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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I 정밀분석] 스피치 전문가가 분석한 한동훈의 화법과 보디랭귀지 

청중에 시선 주며 말하기… 섬세한 연출력으로 비언어적 메시지에 능해 

복잡한 내용 쉽게 설명… 자신의 주장을 결론까지 간결하게 말하는 능력 보여
종래의 정치인과는 다른 어법… 얄미울 만큼 날카롭고 불편한 이들도 있을 것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당원과의 만남 행사에서 당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스피치는 메시지의 방향으로 시선을 주는 처칠 영국 총리의 말하기 기법과 비슷하다.
4월 총선에 나오려는 많은 정치인 중에 누가 선택을 받을까? 여의도 의사당에 자리를 차지하는지의 여부는 방송계 입문과 비슷한 면이 있다.

우선 대중의 호감부터 얻어야 한다. 호감을 얻는 요소는 개인의 언어 지능, 메시지 전달력, 활력 있는 외모, 세련되고 정중한 몸가짐 등 말하기뿐만 아니라 말하기에 수반되는 태도 등 한 개인의 모든 것에 달려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말한 인물 평판과 공신력인 에토스,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파토스,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갖춘 로고스를 고루 갖춘 언변과 태도라야 유권자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 오래 인기를 얻고 활동하는 방송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수사학에서 강조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등 설득의 3요소를 고루 갖춘 이들이다. 이는 정치인에게도 필수 덕목이다.

권위주의 싫어하는 세대들에게 대리만족 주었을 것

최근 주목받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보자. 단기간에 대중적 지지와 인기에 힘입어 정계에 등장, 언행 하나하나가 바로 뉴스가 되고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법무장관 후보자로 선 청문회에서 야당의 날 선 공격을 많이 받으면서도 주눅 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맞을수록 강해지는 모습이었다. 이후 상임위나 대정부 질문에서도 사실관계가 어긋났다 싶으면 바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히 국민의 대표인 의원님 질문에 반론을 제기하고, 장관으로서의 의견을 조목조목 설명하느라 말이 길다는 주의를 들어도 답변을 얼버무린 적이 없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모범생의 자존심을 지키며 할 말은 하고, 소신껏 발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장관의 이런 태도는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세대들에게 시원한 대리만족을 주었을 것이다. 가짜뉴스로 판명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의원에게는 자신에게 의혹이 한 점이라도 있다면 모든 직을 김 의원도 같이 걸자며 끈질기게 다그치는 모습을 보였다. 거대 야당 앞에, 국무위원들이 보여주던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먼 공격적 수비형의 장관으로 기억에 남았다.

한동훈 위원장이 여당의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며 한 연설도 지금까지 보던 것이 아니었다. 정치인이 국민 앞에서 각오를 다지며 하는 거창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국민을 위해…” 이런 흔한 클리셰는 나오지 않았다. ‘동료 시민’과 미래를 열겠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장래 희망은 되고 싶은 것은 없었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며, 자신은 좋은 나라 만드는 데, 동료 시민의 삶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으며, 지금 그 소명을 다하러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는 결기를 밝히며 수락 연설을 시작했다.

