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 에세이 - 기내식은 기내식일뿐 … 

 

이상진 에미레이트항공 한국지사장



이른바 ‘갑질’의 횡포라고 언론과 인터넷을 달군 국내 모 대기업 임원 이야기가 화제를 모았다. 미국으로 향하던 항공기에서 그가 객실 승무원을 막 대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내식 라면 문제였다.

한 가지 좀 색다른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왜 많은 사람이 여객기만 타면 지상에 있을 땐 그다지 찾지 않던 음식에 집착할까?

항공사마다 기내식을 엄격히 관리한다는 이야기부터 해 보자. 기내라는 좁은 공간에서 다수의 승객에게 한꺼번에 제공하는 음식이다 보니 기내식을 만드는 주방 시설의 위생 처리는 세계적인 특1급 호텔이 울고 갈 정도로 까다롭다.

위생 문제에 조그마한 빈틈이 생겨도 집단 식중독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비행 도중 집단 식중독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항공사 입장에선 초비상 사태다.

같은 조종실에서 일하는 기장과 부기장도 항공기 운항 도중 조종사용 기내식을 먹는다. 그러나 식사는 같이 하더라도 서로의 음식은 완전히 다른 식단으로 차린다. 만약의 경우 한 명이 문제가 있는 기내식을 먹고 탈이 나더라도 나머지 한 명은 무사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저비용 항공사의 등장으로 항공기 기내식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다. 기내식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간소화됐다. 사실 기내식에 너무 기대를 거는 것도 우습다. 항공기라는 운송 수단은 다양한 국적의 승객을 실어 나른다. 그래서 출발지 탑승 승객 기준으로 국제적인 평균치에 어울리는 종류의 음식을 제공한다.

특히 대부분의 항공사는 단거리 노선에서 일명 ‘콜드밀(Cold meal)’이라 불리는 찬 음식을 기내식으로 제공한다. 단, 장거리 노선에서는 기내에 설치된 오븐에서 이걸 데워 ‘핫 밀(Hot meal)’을 제공한다. 또 많은 손님의 기호에 맞추려고 여러 종류의 식단을 준비해 승객에게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승객이 원하는 종류의 식단을 마련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잘 봐주더라도 ‘콜드 밀(Cold meal)’은 자체가 원래 찬밥이다. 또 무릇 모든 음식은 식은 후 다시 데워서 먹으면 본래의 맛으로 되돌려 놓기 어렵다. 그런데도 방금 지은 밥 같은 수준을 요구하면 곤란하다. 이뿐만 아니다. 많은 사람이 항공기에만 오르면 주문이 많아진다. 김치와 고추장 없느냐, 라면 끓여와라, 비빔밥 가져와라 ….

외국에서 오랜 살다 귀국하는 항공편이라면 한식을 자주 접하지 않았을 테니 그럴 만도 하겠다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막 한국을 떠난 항공기 안에서도 왜 그리 김치·고추장·컵라면에 집착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항공기 기내식은 단지 다수의 승객을 위해 숙련된 전문요리사가 기내용으로 만든 글로벌 음식이다.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어머니의 손길은 미칠 수 없다. 어머니의 정성도 품기 어렵다. 보기엔 아름다워 보이나 맛깔스러움 역시 우리네 가정에서 먹는 음식에 비할 바가 못된다. 먹거리가 풍요한 이 시대에 기내식에 더 이상 목숨 거는 분이 없길….

1189호 (201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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