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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소비·서비스업 업그레이드 이끈다 

신흥기업 1000곳 중 성장성 큰 ‘미래 스타기업’ 21곳 선정 




흔히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하면 사람들은 조악한 저가 제품부터 떠올린다. 요즘은 다르다. 부유해진 중국인들은 자국산 제품에 더 높은 품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중국인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중국 기업도 고급 소비재와 서비스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기업가에서는 반년에 걸친 리서치와 선정 작업, 인터뷰와 심층 연구를 통해 중국 신흥기업 1000곳 중 성장성이 큰 ‘미래 스타기업’ 21곳을 뽑았다. 이들 21개 신흥기업은 성장성과 잠재력이 클 뿐만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의 맥을 짚어냈다.

이들 기업과 기업인들은 현재 중국 경제와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발휘해 산업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이번에 선정된 21개 기업의 평균 성장률이 200%를 넘는다. 이들은 경제환경에 대해서도 대부분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고(61.67%), 동시에 거시경제환경이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높았다(40%). 또한 이들은 제품 서비스화와 기술 서비스화의 특징이 두드러졌다. 중국의 신성장 동력의 맥을 잘 짚은 미래스타기업 3곳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한다.

피야만

최 고급 석류와인으로 중국 부유층 공략


피야만의 쑨리핑 대표는 2008년 석류와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신장의 허톈에서 창업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돈을 거의 벌지 못했다. 창업하기 몇 년 전 그는 허톈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 지역 석류 맛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허톈 피산현은 중국에서‘석류의 고향’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석류는 신장의 보물로 여겨질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또한 이 지역에서만 생산할 수 있는 석류 품종이라 다른 지역에서는 재배하기 어려웠다. 허톈 지역언어에서 피얼은 ‘선녀’, 아러만은 ‘과일’이라는 뜻. 회사 이름인 피야만은 바로 ‘선녀가 보내온 과일’이라는 의미이다.

쑨리핑 대표는 타고난 애주가로 산둥성 펑라이에서 자랐다. 그곳은 와인의 고장이다. 그는 우연히 알게 된 피산현의 최고급 석류로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모험이었다. 아주 멀고 외진 벽지에서 창업한다는 건 수많은 불확실성에 뛰어드는 일이다. 전에도 토착민들이 석류와인을 만든 적이 있었지만 거의 모두 실패했다. 석류나무를 키우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다. 허텐 지역의 석류나무는 관목과에 속하는데, 건조한 겨울 기후에는 나뭇가지를 구부려 흙으로 덮어줘야 한다. 하지만 나뭇가지를 묻을 때 너무 얕으면 겨울에 얼어 죽고, 너무 깊게 묻으면 부패하기 쉽다.

지역 토착민의 경험에 의존해야 하는데 노동력이 부족했다. 쑨리핑 대표는 3000묘(1묘 243㎡) 규모의 와인농장을 짓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외국의 와인농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가 봐왔던 외국의 와인농장은 1묘마다 포도생산량이 500kg을 넘지않았는데, 중국에서는 5000kg이 넘었다. 중국에서는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올해 피야만의 석류와인 생산량은 단지 500t

뿐이다. 바로 쑨리핑 대표의 창업 이념이 서양의 와인농장처럼 아주좋은 품질의 와인만을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업 초기, 쑨리핑 대표를 가장 힘들게 만든 건 판매 루트였다. 해외의 성숙한 와인시장에서는 보통 와인농장이 술을 생산한 다음 공식적인 출시 발표를 하고, 이에 맞춰 전 세계 판매상들이 술을 시음하고 경매에 참여된다. 경매가 끝난 후 와인농장은 최종적인 판매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중국의 와인시장은 전혀 다르다. 성숙한 시장 구조를 찾아볼 수 없다. 창업 초기 피야만의 석류와인은 다른 와인과 마찬가지로 주로 도매상과 대리상을 통해 팔렸다.

