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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약 전성시대 - 올 가을 200여종 복제약 쏟아진다 

 

조용탁 이코노미스트 기자
고혈압약 올메텍·엑스포지 특허 만료로 시장 과열 … 약값 떨어져 환자는 이득

▎한미약품이 세계 51개국에 수출하는 개량신약 아모잘탄.



올 가을 200여종의 새로운 복제약이 시장에 쏟아진다. 대형 오리지널 제품의 특허 만료를 노린 국내 제약사들이 일제히 복제약 개발에 나서며 나타난 현상이다. 제약사들마다 시장 선점을 위해 필사적으로 마케팅에 매달린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올해 마지막 큰 장이 섰다”고 표현했다. 가을을 달굴 새로운 복제약과 관련 산업을 조명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현주소와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제도 짚어봤다.

올해 특허가 만료되는 의약품은 총 5개다. 이 중 시장에서 가치를 높게 인정받은 제품은 올메텍·미카르디스·엑스포지·글리벡이다. 지난해 이들 4개 약품의 처방액은 2743억원을 기록했다. 올 들어 특허가 만료되기 시작하자 복제약(제네릭)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 발매된 4개 약품의 복제약 수는 무려 400개에 달한다.

가장 많이 복제된 제품은 일본 제약사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해 대웅제약이 판매하는 고혈압약 올메텍이다. 오는 9월15일 특허가 만료되는 약품으로 이미 66개 제약사가 복제약 139개를 개발해 발매 준비를 마쳤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올메텍으로 약 7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다음으로 많은 복제를 기록한 약품은 노바티스의 고혈압 복합제 엑스포지다. 7월까지 엑스포지의 복제약 135개가 판매 허가를 받았다.

엑스포지는 서로 다른 고혈압약을 섞어 만든 복합제로 2007년 발매 이후 고혈압약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제품이다. 지난해 700억 원대의 처방 실적을 기록했다. 10월 올메텍과 엑스포지 복제약을 출시 예정인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오리지널 제품이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복제약 개발에 나선 기업이 많은 것 같다”며 “제약시장은 시장 선점이 중요한 산업이라 너도나도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제약은 국내 제약사 틈새시장

복제약은 지난 10년간 한국 제약산업을 이끌었다.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해 자본·기술이 훨씬 뒤져 신약 개발이 어려운 국내 제약사의 틈새시장이다. 신제품 기근에 시달리는 국내 업체들로서 오리지널 약품의 특허 만료는 모처럼 찾아온 절호의 기회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대형 오리지널 제품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수백 개의 제네릭이 동시에 쏟아지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면서 “벌써부터 시장 선점을 위해 영업사원들이 병원을 누빈다”고 말했다.

이번 가을 유난히 많은 복제약이 등장한 배경으론 정부의 규제 완화도 있다. 2년 전에는 모든 복제약이 임상시험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2011년 이 규제가 폐지됐다. 다른 제약사가 생산한 복제약을 받아서 포장만 바꾸면 별도의 임상시험 없이 약품을 유통할 수 있다. 대형 제약사의 복제약을 중소 제약사가 받아서 판매할 길이 열린 셈이다. 올해 상반기 허가 받은 전문 의약품은 683개로 전년 동기(379개)보다 80.2% 늘었다.

업계에서는 최근 허가 받은 제네릭 제품 2개 중 1개 가량은 직접 생산하지 않는 ‘위탁 제네릭’으로 추정한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정부 규제에 따른 수익성 악화, 신약 개발의 어려움 등의 요인으로 중소 제약사들이 최소한의 비용을 들이고 실속을 챙기는 방향으로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면서 “자체 개발한 제품을 판매하는 문화가 이제는 사라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복제약이 쏟아지자 오리지널의 특허 만료를 앞둔 글로벌 제약사의 부담이 커졌다. 글로벌 제약사는 시장 방어를 위해 국내 제약사에 소송을 걸거나 국내 제약사와 손잡고 유통을 강화했다. 특히 특허가 만료돼 복제약이 등장할 시점에 오리지널과 똑같은 복제약을 직접 내놓고 시장에 맞불을 놓는 기업도 있다.

다이이찌산쿄는 고혈압약 올메텍의 복제약 발매가 임박하자 올메액트라는 복제약을 출시하고 CJ제일제당에 영업을 맡겼다. 노바티스는 엑스포지의 제네릭 공세에 대비해 제네릭 사업부인 산도스가 제네릭 제품인 임프리다 제조 허가를 받았다. 화이자는 비아그라의 특허 만료 이후 매출이 급감하자 서울제약이 개발한 복제약을 직접 판매 중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복제약 집단 공세에 대비해 아예 국내 업체와 손을 잡고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도 구사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고혈압약 아타칸을 녹십자와 판매하고 있으며, 베링거인겔하임의 고혈압약 프리토의 영업은 유한양행이 담당한다. 산도스 관계자는 “오리지널을 만든 기술력으로 만든 복제약이라 더 신뢰할 수 있다”며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복제약의 등장으로 가장 득을 보는 이는 소비자다. 복제약의 가격은 오리지널의 절반 수준이다. 국내 복제약 시장의 핫 아이템인 발기부전 치료제가 좋은 예다. 시중에서 70여개의 복제약이 유통 중인 발기부전 치료제의 오리지널은 비아그라다. 한국에 처음 출시할 당시 비아그라 100mg 정제의 가격은 1만2000원이었다. 하지만 복제약이 발매된 이후 계속 가격이 떨어졌다. 지금은 절반인 6000원이다.

