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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잦고 `말` 많은 생수시장] 먹는샘물 신기루였나 

백두산 샘물·해양심층수 사업 부진…페트병 수돗물 판매 당분간 어려울 듯 

이윤찬·김태윤 기자 chan4877@joongang.co.kr

15년 전만 해도 ‘부자만 먹는다’던 먹는샘물(생수)은 이제 대중음료가 됐다.

시장은 훌쩍 컸다. 지난해 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생수시장 곳곳에서 경고음이 들린다.

가장 인기가 많은 제주도 지하수는 무한정 퍼올릴 수 없는 처지다.

백두산 샘물을 팔겠다던 대기업은 줄줄이 실패했다.

해양심층수를 이용한 생수도 반응이 차갑다. 생수시장을 심층 취재했다.

시장 장악력을 넓히고 있는 해외 프리미엄 생수의 현주소도 살펴봤다.


처음엔 누가 생수를 사 먹겠느냐고 했다. ‘돈 있는 사람들이나 돈 내고 물 먹지’라는 게 세상의 인식이었다. 1994년 국내에서 먹는샘물 판매가 허용되기 전까지 그랬다. 당시 정부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문민정부 이전 정부들은 ‘국민의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생수 판매를 막았다. 자신의 집권 시절 먹는샘물 판매를 허용한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사실 생수를 곱지 않게 생각했다. YS의 1987년 대선 공약집에는 ‘생수 시판 금지’가 들어 있다.

‘생수는 돈 많은 사람이나 먹을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였다. 막상 생수가 판매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1995년 노르웨이산(産) 바이킹과 금강산 샘물이 수입됐다. 국내 14개 업체는 판매에 들어갔다. 생수시장은 덩달아 커졌다. 1998년 시장규모 1000억원을 돌파했다.

2005년부터는 ‘생수 신드롬’이 불었다. 에비앙(프랑스)·볼빅(스위스)·페리에(프랑스) 등 해외 프리미엄 생수가 국내에 진입하면서 먹는샘물 시장은 ‘황금어장’이 됐다. 그 무렵 생수를 판매하는 국내 업체는 90곳에 달했고, 브랜드는 100개가 넘었다. 국내 대기업은 새로운 물을 찾아 해외로, 바다로 나갔다.

농심·롯데칠성음료·홈플러스 등 대기업은 백두산 물을 사들이기 위해 중국 지린(吉林)성으로 날아갔다. CJ와 SK는 햇빛이 닿지 않는 수심 200m 이상의 바닷물(해양심층수)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수돗물을 생수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해까지 계속됐다.

그런데 잘나가던 생수시장에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국내외 생수 생산업체가 난립하면서 시장은 과열되고 불·편법행위가 성행한다. 하나의 취수원에서 여러 브랜드의 생수가 생산되는 불법행위는 여전하다. 브랜드별 품질 차이도 따지고 보면 별로 없다. 기업들이 품질 향상보다 생산량 증대에 매달린 탓이다.

박창근 시민환경연구소장은 “왜 모든 생수가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내외 생수의 수질검사를 해보면 수돗물과 큰 차이가 없을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을 자처하며 백두산 샘물사업에 뛰어들었던 대기업은 쓴잔을 마셨다. 2008년 롯데칠성음료가 선보였던 ‘아이시스 백두산 샘물’, 2010년 홈플러스가 내놓은 ‘백두산 천지수’는 사업을 접었다.

해양심층수 생수시장의 성장 속도 역시 예상보다 느리다. 2010년 1000억원대로 커질 거라던 해양심층수 시장은 아직 70억원대에 머물러 있다. 해양심층수 시장점유율 1위 브랜드 ‘파나블루 슈어’의 지난해 매출은 4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돗물을 페트병에 넣어 판매하려던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발걸음은 무뎌진 지 오래다. 정부는 ‘특수하게 처리된 수돗물을 돈 받고 팔면 일반 수돗물에 대한 불안이 커진다’는 반대 여론에 부닥쳐 수돗물 판매를 허용하는 법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각종 바이러스가 생수시장을 위축시킨다. 올해 초 출현한 구제역 여파로 육지에서 나오는 생수 브랜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가축 매몰지의 침출수 유출 문제가 생수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 삼다수의 국내외 실적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그나마 위안거리다. 삼다수의 판매량은 2008년 39만9588t에서 지난해 49만7330t으로 크게 늘었다. 대일 수출량은 올해 6월 1만t을 넘어섰다. 지난해 수출량 1798t 보다 5배 이상 많다.

하지만 삼다수에도 걱정은 있다. 삼다수의 물로 쓰이는 제주도 지하수는 취수한도 제한이 엄격하다.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은 지하수 일일 최대 이용량을 120만t으로 못박고 있다.

취수량을 함부로 늘릴 수도 없다. 제주도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데다 섣불리 증산했다가는 지하수가 고갈될 우려가 있다.

얼마 전까지 생수는 곧 황금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업은 무분별하게 생수시장에 진입했고, 무조건 성공할 줄 알았다. 신기루였다. 이제는 실체를 봐야 한다.

1094호 (20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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