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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과점(점유율 75%0에 안이한 가격정책 

독일 수입차 잡겠다는 현대·기아차는 지금 … 

김태진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BMW 5시리즈-벤츠 E클래스에 야심작 K9 저조 … 신형 제네시스 수입차 잡을지 관심



“신형 제네시스는 자동차 본고장인 유럽을 포함해 해외시장에서 세계적인 명차들과 당당하게 경쟁할 것이다.”(11월 26일 신형 제네시스 발표회에서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

“신형 제네시스의 초고장력 강판 사용 비중은 경쟁 모델 가운데 최고다. 38.7%의 BMW 5시리즈나 20~30%대의 벤츠 E클래스보다 더 높은 51.5%까지 끌어올렸다.”(양웅철 현대·기아차 연구개발 총괄 부회장)

“개성 있는 디자인이 장점인 올 뉴 쏘울의 경쟁 모델은 수입차 미니 쿠퍼다. 천장 색상을 달리하는 투 톤(two-tone) 컬러는 미니와 비슷하지만 휠 색상을 3가지로 바꿀 수 있는 ‘체인저블 휠 컬러’는 세계 최초다. 내수 2만대를 자신한다. ”(10월 22일 올 뉴 쏘울 발표장에서 기아자동차 국내 마케팅실 서춘관 상무)

“아반떼 디젤을 타보면 ‘디젤은 독일 차’라는 상식을 뒤집는다. 가격 경쟁력을 감안하면 폴크스바겐 골프에 뒤질 게 없다. 공인연비는 골프가 좋지만 실제 연비를 비교하면 아반떼 만족도가 더 높다.”(8월 아반떼 디젤 시승행사에서 현대자동차 국내영업 고위 관계자)

“기아 K9의 공략 대상은 BMW 5·7시리즈와 벤츠 E·S클래스다. 특히 BMW 7시리즈나 벤츠 S클래스를 원하는 고객들은 5시리즈나 E클래스 가격으로 K9을 구입할 수 있다.”(지난해 5월 K9 시승회에서 기아자동차 김창식 국내영업본부장)

현대·기아자동차 신차 출시 현장에서 나온 최고경영층의 직설 화법이다. 경쟁 모델을 국산차가 아닌 수입차를 언급한 게 이채롭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75% 이상을 과점한 현대·기아자동가 지난해부터 신차를 내놓으면서 수입차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이는 수입차 판매 급증에 따른 견제 심리다. 수입차 판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가 2009년부터 매년 20% 이상 증가세다.

올해 역시 1~10월 수입차 판매는 13만239대로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다. 연내 15만대 돌파가 거의 확실하다. 2015,16년에는 이변이 없는 한 연 20만대를 뛰어 넘을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산차 판매는 소폭 하락하거나 제자리 걸음이다. 이에 따라 내수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은 10%를 넘어 12%에 근접했다. 판매 가격을 합하면 이미 30%에 육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기아자동차 중대형 모델 판매 줄어

올해 유독 현대·기아차 내수 판매가 신통치 않다. 현대자동차는 1~10월 53만6403대를 판매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줄었다. 기아자동차도 37만8027대로 3.4% 감소했다. 어찌 보면 소폭 감소인데 양(量)보다 질(質)이 문제다. 그동안 현대·기아자동차가 내수 시장에서 알토란처럼 이익을 주워 담던 중대형 세단 판매가 수입차에 밀려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기아자동차 K9,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에쿠스 같은 대형차다. 또 현대자동차가 수입차로 향하는 젊은층의 발길을 잡기 위해 내놓은 중소형 프리미엄 라인인 ‘PYL(Premium Younique Lifestyle)’ 3총사 i30·i40·벨로스터 판매 역시 부진하다. 올해 세 차종 모두 30% 이상 판매가 줄었다. 특히 i30·i40는 수입 디젤을 겨냥해 디젤 모델을 출시했지만 역부족이다.

수입 고급 중형차를 대표하는 BMW 5시리즈, 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의 월 평균 판매량은 올해 2500대를 훌쩍 넘긴다. 이들 모델 가운데 70% 정도가 6000만원대 초중반 가격대에 포진한다. 수입차 본사의 판매 지원과 딜러들의 자체 할인 폭을 감안하면 실제 구입가격은 5500만∼5900만원이다.