2008년 쑨리핑 대표는 다시 큰 도전에 직면했다. 그는 판매팀을 해산하는 동시에 기존의 모든 소매 채널을 해체하면서 공동구매와

바이어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판매 채널을 바꾼 후 피야만의 소비자층에는 큰 변화가 나타났다. 고급 와인 시장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가격에 상관없이 최고급 품질을 추구하는 고급 와인 시장에서 피야만의 석류와인은 품질을 인정을 받았고,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쑨리핑 대표는 그 때부터 바이어 회원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피야만에는 총 200여명의 정회원이 있는데, 회원들은 20만 위안의 회비를 한번에 납부해야 한다. 그들은 8년 동안 2묘의 토지 사용권을 갖게 되는데, 매년 와인 500병을 생산할 수 있다. 또한 회원들은 와인농장을 직접 찾아와 유명 양조사와 함께 와인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이 회원제는 고소득 계층에게 환영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 회원이 1000명 정도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피야만의 매출은 1억 위안을 넘어섰다. 낙후된 신장 지역의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신장대개발 프로젝트덕분에 피야만의 석

류와인은 더욱 유명해졌다. 500여명에 이르는 고위급 관료와 기업인이 신장 허톈지역으로 파견돼 건설 지원을 약속했다. 그들 모두 신장으로 와서 피야만 농장을 참관했다. 이를 통해 피야만의 최고급 석류와인을 홍보할 수 있었다. 쑨리핑 대표는 최고급 석류와인의 성공을 통해 중국에서도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농장와인 시장의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타이거터

세 탄장 3D 설계로 석탄업계 이끌다


먼지투성이의 거칠고 새까만 석탄이 세탄장 컨베이어벨트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이 세탄장을 만든 주역은 다름아닌 베이징에 본사를 둔 타이거터. 베이징 타이거터 본사에는 100여명의 엔지니어들이 세탄장을 설계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그들은 컴퓨터상의 3D 모형을 통해 세탄(석탄을 씻어서 불순물이나 불량탄을 없애는 공정) 공장 모형을 설계하고, 다시 모형을 설계도면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우리가 만든 모형은 소수점 6자리까지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탄장의 파이프가 딱 들어맞게 설치할 수 있다.” 엔지니어 출신인 타이거터의 쑨궈민 대표는 이 회사가 최초로 만든 3D 설계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3D 설계가 업계 전체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생각한다. 세탄장은 원래 파이프로 가득해서 시공방안도 아주 복잡하다. 그에 따르면 전통적인 2D 설계로는 많은 물건을 함께 그릴 수 없어서 현장 설치 때 문제가 곧잘 발생했다. 하지만 3D 설계는기본적으로 보는 그대로 현장 설치가 가능하다. 세탄장 설계는 파이프 설계도면만 200장에 달할 정도로 아주 번거로운 작업인데, 3D설계를 통해 설계 정확도와 현장시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세탄장 설계는 타이거터 사업의 일부일 뿐이다. 타이거터는 세탄장의 설계 공정을 총괄할 뿐만 아니라 고객을 대신해 세탄장의 운영 및 관리 컨설팅까지 할 수 있다. 타이거터는 세탄장 설계공정을 포함, 운영까지 책임지는 중국 최대의 세탄장 운영상 중 하나다. 고객사는 중국 전역에 분포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석탄기업인 션화그룹,샨메이그룹, 통메이그룹이 바로 타이거터의 고객이다. 쑨궈민 대표는 “타이거터는 전형적인 서비스업 회사는 아니다. 서비스 업종을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실생활과 관련된 일이나 온라인 비즈니스 같은 회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회사도 석탄기업에 세탄장 설계공정 및 운영까지 제공하는 서비스기업의 일종이다”라고 회사 성격을 설명했다. 타이거터는 2007년에 출범했다. 지난해 타이거터 영업이익은 10억 위안에 이르러다. 2010년에는 5억 위안, 2009년에는 2억 위안이었다.

회사 실적이 몇 년간 계속 배로 뛸 정도로 성장률이 높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낯설지만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광석을 세척하는 세광업의 잠재력은 꽤 크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은 세광률이 80~90%다. 하지만 2002년 중국시장의 세광률은 37%에 불과했다. 요즘에도 45~50%로 조금 올랐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산업정책 관련 규정에 따르면, 새로 오픈하는 모든 광산은 반드시 세탄장을 세트로 설치해야 한다. 환경보호와 경제성 측면에서 중국의 세탄장은 당분간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것이다.

세탄장처럼 전문적이고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는 창업주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쑨궈민 대표처럼 지천명의 나이에 창업하는 경우는 거의 드문데, 그의 창업 스토리는 더욱 독특하다.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쑨궈민 대표는 생각한다.

