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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ISD(투자자·국가 소송) 중재 재판 내년 열려 

론스타-한국 질긴 악연 

허정연·이창균 이코노미스트 기자
론스타 주장 손해액 2조원 … 과세의 적법성, 산업자본 여부가 쟁점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간 투자자·국가소송(ISD)이 본격 전개된다. 이번 소송은 한국 정부가 제소 당한 ISD 첫 사례라는 데 의미가 있다. ISD(Investor-State Dispute)는 투자를 유치한 나라의 정부가 협정을 위배하는 결정을 하거나 투자 계약·인가를 어기는 조치를 했을 때 외국 투자사가 제3의 국제단체에 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ISD는 국가끼리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 협정문에 포함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미 FTA 인준 과정에서도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 경제 전문가들이 ISD를 협정문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SD 옹호론자들은 투자자 유치와 보호 차원에서 필수라고 강조했다. 비판론자들은 사법 주권과 공공정책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거대 자본이 ISD를 무기로 ‘치고 빠지기’식투자를 하는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FTA의 독소조항이라는 것이다.

론스타가 지난해 말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2조5000억원대 소송을 제기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핵심 쟁점은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 여부와 론스타에 대한 과세의 적법성 여부다. 론스타는 국제중재 신청서에서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투자 자금 회수와 관련해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부당하게 과세해 결과적으로 수십억 달러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환은행을 1조3800억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국세청이 검찰에 론스타의 탈세 혐의를 고발했고, 감사원 감사와 국회의 검찰 고발로 이어졌다. 이후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을 위해 2006년 KB국민은행과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로 끝났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HSBC와의 매각 협상마저 결렬됐다. 그리고 인수 7년여 만인 2010년 하나금융에 매각했으나 2011년 10월 금융 당국의 적격성 판단으로 매각이 지연됐다. 론스타는 외한은행 지분을 매각하려고 할 때마다 한국 정부가 승인을 지연했다고 주장한다.

론스타는 과거 KB국민은행·HSBC와 추진한 외환은행 지분 매각이 이뤄지지 못한 것도 한국 정부 탓이라는 입장이다. 일찍 승인만 떨어졌어도 빠른 매각이 가능했을 거라는 주장이다. 2006년 5월 KB국민은행에 외환은행 지분을 6조3346억원, 2007년 9월엔 HSBC에 5조9376억원에 매각하려고 했지만 금융 당국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점 등을 들어 인수 승인을 1년 가까이 미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투자금 회수에 실패했고,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져 매각이 어려워졌다는 게 론스타의 주장이다. 2010년 하나금융과 3조9156억원에 매각 계약을 체결하면서 초기 계획한 매각 비용에 비해 2조원 이상을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ISD는 FTA 인준 과정에서도 도입 논란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비롯해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극동건설 등을 매각할 때 한국 정부가 매긴 법인세도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론스타는 벨기에 소재 자회사를 통해 한국에 투자했기 때문에 한·벨기에의 이중과세방지협정에 따라 한국에 과세권이 없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할 때 부과한 10%의 양도소득세도 과세당국의 자의적 과세이기 때문에 돌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세 기본법상 조세조약이 적용되지 않으면 양도가액의 10%나 양도차액의 25% 중 적은 금액을 세금으로 원천징수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번 ISD의 근거가 된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따라 주식 매매는 한국이 과세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국세청이 론스타에 3915억원의 양도세를 매긴 건 론스타가 한국 내 고정사업장이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한·벨기에 조세조약상 국내에 고정사업장이 있으면 한국 정부가 과세할 수 있다. 국세청은 외환은행의 최대주주인 LSF-KEB홀딩스가 벨기에 소재 페이퍼컴퍼니로 실제로는 론스타코리아가 한국 내 고정사업장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는 지난해 론스타가 중재 제기 의향을 밝힌 이후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대비해 왔다. 정부는 론스타의 국내 투자와 관련해 국내법과 국제 법규, 조약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강조했다. 쟁점이 되는 과세 문제에 대해 국세청의 과세가 적법하다는 입장이다. 벨기에의 론스타 자회사가 조세 회피 목적으로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인 만큼 이중과세방지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한 해 로펌 비용 30억~50억원

