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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U턴? 하고는 싶은데··· 

U턴 꿈꾸는 중소기업의 딜레마 

중국 사업환경 갈수록 악화 불구 “중국·동남아가 낫다” 여전히 다수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간 한국 제조업체들이 ‘U턴’ 표시등 앞에 멈춰서 고민에 빠졌다. 해외 현지 사업환경이 악화돼 한국으로 돌아오려는 기업에 줄 선물 꾸러미를 정부는 잔뜩 준비하고 있다. 5월 9일에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U턴기업지원법(가칭)’ 제정을 위한 토론회도 열렸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선 아직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현지 철수가 쉽지 않고 국내에 돌아와도 안착하리란 보장이 없다. 중국에서 속속 짐을 싸는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 제조업체와 사정이 좀 다르다. 국내외에 부는 제조업 U턴 바람, 그 속사정과 전망을 따져봤다.


“이웃 공장은 월급 올려줬는데 우리는 왜 안 올려주느냐며 파업한다고 해서 겨우 달랬습니다. 월급 더 주는 곳으로 옮겨간 직원도 많고, 충원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요. 처음엔 열심히 일하던 친구들도 요즘엔 시들 해요. 그렇다고 자를 수도 없죠. 신노동계약법인가 뭔가 때문에….” 중국 랴오닝성 푸순시에서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A사 대표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그는 “파업하겠다, 회사 나가겠다고 하는 직원들 달래고 얼르는 게 일과다”라고 했다.

랴오닝성 다렌시에서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K사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는 “한국에서 사람 구하기 어려워 10년 전에 중국으로 왔는데 요즘은 여기도 사람 뽑는 게 가장 큰 일”이라며 “1년 사이에 다른 회사로 이직한 직원이 200여 명 중 20%가 넘는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임금은 10년 전보다 서너 배 올랐고 한국 기업에 대한 대우도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랴오닝성 징진시에서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C사 임원은 “징진이나 산둥에 있는 한국업체 사장을 만나보면 상당수가 중국에서 계속 사업을 할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2~3년 사이 중국 사정이 확 달라졌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코트라(KOTRA)나 대한상공회의소 같은 데서 한국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느냐고 설문조사를 하면 다들 ‘왜’ 했는데 지금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업인이 많다는 것이다.

산둥성에 있는 한 조선부품 업체는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다 짜내서 버틴다. 이 회사는 지역 인력 파견회사에서 생산직원을 충원 받고 직업전문학교를 찾아가 직접 채용한다. 이 회사 임원은 “그마저도 어려워 마을회관이나 교도소에서 임시 인력을 충원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직원 이탈을 막기 위해 성과급제도를 마련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애사심이 없고 근무태도가 불성실한 직원이 많다”며 “훈계를 하면 바로 짐 싸고 나간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일부 기업은 비용 부담을 감내하면서 중국 기업에 공정 전체를 아웃소싱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사람을 쓰는 데 한계를 느끼는 한국 기업은 네댓 가지 카드를 놓고 고민을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한 ‘카드’는 현지 잔류,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내륙 지방으로 이전, 동남아 등 제3국으로 이전, 한국으로 U턴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것을 고민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코트라 해외투자지원단 송방달 차장은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 중 U턴을 문의하는 곳이 늘었다”며 “정부가 U턴 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영향도 있지만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U턴을 결정한 기업도 속속 나온다. 중국 텐진·난징·둥완 3개 공장에서 디스플레이 부품을 생산하던 파인텍은 최근 난징 공장을 철수하고 경기도 고양시에 새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 회사 하정효 이사는 “중국보다 한국내 투자비가 많이 들지만 우수한 기술환경과 인력, 수출 여건을 감안하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생산비용 문제만은 아니다.

하 이사는 “숙련이 될 만하면 이직하는 직원이 늘고 품질에 자꾸 문제가 발생하면서 고객사나 우리 회사 입장에서 손실이 크게 늘었다”며 “춘절이라고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인력이 매년 20~30%나 됐다”고 말했다. 인건비 부담도 적지 않다. 파인텍에 따르면 2003년 진출 당시 우리 돈으로 월 15만~20만원이던 임금이 최근엔 60만~80만원대로 뛰었다.

