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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하이브리드·전기차 언제 다 제대로 만들지? 

갈 길 바쁜 현대차그룹 

독일·일본 업체 파상공세에 현대차 역량 분산, 글로벌 IT기업 가세도 고민거리

▎현대·기아차가 2012년 출시한 전기차 레이 EV.



그동안 전기차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했다. 석유에너지 고갈과 친환경 흐름에 발맞춰 전기차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시장이 빨리 크지 않았고, 인프라 보급이나 짧은 주행거리 등 난관에 부딪혀 비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BMW와 폴크스바겐이 본격적인 전기차 개발과 판매에 나섰다. 르노삼성과 한국GM도 전기차를 앞세워 분위기 반전을 꾀하는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전기차 보급에 탄력이 붙었다. 테슬라·삼성·LG 등 자동차 브랜드가 아닌 회사도 호시탐탐 전기차 시장에서 기회를 노린다.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국내 최대 자동차 브랜드 현대·기아차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는 최근 수 십년 간 자동차 업계의 추격자였다. BMW·벤츠·도요타 등 내로라는 세계 자동차 브랜드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2010년 도요타 자동차 대규모 리콜사태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업체가 부진한 틈을 파고 들어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려면 새로운 발판이 필요하다. 전기차를 비롯한 미래차가 대안일 수 있다. 세계를 제패한 독일과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가 100년 가까이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내연기관 개발의 기술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전기차는 기존의 내연기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다. 누구나 더 좋은 전기모터를 장착할 수 있고, 성능이 더 뛰어난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로서는 위기이자 기회다. 전기차 분야 기술을 선점한다면 단숨에 세계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다. 반대로 기술 개발에서 뒤쳐지면 다시 기나긴 세월을 추격자의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 지금은 국내에서 독보적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현대차지만 르노삼성과 한국GM이 새롭게 개발한 전기차를 필두로 거센 도전을 한다면 국내 시장에서의 지위마저도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제주도에서 최초 전기차 민간 보급을 실시할 당시 기아의 레이 EV가 르노삼성의 SM3 ZE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또 구글·애플·삼성·LG 등 기존에 없었던 경쟁자의 등장까지 경계해야 한다.

BMW 달아나고, 르노삼성 추격하고

현대·기아차 역시 전기차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쏘울 전기차가 4월 출시를 앞뒀다. 일본 닛산의 전기차 ‘리프’보다 뛰어난 성능으로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전기차 부문의 기술력이 경쟁업체에 비해 뒤쳐진다”며 직원들에게 전기차 기술 개발을 독려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화성 남양기술연구소 내 특허팀을 특허실로 격상하며 전기차 관련 기술 특허 개발에도 집중했다. 당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70여명에 불과한 특허실 인력을 최대 3배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핵심 임원이 최근 경질된 이유 중 하나로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카 개발 전략 부진에 따른 문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의 노력에도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개발은 더디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차가 최초 전기차를 개발한 것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차는 쏘나타 모델에 납축전지를 내장한 전기차를 최초로 선보였다. 내연기관을 모터와 납축 전지로 대신한 단순한 형태의 전기차로 1회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50km에도 못 미칠 정도의 초보 수준의 전기차였다.

1993년 출시한 쏘나타 전기차 3호가 최근의 전기차와 가장 유사한 형태의 전기차다. 배터리 제어시스템을 내장해 최고속도 130km, 1회 충전 주행거리 120km를 달성했다. 경쟁 업체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빠르게 성과를 내며 기술 격차를 줄여나갔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전기차와 관련한 모든 사업이 중단됐다.

현대차가 다시 전기차에 도전해 성과를 낸 것은 2009년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블루온을 선보인 것. 16.4kWh의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달고 최고 시속 130km까지 달릴 수 있는 양산형 전기차였다. 정부기관과 지장자치단체에서는 업무용 차량으로 사용 중인 블루온을 볼 수 있다.

현대·기아차의 또 다른 전기차는 3년이 지나서야 등장했다. 경차 레이 EV다. 개발명 탐스(TAMS)로 이름을 알렸지만 보급에는 애를 먹었다. 4500만 원에 달하는 비싼 가격 때문이다. 그나마 2012년 이후에는 아예 성과가 없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벌어진 민간 대상 판매에서 르노삼성에 뒤진 것도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기술이 레이 EV에서 멈춘 동안 경쟁사들이 빠르게 발전해서다. 사실상 현대·기아차에는 세계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 내세울 만한 전기차가 없다.

4월 쏘울 전기차가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한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브랜드마다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투자를 늘리는 상황에서 쏘울 한 차종만 가지고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며 “BMW 전기차가 5월 국내에 출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억지로 출시 시기를 맞추는 듯한 감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가 전기차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데는 외부 요인도 크다. 여러 부문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선택과 집중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최근 국내 시장에서는 독일 디젤 세단이 점유율을 갈수록 높여가고 있다. 내수시장을 지키기 위해 현대·기아차는 최근 2~3년간 디젤엔진 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다. i40, 아반떼 디젤 등을 출시하며 독일차의 공세에 맞섰다. 동시에 수입 자동차와 비교해 가격 대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자·편의 장치 개발에도 많은 돈과 노력을 투자했다.

2011년 현대차 기술개발의 핵심인물인 이현순 부회장이 사퇴하고, 뒤를 이은 연구개발총괄 책임자가 양웅철 부회장이다. 미국 포드자동차 연구소 출신으로 자동차 전자장비 부문 전문가다. 양 부회장 체제 이후 자동주차·스마트트렁크·차선이탈경보시스템 등 전자장비 관련 기술이 좋아졌다. 2012년 2월에는 투산ix 수소차 개발·양산체제를 갖추며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시장 열리면 달릴 준비 마쳤다”

최근에는 저탄소차 협력금제라는 악재도 겹쳤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낮은 차량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반대의 차에겐 부담금을 물리는 정책으로 2015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가솔린 엔진 위주의 차를 생산하는 현대·기아차로서는 가격 상승으로 판매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단은 하이브리드 차 라인업을 늘려 대응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쏘나타·그랜져·K5·K7 하이브리드 차를 잇따라 출시했다.

역량 분산에 대한 세간의 우려에도 현대·기아차는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전기차 확산 속도가 빠르지만 아직까지도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그동안 꾸준하게 전기차를 개발하며 시장이 열리면 언제든 달려나갈 준비를 마쳤다. 디젤·하이브리드·수소·전기차 등 어떤 시장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의 지시로 레이 EV처럼 기존 모델에 전기 모터를 장착하는 파생형이 아닌 순수전기차 개발을 2018년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1224호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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