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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말 완공 예정인 울산 유곡 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 유곡 단지를 시공하는 대림산업은 이 아파트의 냉·난방 비용이 다른 아파트보다 30% 정도 덜 들 것이라고 장담한다.
대림산업은 이 아파트에 ‘에코 3L 하우스’라는 기술을 적용한다. 말 그대로다. 바닥면적 1㎡당 연간 등유 3L만으로 냉난방을 해결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는 12~16L 정도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70~80% 절감하는 셈이다. 대림산업은 “이 기술을 처음으로 적용한 유곡단지에서는 에너지 30%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코 3L 하우스는 한마디로 에너지 자립형 주택이다. 먼저 일반 창호보다 4배 정도 단열 기능이 우수한 창호와 단열재를 사용한다.
지하에는 지열을 이용해 집 안 온도를 섭씨 15도 정도로 유지하는 시스템이 설치된다. 아파트 옥상과 벽면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스템과 소형 풍력발전기가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한다. 대림산업은 2010년부터는 50% 정도 에너지 절감을 할 수 있는 아파트를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림산업 기술연구소 원종서 선임연구원은 “궁극적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제로가 되는 수준을 개발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대림산업은 “2012년까지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오히려 아파트 단지에서 한국전력에 전기를 팔 수도 있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만약 에코 3L 하우스 같은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국내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 판도는 확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1L 등유를 사용할 때 1㎡당 2.6kg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를 수입해 쓴다. 고유가만 닥치면 나라 전체가 충격을 받는다. 이 때문에 에너지를 절감하고 효율화할 수 있는 기술은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함께 ‘녹색 성장’의 주요 축이다. 지식경제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그린IT 전략’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정부는 올해 인터넷 데이터 센터 전력효율화 등 IT의 녹색화에 434억원,에너지 저소비형 친환경 산업단지 등 IT 활용을 통한 녹색성장 기반 구축사업에 330억원 등을 투자할 계획이다. 기업들도 에너지 절감에 나서고 있다. 크게 두 방향이다. 하나는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과 제품 개발이다.
또 하나는 기업이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전력·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IT가 그린을 만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삼성 계열사들이 입주한 서초동 삼성타운에는 지능형빌딩 시스템(IBS·Intelligent Building System)이라는 기술이 녹아 있다.
삼성SDS가 개발한 이 기술은 각종 전력설비, 조명기기, 공조설비, 출입관리 등을 제어해 에너지 절감을 포함해 건물 유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삼성SDS 관계자는 “IBS 외에 인터넷데이터센터를 그린화할 수 있는 기술, 환경분야 공급망 관리 솔루션 등 IT서비스 분야에서 그린 비즈니스는 새로운 성장동력”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독자 개발한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이라는 기술을 자사 래미안 아파트에 적용하고 있다. BEMS는 건물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사용 현황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운영 체제다. 삼성물산은 “이를 활용하면 에너지 비용을 5%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정관념 깬 절감 기술 속출
올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 2009’에서 전력 소모를 일반 LCD패널 대비 56%나 줄인 세계 최저소비전력 32인치 TV용 LCD를 공개했다.
현대모비스는 자동차를 가볍게 만들 수 있는 부품 개발에 나섰다. 부품 경량화를 통해 연료 효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가령 노면의 충격을 흡수하는 부품인 서스펜션을 알루미늄 소재로 만들었다. 서스펜션은 대개 안전을 위해 내구성이 뛰어난 철강으로 만든다. 그러나 현대모비스는 “내구성을 유지하면서도 서스펜션 무게를 15kg 이상 줄였다”고 밝혔다.
최근 열린 2009 북미 국제오토쇼에서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된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서스펜션이 알루미늄 소재다. 원가 절감과 환경 개선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도 한창이다. 단순히 전등을 끄고 기름을 아끼는 차원이 아니다. 막대한 투자와 기술 도입을 통한 에너지 혁신 프로그램이다.
GS칼텍스는 2002년 에너지기술팀이라는 전담조직을 통해 다양한 에너지 혁신 프로그램을 개발한 결과 6년간 10%가량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렸다. GS칼텍스는 “연간 1000억원 이상 에너지 비용을 절감했다”며 “세계 최정상급 정유공장의 연평균 에너지 효율 개선치의 3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GS칼텍스는 최근 에너지효율화팀을 신설하고 1000억원 이상 신규투자를 통해 2013년까지 5000억원 이상 에너지를 절감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항공산업 특성상 일찌감치 연료를 덜 쓰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미 1996년에 세계 항공사 중 처음으로 친환경 국제규격인 ISO 14001을 취득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연료 소모량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운항기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신소재를 사용해 기존 항공기보다 20~30% 연료 효율이 높은 에어버스의 최신 기종 30대를 도입하기로 계약했다. KT는 지난해 5월 전력 소모가 20% 이상 적은 인터넷데이터센터를 건립했다.
서버와 저장장치로 가득 찬 인터넷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전력 소모가 크다. 가령 KT의 목동 인터넷데이터센터의 1년 전기료는 60억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KT는 ‘직류서버 시스템’이라는 기술을 도입해 20% 정도 소비 전력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KT 관계자는 “목동 인터넷데이터센터만으로도 약 1만4000가구가 사용하는 만큼의 전력을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KT 측은 이 기술을 전국 인터넷데이터센터에 도입하면 소비 전력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연간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6만t 정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