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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만 넘치고 조율은 모자랐다 

박근혜정부 1년 - 경제 공약은 제자리 걸음 

부동산 공약 6개월 만에 손질 경제활성화 법안은 국회서 낮잠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11월 4일 서울 목동 행복주택 건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방문해 반대 주민들에게 협조를 부탁한 뒤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맞은편에 현대백화점이 보인다. 현대백화점과 안양천 사이에는 대형 공영주차장과 테니스장 등이 들어선 10만5000m² 크기의 유수지가 있다. 이 평화로웠던 유수지가 분쟁의 중심지가 된 건 정부가 이곳에 행복주택을 짓기로 한 이후부터다.

직접 찾은 유수지 주변에는 ‘행복주택 결사반대’라고 쓰인 현수막이 곳곳에서 펄럭였고, 주민들의 간헐적인 시위도 계속되고 있었다. 유수지 내 주민들이 설치한 비상대책위원회 컨테이너 박스에는 30여명의 주민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주민 고성균(58)씨는 “목동은 인구밀도가 높고, 교통 정체도 심각한 곳인데 어쩌려고 이런 계획을 세우는 지 모르겠다”며 “목동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유수지에 주택을 짓겠다는 발상 자체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정태수(47)씨는 “가뜩이나 학급당 학생 수가 많아 어려움이 많은데 학교를 더 지어주는 게 목동 주민을 돕는 길”이라고 말했다. 기저에는 ‘저소득층이 많은 임대주택이 들어올 경우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역 이기주의가 깔려 있지만 어쨌든 정부가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엔 반대가 너무 심한 상황이다.

행복주택은 박근혜정부의 핵심 부동산 공약 중 하나다. 국토교통부는 5월 20일 서울 오류동 지구를 비롯해 서울 6곳과 경기도 안산시 등 7개 시범지구에 행복주택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핵심 개념은 ‘직주근접(職住近接)’과 ‘입체이용(立體利用)’이다. 거주지와 일터를 가깝게 하고, 땅 위쪽과 아래쪽을 동시에 이용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철도 부지 위에 덮개(데크·Deck)를 씌워 인공 대지를 만들고, 그 위쪽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5년 간 약 20만 가구의 임대주택을 짓기로 했는데 이렇게 지어진 행복주택은 대학생과 신혼부부에게 우선 공급하고, 장애인 등 주거 취약 계층에게도 20%를 공급하려고 했다. 취지는 좋았다.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사실상 폐기

하지만 이 계획은 발표와 함께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서울 잠실·공릉동 등 다른 시범지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론에 밀리자 국토교통부는 12월 3일 ‘4·1, 8·28 부동산 대책 후속조치(이하 후속조치)’를 발표하면서 행복주택 공급물량을 20만호에서 14만호로 줄였다. 사업부지 역시 철도 활용은 최소화하고, 도심 외곽 등 동원이 쉬운 부지로 확대하기로 했다.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 출발 6개월도 안 돼 대폭 손질된 셈이다.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서라지만 직주근접과 입체이용이라는 원래 취지 또한 희석됐다. 시범지구를 축소하거나 조정하지 않은 탓에 주민 반발도 그대로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월 4일 직접 주민 설득에 나섰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그나만 행복주택은 사정이 낫다. 또 다른 서민 공약인 ‘목돈 안드는 전세제도(목돈Ⅰ)’는 아예 사라질 처지다. 집주인이 대출을 받아 전세 보증금을 충당하고, 세입자는 이자만 부담하는 방식인데 집주인은 대출금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 이자 소득공제 등의 혜택을 받는다.

애초부터 시장은 성공 가능성을 작게 봤다. 아이디어는 좋으나 주택시장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요즘처럼 가만히 있어도 전세금이 오르고, 세입자가 줄을 서는 상황에선 집주인이 굳이 대출까지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9월 30일 출시 이후 지원 실적은 단 2건에 그쳤다. 금액도 1400만원에 불과하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후속조치를 발표하면서 이 제도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대출인정비율(LTV) 인센티브를 올해 말로 종료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상품을 운영하도록 할 방침이다. 사실상 폐기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전 정부에서 추진한 혁신도시나 보금자리에서 보듯 아무리 좋은 공약이라도 출발이 너무 과하면 실패하게 마련”이라며 “작은 규모로 해보고, 성공하면 확대하는 방향이어야 하는데 의욕만 넘쳤다”고 지적했다.