부산 신항 배후에 있는 국제산업물류도시 내에 조성될 예정인 신발산업집적화단지로 복귀를 결정한 H사도 마찬가지다. H사 관계자는 “중국 현지 인건비가 계속 오르고 한국에서 원·부자재를 많이 수입하기 때문에 생산비용을 고려하면 한국이 더 낫다”고 말했다. 이 신발업체가 운영하는 중국 공장에는 약 800명이 일한다.

지난해 매출은 1000억원이 조금 안 된다. H사와 함께 U턴을 결정한 다른 신발업체 대표는 “신발업종은 한국의 생산비용이 중국보다 저렴하다”며 “한·미, 한·EU FTA 효과로 관세가 내리면 생산비를 더 절감할 수 있어 중국내 많은 신발업체가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지난해 8월에는 중국 칭다오에서 목걸이·귀걸이 등을 생산하던 보석 가공 업체 14곳이 집단 U턴을 결정했다. 영세한 곳도 있지만 종업원 약 1300명, 매출 300억원에 이르는 중견기업도 포함됐다. 이후 7개 업체가 추가로 합류했다. 이들은 전북 익산시 제3산업단지에 공장을 새로 짓는다.


올 6월 가동 예정이다. 익산 시청 투자유치과 관계자는 “대부분 인건비 상승과 위안화 절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기업들”이라며 “FTA 관세 혜택과 메인드 인 코리아 효과를 감안하면 U턴하는 것이 낫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청산·이전 비용 많아 고민

허난성 정저우에서 기계부품을 생산하던 B사도 최근 코트라 정저우 무역관에 U턴 문의를 해왔다. 코트라 관계자는 “직원이 900명 정도 되는 회사인데, 인건비 상승과 노무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왔고 주력 제품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이 있어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경우”라고 귀띔했다.

장쑤성 난징에서 의류 업체를 운영하는 C사는 고가제품 생산 공장은 한국으로, 중저가 제품은 동남아 등 제3국으로 옮기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현지에서 약 2000명을 고용한 이 회사 역시 인력난과 현지 경영 악화, 전력수급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고향이 그립지만 못 가는 신세도 많다. 청산·이전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3월 국내 복귀를 결정한 중소 신발업체 대표는 “중국에 진출할 때 중국기업과 합작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과도한 청산 비용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부 지방성은 중국에서 사업한 지 10년이 넘기 전에 법인을 청산하면 감면해준 소득세·법인세를 물어내야 하고, 토지 양도에 따른 이익금도 환수해 간다”고 전했다. 일부 한국 기업들이 공장을 놔두고 야반도주 하는 까닭이다. 이전 비용도 골칫거리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부지 매입하고 공장 짓는데 드는 초기 이전비용도 U턴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라고 했다.

그래도 한국보다 중국이나 동남아 등 신흥국이 낫다는 기업인이 여전히 많다. 칭다오에서 정밀금형제품을 생산하는 한 기업 대표는 “중국 인건비가 아무리 올랐다 해도 한국의 절반 수준”이라며 “최신형 설비를 도입해 품질력과 생산성을 높여 인력난을 해소하면서 버티는 게 향후 중국 내수 시장 공략을 감안할 때 더 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에는 대기업을 따라 들어온 중소기업이 많은데 대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협력업체가 U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2년 중국에 진출했다가 정부 지원과 관계 없이 7년 만에 U턴을 했던 S중공업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은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며 “우리 회사는 철수를 결정해 공장을 완전히 닫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부지나 장비는 헐값에 매각할 것을 각오해야 하고 들어올 때 반겼던 중국 공무원들도 나갈 땐 싸늘히 변하면서 협조를 해주지 않더라”라고 조언했다.

신노동계약법 종신고용, 위법 노동행위 징벌 강화, 임금 인상 등 중국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한 법이다.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1188호 (201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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