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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 경차 타는 서민 돈 걷어 수입차 타는 부자 돕는 꼴 

저탄소차 협력금제 논란 

환경부, 2015년부터 탄소배출량에 따라 부담금, 국산 브랜드 피해 우려

▎한국환경공단이 원격측정장치로 자동차 배출가스의 오염도를 측정하고 있다.



내수침체로 고전하는 국산 자동차 브랜드에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환경부가 2015년부터 시행하려는 ‘저탄소차 협력금제’ 때문이다. 일명 ‘탄소세’라 불리는 이 정책은 신차를 구매할 때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차등해 부담금을 물리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후손에게 쾌적한 환경을 물려주자는 좋은 취지의 정책이지만 결국 대부분의 자동차 가격이 오르는 셈이어서 논란이 많다. 차 값 상승으로 판매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산 자동차 브랜드는 물론이고, 소비자의 부담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미국·독일·일본에도 없는 제도

논란의 가장 큰 쟁점은 국내 자동차 산업이 입는 피해다. 환경부가 추진하는 내용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25만~700만원까지 부담금을 내야 한다. 물론 탄소 배출량이 적은 일부 차종은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아직 이 구간을 어떻게 나눌지는 정부도 계속 고민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수입차보다 국산 자동차 브랜드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중형 쏘나타와 K5는 물론이고 아반떼나 K3 같은 준중형 차들도 탄소세를 내야한다. 에쿠스나 체어맨 같은 대형차들은 최대 700만원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 특히 쌍용자동차는 거의 전 차종이 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국산 자동차 업계와 달리 수입 자동차 브랜드 입장에서는 저탄소차 협력금제도가 반갑다. 연비가 좋은 클린 디젤 기술을 가진 독일차와 하이브리드 기술이 좋은 일본차는 오히려 가격이 떨어진다. 현재 12%인 수입차 점유율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가솔린 엔진 중심의 국산 자동차 브랜드의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 상황에서 유독 한국만 자국 자동차 산업에 불리한 정책을 들고 나온 셈이 됐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독일·일본에도 없는 제도다. “환경부가 추진하려는 형태의 환경 규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몇 안된다. 그중 하나가 프랑스의 보너스-말뤼 제도인데, 이 역시 환경만을 위한 정책으로는 보기 힘들다. 프랑스의 주력 자동차 브랜드인 푸조나 시트로엥이 생산하는 자동차의 대부분이 탄소배출량이 작다. 결국 자국 자동차 브랜드에게 득이 되는 정책을 펼치는 셈이다. 한국처럼 자국 자동차 브랜드가 피해를 입을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환경 정책을 펼치는 나라는 없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환경부도 나름의 논리는 있다. 원래 이 제도는 2013년 말부터 시행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의 반발에 2년의 유예기간을 줘 시행이 연기 됐다. 환경부 한 관계자는 “전 세계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연비를 개선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불만만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그간 한국은 가솔린 내연 기관 기술을 쌓아왔고, 최근에야 클린 디젤과 하이브리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보통 자동차 하나를 개발하는데 5년 넘는 시간이 걸리는데 2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진 기술을 갖추라는 말은 자동차 산업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반박했다.

환경부 정책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시선도 곱지 않다. 환경부 측은 “환경에 도움이 되는 자동차는 혜택을 주고, 반대의 경우는 부담금을 물리는 것이어서 세금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동차 가격이 올라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올해 기준으로 자동차를 판매한다면 신차 구매자 5명 중 3명은 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미 자동차세와 유류세를 내고 있는데 또 다른 세금이 추가되는 이중과세 논란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거기다 보조금 혜택을 받는 수혜층과 부담금을 내야 하는 소비자 간의 부의 균등분배도 문제가 된다. 환경부 원안대로면 기아의 경차 레이나, 2000cc 미만 준중형 자동차도 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반면 3000~4000만원대의 독일 디젤 자동차는 원래 가격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보조금을 받게 된다. 경차나 국산 준중형 차를 사는 서민들의 돈을 걷어서 고급 수입차를 타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비난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월 21일 “저탄소차 협력금제를 중단하거나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밖에 자동차 브랜드나 부품업체 등도 저탄소차 협력금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강하게 나타냈다. 일부 시민단체와 환경단체가 “환경과 국내 자동차 기업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보조금·부담금 기준 놓고 고민

제도와 관련해 잡음이 일자 최근 환경부는 다소 완화된 기준의 저탄소차 협력금제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기준에 따르면 많은 국민들이 구매하는 쏘나타와 K5 같은 중형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구간(131~150g/km)까지는 부담금을 물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역시 환경부가 검토 중인 사항일 뿐 아직 다른 부처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았고,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또 완화된 기준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에쿠스나 제네시스와 같은 중대형 차량과 코란도나 카니발 등 국산 SUV 차량은 여전히 높은 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브랜드 입장에서 대형차가 많은 수익이 발생하지만 최근 수입차 돌풍으로 고전하고 있다”며 “여기에 부담금으로 가격까지 상승하면 국산 고급 세단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고 말했다. 저탄소차 협력금제 시행까지는 1년 남짓한 시간이 남았다. 자동차 업계와 소비자, 환경까지 감안한 솔로몬의 묘책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1223호 (201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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