정작 큰 이슈들은 제대로 건드리고도 성과를 못 냈다. 정부가 4·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양도세 면제 카드를 꺼냈을 때 시장은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본격적인 시장 활성화의 신호탄이란 견해가 많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매매 수요는 여전히 묶여있고, 전세가격은 66주째 오름세(서울 아파트 기준)다.

여러 정치이슈에 묻혀 동력을 잃었고, 관련법은 8개월째 국회 안에 머물고 있다. 심 교수는 “시장에 충격을 줬으면 그에 부응하는 조치로 속도를 내야 하는데 조율 능력이 미흡했다”면서 “그러면 시장 수요는 ‘아직 멀었구나’라고 판단하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지 공약은 합리적 수정 필요

부동산뿐만 아니다. 박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국민행복기금 조성,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의료비 지원, 경제민주화 등 다양한 경제 공약은 대부분 속도를 못 내고 있거나 시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기초연금은 내년 7월 시행을 목표로 세웠지만 야당의 반발이 거세 법안(기초연금법 제정안) 통과가 쉽지 않다.

대선 공약에서는 65세 이상 노인 전체에게 매달 20만원씩을 지급하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1년 이하면 20만원을 받지만 12년부터는 매년 약 1만원씩 줄어, 20년 이상인 경우는 10만원만 받게 된다.

어쨌든 현행 기초노령연금(최대 9만6800원)보다는 많이 받게 되니 결코 후퇴는 아니라는 해명도 일리는 있다. 오히려 국가 재정을 고려한 합리적인 공약 수정이라는 평가도 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실질적 노후소득 보장 방안을 논의하려면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함께 고려해 노후소득 보장 방안을 논의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복지 전문가들이 심각한 노인빈곤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년 시행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여야 간견해 차가 커서 진통이 예상된다.


▎국회 관계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 상임위 복도에 쌓여있는 법안들을 살피고 있다. 올 정기국회 동안 여야는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5개월 동안 국회 법안 처리 0건

4대 중증질환 의료비 지원 역시 후퇴 논란이 거세다. 애초 박 대통령은 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 의료비와 함께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 등 3대 비급여 항목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6월 26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계획’에서 3대 비급여 항목은 보장 항목에서 빠졌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반쪽 짜리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전체 진료비 중 비급여 항목의 비중이 약 4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를 빼놓은 대책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개선 계획을 올 연말까지 내놓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내년에나 구체화될 전망이다.

가장 관심을 모은 경제민주화는 야당으로부터 사실상 중단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 이행률은 절반에 못 미친다. 18개 공약 중 8개만 이행됐고, 이 중 4개는 약속된 내용보다 후퇴했다는 내용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중소기업적합업종, 대형 유통업체 불공정 행위 근절 등은 어느 정도 이행됐지만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은 발의조차 안 됐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탈당 의사를 밝힌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뼈대를 세웠던 그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집권 후 경제민주화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여러 차례 비판해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와 공정한 거래 질서가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언급을 제외하곤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체적인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선거 때 요긴하게 활용했다가 집권 후 외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오히려 속도조절을 잘했다는 평가도 있다. 경제활성화가 경제민주화보다 더 중요한 시점이라는 이유에서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를 피해가는 외국계 기업의 시장 잠식 등 경제민주화의 부작용도 곳곳에서 발견된다”며 “경제민주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정한 거래 질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지 대기업 규제 수단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민행복기금 활성화도 지지부진하다. 행복기금은 상환능력이 부족한 대출 연체자나 학자금 대출자의 채무를 최대 50%(기초수급자 등 70%)까지 감면해 주거나, 최장 10년까지 분할상환하도록 조정해 주는 제도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정책으로 꼽혔다. 10월 말 본 접수가 마감됐는데 신청자가 21만명에 달할 정도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관련법이 표류하면서 본격적인 채무 조정이 미뤄지고 있다.