올 9월 BMW 5시리즈 마이너 체인지를 앞두고 가장 인기 있던 520d(소비자가 6200만원)는 5000만원 이하에 판매됐다. 할인폭이 무려 1200만원이 넘었다. BMW코리아 본사 지원이 600만∼800만원에 딜러까지 추가 할인을 해줘서다. 마찬가지로 E클래스·A6도 차종에 따라 300만∼600만원 할인은 기본이다. 수입차는 신차 출시 한 두 달을 제외하면 대부분 5%를 깎아준다. 반면 현대·기아자동차는 전 세계 자동차 판매에서 유례가 없는 정가 판매제를 2010년 도입해 이를 고수하고 있다.

소비자가 어떤 판매점에서 사도 가격이 같아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희한한’ 발상 때문이다. 실제 판매 현장에서 소비자를 유인할 만한 ‘당근’이 없다고 현대·기아자동차 딜러들은 푸념한다. 현대자동차 딜러 관계자는 “영업 노조 눈치를 보는 경영진이 도입한 정가 판매제로 인해 중·대형차를 판매할 때 수입차의 가격 할인에 맞설 무기가 없다”며 “자동차는 권장 소비자 가격제인 만큼 대리점에 판매가 결정 권한을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자동차가 독일 수입차와 경쟁하기 위해선 뛰어난 편의장비를 갖추고도 가격이 20∼30% 더 싸야 가능할 것으로 분석한다. 가격차가 20% 이내로 좁혀지면 5% 이상 상시 할인하는 수입차에 가격 경쟁력에서 뒤진다는 것이다. 성능도 고속주행 안정성에서는 독일차를 따라잡기에는 아직까지 2%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전직 현대자동차 국내영업 출신 간부는 “디젤차나 중·대형 세단을 수입차와 비교하는 고객들은 연비와 고속주행성능을 중시한다”며 “현대자동차가 독일차에 비해 뒤져 열선핸들이나 통풍시트 같은 고급 옵션을 기본으로 달아도 가격이 30% 이상 싸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를 대표하는 대형 세단인 K9은 동급 수입차에 필적하는 비싼 가격 때문에 판매가 부진한 경우다. 기아자동차 마케팅실 서춘관 상무는 지난해 5월 신차 시승회에서 “K9 판매 목표는 월 2000대로 BMW의 5시리즈와 벤츠 E클래스의 월 수요 1000여대 중 절반 가량을 뺏어올 것”이라고 호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공수표가 됐다. BMW 5시리즈와 벤츠 E클래스 판매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K9은 출시 첫 달 1700대를 찍고는 줄곧 하향세다.

올해 내수 판매량은 10월까지 4497대로 월 평균 450대에 그쳤다. 지난해 월 평균 950여대 정도가 팔린 점을 감안하면 1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었다. 상대적으로 BMW 5시리즈는 지난해 월 평균 1019대가 팔렸다. 올해(1∼10월 평균)는 1285대로 25% 급증했다.

K9 판매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E클래스도 2012년 9896대로 월 평균 825대가 팔렸다. 올해 1∼10월 1만1342대로 월 평균는 1134대가 팔렸다. 37%나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K9이 수입차 견제 실패한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비싼 가격을 꼽는다.




“독일차보다 30% 싸야 대적할만”

신형 쏘울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기아자동차는 내년 국내에서 신형 쏘울 2만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월 평균 1650대 이상으로 구형 쏘울에 비해 3배가 증가한 수치다. 경쟁차 ‘미니 쿠퍼’ 크기는 쏘울과 비슷하지만 가격은 2590만원부터 4000만원대까지 옵션에 따라 다양하다. 판매는 가장 저렴한 기본형이 전체의 절반이다.

미니 쿠퍼와 경쟁할 신형 쏘울의 가격대는 1800만~2200만원이다. 가격차가 400만원부터 많게는 두 배 차이가 난다. 하지만 미니는 프리미엄 소형차 이미지가 붙어 있다. 가격으로만 보면 경쟁 대상은 아니지만 젊은 층이 미니의 독특한 디자인을 선호하면서 쏘울 판매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니는 올해 월 평균 500대 이상 팔리면서 올해 구형 쏘울(렌터카 제외)보다 많이 팔렸다. 내년 상반기에는 11년 만에 풀모델 체인지한 신차가 나온다.

