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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론 보수, 정치적으론 진보 

급증한 美 신흥부자 그들은 누구인가 

박성균 중앙일보 워싱턴지사 기자
전문직·고학력 독신자 많아 … 연 소득 25만 달러 이상으로 전체 소비의 40%



미국 전체 인구의 21%로 늘어난 ‘뉴 리치(New Rich, 신흥부자)’가 정치·경제·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AP통신과 시카고대 공공조사센터(NORC)가 12월 9일 발표한 공동조사 자료에 따르면 뉴 리치 계층은 미국 경제회복의 열쇠를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층 양극화의 상징으로도 부상했다.

뉴 리치는 우선 소득면에서 다른 계층과 구분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뉴 리치는 생애한 차례 이상 가구당 연 소득이 25만 달러 이상인 계층이다. 1년 동안 가족이 번 소득 총액이 25만 달러 이상을 유지하거나 적어도 한 번 이상 이 금액 이상의 소득을 경험한 그룹이다. 이는 미국 소득 수준의 상위 2%에 해당한다.

뉴 리치의 중간소득은 연간 15만 달러로 조사됐다. 25~60세 연령의 인구 5명 중 1명(21%)꼴인 뉴 리치는 1979년 조사했을 때보다 두 배로 증가했다. 이들은 주로 전문직 종사자와 맞벌이 부부 또는 커플, 고학력 독신자 등으로 구성됐다.

미 전체 소득의 51% 차지

2500만 세대를 차지하는 뉴 리치의 소비 규모는 미국의 전체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하다. 이들은 세전 소득의 60% 정도만 소비하기 때문에 다른 계층에 비해 앞으로 지출할 여력도 풍부하다. 경기침체로 대부분의 미국인 가정 소득은 급격히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뉴 리치의 소득이 미국 전체 소득의 51%를 차지해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 업계는 뉴 리치의 소비 패턴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이들의 지갑을 열려고 명품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마케팅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뉴 리치 상대의 마케팅 활동이 활발한 지역으로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를 들 수 있다. 부동산개발 업체들은 상당수의 뉴 리치 계층이 몰려있는 마이애미에 까르티에와 아르마니, 루이뷔통 등의 명품매장이 들어선 럭셔리 쇼핑몰을 대거 짓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소득 규모에서 뉴 리치의 아래 단계에 있는 중산층이 고전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회복의 관점에서 뉴 리치의 역할을 더욱 중요해졌다”고 진단한다.

미국 대형 은행들도 뉴 리치 공략에 적극적이다. 자산 규모가 상위 1%인 수퍼 리치 상대의 마케팅을 뉴 리치에게도 확대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뉴욕 맨해튼의 유니언 스퀘어와 워싱턴DC의 포기보텀 지점에 뉴 리치를 위한 씨티골드 라운지를 설치한 데 이어 씨티골드 상담사도 대거 배치했다.

JP모건도 뉴 리치를 위한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 장소를 대거 확충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뉴 리치를 공략하기 위해 금융 상담사를 대거 채용했다. 은행들이 뉴 리치에 공을 들이는 것은 이들이 일반 고객의 2배 가까운 수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뉴 리치가 고소득을 올리는 부자지만 흥청망청 쓰진 않는다. 이들의 소비성향은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상당수의 뉴 리치는 한 때 가구당 소득이 25만 달러였다가 15만 달러 수준으로 하락했기 때문에 돈을 쓰는 데 매우 신중하다.

소득 수준 상위 2% 이상인 수퍼 리치가 뉴 리치에 비해 유산으로 물려받는 전통적인 가족 자산이 많아 경제적 지위가 훨씬 안정적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수성가 스타일의 뉴 리치는 일을 통해 번 소득에 주로 의지해 생활한다. 자녀의 개인교습비나 학원비로부터 사회적 지위 유지를 위한 비용은 전적으로 스스로 일해 번 돈으로 지출한다는 점이 뉴 리치의 특징이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표심 잡기 고심

뉴 리치는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재정적인 면에서 수퍼 리치나 중산층 등 다른 계층에 비해 보수적이다. 이들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무상급식(푸드스탬프)이나 조기 공교육 사업 등 연방정부의 공공사업 지출에 부정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당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양극화 현상 없이는 뉴 리치의 부상이 힘들었을 것으로 분석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저소득 근로자층과 고학력·전문직 고소득층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 과정에서 중간 소득 계층인 중산층은 감소했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의 마크 랭크 교수는 “뉴 리치 계층에 속하는 상당수의 사람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이 끝나지 않았다”며 “다른 계층에게는 성취하기 어려운 ‘아메리칸 드림’이 고소득 직업을 통해 부를 이룬 뉴 리치에게는 성취할 수 있는 꿈”이라고 설명했다.