자리를 잡더라도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9월 기준 신용등급 10등급의 불량률(1년 동안 90일 이상 연체해 채무 불이행자가 된 비율)은 40.75%로 행복기금 신청 접수 직전인 3월 말(36.44%)에 비해 4.31%포인트 높아졌다.

전체 신용등급의 불량률은 반년 새 0.12%포인트 상승했지만 저신용층(신용등급 8∼10등급)의 불량률은 약 4%포인트 늘었다. 부채상환능력이 악화된 원인이 크겠지만 행복기금 출범 이후 ‘빚 탕감’을 기대하고 고의적으로 연체하는 사례도 늘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세수 확보를 위해 강조한 지하경제 양성화 역시 주춤하다<관계기사 30~31쪽>.

하지만 더딘 공약 이행의 진짜 책임은 정부가 아닌 국회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가 정쟁의 늪에 빠져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된 건 7월 2일이 마지막이다. 이후 5개월 동안 본회의의 문턱을 넘어선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9월부터 열린 정기국회 기간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정기국회 기간 동안에는 55건, 지난해에는 119건의 법안이 통과됐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과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논란 등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탓이다. 양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4자 회담을 갖고 국회 정상화 방안에 합의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전 정부의 실패 답습한 한 해

국회 시계가 멈춘 동안 경제활성화에 꼭 필요한 법안에는 먼지만 쌓였다. 정부가 기업 투자 활성화 방안으로 여러 정책을 마련했지만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니 기업이 투자를 망설이는 상황이다. 기업의 설비투자는 지난해 2분기부터 5분기 연속 줄었다. 오 교수는 “최근 열악한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의 처리가 시급한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면서 “내년 경제성장률에도 분명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제출된 경제 관련 법안(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은 102건이다. 시급한 법안들만 추린 숫자다. 이 가운데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등 15개는 경제활성화에 꼭 필요한 핵심 법안이라는 게 정부와 여당의 주장이다. 9월부터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나서 조속한 법안 처리를 요청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현장의 불안감도 더욱 커졌다. 한다고 해놓고, 법은 그대로니 혼선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 SK종합화학이 일본 JX에너지와 합작해 울산에 짓기로 한 공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가 올해 투자활성화 1∼3단계 대책에서 발굴한 27조5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SK종합화학은 JX의 자본 4800억원을 유치하고, JX와 합작법인을 세우려 했지만 법이 문제였다. SK종합화학은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의 손자회사다. SK종합화학이 JX와 합작해 자회사를 만들면 증손회사가 되는데 이는 ‘증손회사를 두려면 손자회사(SK종합화학)가 지분 100%를 출자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규정에 걸린다. 지주회사의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을 막기 위해 도입한 규제지만 해외 투자 유치를 제한하는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2010년 개정을 추진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올 5월 정부가 외국인 투자에 한해 증손회사에도 50%까지 출자를 허용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내놨다. 공정거래법을 개정을 피하는 나름의 묘수였지만 아직 국회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일본 쇼와셀·다이요오일에서 5000억원을 투자 받아 1조원 규모의 공장을 지으려는 GS칼텍스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기업은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하는데 규제가 풀리지 않아 투자가 늦어지면 그만큼 국가 경제가 타격을 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루즈 유치 지원, 전문인력 양성, 세제·자금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크루즈 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유해시설이 없는 관광숙박시설의 입지 제한을 완화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 등도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이 기대되지만 국회에 발목이 묶여 있다. 15개 핵심 법안 중 5개는 부동산 관련 법안이지만 이 역시 처리가 요원하다.

부동산 취득세를 영구 인하하는 지방세법 개정안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단기 보유 중과 완화 등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 등이다. 심 교수는 “정부가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국회가 뒤를 받쳐주지 못한 탓에 본격적인 시장 활성화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면서 “좋게 표현하면 조율의 한 해, 반대로 얘기하면 이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한 한 해였다”고 말했다.

1216호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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