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오너만 바라보는 문화부터 바꿔라 

2034년에도 10대 그룹으로 남으려면 

진정한 혁신 가능한 의사결정구조 절실 ... 남북관계도 미래 좌우할 변수



2007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미래 학자 피터 슈와츠가 50년 후인 2057년의 세계 10대 기업을 가상으로 예측한 내용이었다. 그가 예측한 50년 후 10대 기업 순위표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도요타·IBM·네슬레처럼 익숙한 이름이 순위에 있는 반면, 시노바이오코프나 인도소프트처럼 피터 슈와츠가 가상으로 만들어 낸 회사도 있다. 또 아마존과 이베이가 합병한 아마존베이라는 회사가 순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아쉽게도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신시장 개척과 혁신이 생존에 필수

50년 후 그의 예측처럼 될 지는 미지수다. 1년 후 경제전망도 정확하게 짚어내기 힘든 마당에 50년 후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피터 슈와츠의 예측을 통해 미래에 어떤 기업이 뜨고, 어떤 기업이 생존할 것인지에 대한 힌트는 얻을 수 있다. 순위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너지와 나노기술 같은 새로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이 등장한다. 미래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그걸 선점하는 기업이 우뚝 설 것이란 전망이다.

기존 기업 중에는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에 성공한 기업이 명맥을 이어나갈 것으로 본다. 도요타가 순위에 오른 것은 기술혁신을 통해 연료전지 자동차 분야 점유율을 높인다는, IBM 역시 양자 컴퓨터라는 혁신적 제품 개발에 성공한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10대 그룹의 미래는 어떨까. 국내 경제·경영전문가들에게 지금의 10대 그룹이 20년 후에도 생존하기 위해 보완할 부분을 물었다. 많은 전문가가 최우선 항목으로 ‘혁신’을 꼽았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대기업이 올린 성과를 보면 외부적 환경이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이 많았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좋은 선택을 해왔다는 것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 자유시장 경제를 내세우면서 아시아 국가로 제조업이 이전되는 것을 강대국이 쉽게 허용했다. 앞으로는 상황이 다를 것이다. 세계 경제가 침체기로 접어 들었고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는 환경에서 혁신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수석애널리스트의 말이다.

물론 혁신의 중요성을 모르는 기업은 없다.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5년 간 10대 그룹 회장의 신년사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해마다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랭크된 단어가 ‘변화’와 ‘혁신’이다. 하지만 10대 그룹이 혁신에 얼마나 유연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성장해 대기업이 되는 순간 혁신은 더 어려워 진다. 커다란 덩치의 조직을 바꾸고 변화하는 것은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이 뒤따른다. 하지만 최근 국내 대기업을 보면 혁신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말만 내세울 뿐 결과적으로는 기존의 경영방식을 계속해 고수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혁신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과 다양성이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의 조직문화를 보면 이런 창의적이고 다양한 생각이 경영에 반영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혁신적 제품이나 생산방식이 등장해도 의사 결정권을 가진 한 두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아래로 의사가 내려오는 혁신 방법으로는 세계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또 다른 생존 조건은 오너 못지 않은 전문경영인 육성이다. 현재 국내 10대 그룹은 모두 오너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권한이 막강하다. 오너 경영의 빛과 그림자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됐던 문제다. 오너의 강력한 의지로 빠른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그것이 현재 국내 대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갈수록 복잡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경영환경에서 오너의 선택에 모든 걸 맡기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습 형태의 후계자 선정 구도에서 미래 20년을 책임질 재벌 3세에게 선대 회장과 같은 특출한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강경훈 교수는 “많은 경영자 후보와의 경쟁을 통해 오너의 자녀가 후계자로 선택된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많아야 3~4명의 재벌 3세 중에 한 명이 한 그룹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지금의 방식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너 리스크 문제는 최근 이슈가 된 대기업 총수들의 윤리문제와도 직결된다. 지난해에는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일이 많았다. 졸지에 선장을 잃은 회사 관계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최고경영자의 부재로 중대한 의사결정에 차질을 빚는다’며 국가와 여론을 상대로 선처를 호소했다.

이를 두고 한 경영학과 교수는 “오너 한 명 없다고 기업 경영에 차질을 빚는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오너 경영 리스크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판이 끝나고 형을 살면 다시 경영자로 복귀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며 “부도덕하고 윤리성이 떨어지는 인물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라도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현실에 맞는 비전·경영철학 필요

장기 성과를 내려면 경영철학과 가치관, 비전도 중요하다. 문형구 교수는 “기업이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모든 선택의 기조가 되고 경영자·직원·고객이 고개를 끄덕이고 인정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대기업이 내세우는 비전이나 경영목표를 보면 실제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그냥 멋스러운 문구를 앞에 내걸어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10대 그룹의 홈페이지를 보면 회사 소개 카테고리에 비전이나 목표를 명시했다.

이를 살펴보면 과연 기업의 경영에 이런 비전과 철학이 반영되는지 의문을 가질 만한 문구들이 많다. 이런 문구와 함께는 세부 지침과 철학이 나열됐다. ‘고객지향·혁신·창조·기술력·인재·사회적책임·인간중심’ 등의 단어는 모든 기업이 한 번씩은 홈페이지에 거론한 단어들이다. 좋은 단어를 다 가져다 모았다고 해서 그것이 기업의 비전이나 미래가 될 수는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10대 그룹의 미래에 가장 큰 변수로 ‘남북통일’을 꼽았다. “향후 20년 안에는 남북이 통일이되거나 경제교류가 활발해질 확률이 높다. 현재 한국은 사실상 섬 국가와 마찬가지다. 남북관계의 변화로 내수시장이 넓어지고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은 기업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이 변화에 잘 대응하는 그룹이 20년 후 10대 기업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1222호 (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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