정부가 ISD에서 패소하면 수천 억원에서 수 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 그러나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라는 점을 인정받으면 ISD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론스타를 산업자본으로 판단하면 은행법상 투자할 수 있는 적격한 투자자인지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며 “론스타가 국내법상 적격한 투자자가 아닌 산업자본이라면 투자자의 이익 회수 침해를 주장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처장은 "지난해까지 금융자본으로 판단해 면죄부를 가지려했던 금융당국이 이젠 ISD소송에 유리해지기 위해 거꾸로 산업자 본임을 인정받아야 하는 딜레마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ISD 소송에서 판정의 준거는 합리성과 비례성(비차별성)이다. 이때 중재 기준은 양국 간 협정문을 바탕으로 한다. 한 나라의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가 운영하는 사업이나 기업을 규제할 때 합목적성과 합리성을 띠어야 하고 자국 산업·기업과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예로 멕시코 정부와 미국 최대 곡물·식음료회사 카길 간의 분쟁을 들 수 있다. 카길은 1970년대 고과당옥수수 시럽(HFCS)을 개발해 멕시코 탄산음료시장을 장악했다. 이에 멕시코 정부는 2001년 카길에 20%의 소비세를 부과했다. 자국 업체들이 쓰는 설탕을 제외한 채 오직 감미료만 사용한 음료를 겨냥한 조치였다.

ICSID는 3년간 심리를 거쳐 멕시코 정부가 고의적인 표적과세로 최소기준대우 의무와 이행요건 부과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멕시코 정부의 카길에 대한 조치가 비례성에 어긋났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 역시 핵심은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취한 조치와 과세가 합리적이고 다른 기업과의 차별성이 없었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가 2010년 말 기준 총 390건의 ISD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소송에서 국가가 승소한 경우는 78건(20%), 투자자 승소는 59건(15.1%)으로 국가 승소 건이 다소 많았다. 그러나 계류 중(164건)인 비율이 높고, 합의(60건)로 결론 나기도 해 우리 정부의 ISD 승소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ISD 소송 진행에 드는 비용은 수십 억원에 이른다.

소송 실무를 총괄하는 강찬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실장은 4월 열린 전체회의에서 “올해 말까지 우리 정부를 대리하는 로펌에 시간별 수당 38억원을 사용할 계획”이라며 “내년에도 비슷한 규모인 30억~50억원 정도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8월 론스타와 ISD소송을 대리할 로펌으로 미국계 로펌인 아널드 앤 포터와 국내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정했다. 이들 로펌 활동비로만 매달 2억~4억원을 지출한다는 뜻이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금융당국과 사법부의 불찰로 ISD소송이 제기됐고,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만큼 ISD 관련 자료를 국회 정무위원회 등에 일부 한정해서라도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소송의 주체가 정부일 뿐 천문학적인 소송비용은 결국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며 “소송 관계자와 대리인만 내용을 알고 별다른 국민의 견제가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면밀히 준비해 승소한다는 목표다. 전승수 법무부 국제법무과장은 “최근 국제전화 회의로 중재재판부와 우리 정부, 론스타 측이 공식 일정을 어떻게 정할지 서로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이야기했다”며 “재판부가 공식 일정을 정하는 대로 서면 절차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초기이지만 국가적 중대사인 만큼 꼭 이기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가 소송전담기구 설치할 필요도

금융권은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다소 미온적인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ISD는 국내에서 전례가 없던 첫 사례라 금융권에선 향후 어떻게 전개될 거라 예측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도 “전망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그는 “우리 금융당국의 문제 해결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금융권과 금융당국이 ISD 문제를 안일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론스타 문제의 핵심은 론스타가 우리 금융감독 원칙을 유린하면서 자격 없이 은행을 인수했다는 것”이라며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론스타에 주식을 매각할 때 산업자본 여부를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또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무효임을 확실히 하고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는 금융당국이 직무를 방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반문했다.

이 같은 비판론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소송과 관련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며 “로펌에 수시로 자문하면서 적극적으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측은 “법무부에서 일괄적으로 진행 중인 사안이라 따로 정리한 입장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정부 측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 변호사는 “정부에서 부처 간 긴밀한 협조 하에 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소송 향방에 대해 “론스타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미 FTA, 소송당하는 대한민국』의 저자 김익태 변호사는 “론스타의 뒤를 이어 미국 투자자가 ISD 소송을 (한국에) 제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론스타라는 선례가 생긴 만큼 한국 정부가 론스타 이후 ISD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알려진 국제 ISD 사례는 2003년 100여건에서 지난해 500여건으로 급증했다. 김 변호사는 “중·장기 관점에서 전문성을 담보한 국가소송 기구를 설치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Investor-State Dispute) 투자를 유치한 국가의 정부가 투자협정상 의무, 투자 계약 등을 위반해 투자협정을 맺은 상대 국가의 투자자에게 부당한 손실이 발생할 경우 적용하는 제도. 손실을 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제3의 공정한 국제중재기관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한·벨기에 투자협정(BIT)을 위반했다며 국제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했다.




1201호 (201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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