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현실 직시하되 뒷걸음치지 마라” 

“위기관리·미래투자·역량강화·고객중심 ‘강조’ … ‘현장경영·스킨십경영’도 공통점”
불황에 강한 CEO 25인 - 불황극복 10대 원칙 

큰 방향을 제시하는 통찰력과 직원을 아우르는 리더십, 강력한 추진력, 농밀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철저한 위기관리 능력. 요즘 CEO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불황에 강한 CEO 25인’은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의 입을 통해 ‘불황극복 10대 원칙’을 뽑아봤다.
지난해 충남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현장을 찾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기업이 왜 성장 정체에 빠지는가를 연구한 책 『스톨포인트』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포춘 100대 기업에 든 500여 기업을 조사한 결과 무려 87%가 성장 정체를 경험했다. 중요한 것은 100대 기업 중 75곳은 성장 정체에 빠진 후 재도약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성장이 멈춰버린 후 내리막을 걸었다는 얘기다.

성장 정체는 어떤 기업에나 발생하고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그 덫에 걸린다. 성장이 멈추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기 하강, 시장 선두에 대한 과신, 핵심 사업의 성급한 포기, 기술혁신 실패, 경쟁업체의 저가 공세, 문어발식 경영, 신시장 창출 실패, 핵심 인재의 이탈, 기업 인수합병의 실패, 무능한 이사회,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 사건….

다시 말해 기업이 성장을 이어가고 이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 따지면 ‘초인적’에 가깝다. ‘불황에 강한 CEO 25인’이 이끄는 기업은 어떤가? 이들 기업은 지난 25년간(코스닥기업은 최소 13년간)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 단 한 해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다. 외환위기와 IT버블 붕괴, 카드사태 등 극심한 불황기에도 흑자를 이어갔다.

이들 기업은 세계 금융위기로 촉발된 ‘100년 만의 최악의 경제 위기’마저 헤쳐 나갈까? 어떤 전략을 펼까? 이코노미스트는 불황에 강한 CEO 25인의 주요 발언과 인터뷰, 각 기업의 대응 전략 분석을 통해 이들이 ‘불황에 대처하는 원칙’을 뽑아 봤다. 한마디로 그 자체가 ‘불황극복 지침서’였다.

1. 한순간도 위기에서 눈 떼지 마라

“현실이 어떻게 전개되고 움직일지 누구도 예측 못하는 상황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와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계속 이어 나가는 게 모두 필요하다. 지금으로선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씩 모든 계획을 점검하며 가는 도리밖에 없다.”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2월 그룹 사보에 올린 글 중 일부다. 위기경영, 비상경영, 시니리오 경영은 불황극복 전략의 기본이 됐다.

이상대 삼성물산 부회장도 임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상황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 경영을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물산은 회사 전체뿐 아니라 본부별로 시나리오 경영을 일상화해 나간다는 방침도 세웠다. LG전자의 경우는 지난해 12월 여의도 트윈타워 서관 15층에 ‘워룸(Crisis War-room)’을 설치하고 상시 위기 관리 체계를 갖췄다. 롯데제과 역시 ‘상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2. 미래 투자는 아끼지 마라

현금흐름을 관리하고 강력한 원가절감 노력 속에서도 미래 투자는 아끼지 않겠다는 것은 25개 기업이 밝힌 올해 경영방침의 가장 뚜렷한 공통점이다. 지난 13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견실한 경영으로 초일류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투자는 미래 대비 성장동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이윤우 부회장의 발언이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정몽익 KCC 사장도 “생존을 위해 현금 창출 능력 제고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전략적 투자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 강력한 주문도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다. 구 회장은 3월 초 열린 임원 세미나에서 “불황을 극복하고 시장 리더로 발돋움한 기업의 공통점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미래에 대한 투자였다”며 “LG만의 차별화된 역량을 키워갈 수 있는 R&D 투자는 줄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LG그룹은 올해 지난해보다 25%나 증가한 3조5000억원을 연구개발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2월 신입사원과 ‘회장과의 대화’ 시간을 갖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3. 혁신은 과감할수록 좋다(빠르고 더 유연하게)

