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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기업 80곳 시가총액 50조 증발 

미저리 지수 분석해 보니 

35곳은 시총·매출·영업이익률 모두 하락 업계 1위도 마이너스 성장 수두룩



#1. 코스닥 기업인 젬백스앤카엘(이하 젬백스) 주주들은 6월 초 패닉에 빠졌다. 젬백스가 개발 중인 항암백신 ‘GV1001’이 임상 3상 시험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4월 중순 5만원을 돌파한 주가는 임상 실패 소식이 전해진 날부터 나흘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초 1조원을 넘은 시가총액은 최근 5000억원대로 줄었다.

올 상반기 매출은 355억원으로 전년과 비슷했지만, 영업이익이 크게 줄었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19.2%다. 10월 8일 기준 시가총액 178위안 젬백스는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한 ‘200대 상장기업 미저리 지수(Misery Index)’에서 마이너스 64점으로 밑에서부터 3위였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속단할 수 없지만 젬백스는 계속 적자를 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200대 상장사 중 절반 기업가치 하락

#2.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엔진은 선박 저속엔진 시장 세계 2위 업체다. 지난해 매출은 1조7300억원, 영업이익은 2300억원을 기록했다. 연초에 이 회사가 밝힌 올해 매출 목표는 2조원. 하지만 증권가에선 목표의 절반도 채우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신한금융투자 박효은 연구원은 “올 매출과 영업이익률은 역사적 저점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산엔진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5% 정도 줄었다. 영업이익은 89% 감소했다.

지난해 상반기 9.2%였던 영업이익률은 올 상반기 1.9%로 떨어졌다. 침체한 조선업황 타격이 컸다. 두산엔진은 이코노미스트 미저리 지수에서 마이너스 53.9점으로 4위였다. 실적에 비해 주가는 선방했다. 1년 전 9000원대였던 이 회사 주가는 올 7월 초 6680원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하반기 업황 개선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최근엔 1만원을 돌파했다.

#3. 올 상반기 ‘갑의 횡포’ 파문을 불러일으킨 남양유업은 시가 총액과 매출·영업이익률이 모두 하락했다. 대리점주에 대한 막말 음성파일이 공개되기 직전 117만5000원까지 오른 주가는 최근 80만원대로 떨어졌다. 최근 1년간 시가총액이 16.6% 줄었다. 올

상반기 매출은 6145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3%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85% 줄었다.

급기야 올 상반기 시장 1위(매출 기준)를 사상 처음으로 매일유업에 넘겨줬다. 남양유업과 유사한 사건으로 최근 논란에 휩싸인 아모레퍼시픽은 상반기 매출 1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 정도 증가했지만, 주가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시가총액이 1년 전에 비해 28% 하락했다. 남양유업과 아모레퍼시픽은 미저리 지수에서 각각 마이너스 31점(23위), 마이너스 21점(36위)를 기록했다.

국내에 상장된 기업은 1760곳(유가증권시장 771개, 코스닥시장 989개)이다. 이들 상장사를 시가총액 순으로 줄 세우면, 최대210조원 짜리 회사(삼성전자)부터 37억원에 불과한 회사(아이디엔)까지 다양하다. 이 중 상위 200위(11.4%) 안에 들면 대개 우량기업으로 친다. 하지만, 희비는 극명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년 간의 시가총액 증감률과 전년 상반기 대비 올 상반기 매출·영업이익률 변동치를 합산해 미저리 지수를 산정해 본 결과 금융업종을 제외한 200대 상장기업 중 절반은 기업가치와 실적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저리 지수가 마이너스인 상장사는 조사 대상의 40%인 80곳이다. 분포 별로 보면, ‘-1점~-20점’이 42곳, ‘-21점~-40점’이 24곳, ‘-41점 이하’가 14곳이다. 이들 80개 상장사가 지난 1년 간 날린 시가총액만 49조6700억원이다. 매출은 18조6300억원이 줄다. 60곳은 영업이익률이 내려갔다. 이들 기업의 지난해 상반기 평균 영업이익률은 9%였는데, 올 상반기는 6.4%로 줄었다.

