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려면 이러한 국제정세를 잘 살피면서 중앙과 지방 정부가 전략적인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전략적 오류를 최소화하면서 가장 많은 표를 모으는 지름길이다.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202306호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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