1997년 중국 최대의 석탄설계원인 션양석탄설계원에서 16년간 근무한 쑨궈민 대표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결심을 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외국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당시 쑨궈민 대표는 션양석탄설계원 기술팀의 고위급 간부였다. 1997년 한 미국 기업 사장이 션양석탄설계원을 찾아와 기술 교류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 미국인 사장은 쑨궈민 대표의 기술력을 높이 사서 스카우트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촨양

정 밀 마케팅’으로 인터넷 광고시장 선점


중국 인터넷 광고시장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쟝난춘은 중국의 독보적인 광고회사인 펀중미디어를 세웠고, 다시 펀중미디어는 인터넷 광고회사인 하오예를 인수했다. 하오예를 떠난 젊은이 몇 명은 선진적인 지능형 인터넷 마케팅 엔진업체인 촨양을 만들었다. 초기에 중국 인터넷 광고시장은 광고대리회사가 지배했다. 사실상 인터넷 광고 대리회사는 전통적인 매체광고 대리회사와 다르지 않았다. 이런 회사들은 수많은 판매인원의 힘을 빌려 좋은 매체의 좋은 위치와 시간대를 얻어낸다. 하지만 대형 브랜드 광고주는 1000곳을 넘지 않는다.

촨양은 커지는 중국 인터넷 광고의 기존 서비스 방식을 바꿔놨다. 촨양은 ‘정밀 마케팅’ 개념을 도입했다. 왕젠강을 비롯한 네 명의 창업팀이 만든 촨양의 비즈니스 모델은 광고 계획부터 광고 노출과 모니터링, 다시 평가 최적화 부분까지 광고업 전체를 아우른다. 특히 지능형 인터넷 마케팅엔진을 통해서 중국 인터넷광고업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독특한 촨양의 비즈니스 모델 덕분에 현재 중국 광고업계에서는 따라올 경쟁사가 없을 정도다.

촨양의 최종 목표는 바로 광고거래소를 만드는 것이다. 증권거래소와 비슷한 것이다. 광고주는 타깃 고객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에 맞춰 광고 노출 매체와 가격 및 예산을 결정한다. 하지만 매체 측은 더 지능적으로 광고 노출 및 광고 위치를 관리하고 수익을 올리게 된다. 촨양 창업팀은 선두기업이라는 장점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손쉽게 10억 달러 매출을 올릴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 2009년 초 인터넷 광고회사 하오예를 사임한 왕젠강, 쉬펑, 왕위에, 류이는 촨양커지를 설립했다. 당시 이 네 명은 모두 하오예의 실세로 이미 업계의 위기를 직감했다. 2007년 광고회사 펀중미디어는 하오예 합병 후, 펀중의 주식상장을 위해서 광고대리업무를 키웠고, 광고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계속 줄였다. 이런 업계 추세만 보더라도 기존 광고업의 하락세는 피할 수 없었다.

네 명의 촨양 창업팀이 하오예를 떠난 후 하오예 고위직들도 잇따라 회사를 떠났다. 그중 하오예의 총재였던 양죵웨이는 하오예를 떠난 후 다른 회사를 창업했다. 당시 양종웨이의 팀은 광고 매체나 광고주, 광고사이트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하오예와 같은 광고서비스모델을 선택했다. 인터넷 광고는 노동집약형 산업으로 인재난은 업계의 보편적인 문제였다. 왕젠강을 포함한 창업팀도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특히 창업초기에 광고 판매 전문가를 데려오기 어려웠다. 당시 쉬펑은 경제 정보사이트인 바이두허쉰의 왕위에롱 사장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광고 매체와 광고대리상, 인터넷 광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쉬펑은 왕위에롱을 몇 차례 찾아갔지만, 스카우트는 성사되지 못했다. 쉬펑은 마지막으로 왕위에롱에게 자사 제품을 보여주었는데, 뜻밖

의 반응이 돌아왔다. 제품 기술력과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왕위에롱은 나중에 촨양의 판매부총재를 맡게 된다. 경쟁사와 비교하자면, 촨양은 기술력과 마케팅이 강해서 소득원도 더 다양하다. 기술력에 따른 매출은 총 매출의 35%, 마케팅 매출은 총 매출의 65%를 차지한다. 촨양은 인터넷 광고 산업사슬의 각부분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촨양은 중국 본토 외에도 대만 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대만 시장진출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첫째, 대만 시장은 상대적으로 더 간단하고 작다. 둘째, 대만 시장은 규모와는 반대로 인터넷 환경이 미국과 비슷하다. 몇 년 후면 중국 대륙의 인터넷 환경도 결국 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1154호 (201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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