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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 만든다 

경제민주화+복지+일자리 삼위일체론 내세워…당·캠프 구체적 실천방안 마련 중 

김태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경제관이 점차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줄푸세’로 상징되는 성장 담론에서 벗어나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강조하고 있는 박 후보의 최측근들은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 ‘경제민주화’ ‘성장과 분배의 조화’가‘근혜노믹스(박근혜식 경제정책)’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근혜 후보의 경제관과 주요 경제 이슈별 입장을 정리했다.박 후보를 돕는 경제 참모진과 그가 지금과 같은 경제관을 같게 된 이력과 배경도 취재했다.



“박근혜 후보의 경제관을 이해하려면 스탠퍼드대학 연설과 생애 맞춤형 복지방안을 유심히 살피면 된다. 그게 ‘근혜노믹스’의 핵심이다.”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국가미래연구원 김광두 원장의 말이다. 김 원장은 8월 2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때 양극화와 복지, 부의 불평등 문제가 대두되면서 박 후보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안팎에서 박근혜 후보를 돕고 있는 경제 브레인들 역시 “2009년 스탠포드대 연설을 전후로 복지와 분배가 강조된 성장, 경제민주화,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박근혜 경제관의 틀이 잡혔다”고 입을 모았다.

시계를 2009년으로 돌려보자. 같은 해 5월 6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초청으로

강연을 했다(영어로 연설했다). 북핵 문제와 한미 동맹을 주제로 예정된 강연에서 박근혜는 뜻밖의 화두를 꺼냈다. 바로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Pathway to the disciplined capitalism)’다. 박 후보는 강연에서 “지금 세계 경제는 크게 세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본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민간 부문은 탐욕이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이익의 극대화에만 치우쳐 그에 따른 책임과 사회의 공동선을 경시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선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못했다는 도전을 받고 있다”며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도 미흡했다”고 말했다. 또한 보호주의가 대두하는 문제에 대해선 “각국이 모두 빗장을 경쟁적으로 걸어 잠근다면 공멸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 세가지 문제를 ‘원칙이 무너진 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는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선, 민간 부문과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새롭게 확립되고, 국가 간 협력이 더 강화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좀 더 자세히 보자.


‘민간 부분은 경제 주체들의 생각과 지향점이 바뀌어야 한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 공동선이 합치될 때 그것이 진정한 성장이고 지속가능한 이윤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합의가 중요하다. 오직 수익률만을 높이려는 과다한 레버리지 관행이나 무분별한 파생상품 거래 같은 도덕적 해이가 계속되는 한 이번 위기 같은 시장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앞으로는 주주이익과 공동체 이익을 조화시킴으로써 기업윤리를 더 높이 창달해야 할 것이다.’

“줄푸세 기조 바뀐 것은 아니다”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 이번 위기가 시장과 감독의 불일치에서 비롯됐듯이 감독의 사각지대가 있어서는 안 될것이다. 관치주의는 안되지만,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은 정부가 더욱 강화해야 한다.그리고 정부는 공동체에서 소외된 경제적 약자를 확실히 보듬어야한다. 단순히 약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저마다 소질을 바탕으로 국내총생산(GDP) 창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경제발전의 최종 목표는 소외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의 행복 공유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규제 강화될 듯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박근혜 후보가 들고 나온 슬로건은 ‘줄푸세’였다. 세금 줄이고, 기업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는 것이다.복지나 분배 논의는 상대적으로 약했고, 성장 담론에서는 ‘747 공약과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후보에 밀렸다. 4년 여가 지난 후, 박근혜 후보의 입에선 성장보다는 복지, 경제민주화와 같은 말이 더 자주 나온다. 그가 ‘좌클릭’했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한민주당 재선 의원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작은 정부와 성장, 감세 등사실상 신자유주의 기조를 강조했던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전도사를 자처하는 것을 보면 근혜노믹스가 아니라 그네처럼 왔다 갔다 하는 그네노믹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 측근들은 달리 설명한다. 김광두 원장은 “박근혜 후보가 줄푸세 기조를 폐기한 것은 아니다”며 “경제민주화가 강조되다 보니 그런 오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후보는 8월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부에서 줄푸세 원칙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최근 정책 기조로 내놓은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 등 3대 원칙이 결코 배치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세히 뜯어보면, 박근혜식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야권·진보 진영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박 후보는 퍼주기식 복지와 그에 따른 재정 확대에 부정적이다. 박 후보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생애주기별맞춤형 복지 정책’은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이 이뤄지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복지가 필요한 국민에 정부가 생애주기를 따라가면서 개입하고, 이것이 고용 증가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최근 “재정 건전성을 무시하면서까지 복지를 하는 것은 반대”라며 “무조건 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재교육과 취업 기회를 결합하면서 국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 자연스레 성장으로 연결되는 선순환형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박근혜 후보의 최측근 경제 브레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박 후보는 2007년 이후 한국형 경제모델 또는 ‘제3의 길’에 깊은 관심을 뒀고,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박 후보는 성장 일변도의 경제 프레임으로는 갈수록 악화되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고하다”고 전했다.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은“(근혜노믹스는) 절제된 자본주의라는 기조 아래 성장과 분배를 함께 달성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은 “공정하지 않은 경쟁이나 관행으로 국가의 경제 성장과 국민 삶의 질 향상 사이에 생긴 간극을 메우는 일에 집중하는 게 박근혜식 경제민주화”라고 설명했다.

7월 10일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한국형 복지 확립 등 3가지 화두를 던졌던 박 후보는 8월 20일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이를 재확인했다. 그가 내건 큰 그림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일자리의 삼위일체론’이다. 그는 “산업화 시대의 성장패러다임, 민주화 시대의 분배 패러다임을 넘어 새로운 제3의 변화,국민 행복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언문에는 ‘국민행복’이라는 단어가 열 두 차례나 등장했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면서도 “성장과 복지가 따로 가지 않고 함께 가는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재계가 관심을 갖는 기업관도 드러냈다. 박 후보는 “정당한 기업활동은 최대한 보장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지만,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제3의 길’ ‘불공정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 ‘생애 맞춤형 복지’ ‘과학기술을 활용한 일자리 창출’이 근혜노믹스를 규정하는 키워드다.

현재 박근혜 후보의 경제참모들은 삼‘ 위일체론’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안(공약)을 만들고 있다. 대·중소기업 상생, 대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부자 증세, 복지 재원 마련, 비정규직 철폐 등과 관련된 정책이 대거 나올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당내에서도 경제와 관련한 이념 스펙트럼이 넓고, 박근혜 후보 역시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기 때문에 선거대책위원에서 외부 인사를 더 영입하면 보다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정책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53호 (201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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