올해 수입차 판매에서 눈 길을 끄는 부분은 65% 이상이 디젤 모델이다. 현대자동차는 9월에 수입 디젤을 견제하기 위해 14년 간 내수 베스트 셀링 모델인 아반떼 디젤 모델을 내놓았다. 상대는 소형 해치백의 대명사인 폴크스바겐 골프다. 두 달 연속 월 1000대 이상 팔리면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아반떼 전체 판매에서 디젤 비중을 20%로 잡은 애초 목표치에 못 미쳤다. 디젤 출시로 전체 아반떼 판매대수가 증가한 게 아니라 가솔린 시장을 잠식한 것이다.

아반떼 디젤 출시와 관계 없이 골프의 인기는 여전하다. 골프는 올해 5월 7세대 신차가 출시된 이후 월 1000대 이상 팔린다. 주문이 밀려 서너 달 기다려야 할 정도다. 현대자동차는 아반떼 디젤 연비(L당 16.2㎞)의 우수성을 강조했지만 골프 1.6ℓ TDI의 L당 18.9㎞에 뒤진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는 “성능 우위를 두기 위해 연비의 일정 부분을 포기했다”고 설명한다. 최고출력과 토크는 아반떼가 128마력, 28.5㎏·m다. 골프는 각각 105마력, 25.5㎏·m다.

최고 2180만원에 이르는 가격도 걸림돌이다. 편의장치를 모두 장착하면 2495만원으로 더 오른다. 이럴 경우 골프1.6(2990만원)과 큰 차이가 없다. 가격 대비 상품성은 아반떼 쪽이 낫다는 게 전체적인 평가지만 골프가 연비와 주행성능에서 우위다. 따라서 가격차가 30% 이상 나야 소비자의 눈길을 돌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반떼 디젤이 두세 달 가는 신차 효과가 끝나도 꾸준히 월 1000대 이상 팔릴지 관심사다.

현대자동차는 원래 골프의 맞상대로 해치백 i30 디젤에 기대를 걸었다. 골프1.6 디젤보다 800만원 정도 저렴했지만 월 평균 판매가 500대에도 못 미쳤다. 또 한 단계 윗급인 i40 왜건 디젤도 3000만원대 비싼 가격 때문에 외면을 받았다. 이 가격대에는 그랜저2.4 가솔린 모델이 포진해 있다. 또 골프 인기 모델인 2.0 TDI 디젤(3290만원)과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현대자동차의 야심작인 신형 제네시스는 수입차가 경쟁 상대다. BMW 5시리즈, 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다. 신형 제네시스의 가격은 4660만~6960만원이다. 현대자동차는 출시 직전까지 가격을 놓고 고심했다. 문제는 경쟁 수입차들이 든든한 독일 본사의 지원으로 공격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한다는 점이다. BMW는 9월에 5시리즈 마이너 체인지 모델을 출시하면서 한국 소비자가 좋아하는 스마트키나 무릎 에어백 같은 옵션을 기본으로 달고도 90만원 밖에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신형 제네시스는 가격 인상 최소화

신형 제네시스는 직분사 3.3 GDI 엔진과 3.8 모델로 구성됐다. 주력인 3.3 프리미엄(5260만원)은 기존 모델에 비해 초고장력 강판을 확대한데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무릎에어백 및 액티브 후드, HD급 9.2인치 모니터 등 410만원의 인상 요인이 있었다. 실제 인상폭은 230만원으로 최소화했다는 게 현대자동차의 설명이다.

신형 제네시스와 경쟁하게 될 BMW 5시리즈 주력인 디젤 520d는 6290만~6960만원이다. 이외에 525d 7190만원, 가솔린 528i는 6780만~7390만원이다. 벤츠 E클래스 주력인 E200은 6020만원, E300은 6780만~7060만원이다. 사실 현대·기아자동차는 2000년 이후 신차를 내놓으면서 가격을 내린 적이 없다. 이번 신형 제네시스 역시 소비자가 기준으로 경쟁 수입차에 비해 10% 정도 저렴할 뿐이다.

1215호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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