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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삼성전자·현대차 영원히 먼곳에? 

대기업도 양극화 몸살 

대기업 간 매출·이익 격차 갈수록 커져 …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쏠림 우려



수십 마리의 말이 함께 끌며 쌩쌩 달리던 마차를 이제 두 마리의 말이 힘겹게 끈다. 덩치가 커진 두 마리 말 덕분에 마차가 멈추지는 않지만, 다른 말들은 힘이 빠졌다. 요즘 한국경제를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이렇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를 빼면 한국경제 실적은 초라해 진다.

두 기업, 특히 삼성전자 착시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이런 현상 이면에는 대기업 양극화가 깔려 있다. 삼성전자·현대차가 워낙 잘하기도 하지만, 다른 대기업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격차가 벌어진다는 게 문제다. 삼성전자도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스마트폰 비중이 너무 커졌다.



“어닝 쇼크라고 하기엔 좀 무리 아닌가요?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이 큰 것일 수 있지만, 영업이익률 14%면 엄청난 것이죠. 호들갑이 좀 심한 것 같아요.” 최근 나온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을 두고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한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4분기 잠정 실적은 매출 59조원, 영업이익 8조3000억원이다. 예상했던 영업이익 9조5000억원보다 낮고, 전 분기 대비 18% 하락했다는 게 ‘어닝 쇼크’로 표현된 이유다. 하지만 여기엔 삼성그룹 신경영 20주년 기념 특별 상여금 8000억원이 포함돼 있다. 또한 4분기 영업이익률 14%는 이전 10분기 영업이익률 평균(13.7%)보다 높은 수치다.

삼성전자 실적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그만큼 한국경제의 삼성전자 의존도가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다 보니 무리한 분석도 횡행한다. 일부 언론은 ‘2012년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삼성전자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8~23%’라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엉터리 통계다. GDP는 국내에서 창출된 순부가가치의 합이다. 기업의 부가가치는 매출에서 재료·부품값 등 중간 투입된 가치를 뺀 총판매액이다.

때문에 기업 부가가치는 매출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과 학자들이 GDP와 매출을 비교하는 건 계산이 쉽고 의도하려는 목적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통계학에서는 이를 ‘계산은 쉽지만 오염된 지표(QDM : Quick and Dirty Measure)’라고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부가가치 기준으로 계산하면 GDP대비 삼성전자 비중은 대략 2.6% 안팎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GDP와 매출 비교는 어불성설

다만, 이번 논란이 한국경제가 애써 눈 감아온 ‘삼성 착시 현상’을 다시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상장사 시가총액의 15%, 수출 기여도 20%, 법인세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독주 현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삼성 착시’는 오랫동안 진행된 대기업 간 양극화(격차)의 결과이기도 하다. 다른 대기업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만큼 선전했다면 나오지 않았을 얘기다.

대기업 독식으로 표현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에 가려 주목 받지 못했지만, 대기업 사이에서도 양극화는 점차 심화하고 있다. 국내 전체 기업에서 상위 10대 그룹, 10대 그룹 내에서 4대 그룹, 4대 그룹에서 삼성그룹, 삼성그룹 내에서 삼성전자, 삼성전자 내에서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 4대 그룹의 자산은 2009년 104조원에서 2011년 136조원, 2013년 179조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5~10위 그룹의 자산총액은 같은 기간 37조원→45조원→50조원으로 상대적으로 오름폭이 크지 않았다. 11~30위 그룹은 2009년 10조원에서 지난해 14조원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30대 그룹의 매출 변화 역시 대기업 간 점차 벌어지는 격차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5월 8일 미국 워싱턴 헤이 아담스호텔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수행 경제인 조찬 행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매출 규모보다 수익성 격차 더 커져

한국은행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전체 기업(금융업 제외) 중 상위 30대 그룹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2001년 41%에서 2012년 37.4%로 낮아졌다. 30대 이외 기업의 매출·자산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얘기다. 대기업에 경제력 집중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수치상으로는 맞지 않는 얘기다. 그런데, 30대 그룹 내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국내 전체 기업 중 상위 1~4위 그룹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2008년 17.2%에서 2012년 19.9%로 5년 사이 2.7%포인트 증가했다. 5~10위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8.1%에서 2012년 8.9%로 0.8%포인트 늘었다. 하지만 11~20위 그룹은 같은 기간 0.2%포인트 줄었고, 21~30위 그룹은 3.3%로 0.6%포인트 낮아졌다.

30대 그룹 내에선 상위 4대 그룹, 특히 삼성그룹과 그 이하 그룹 간 격차가 벌어졌다. 특히 매출 규모보다는 수익성에서 격차가 커지고 있다. 10년 전(2003년) 국내 30대 그룹의 전체 매출은 476조2700억원. 이 중 삼성·LG·현대자동차·SK(당시 1~4위 순)그룹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62.6%였다. 하지만 2012년에는 53.4%로 줄었다. 매출 비중은 줄었지만 4대 그룹 순이익 비중은 같은 기간 76.5%에서 79%로 증가했다.

