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야구 대표팀에게 배워라 

국가브랜드 가치 높이기 

양재찬 이코노미스트 편집위원·jayang@joongang.co.kr

대형 태극기가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 응원석을 수놓았다. ‘대~한민국’ 구호와 ‘오, 필승 코리아’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독도는 우리 땅’이란 피켓이 오르내렸다.

일본을 누르고 4강을 확정한 뒤 마운드에 꽂은 태극기 세리머니는 TV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졌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목에 걸자 운이 좋아서라고 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거가 한 명밖에 안 되는 한국팀이 5명의 메이저리거가 포함된 일본팀을 연거푸 눌렀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 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은 76억1000만원. 81억5200만 엔(약 1300억원)에 이르는 일본 선수들 연봉 총액의 17분의 1 수준이다.

스즈키 이치로 한 명의 연봉만 1700만 달러(약 240억원)로 한국 선수 전체보다 많다.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는 이런 일본 선수들을 우리 젊은 선수들이 이겼다. 반복된 승리는 더 이상 운이 아니라 실력이다.

뛰어난 기본기와 탄탄한 수비, 완벽한 팀워크가 이룬 개가다. 한국 경기가 진짜 클래식(classic·명품)이란 말도 나온다. 한국 야구가 코리아 브랜드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 가치는 조사 대상 50개 나라 가운데 33위다. 미국의 국가브랜드 조사기관 안홀트(Anholt)가 발표한 국가브랜드지수(NSI) 순위에서 한국은 인도(27위), 중국(28위)에도 뒤졌다. 일본(5위), 미국(7위)과의 거리는 더욱 멀다. 경제규모로 본 순위 13위와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니 한국 기업이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아도 받는 가격은 선진국 제품의 70% 수준에 머무른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란 이유로 30%는 깎아먹고 들어간다. 이름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이런 억울함을 없애겠다며 MB정부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든 것이 국가브랜드위원회다.

첫 회의가 3월 17일 열렸다. ‘국민과 함께 배려하고 사랑 받는 대한민국’이 비전으로 제시됐다. 4년 뒤 2013년까지 국가브랜드 순위를 OECD 평균 수준인 15위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태권도 명품화와 디지털 소통 대한민국 만들기 등 10대 과제를 선정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인당 GDP가 3만 달러, 4만 달러가 되더라도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 받지 못하는 국민이나 국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존경심이 그냥 우러나올까? 위원회가 주한 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가브랜드 저평가 원인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북한과의 대치 상황, 국제사회 기여 미흡, 정치·사회적 불안이 3대 요인으로 꼽혔다. 이 모두가 대통령과 정치권이 앞장서 해결할 몫이다.

게다가 한국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로 외국인들은 김치·불고기>한복>한글>태권도>태극기 순서로 꼽았다. 오랜 역사·전통과 관련된 이미지로 과거 한국이 저개발국일 때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비치던 시절의 것들이지 역동적인 한국 경제의 진면목과는 거리가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은 3월 19일 국내 강연에서 “대통령이 비전문가 원로들을 모아 태권도나 김치 같은 홍보 대상 10가지를 꼽는 방식에 놀랐다”고 꼬집었다. 그의 말대로 다른 나라에서 한국에 대해 알고 싶은 점, 한국에 대한 편견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 뒤 소비자(다른 나라)가 원하는 국가브랜드를 홍보해야지 공급자(한국)가 원하는 것을 PR하려 들어선 먹혀 들지 않는다.

야구 대표팀의 활약에서 보듯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열정, 자신감, 의욕 등을 강점으로 본다. 국격을 높이려면 정치부터 달라져야 한다. 정치권이여, 존경 받으려면 야구 대표팀에게 배워라.

980호 (200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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