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불춤 

 

홍일표

오래 가슴에 담겨 있던 불의 문장들이 여러 개의 낱말로 흩어져 날린다

어둠을 태우고
절정에 이르렀던 낱낱의 목숨들이 꽃의 낙법으로 지상에 내려앉는다

목까지 차올랐던 뜨거운 말들을 쏟아내며
심장의 불이 야생의 꽃으로 개화하는 밤

몸 안의 미명을 불사르며
금싸라기 같은 불의 씨앗을 줍는 흰 손들
생사가 하나로 뒤엉켜 타오르는 저녁을 만지며 몸 밖의 풍경에 닿는다

강가에 뒹구는 돌멩이의 볼도 발그레 물드는 시간

참고 참았던 마음들이 수천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하늘을 읽는다

춤추며 흐르는 불의 노래를
지구의 심장을 뛰게 하는 허공의 붉은 입술을

어둠의 모퉁이에서 밤을 열고 불의 교향악을 듣는 시간이 길어졌다

※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매혹의 지도], [밀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중세를 적다], [조금 전의 심장],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 산문집 [사물어 사전] 등을 펴냈다. ‘지리산문학상’,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상’, ‘매계문학상’을 수상했다.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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