지난 1월 21일 삼성전자는 6대 총괄체제를 부품(DS)과 세트(DMC) 등 2개 사업 부문으로 재편하는 파격적인 조직혁신을 단행해 화제가 됐다. 현장경영체제 구축을 위해 본사 인력의 상당 부분을 현장에 재배치했다. ‘유연하고 빠르게 혁신을 실행하라’는 불황의 파고를 넘는 화두가 됐다. 한마디로 ‘혁자생존(革者生存)’이다.

혁신의 종류도 다양하다. ‘전 직원 각자 업무 분야에서 생산성을 30% 향상시킨다’는 삼양그룹의 ‘밸류업(Value UP) 30’ 캠페인부터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스탠딩 회의를 도입한 삼성화재의 회의문화 혁신까지 여러 방면에서 혁신운동이 한창이다. 이상대 삼성물산 부회장은 “캐시플로 제고, 인력, 경비 등 제반 요소를 철저히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 원가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혁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4. 현실인식은 냉철하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2월 18일 ‘2009년 경영전략회의’에서 “현금흐름에 최대 주안점을 두고 상황 변화에 따른 시나리오 경영을 시행하자”고 말했다. 이상대 삼성물산 부회장은 주총을 통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패러다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종래의 상식에 입각해 안일하게 대응하다 보면 급전직하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김상후 롯데제과 대표는 최근 주주총회에서 “각종 식품안전 사고로 실추됐던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임원들을 대상으로 “SK도 안전지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윤 삼양그룹 회장 역시 지난 3월 21일(토요일이었다) 열린 임원포럼에서 “지금 상황에서 정신자세를 먼저 가다듬고 임원들이 경영 역량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 전문적 식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CEO들이 미래 전략을 앞세우기 전에 반드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현실을 정확히 보라’는 것이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숱한 기업이 눈앞의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해 내리막을 걸었다. 경제학과 교수, 유명 컨설턴트 등이 요즘 기업에 많이 초빙되는 이유기도 하다.

5. 답은 현장에 있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 즉시 의사결정을 하는 현장 중심문화가 중요하다.” 요즘 업무 대부분을 수원 기흥공장에서 처리하고 있다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내방송을 통해 한 얘기다. 불황에 강한 CEO들이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불황극복 전략이 바로 현장경영이다. 최태원 회장, 허명수 GS건설 사장은 올 들어 잇따라 각 계열사나 공사현장을 방문하는 ‘현장경영’에 몰두하고 있다.

구자홍 LS 회장은 지난달부터 각 계열사 사업장을 방문하고 있다. 올해 71세인 정몽구 회장은 지난달 3박5일 동안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러시아를 돌았다. 지난달엔 3년 만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닷새간 뉴욕, 앨라배마, LA, 디트로이트를 순회했다”고 한다. 미 동서남북을 다 밟은 셈이다.

6. 조직을 정비하고 핵심 역량을 갖춰라

“인력·조직·사업 구조조정을 병행한다. 지원부서 인원 30%를 고객 접점 영업현장에 전진 배치하고, 사업지원 등 간접부서를 통폐합하고, 그룹 경영기획실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한화그룹이 밝힌 조직개편 방향이다. 지난 1월 삼성전자의 파격적인 조직개편 전후로 기존 조직 체제를 정비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전장에 나갈 전열을 가다듬는 것은 기본이다. 목적은 핵심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올해 전체 인력 가운데 20%를 신성장 분야와 현업의 생산부서에 재배치할 계획을 세웠다. 아울러 체계적인 위기관리를 위해 MC사업(휴대폰·노트북컴퓨터·MP3사업부) 본부장 직속으로 위기관리 태스크포스팀을 상설조직으로 신설했다.