세금을 떼고도 수입이 넉넉한 뉴 리치는 교육환경과 근무여건, 거주환경이 다른 계층에 비해 좋다. 예를 들어 이들이 사는 대부분의 동네는 경비가 근무하는 신규 주택단지(Gated Community)다. 자녀는 사립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 뉴 리치의 자녀가 설령 공립학교에 다니더라도 한국의 서울로 따지자면 강남 8학군과 같이 사립학교 뺨치는 좋은 여건의 공립학교에서 공부한다. 이 같은 환경 때문에 뉴 리치의 자녀들은 부모의 혜택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

뉴 리치는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인 소비성향을 보이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진보적이다. 낙태와 동성애 결혼에 대해서는 저소득 계층보다 오히려 더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 경제적 보수주의와 정치적 진보주의의 새로운 성향 때문에 미국의 정치권도 뉴리치의 부상에 긴장하고 있다. 뉴 리치는 소득 기준으로 보면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실제 투표자의 25%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뉴 리치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하지만 기존의 공화당 지지층에 비해 학력이 높아지고 백인 비중이 줄어든 뉴 리치는 정치적 성향이 다양화됐다. 뉴 리치를 공화당의 표밭이라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민주당도 정치적으로 진보성향이 강한 부자인 뉴 리치의 표심을 공략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크로스보팅을 하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층으로 분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 대통령 선거에서 뉴리치의 54%가 밋 롬니 공화 후보를 지지한 것도 민주당에 부담이다. 정치적 양극화를 연구하고 있는 에모리대의 앨런 에이브럼위츠 교수는 “전통적인 경제 포퓰리즘이 부유한 전문직인 뉴 리치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워싱턴DC 일원에 뉴 리치 몰려

뉴 리치는 주로 워싱턴DC 일원과 뉴욕·보스턴·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시애틀 등 대도시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퍼져서 살고 있다. 하지만 지역적으로는 워싱턴DC를 포함한 북동부에 몰리면서 부의 편중이 심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12월 13일 공개된 연방통계국의 ‘2012년 소지역 소득·빈곤 추산(SAIPE)’ 자료에 따르면 전국 3142개 카운티 가운데 가구당 중간 연 소득이 가장 높은 곳 상위 10곳 중 워싱턴DC 일원이 6곳을 차지했다.

전국에서 가장 부자 동네는 워싱턴DC와 서쪽으로 인접한 버지니아주의 폴스처치 시티로 가구당 중간 연 소득이 12만1250달러를 기록했다. 2위는 11만8934달러인 라우든 카운티가 차지했다. 페어팩스 카운티(10만6690달러)와 알링턴 카운티(9만9255달러), 스태포드 카운티(9만5927달러)는 각각 5위와 7위, 9위를 기록했다. 이들은 모두 버지니아에 있다. 워싱턴DC와 인접한 메릴랜드의 하워드 카운티도 10만8234달러를 기록, 4위에 올랐다.

가구당 중간소득은 워싱턴 일원 외에도 뉴저지와 뉴욕 등 북동부 지역의 카운티가 높은 반면, 다른 지역은 낮아 부의 편중이 심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자 카운티 상위 75곳 가운데 44곳이 북동부 지역이다. 반면 가난한 동네의 79%가 남부지역에 몰려있다. 특히 앨라배마의 윌콕스 카운티와 켄터키의 오슬리 카운티의 소득은 각각 2만2126달러와 2만2148달러로 가장 낮았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새롭게 부상한 뉴 리치가 미국의 경제 활성화와 동성애 등 정치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1218호 (201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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