반면, 지수가 플러스인 119곳(1곳은 지수 0)의 시가총액은 60조800억원 늘었다. 매출은 42조5800억원 증가했다. SK·태광산업·E1 등 19곳을 제외한 100곳은 모두 매출이 더 늘었다. 이들 기업의 영업 이익률은 지난해 상반기 평균 8.1%에서 올해 8.7%로 증가했다.

미저리 지수가 -41점 이하인 14곳은 시가총액이 평균 34.3% 줄었다. 1년 사이 시가총액 15조8000억원이 사라졌다. 매출은 평균 11.5%, 영업이익률은 6.7%포인트 떨어졌다. 대한항공은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6.2% 줄고,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 0.4%에서 마이너스 3.5%로 나빠졌다. 시가총액은 1년 전보다 40.4% 줄었다. 미저리 지수 마이너스 49.7점으로 전체 8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하반기 실적 전망도 좋지 않다. 대신증권은 올해 대한항공 매출액이 국제회계기준(K-IFRS) 3조2031억원, 영업이익은 1920억원으로 추정했다. 전년 대비 각각 5.8%, 38.7% 감소한 수치다.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 역시 시가총액이 28.5% 줄고, 매출과 영업이익률은 각각 1.8%, 4.8%포인트 감소해 미저리 지수는 마이너스 35.2점(23위)이었다.


▎5월 9일 남양유업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 참석한 임원진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막말 파문 이후 남양유업의 시가총액과 실적은 하락세를 보였다.



LG유플러스·삼성중공업·무학 등 선방

기업가치를 반영하는 시가총액과 미저리 지수는 밀접한 상관 관계를 보였다. 올 10월 8일 기준으로 코스피 지수는 1년 전에 비해 1.1% 올랐다. 코스닥은 2% 내렸다. 이 사이 200대 상장사 중 96곳은 시가총액이 줄었다. 7곳은 40% 이상 감소했다. 30% 이상 준 상장사는 12곳이다. 삼성엔지니어링·GS건설·대한항공·현대상선·한진해운 등 업황이 침체했던 건설·항공·해운업종에 속하는 기업 고통이 상대적으로 심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 강자인 에스엠과 와이지엔터테인먼트는 시가총액이 각각 43.6%, 43.5% 떨어져 200대 상장사 중 하락률 4~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와이지는 매출이 48.5% 늘고, 영업이익률도 크게 늘어 미저리 지수 플러스 6점을 기록했다. 이에 비해 에스엠은 매출은 소폭 늘고 영업 이익률이 크게 떨어져 마이너스 46.1점으로 전체 9위에 이름을 올렸다.

시가총액이 하락한 기업 중 45곳은 매출도 감소했다. S-오일·SK가스·금호석유화학·두산인프라코어 등 21곳은 매출이 10% 넘게 줄었다. 또한 시가총액 하락 기업의 73%는 올 상반기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떨어졌다. 영업이익률이 10% 포인트 이상 줄어든 곳은 한미사이언스·GS건설·에스엠·OCI 등 9곳이다.

영업이익률이 떨어진 123개 기업 중 56.1%(69곳)는 시가총액이 줄었다. 반면 영업이익률이 오른 75개 기업 중에선 33.3%(25곳)만 시총이 감소했다. 또한 매출이 10% 이상 감소한 남양유업·대우인터내셔널·현대미포조선 등 28개 기업 중 75%는 시가총액이 줄었다. 이들 기업 중 미저리 지수가 플러스인 곳은 5곳뿐이었다.

매출이 10% 이상 증가한 롯데푸드(구 롯데삼강)·CJ오쇼핑·SK하이닉스·매일유업·LG이노텍·쌍용자동차 등 71개 기업 중 69%(49곳)는 시가총액이 늘었다. 이들 기업 중 단 6곳을 제외하곤 모두 미저리 지수가 플러스였다. 시가총액이 매출과 영업이익률을 대체로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저리 지수가 마이너스인 80개 상장사 중 35곳은 세 항목이 모두 하락했다. 시가총액이 하락한 96곳 중 미저리 지수가 플러스인 곳은 와이지엔터테인먼트·인터플렉스·엔씨소프트·대우건설 등 24%인 23곳이었다. 매출이 하락한 73곳 중 지수가 플러스인 상장사는 24.7%인 18곳뿐이다.

