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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부부 ‘3無(주례·웨딩사진·화환) 결혼식’에 꽂히다 

결혼 신풍속도 

이창균 이코노미스트 기자
실속 추구 ‘작은 결혼식’ 확산 기업도 인센티브 걸고 장려

▎실속을 추구하는 예비 부부 사이에 주례가 없거나 부모를 주례로 세우는 결혼이 인기다.



“신부 입장하겠습니다. 신부 입장!” 사회자의 말에 웨딩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은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등장했다. 앞서 등장한 신랑이 주례대 앞에서 미소를 보였다. 하객들의 박수소리가 울렸다. 여기까진 여느 결혼식과 다르지 않다. 다음 순간 하객들은 깜짝 놀란다. 주례 대신 연단에 오른 사람 역시 신부의 아버지다.

“에, 또, 신부는, 지금부터 평생 신랑을 믿고 순종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약속하겠습니까?” 말을 더듬던 신부 아버지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딸에게 덕담과 조언을 건넸다. 익숙지않은 말을 했다는 민망함에 귓가가 빨개졌다. 장내엔 웃음이 퍼졌다.

3월에 결혼한 신부 정경해(29)씨의 결혼식은 남달랐다. 주례는 친정아버지, 축사는 신랑의 외삼촌, 축가는 신부의 동생이 각각 맡았다. 정씨 남동생은 축가를 부르다가 고음에서 미끄러져 좌중에 웃음을 선사하면서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해졌다. 예식장 출입구엔 신랑·신부 사진뿐 아니라 초대한 지인·친구와 찍은 사진도 진열했다.

정씨는 “일생에 한 번 하는 결혼인데 단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왕래도 없던 어른들께 주례를 부탁하긴 싫었다”고 말했다. 이어 “양가 부모께 처음 동의를 구할 땐 주례 없는 결혼이 말이 되느냐며 펄쩍 뛰셨지만 나중에는 뜻 깊은 예식이었다며 흡족해 했다”고 말했다.

신세대 결혼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허례허식을 피하면서 결혼식의 의미를 차분히 되새기고 더 뜻 깊게 보내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례 없는 결혼이다. 과거에는 권위와 학식을 갖춘 주례의 엄숙한 주례사를 듣는 것을 결혼식의 필수 절차로 여겼지만 지금은 다르다.

감사 의미로 양가 부모에게 주례를 청하거나 아예 주례 없이 예식을 진행한다. 한 포털사이트에 ‘주례’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주례 없는 결혼식 대본’이 첫 번째 연관검색어로 뜬다. 직접 대본을 쓰고 식순 짜는 정보를 구하려는 예비 신랑·신부가 많다.

아버지가 주례 맡고 축가는 동생이

주례 없이 결혼한 이들은 예찬론을 펼친다. 4월에 결혼한 이민준(33)씨는 친구 동생인 유명 정치인을 주례자로 섭외하겠다는 아버지를 말렸다. 일면식이 없을뿐더러 부모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 “주례비가 수십 만원 들뿐더러 모시고 나면 그 분의 친지 경조사까지 챙겨야 한다는 경험담을 들었습니다. 허물없는 은사가 아니라면 굳이 주례자를 모시는 건 불편해요.”

이씨는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연단에 올라 손수 쓴 편지를 낭독한 후 선서하는 것으로 주례를 대신했다. 이들은 주례가 허례허식이며 불필요한 절차라고 말한다. 대신 신랑·신부가 머리를 맞대고 색다른 식순을 구상하면서 결혼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처럼 틀에 박힌 결혼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결혼식을 만들려는 사람이 늘었다. 불황에 실속 있게 결혼하려는 세태와도 맞닿는다. 결혼에는 큰 비용이 드는 만큼 꼼꼼히 따져 불필요한 소비를 줄인다는 생각이다. 직장인 김경은(32)씨는 얼마 전 결혼 준비를 하면서 웨딩사진을 찍지 않았다.

평소 찍은 사진이 많은데 굳이 비싼 돈 들여 웨딩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대학교 졸업앨범을 비싸게 살 필요성을 못 느낀 것과 마찬가지”라며 “주위에서 말렸지만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들은 꼭 필요한 웨딩사진이라지만 김씨는 아낀 돈을 혼수 준비에 보탰다.

실속을 추구하는 결혼문화는 축하 물품을 받는 데서도 나타난다. 최근 신혼부부 사이에서는 화환을 받지 않는 결혼식이 늘고 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꽃 대신 쌀 등을 받아 기부 같은 좋은 일에 쓴다는 취지다. 2월에 결혼한 개그맨 윤형빈·정경미 부부는 화환 대신 받은 쌀 370kg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등에 기증했다. 청첩장에 ‘화환 대신 쌀을 받아 어려운 이웃과 사랑을 나누겠다’고 적어 미리 양해를 구했다.

7월 초 결혼을 앞둔 장영모(35)씨도 이런 흐름에 동참할 생각이다. “거래처가 많고 나름대로 ‘갑’으로 통해 화환이 많이 들어오겠지만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마음에 없는 꽃을 받아 체면치레하느니 좋은 날에 실속을 추구하고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요.” 장 씨는 최근 신문기사를 읽고 허례허식이 심한 한국의 결혼문화를 되돌아보게 됐다.

행사 규모와 비용을 줄여 실속을 추구하는 이른바 ‘작은 결혼식’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보수적이던 결혼문화도 달라졌다.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저가 예식장을 이용해 하객 100여명 내외만 초대하고 1000만~2000만원 내로 지출하는 결혼식이 인기다. 호화 결혼식 대신 작은 결혼식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에 규모 작은 결혼이 흉이 아니라는 인식이 늘었다.

LG·포스코 등도 작은 결혼식 캠페인

이런 분위기는 재계에도 확산됐다. LG유플러스·LG화학은 올 들어 임직원을 상대로 작은 결혼식 캠페인에 나섰다. 하루에 수천만원 쓰는 호화 결혼식 자제하기, 국외 대신 국내로 신혼여행가기, 화환 대신 쌀 받기 등이다. 자진 참여한 구성원에게는 사내복지 혜택 신청 때 장려금을 준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국외 대신 국내로 신혼여행을 가면 30만~50만원을 지원받는다.

포스코는 양가 하객 200명 이하로 초대하기, 예식장으로 사내 시설이나 공공시설 이용하기 등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한국타이어는 작은 결혼식을 선언한 임직원에 한 해 하루씩 별도 휴가를 주기로 했다. 불황에 실속과 명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작은 결혼식을 추구하는 각계 움직임은 거세질 전망이다.

결혼문화 혁신은 현재진행형이지만 극복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 축의금이 대표적이다. 결혼식에 초대받았는데 축의금을 안 내는 것은 정서상 예의가 아니라고 여기기 쉽다. 또 내가 결혼했을때 받은 만큼은 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 축의금이 만만찮게 오가는 경우가 적잖다.

받는 입장에서도 무턱대고 거절하기 쉽지 않다. 6월 결혼을 앞둔 대학원생 전모(31)씨는 “은사나 친한 친구에게 빈손으로 오라고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결혼식인데 제 생각만 할 순 없더군요. 아버지도 정년퇴임 하기 전에 자녀가 결혼해 그동안 지인들에게 축의금으로 낸 돈을 어느 정도 돌려받고 싶어 합니다. 품앗이라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결혼식 낭비의 악순환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1187호 (201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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