그룹이 아닌, 기업별로 봐도 양극화 현상은 뚜렷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상장사 중에서 매출 상위 10대 기업이 차지하는 영업이익 비중은 2011년 35%에서 2012년 40%, 2013년 상반기 46%로 증가했다. 또한 매출 상위 10대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09년 4.6%에서 2011년 6.9%, 2013년 7.8%로 늘었다.

하지만 10대 이외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009년 6%에서 2011년 6.4%, 지난해 상반기엔 4.7%로 쪼그라들었다. 영업활동으로 창출된 현금 비율인 현금흐름보상비율은 10대 기업이 2009년 85%에서 지난해 169%로 껑충 뛰었지만, 10대 이외 기업은 같은 기간 38%에서 29%로 줄었다.

이코노미스트가 매출 상위 200대 상장사를 상대로 벌인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매출 상위 10대 기업이 200대 상장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나 됐다. 삼성전자는 200대 기업 매출의 12.9%, 100대 기업의 13.6%, 10대 기업의 27.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대 상장사 전체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조9000억원 늘었는데, 삼성전자(17조5000억원)와 현대자동차(2조4000억원)을 제외하면 4조원 느는데 그쳤다. 또한 전체 영업이익의 42%를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거둬 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를 빼면 199개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1조3500억원 줄었다.

삼성그룹은 10년 전에도 압도적인 1위였다. 2003년 30대 그룹 중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24.8%였다. 2008년에는 20.1%로 줄었고, 2012년에는 21.8%를 차지했다. 또한 10년 전 30대 그룹이 얻은 당기순이익 39조4750억원 중 삼성그룹은 33.6%를 차지했다. 이 비중은 10년 동안 29~35%를 유지하다가, 2012년에는 46.5%를 기록했다.

상위 4대 그룹 내에서도 삼성그룹의 수익성이 특히 도드라진다. 4대 그룹 중 삼성그룹 매출 비중은 2003년 40.5%에서 2012년 42.1%로 늘었다. 같은 기간 이익 비중은 40.9%에서 60.1%로 급증했다. 또한 4대 그룹 내에서 ‘삼성+현대차그룹’ 매출·이익 비중은 2012년 각각 62.9%, 87%를 차지했다. 수익성 면에서 삼성·현대차와 SK·LG 간 격차가 그만큼 벌어졌다는 얘기다.

삼성그룹 내에서 삼성전자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우려 역시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삼성전자에 따르면, 2003년 삼성그룹 전체 매출 120조9880억원 중 삼성전자는 약 36%(43조5800억원)을 차지했다. 이후 휴대전화·반도체 수출이 급증하면서 2005년에는 56.6%로 늘었다. 2009년에는 그룹 매출 220조1200억원 중 62%(136조3240억원)를 차지했고, 2012년에는 66.4%로 증가했다.


이익 역시 삼성전자 의존도가 높다. 2007년 삼성그룹이 거둔 당기순이익은 7조4180억원. 이 중 삼성전자는 80.3%(5조9590억원)을 차지했다. 순이익 비중은 2007년과 2009년 각각 64%, 55%까지 줄었지만 이후 스마트폰 부분 이익이 급등하면서 2011년에는 67.8%, 2012년에는 80.7%로 증가했다.

이익 쏠리면 위험도 집중

삼성전자 내에서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IM(IT 모바일커뮤니케이션) 부문 의존도가 높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28조4200억원, 영업이익 36조7700억원을 기록했다. 4분기 영업이익이 대폭 줄었지만 매출·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다. 하지만, 스마트폰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가 삼성전자 안팎에서 나온다. 전체 매출에서 IM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34%에서 2012년 64%, 지난해는 62%였다. 영업이익 비중은 2011년 51%, 2012년 67%, 지난해는 69%에 달했다.

이익이 한곳으로 쏠린다는 것은 위험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국내 상위 몇 개 기업으로 이익이 쏠리면 예상치 않은 대외 충격이 발생할 때 위험 분산이 되지 않아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특히 상위 기업 대부분이 수출 기업이기 때문에 한국경제의 대외 민감도는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정책 측면에서는 삼성·현대차 등의 높은 실적이 한국경제 전체의 흐름인 것으로 착각해 잘못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이를 사전에 대비·예방하는 게 ‘삼성 착시’ ‘대기업 간 양극화’ 현상이 주는 교훈이다. 돈 잘 버는 기업 이익을 줄여 양극화를 줄이겠다는 식의 정책은 최악의 패착이 될 수 있다.

1222호 (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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