GS건설은 주력 조직이던 개발 및 주택사업 부문을 축소하고 사회간접자본시설 등 공공 공사 영업부서를 확대 개편했다. 생존을 위한 물량 확보 경쟁이 치열한 주택부문 대신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을 추진하는 SOC 쪽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포석이다. 현대차의 경우는 최근 국내와 해외판매를 총괄하는 글로벌영업본부를 신설했다.

한독약품은 공격적 영업을 위해 마케팅팀과 영업팀을 통합한 커머셜팀을 출범시켰다. 정비된 조직만 잘 살펴도 해당 기업이 키우려는 핵심 역량이 잘 드러난다.

7.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한다

지난해 LS그룹 계열사들은 여러 차례 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 LS전선은 미국 최대 전선업체 ‘슈퍼리어에식스’를 인수해 세계 전선업계 3위에 올랐다. LS엠트론은 지난해 11월 자동차부품 회사인 대성전기공업을 인수했고, LS산전 역시 지난해 전력선통신(PLC) 업체인 플레넷을 인수했다. LS산전은 차세대 사업인 그린비즈니스 분야 성장 역량 확보를 위한 6~7건의 ‘스몰 M&A’ 추진 방침도 밝혔다.

불황기엔 크고 작은 M&A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롯데칠성음료가 OB맥주 인수를 추진하는 것을 비롯해 올해 내내 M&A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불황에 강한 CEO 25인’에 속한 한 대기업 관계자도 “상당히 진척된 해외 기업 인수건이 있다”고 밝혔다. M&A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계열사 분리 또는 매각이다.

지난해 세계 1위 전선업체인 이탈리아 프리즈미안에 5000억원을 투자했던 대한전선은 최근 계열사인 대한ST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도 올해 계열사 간 유사 중복사업을 통폐합하고, 비핵심사업 정리 및 독립사업 분리 등 기존 사업 부분을 혁신해 나갈 계획이다.

8. 역발상이 기회를 만든다

“남이 보지 못한 기회를 찾아 전진할 것이다. 성장잠재력이 큰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자원개발 및 이와 관련된 플랜트, 인프라 사업 등을 추진하는 전략국가 컨트리 마케팅을 확대하겠다.”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의 얘기다. 남과 다른 생각, 불황을 이겨내는 역발상 전략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좋은 예다.

현대차는 최근 10년 전 미국 시장에서 통했던 ‘10년 10만 마일 품질보증’ 같은 파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실직 시 차량 무료반납 프로그램(Hyundai Assurance)’이다. 환율 영향도 크지만 현대차는 올 들어 1~2월 동안 미국 시장에서 전년 대비 3.6% 늘어난 판매 실적을 올렸다. ‘현대 어슈어런스’ 마케팅이 실직 공포에 싸인 미국 소비자의 지갑을 열었다는 평이다.

같은 기간 GM은 -51%, 포드와 도요타는 각각 -46%, -36%의 실적을 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1대 1 뷰티 솔루션’을 표방하며 대대적으로 토털 뷰티숍을 론칭하고 화장품 업계 최초로 ‘뷰티 포인트 제도’를 도입한 아모레퍼시픽의 경우도 역발상을 통해 불황을 넘어서는 전략의 예다.

9. 직원과 소통하고 고객을 이해하라

스킨십 경영을 위해 직원 곁으로 다가가는 CEO도 많아졌다. 임직원 간 소통을 통해 사기를 올리고 생산성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에 대해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는 “불황기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의 사기”라고 밝혔다. 이윤우 부회장은 “조직 간 벽을 허무는 개방문화를 적극 구축해 내부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본준 부회장은 최근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LG상사에 온 후 매해 강조했던 것은 변화하자는 것”이었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우리가 원하던 근본적인 변화들을 얼마나 이뤄냈는지 돌아보자”고 주문했다. 구자홍 LS그룹 부회장, 허명수 GS건설 대표, 김윤 삼양사 회장 등 최근 직원과의 교류, 내부 소통을 강조하는 CEO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40년 무분규 기업인 한독약품의 경우 CEO인 김영진 대표와 직원 간 간담회, 직원 대상 유머교육, 이미지컨설팅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고객 중심 경영도 CEO들이 강조하는 화두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모든 기업활동의 출발점에는 고객이 있어야 한다”며 “고객을 두 번 이상 감동시키라”고 자주 주문한다고 한다.