한동훈 위원장은 연설문을 남에게 맡기지 않아 그런지 자신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다. 메시지가 명확하면서도 여의도 정치인들이 쓰던 식의 말이 아니다. 여당의 총선 승리를 목표로 하면서 해야 할 일을 차분히 설명하고, 공공선과 자유 민주 가치, 격차 해소 같은 추상적이지만 가치 추구를 잊지 않고 언급한다. 한마디로 가치나 개념을 말로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복잡한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자신의 주장을 결론까지 간결하게 말한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된 운동권 특권세력의 대체 주장 등을 강조하며 국민을 위해서 대신 싸우고, 국민이 처한 문제를 대신 해결하는 믿음직한 동반자가 되겠다는 각오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는 계산하거나 몸을 사리지 않고, 동료 시민과 정교한 미래를 맞기 위해 정치에서 이기고자 나왔다고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강조했다. “정당은 국민의 공복이니 누구에게든 더 잘해야 한다. 낮은 자세로 국민만 바라보자. 진영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이 먼저다. 선당후사는 안 해도 된다. 선민후사해야 한다. 당보다 국민이 우선이다. 저부터 선민후사를 실천하겠다. 강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역구 출마도 안 한다. 서민과 약자를 돕겠다. 오로지 동료 시민과 이 나라 미래를 생각하며 용기 있게 헌신하겠다. 승리의 과실을 위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뛰겠다”며 “함께 가면 길이 된다. 같이 가보자”라고 끝을 맺었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같은 말도 느낌이 달라진다. 한동훈 위원장이 하는 말이 더 신선하게 들리고, 설득력이 강한 이유는 그간 법무장관으로 공신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믿음에 믿음이 더해지면 공감하게 되고 반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야당이 한 위원장을 비판이라도 하면 바로 한 위원장의 한마디로 이슈가 사그라지고, 야당이 원하는 프레임짜기도 용이하지 않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 모두가 한 위원장의 주도적 말솜씨 때문으로 보인다. 많은 동료 시민의 성원을 받는 한 위원장을 야당이 공격하기가 만만치 않다.

준비된 메시지를 또렷하게 전달하는 집중력 있어


▎한동훈 위원장은 사람들이 연예인을 만난 듯 반가워하며 셀카 촬영을 하자고 다가오게 한다. 사진은 한 위원장이 1월 11일 부산항국제전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현장 비상대책위원회에 입장하다 지지자들과 셀카를 찍는 모습.
설득은 듣고 싶은 이가 바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정치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생각을 간파하고 실천 의제로 던지고 있다. 국회의원에 대한 과도한 특혜를 세비, 처우, 의석 등에서 줄이자고 강조한다. 기존의 정치권에서 내건 개혁은 겉시늉의 특권 폐지였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공공선을 위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기라는 점을 놓치지 않고 그가 말하는 동료 시민들의 박수와 성원을 공감으로 이끌며 실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50세에 접어든 나이지만 꼰대나 아재로 보이지 않는다. 또래 정치인들에게서 보는 굵고 유장한 말투도 아니다. 목소리 음색이 가는 편이고 말하는 속도가 본인도 고백하듯 빠르다. 포즈 간격이 상대적으로 긴 편이다. 그 잠시의 공백을 살려 메시지 전달력을 높이는 식으로 말한다. 툭툭 던지듯 하는 어미 처리 때문에 가벼운 느낌을 주며, 빠르게 발화하면서도 발음이 흐트러지지 않아 ‘잘 들리는’ 말하기 스타일이다. 단어 선정은 지나치게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편이다. 중학교 2학년 수준이 이해하기 쉬운 정도가 대중을 설득하기에 맞춤인데, 한 위원장이 그 지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말의 종결 어미까지 발화를 정확히 마무리해 세련된 문장으로 말한다. 준비된 메시지를 또렷하게 전달하는 힘은 집중력에 있다. 온전하게 에너지를 말하기에 쏟아 참석자들이 경청하게 하고, 준비한 원고를 놓고 말해도 원고를 잠시 볼 뿐 말을 할 때에는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주기도 한다. 메시지의 방향으로 시선을 주는 식이다. 처칠 영국 총리가 원고를 보고 잠시 멈추고 고개 들어 말하는 기법대로이다(seestop-say). 말이 빠른 덕에 정보 밀도가 높고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인 회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춘천에 간 한 위원장은 부모님이 모두 춘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인연을 언급한 후 국민의힘이 강원도의 힘이 되겠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자신을 강원도의 아들로 비약하는 식의 어법이 아니다. 그 지역과의 인연을 언급하면서도 힘 있게 자신의 각오를 연결해 짧고 굵게 말했다. 스피치 내공이다.

국민의힘 첫날 비대위원장 취임 일성 후 한 기자가 용산과의 관계를 질문했다. 한 위원장은 여당과 정부는 서로 보완하는 동반자적 관계라고 선을 그었다. 한 위원장은 “궁중암투 같은 것은 없다”라고 간결하게 정리해 순발력과 논리력을 보여주었다. 누가 들어도 이해하기 쉽고 핵심을 추리는 능력을 지녔다.