올 3월 비아그라의 매출을 넘어선 한미약품 팔팔의 가격은 2500원이다. 더한 제품도 있다. 부광약품의 비아그라 복제약 부광실데나필은 시중에서 1600원에 판매 중이다. 부광약품 관계자는 “우리 제품은 비아그라 오리지널이 아니라 중국산 짝퉁을 겨냥했다”며 “연간 1200억원에 달하는 가짜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제약이 약값 하락 이끌어

복제약이 등장하며 점유율이 떨어지자 오리지널 약값을 내리는 현상도 국내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과 교수는 “미국·유럽·일본 등 글로벌 제약사가 있는 선진국마저 복제약 지원정책을 펴는 이유는 국민에게 보다 나은 가격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을 싸게 공급해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데 복제약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물론 복제약이 전문의약품 가격에 미치는 영향에는 한계가 있다. 의사가 처방하는 전문의약품에 대해 일반인은 무지한 편이다. 가격대가 낮아 복제약과 가격차가 작은 오리지널 약의 경우 복제약을 선택할 이유도 적다. 현행법에서는 외래처방 인센티브가 의사가 아닌 병원에 주어진다.

때문에 대형병원 의사는 환자가 특별히 원하지 않는다면 저가 복제약을 처방할 이유가 없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환자가 의사에게 싼 약을 처방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며 “고급 약일수록 고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와 특정약을 권하면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상황이라 의사가 적극 나서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9월에만 200여개의 신약이 출시되면서 제약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 병원에 찾아가 신약을 소개하는 영업사원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하지만 향응 제공이나 접대는 예전만큼 많지 않다는 전언이다. 리베이트 처벌이 강화된 이후 제약사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자제한 때문이다.

국내 대형 제약사의 영업이사는 “화끈한 접대나 리베이트 문화는 사라졌다”며 “제약사 간 견제 심리가 워낙 강해 조금만 튀는 마케팅을 벌여도 경쟁사에서 고발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의사도 신중해졌다. 수년 전만 해도 의사가 선호하는 제약사 제품을 처방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특정 제품이 아니라 다양한 회사의 제품을 돌아가며 골고루 처방하는 모습이 늘었다. 특정 제품을 고집해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복제약 시장은 2010년부터 커졌다. 비아그라를 필두로 코자·리피토·가나톤·가스모틴 같은 대형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됐다. 특히 이번 가을에 정점에 이를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새로 개발된 복제약의 승인 건수는 모두 79건이다. 지난해 108건에 비해 27% 줄어든 수치다. 승인 감소 원인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감소다.

개량 신약 개발에 힘 쏟아야

특허 만료되는 대형 의약품 수가 줄고 있어 복제약 특수를 계속 기대하긴 어렵다. 여기에 업체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다. 이번 가을에 수백 가지 복제약이 쏟아져 나오지만 경쟁자가 워낙 많아 큰 돈 남기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제약사가 복제약 생산에서 신약 개발로 무게 중심을 옮기도록 정책을 계속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 말로 복제약에서 개량 신약 개발로 넘어가야 할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복제약 개발로 쌓은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뿐 아니라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정윤택 제약산업단장은 “복제약 생산을 중심으로 발전한 국내 제약회사들이 몇 년 전부터 개량 신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이미 형성된 해외 개량 신약 시장에 진출해 경험을 쌓은 뒤 혁신 신약 개발을 개발해 해외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시장 규모는 19조원대다. 국내 대형 제약사 매출은 1조원을 넘지 못한다. 신약 하나를 만들려면 수조 원의 연구개발비가 들고 평균 12년의 시간이 걸린다.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의 경우 1년에 수조원씩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하는데 국내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고 미국과 유럽시장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며 “새로운 물질로 혁신적 신약을 만드는 것 자체가 전세계적으로도 드물다”며 신약 개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와 달리 개량 신약은 기존 약물에 환자의 편리성을 더하고 안전성을 개선한 것으로 시장에서 실패율이 낮다. 임상 시험도 1상 또는 1상·3상만 거치면 돼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범진 교수는 “큰 틀에서는 신약 개발로 가야 한다는 데 찬성하지만 아직은 우리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우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개량 신약을 기본으로 품질 관리,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 등을 통해 세계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202호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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