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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쓸 만한 사람 고르기 참~ 어렵죠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박용삼 KAIST 경영공학 박사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레몬마켓(Lemon market)’, 정보 부족으로 무늬만 전문 인력 뽑을 위험



2006년 개봉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는 미국 시골뜨기인 앤드리아 삭스(앤 헤서웨이)가 저널리스트의 부푼 꿈을 안고 뉴욕에 상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나름 대학에서 쌓은 편집부 경험을 밑천으로 뉴욕의 여러 언론사에 이력서를 넣어 보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그러던 차에 세계 최고의 패션잡지로 이름을 떨치던 런웨이로부터 편집장의 말단 비서직 제안을 받는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 되는 앤드리아는 성공에 대한 일념으로 기꺼이 런웨이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런데 처음부터 꼬였다. 앤드리아가 모셔야 하는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는 그야말로 ‘(프라다를 입은) 악마’ 같은 존재. 새벽부터 호출하는 건 예사고 계속되는 야근과 끊임 없이 이어지는 느닷없고 불가해한 요구사항들. 말대꾸는 절대금물이다. 더욱 괴로운 것은 이런 모든 고행을 패션계 분위기에 맞게 10cm 스틸레토힐을 신고 완수해야 한다는 사실.

영화에서 미란다는 왜 앤드리아를 괴롭히는 것일까? 이유는 바로 그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게임 상황에 있다. 미란다의 목적함수(Payoff function)는 겉멋든 패션 업계에서 제대로 밥값을 해내는 충실한 비서 한 명을 구하는 것. 그래서 신참의 능력과 성실성을 집요하게 의심하고 테스트하는 것이다.

반면 앤드리아는 어떻게든 뉴욕에 자리를 잡고 기반을 닦는 것이 목적. 따라서 아무리 혹독한 요구사항도 이를 악물고 감내하는 것이다. 이렇듯 두 사람 사이의 밀고 당기는 게임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학(加虐)과 피학(被虐)의 전략 앙상블이 전개된다.

입사 지원자가 ‘정보 우위’에 있게 마련

비즈니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느 회사든 미래를 책임질 신규 인력 채용은 회사의 성장과 존속에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사안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쓸 만한 인재를 골라내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울까? 개개인의 진정한 역량과 품성은 본인 스스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입사 지원자는 회사에 비해 일종의 정보 우위(Informational advantage)에 있는 것이다.

스펙은 근사한데 막상 뽑아놓고 보면 잔 심부름 하나 제대로 못하는 ‘무늬만’ 전문 인력이 얼마나 많은가? 아나운서 뺨칠 정도의 화술과 연예인에 필적하는 연기력, 급기야 단점을 장점으로 포장하는 각종 면접 테크닉까지 보편화된 지금, 구직자는 자신의 약점을 최대한 숨기면서 정보 우위를 향유한다. 즉, 회사를 속인다는 말이다.

이를 게임이론에서는 ‘레몬마켓(Lemon market)’ 상황이라고 한다. 거래 당사자 간에 정보 차이가 있는 경우 정보가 없는 쪽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대방 즉 ‘레몬(혹은 빛 좋은 개살구)’과 거래할 가능성이 커진다. 예를 들어 보험시장에서는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사람이 주로 가입하고, 중고차 시장에는 시장가격보다 질이 나쁜 차량들이 주로 나오는 식이다.

정보 열위에 놓인 기업 입장에서는 달리 도리가 없다. ‘의심되면 뽑지 말고 뽑았으면 의심 말라’는 말처럼 연봉에 비해 함량 미달의 직원을 뽑거나 혹은 역량에 비해 과다 연봉을 지급할 위험, 즉 역선택(逆選擇, Adverse selection)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인성·역량·토론에 이르는 다단계 면접은 기본이고 일부러 난처한 질문을 던져 순발력과 임기응변력을 살필 필요도 있다. 살면서 단 한번도 생각할 일이 없는 해괴한 퀴즈(서울 시내 맨홀 뚜껑 개수)도 필요하고,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사회적 민감 이슈(동성애자 결혼)에 대해 토론을 부치는 것도 좋다.

매년 입사철만 되면 창조적 직원을 뽑기 위한 온갖 창조적 방법이 소개되는데 (그 효과 여부를 떠나) 레몬마켓의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신규 입사자의 정보우위 대처에는 그토록 신경을 쓰면서 기존 직원들의 정보 우위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천재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데 혹시 그 반대는 아닐까? 만 명의 도움 없이 천재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는가? 리더십은 팔로워십 위에서 자란다.

회사가 신규 인력에만 신경을 쓰는 순간, 나름의 사명감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켜 온 기존 직원들은 졸지에 B급 레몬으로 전락한다. 회사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배신감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 그동안 쌓아왔던 업무 지식과 업계 인맥, 숨겨둔 창조적 아이디어, 윗사람은 모르는 조직 내부의 아킬레스건과 비장의 해결책이 순식간에 묻혀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대와 갈증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 전에 기존 직원들을 과연 귀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혹시라도 단순 인건비 항목으로 취급한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업계마다 ‘인재 사관학교’라 불리는 기업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그 기업 출신들 중에 퇴사해 성공한 사람이 많으면 자동적으로 붙여지는 닉네임이다. 그런데 이 말은 칭찬일까 조롱일까?

퇴사 후에 스타가 되는 천재급 인재들이 왜 그 회사에 머물고 있을 때는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혹시 ‘인재사관학교’가 실상은 ‘천재들의 무덤’이었던 것은 아닌지 찬찬히 자문해 볼 것을 권한다. 자, 이제 영화의 결론. 상상할 수도 없는 미란다의 학대와 동료 여직원들의 끊임없는 견제에도 앤드리아는 드디어 미란다의 마음을 사는데 성공한다.

기존 직원 귀한 줄도 알아야

그녀의 용모도 입사 초기 촌스럽고 뚱뚱했던 모습에서 어느덧 세련되고 매력적인 패션계 커리어 우먼으로 일취월장(그야말로 66에서 44로의 대변신).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화려한 삶에 대한 회의와 순수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도 깊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옛 남자 친구의 벽력 같은 결별 선언을 듣고 그녀는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영화 뒷얘기 한 가지. 이 영화에는 프라다만 있는 게 아니다. 발렌티노, 도나카렌, 갈리아노, 샤넬, 베르사체, 마크 제이콥스, 에르메스, 지미추, 마놀로, 톰포드, 돌체, 디오르 등등 패션에 무관심한 이들도 한번쯤 들어봤을 최고의 명품 브랜드가 영화 곳곳을 가득 메우고 있다.

특히 수많은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언급되는데 프랑스에서 작위까지 받은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를 영화 속 자선파티 장면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는 평소 메릴 스트립의 열성팬이어서 기꺼이 카메오 출연에 응했다 한다.

1223호 (201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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