지대섭 삼성화재 사장 역시 “보험회사의 근본은 신뢰와 신용을 바탕으로 고객을 섬기는 것”이라며 “원가경쟁력을 통해 절감되는 비용만큼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해 나가자”고 독려하고 있다.

10. 글로벌 위기 해법은 글로벌에서 찾는다

많은 CEO의 시선은 역시 글로벌을 향해 있었다. 정몽구, 이윤우, 김승연, 최태원, 정몽익, 구본준, 서승화(한국타이어), 류덕희(경동제약)…. 불황에 강한 CEO들은 한결같이 ‘글로벌과 해외시장’을 강조했다. CEO들이 직접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일도 부쩍 늘었다. 잠시일지 모르지만 ‘환율 효과’를 혼동하지 말고 이 참에 해외시장을 더 넓히고 인지도를 확고히 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KCC의 경우 정몽익 사장이 신년사를 통해 “기존 해외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고히 갖춰 나가는 동시에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판매할 수 있는 해외생산기지를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가자”고 주문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리적·문화적으로 가까운 중국,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화장품 시장의 본토라 할 수 있는 프랑스와 미국 시장 진출도 더욱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류덕희 경동제약 회장은 올해 경영방침을 ‘경영 다각화와 수출 증대의 해’로 정했다. 경동제약은 해외 시장의 소득 수준에 맞춰 국내에서 검증 받은 제품은 물론 신규 제품의 해외시장 다각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는 “중동과 동남아 지역에 라이선스 수출을 하는 방안을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산전수전을 겪은 ‘불황에 강한 CEO’들은 한결같이 “현실을 똑바로 보되, 뒷걸음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마치 베트남 전쟁 때 8년간 포로로 잡혀 있던 중대원들에게 “단기간 석방은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풀려난다”고 했던 미군 장교 스톡데일처럼 말이다. 또 한 가지 말의 성찬, 형식적인 비상경영이 아니라 ‘실행’을 강조하는 것도 공통으로 관찰되는 대목이다.

또 한 가지. ‘불황에 강한 CEO’ 중 유독 불황기와 위기 때 CEO에 취임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97년), 최태원 SK 회장(98년),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99년)은 외환위기 한파 때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임종욱 대한전선 부회장, 박건호 남양유업 대표, 안성호 에이스침대 사장, 윤성덕 태광 사장은 카드사태로 경기가 바닥을 치던 2003년 취임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지대섭 삼성화재 사장, 허명수 GS건설 사장은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CEO 자리에 올랐다. 김상후 롯데제과 대표는 취임(2006년)하자마자 과자 유해성 논란이라는 악재를 맞았고, 김수진 한글과컴퓨터 사장은 CEO 자리에 오른 후(2008년 1월) 대주주(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가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니까 경제 전문가들이 뽑은 ‘불황에 강한 CEO’는 불황·위기와 꽤 인연이 있고 그래서 더 불황에 강한지 모른다.

