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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미국도 ‘류현진 앓이’ 

2013 한국인의 삶 바꾼 히트상품 - 류현진 

기대 뛰어넘는 맹활약 … 저비용 고효율 선수로 평가

▎류현진이 미국 시카고에서 8월 5일 열린 경기에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10월 15일 열린 LA다저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 국민들의 관심은 한 선수에게 집중됐다. 이날 LA다저스의 선발투수는 류현진(26) 선수였다.

다저스는 이미 7전 4선승제 시리즈에서 2패를 기록했다. 류현진마저 무너진다면 시리즈 통과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10월 7일 생애 첫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선발에서 긴장한 듯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그였기에 불안감이 컸다. 상대 선발은 올 시즌 다승왕 투수 웨인 라이트. 류현진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해 승리투수가 됐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의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맛봤다. ‘류현진 앓이’가 극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2013년은 류현진의 해로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비공개 경쟁 입찰(포스팅 시스템)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무엇보다 프로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연봉이 전년 대비 10배 이상으로 뛰었다. LA다저스와 해마다 연봉이 뛰도록 계약해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메이저리그 올해의 신인 최종 후보에 오를 만큼 뛰어난 성적을 올렸고, 많은 스폰서와 계약해 광고를 찍어 부수입도 챙겼다. 국내에 메이저리그와 야구열풍을 일으켰다. 최근 부진했던 어린이 야구용품 판매도 늘었다. 가까운 미래에 ‘류현진 키즈’의 등장도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국인 최초 美 포스트시즌 승리투수

그는 국내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자리매김 했다. 인터넷포털 사이트 다음이 선정한 ‘올해의 스포츠 선수 검색어’ 부문 1위에 올랐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2013년을 빛낸 스포츠 선수’에도 1위에 올랐다. 설문참여자의 51.4%가 류 선수를 지목해 2위 김연아 선수와도 압도적 차이를 보였다.

2013년은 유독 스포츠 스타의 활약이 돋보이는 한 해였다. 오랜만에 선수 복귀를 선언한 김연아, 1년 내내 세계여자골프 랭킹 1위 자리를 지킨 박인비, 독일 축구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신예 손흥민, 세계 스피드스케이팅 500m 세계 기록을 잇따라 경신한 이상화까지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했다. 류현진은 이런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최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줬다.” 올해의 류현진은 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진출부터 성공 스토리를 쓰는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그 스토리에 온 국민이 열광했다. 야구팬 이상훈(30·부산)씨는 “류현진이 등판 일자를 달력에 표시해 놓고 챙겨봤다”며 “30경기 중 27경기 정도를 생방송으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안희범(31·서울)씨는 “류현진이 평일에 등판하는 날이면 다들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보느라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며 “어쩌다 주말에 등판이 잡혀 마음 편히 야구를 볼 수 있는 날은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행복했다”고 한 해를 회상했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입성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류 선수는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서 6년 간 활약했다. 소속구단 한화이글스의 동의가 있어야만 해외 진출을 할 수 있었다. 스스로 해외로 나가려면 2년 뒤 FA자격을 얻어야만 가능했다. 한화는 류 선수 그간의 공로를 인정하고 해외 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존중해 조건부로 해외 진출을 승낙했다. 여기서 조건부란 일정금액(800만~1000만달러 추정) 이상의 이적료(포스팅 비용)를 의미한다.

겨우 구단 승낙을 받았지만 다음이 쉽지 않았다. 국내 프로야구 무대의 선수가 해외에서 인정을 받기란 ‘하늘에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류현진 이전에도 포스팅 시스템을 이용해 해외에 도전한 선수가 있었다. 1998년 LG트윈스 소속 이상훈 선수가 미국 진출에 도전했지만 포스팅 비용으로 60만 달러를 제시 받아 포기했다.

2002년 미국 진출에 도전한 진필중은 아예 입찰한 구단이 없었다. 같은 해 투수 임창용은 65만 달러를 제시 받고 미국 진출의 꿈을 접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 무대를 주름잡는 선수였지만 메이저리그의 평가는 박했다. 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야구 변방 리그의 그저 그런 선수’에 불과했다.

전문가들도 류현진의 포스팅 비용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선전을 통해 한국 야구에 대한 위상이 많이 올랐다. 류 선수 역시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린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반대로 과거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한 사례가 많아 예측이 쉽지 않았다. 포스팅 금액은 500만~1000만 달러 사이, 예상 입찰 예상팀으로는 시카고컵스와 텍사스레인저스가 자주 거론됐다. 결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해 11월 10일 류현진의 최종 포스팅 비용은 2573만7737달러(약 280억원)로 결정됐다. 행선지는 박찬호 선수가 과거 몸담아 친숙한 LA다저스였다.

연봉협상에서는 더 놀랄 일이 벌어졌다. 포스팅 시스템의 특성상 주도권은 구단이 가진다. 만약 우선협상권을 가진 LA다저스가 류 선수와 계약을 하지 않으면 메이저리그 도전을 미뤄야 해서다. 포스팅 결과 발표 후 한 달 간의 협상기간이 주어지는데 류 선수와 구단은 마지막 날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마감 1분을 남기고 겨우 계약을 했다.

결과는 6년간 3600만 달러(약 380억원)로 역시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금액에 대한 합의는 어느 정도 끝났는데, 선수 동의 없이 마이너리그로 강등할 수 있다는 조항을 놓고 갈등을 겪었다. 여차하면 국내 무대로 돌아가도 좋다는 심정으로 ‘그 조항을 빼주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겠다’고 버텼고, 마지막에 결국 구단이 이를 수용했다.” 류 현진 선수가 나중에 밝힌 뒷얘기다.

“한 번은 실수, 두 번은 실력”

우여곡절 끝에 진출한 메이저리그. 류 선수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던 LA다저스와 달리 현장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LA다저스가 검증되지 않은 선수에게 무모한 도박을 걸었다”는 얘기가 언론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류 선수가 런닝 과정에서 체력문제를 드러내거나, 흡연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이를 비꼬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류현진이 불펜(중간계투요원)이나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평가가 180도 뒤집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류 선수는 시즌 내내 승승장구했다. 그는 올 시즌 30경기에 선발 등판해 총 192이닝을 던졌다.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 탈삼진 154개를 기록했다. 내셔널리그 다승 공동 10위, 평균자책점 8위, 최다이닝 25위의 뛰어난 성적이다.

이닝과 승리는 메이저리그 전체 신인 투수 가운데 가장 많았다. 무엇보다 시즌 내내 꾸준했다. 한 두 경기 불안해도 곧바로 다음 경기에서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변명을 하거나 핑계를 대는 대신 결과로 모든 걸 증명했다. “한 번 못하면 실투(실수)고, 두 번 못하면 실력이다.” 류 선수가 자주 하는 말이다.

1218호 (201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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