지수가 플러스인 119개 상장사 중에서는 SK하이닉스·한샘·파트론·서울반도체·한미약품·매일유업 등이 돋보였다. 특히 반도체 시장의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SK하이닉스는 시가총액이 41% 늘고, 매출과 영업이익률은 각각 33.7%, 26.5%포인트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119곳 중 세 항목 모두 오른 ‘트리플 플러스’ 상장사는 LG유플러스·삼성중공업·무학·성광벤드·롯데하이마트 등 34곳이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착시현상 두드러져

한가지 주목할 것은 관련 업계 1위 기업들의 부진이다. 국내 200대 상장사에는 각 분야 선두 기업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들 기업도 글로벌 경기 침체와 업황 부진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제련 분야 1위인 고려아연은 미저리 지수 마이너스 53.5점이었다. 해운업계 선두인 한진해운은 마이너스 34.8점을 기록했다. 보안업계 1위인 안랩 역시 시가총액이 31.9% 하락하고,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상반기 대비 8.1%포인트 줄면서 -34점으로 전체 20위에 이름을 올렸다.

태양광 시장 선두 기업인 OCI의 시가총액 변동은 거의 없었지만, 매출(-4.7%)과 영업이익률(-11.1%P)이 감소하면서 마이너스 25.7점으로 29위를 차지했다. 건설장비 업계 1위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시가총액(-13.9%)·매출(-12.2%)·영업이익률(-3.3%P)이 모두 하락해 마이너스 29.4점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대한항공(항공)·에스엠(엔터테인먼트)·세아베스틸(특수강)·남양유업(유가공)·금호석유화학(합성고무)·현대제철(제강)·포스코(철강)·아모레퍼시픽(화장품)·SK가스(가스)·신도리코(사무기기)·SK네트웍스(종합상사)·KT&G(담배)·농심(라면)·LG화학(화학) 등 업계 1위 기업들이 미저리 지수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가총액 상위 30위 이내 기업 간에도 희비가 엇갈렸다. SK텔레콤(62.8점)·롯데쇼핑(46.3점)·대우조선해양(42.5점)·SK(24.2점) 등이 지수가 좋았다. S-오일(-38.8점)·현대제철(-23점)·포스코(-22점)·KT&G(-20.1점)는 시가총액 ‘톱 30’ 기업 중 하위 1~4위를 기록했다.

11개 계열사가 200대 상장사에 포함된 LG그룹은 LG상사(-33점)·LG화학(-8점) 등 6곳이 마이너스였다. 삼성그룹은 8곳 중 삼성엔지니어링(-78.9점)·삼성정밀화학(-41.8점)·삼성테크윈(-0.3점) 3곳이 상대적으로 지수가 나빴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4.2% 늘고, 매출은 18.8%, 영업이익률은 3.5%포인트 증가해 26.5점을 기록했다. SK그룹은 10곳 중 SK케미칼(-46.4점)·SK네트웍스(-38.1점)·SK가스(-34.1점)·SK이노베이션(-14.2점) 네 곳이 마이너스였다.

한국경제 리스크 중 하나로 꼽히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착시 현상도 이번 미저리 지수 조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200대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916조6000억원. 1년 전에 비해 11조1200억원 늘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8조4000억원, 현대자동차가 3조5000억원 늘어 전체 증가액을 앞질렀다.

200대 상장사의 총 매출은 전년 상반기에 비해 23조9000억원 늘었는데, 삼성전자(17조5000억원)와 현대자동차(2조4000억원)를 제외하면 4조원 늘어난 셈이다. 또한 전체 영업이익(54조500억원)의 42%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가 벌어들였다. 삼성전자를 빼면 199개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1조3500억원 줄었다.

1209호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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