불황극복 10대 원칙
■ 한순간도 위기에서 눈 떼지 마라
■ 미래 투자는 아끼지 마라
■ 혁신은 과감할수록 좋다(빠르고 더 유연하게)
■ 현실인식은 냉철하게
■ 답은 현장에 있다
■ 조직을 정비하고 핵심 역량을 갖춰라
■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한다
■ 역발상이 기회를 만든다
■ 직원과 소통하고 고객을 이해하라
■ 글로벌 위기 해법은 글로벌에서 찾는다
외환위기·카드사태 거친 영욕의 기업史
한국 경제 25년 위기의 순간들
국내총생산(실질성장률)
지난 25년간 한국경제는 수차례 위기의 순간을 넘겨 왔다. 지금까지 경제성장률이 제로 또는 마이너스 상태까지 갔던 적은 두 번이다. 제2차 오일쇼크 직후인 1980년과 1998년이다.

우리 기억 속에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역시 1998년의 불황이다. IMF 외환위기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당시 경제성장률은 -6.9%로 곤두박질쳤었다. 요즘의 경제위기가 금융기관 부실에서 비롯됐다면 10년 전 위기는 대기업의 부도가 위기의 씨앗이 됐다. 30대 그룹 중 14개가 그야말로 순식간에 망해 버렸다.

연이은 대기업 부도의 포문을 연 것은 한보철강이었다.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은 5조7000억원의 부채를 안고 부도가 났다. 자기자본비율이 낮고 수익성도 검증되지 않은 코렉스 공법을 채택한 한보철강에 산업은행을 비롯한 제일·조흥은행 등이 거액을 대출해 줬다.

특혜대출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 당시 청와대 홍인길 총무수석을 포함해 여야 국회의원 4명, 현직 각료 1명, 전·현직 은행장 3명이 1억~7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 기업의 투명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계기가 돼 외환위기의 먼 원인의 하나가 됐다”고 회고했다.

뒤이어 기아자동차 등이 쓰러졌다. 당시 국내기업은 평균 부채비율이 424.6%에 이를 때까지 차입에 의존해 확대지향적 경영전략을 펼쳐왔다. 차입금은 주로 외자였다. 1997년 총외채는 1161억 달러. 그중 단기 외채가 절반 이상이었다. 대기업이 빚더미에 오를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한 금융기관도 문제가 많았다.

당시엔 기업 규모가 크고 물적 담보만 있으면 다소 무모하다 싶은 사업계획에도 대출을 해줬다. 대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1997년 11월 말 38조2000억원까지 증가했는데, 그 결과 대외신인도가 땅에 떨어졌다. 그러자 외국인이 서둘러 돈을 회수하면서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당시 중소기업은 흑자도산 위기에 놓였는데 대기업 부실이 여신 감축으로 이어지면서 중소기업의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1997년 11월 16일 IMF 캉드쉬 총재가 비밀리에 서울에 찾아오고 결국 IMF가 내린 해법에 따라 고금리와 과감한 기업정리, 부실금융기관 통폐합이 이어졌다.

1999년 경제성장률이 9.5%로 오르기까지 구조조정과 퇴출이라는 말을 거의 매일 들으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07년 이전까지 가장 경제성장률이 낮았던 시기는 2003년의 3.1%다. 카드대란이 발생한 시기다. 카드업계 1위 LG카드로부터 시작된 금융기관의 부실이 한국경제를 흔들었다. 원인은 카드사 간 과열경쟁이었다.

심지어 미성년자에게도 카드가 발급됐다. 1999년 5월 규제개혁위원회는 월 70만원으로 정해져 있던 현금대출한도를 없애면서 2002년 카드현금 대출 전체 이용 규모는 무려 412조8000억원이나 됐다. 그 결과는 신용불량자 400만 시대였다. 정부는 2003년 4월 3일 긴급대책인 4·3대책을 내놨다.

신용카드사 카드채의 만기를 연장하고 투신사가 환매를 요청할 것에 대비해 5조원의 환매자금을 조성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LG카드는 부도를 냈다. 다음해 1월 채권단의 추가 출연을 결정하고 LG그룹이 LG카드를 포기할 때까지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금융감시·감독 체계 정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교훈을 남긴 채 말이다.

임성은 기자·lsecono@joongang.co.kr


981호 (200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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