말하기 기술은 부단히 노력하면 개선할 수 있지만, 말의 내용·핵심 전달하기 등 말하기 내용이 바로 기사로 인용될 만큼 문장력을 갖추어 말하기는 무척 어렵다. 한 위원장은 민감한 주제를 단순화하고 쉬운 말로 간결하게 정리하는 말솜씨가 대단하다. 그의 말에 담긴 핵심어와 문장구조는 기자들이 그대로 기사 헤드라인으로 실어도 될 만큼 짜임새도 있다. 생각을 많이 하고 자신이 할 말을 늘 머릿속에 갈무리해두는 습관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사화되고, 정당의 정책과 이념을 반영하는 말을 자유롭게 구사하기가 쉽지 않은데, 한 위원장은 반론도 나열하고, 결론을 제시하는 식으로 말을 정리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불편한 공격 받을 때는 마이크 머리 내리는 습관도


▎한동훈 위원장은 회의장에서 불편한 공격을 받을 때는 스탠드 마이크의 머리를 내리는 동작을 자주 한다. / 사진:국회 사진기자단
한동훈 위원장은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활용하는 데도 비상하다. 법무부장관 시절부터 패션 감각이 남달랐다. 정치인의 용모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품평의 대상인데, 한 위원장은 늘 흐트러짐이 없다. 단정하고 센스 있는 옷차림으로 가볍게, 탄력 있게 걷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세를 반듯하게 세워 늘어짐이 없다. 나이보다 10년 이상 젊은 옷차림도 신선하다. 후드티를 양복 안에 받쳐 입는다든가, 부산 방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영광의 순간을 회상한 1992 셔츠를 선택해 부산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환대를 받았다. 공식행사를 마친 후 식사 자리에서 바꿔 입은 스포츠 셔츠 한 벌이 추억을 소환하고 시중에서 매진되기도 했다. 양복·셔츠·코트·목도리 등의 색상 활용도 다양하고, 백팩을 메고 가는 모습으로 50세의 아저씨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굳혔다. 시민들이 연예인을 만난 듯 반가워하며 셀카 촬영을 하자고 다가오게 한다. 열차 시간을 놓쳐가며 2시간 넘게 촬영에 응한 점은 인기인도 하기 힘든 세심함이다.

인기인이나 유망한 정치인의 공통점은 섬세한 자기 연출력이다. 대중은 상대의 배려심에 반드시 반응한다. 가는 곳마다 카메라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을 텐데 한 위원장은 어색함이 없다. 카메라 노출에 자연스럽다. 기꺼이 취재 인물로 피하지 않는다. 군중이 밀집한 곳에서 발판 위로 올라가 자신의 얼굴이 보이도록 하고, 손을 흔들고, 갑갑한 넥타이를 푸는 야성미를 보여주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이 역시 말솜씨 못지않은 순발력이다.

단, 회의장에서 불편한 공격을 받을 때 그만의 습관이 있다. 자신이 할 말을 마치면서 스탠드 마이크의 머리를 순간 내리는 동작을 자주 한다. 날카로운 심경을 마이크 머리를 내리는 동작으로 대신하면서도 구사하는 단어나 문장은 완결성을 보이는 식이다.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 한 위원장의 특기이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지만, 말로 하는 전쟁터인 정계에서 앞으로 상대적인 상황을 자주 만날 것이다. 상대가 제풀에 넘어가게 하는 요령도 정치인에게는 필요한 듯하다. 여유 있는 응수도 권하고 싶다.

국민이라는 말보다 실체와 현실감 있는 “동료 시민 여러분”으로 부르고 싶다는 한 위원장은 종래의 정치인과는 다른 어법을 쓰는 정치인이다. 그가 말하는 정치 해법이 얄미울 만큼 날카롭고 불편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불호를 떠나 정치인의 말하기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 한 위원장의 말과 행동이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정치의 모호함을 해소하고 우리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한다.

- 유애리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aerio@naver.com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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