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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의 미래 20년 먹을거리 

삼성·LG의 전기차 大戰 

조용탁·김태진 이코노미스트 기자
구본준 부회장-이재용 부회장 전기차 사업에 눈독, 2차전지부터 소재까지 수직계열화

▎세계 최대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인 LG화학 충북 오창공장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배터리셀을 검사하고 있다



세계적인 IT기업을 주력사로 둔 삼성과 LG그룹이 전기차 사업의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두 그룹이 결국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적절한 타이밍’만 남았다는 것이다. 전 세계 주요 대기업 가운데 삼성과 LG만큼 전기차 분야에 수직 계열화를 이룬 경우가 드물다. 핵심 부품인 모터와 배터리뿐 아니라 전기차 편의장치 활용도를 높일 스마트폰과 통신기술의 접목에서 이들 두 그룹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다.

1월 8일 오후 2시 40분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4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행사장에 들렀다. 구 부회장은 LG전자 부스를 잠시 둘러본 다음 첨단 전기자동차가 전시된 노스홀로 향했다. 그리곤 약 20분 간 LG전자가 생산하는 부품이 적용된 전기차를 살폈다.

그는 전시관을 떠나며 수행하던 이우종 LG전자 자동차 부품(VC)사업본부 사장에게 “스마트 자동차 전장 부품 시장에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전기차 사업을 자주 언급해온 구 부회장이 올해는 전기차용 부품 사업 강화에 더욱 힘을 쏟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LG 오너 경영자들이 진두지휘

LG전자는 이미 지난해 7월 자동차 설계회사인 V-ENS를 인수한 뒤, 내부 차량 부품 관련 조직을 통합, VC사업본부를 신설했다. 같은 달 자동차 부품 전용 연구·개발(R&D) 단지도 인천 청라지구에 완공했다. 흩어져 있던 전기차 부품 사업을 한데 모은 것이다. 국내 전기차업계 관계자는 “스마트 자동차 및 전기차 시장이 팽창하면 전자·전기 관련 부품 수요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면서 “구 부회장이 시장 대비를 주문한 배경 역시 격변기에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LG와 전기·전자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삼성도 전기차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의 지주회사인 엑소르 이사회의 사외이사로 활동 중인 이 부회장은 그동안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BMW 회장, 마틴 빅터콘 폴크스바겐 회장 등 자동차 업계 CEO들과 교류하며 삼성의 자동차 배터리 사업을 확장해 왔다. 이 부회장은 최근 삼성SDI에서 제조한 배터리가 장착된 BMW i8을 주문했다. 삼성이 자동차 충전시설을 늘리는 것도 전기차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삼성의 전기차 행보는 지난해 본격화했다. 삼성전자가 전기차 관련 특허를 수 백건 취득한데다 르노삼성자동차가 부진에 빠지면서 이 회사 연구원 상당수가 삼성전자 및 관련사로 스카우트됐다. 소재기업으로 변신 중인 제일모직의 횡보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하반기 박종우 전 제일모직 사장이 미국 테슬라를 방문해 앨런 머스크 회장을 만나 광범위한 제휴를 논의했다.

이후 답례 성격으로 테슬라 엔지니어들이 제일모직 경기도 의왕연구소를 찾아 전기차 소재 사업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제일모직이 생산할 강화 플라스틱과 전자소재가 전기차 생산 원가를 낮출 키인 셈이다. 이미 삼성전자 미국 지사에서는 테슬러의 인기 차종인 모델S를 구입해 벤치마킹하고 있다.

전기차의 핵심인 전지사업은 삼성SDI가 이끌고 있다. 삼성SDI의 소형 2차전지 비중은 이미 63.8%에 달한다. 임직원의 77%도 2차 전지 및 기타 분야로 전환돼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중소형 배터리 분야에서 이미 1위를 차지했고 자동차용 배터리와 전력저장장치 분야에서도 조만간 1위에 오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전기차용 배터리뿐만 아니라 핵심 전기차 부품 대부분을 직접 제조한다. 이를 위해 계열사별로 전기차 부품 연구개발을 진행해왔다. 삼성전기는 내연기관 차량의 엔진에 해당하는 전기차용 모터 제어를 위한 인버터 부품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일본의 고성능 모터 제조 기업 알파나테크를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와 카인포메이션시스템 사업을 진행중이다. 이미 자동차 전자기기의 중앙처리장치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과 자동차의 외형을 제어하는 보디컨트롤러유닛(BCU) 개발을 완료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차량용 반도체 사업의 영역을 D램 위주에서 스토리지로 확장했다.

전기차 차체에 사용되는 특수 소재 개발은 제일모직이 담당한다. 지난해 패션사업을 에버랜드에 넘긴 제일모직은 소재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이를 위해 삼성그룹은 3년 간 총 1조8000억 원의 자금을 전자소재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자동차와 전기·전자 분야에서 좀 더 강하고 가벼운 소재에 대한 수요 증가에 대비해 수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탄소 섬유, 복합플라스틱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제일모직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한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와 소재 공급을 놓고 협의 중이다. 박영빈 Unist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한국 대기업은 전기차에 필요한 강화 플라스틱과 탄소섬유 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라며 “전기차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생산 단가 면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지사업 1위 놓고 LG화학·삼성SDI 맞대결

LG도 전기차 부품 개발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전기차 배터리와 전장, 차체 설계까지 아우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계열사인 LG화학은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으며 LG전자는 내연기관 차량의 엔진에 해당하는 전기차 모터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다.

LG CNS는 배터리 충전 시스템을 생산하고 있으며 2007년 미끄럼 방지장치(ABS) 모터, 전자제어파워스티어링(EPS) 모터 등을 자체 개발한 LG이노텍은 조향용 센서와 카메라 등 차량용 전장부품을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LG전자는 2015년까지 전기차 기술에만 3조5000억원을 투자한다.

기술 선점을 위한 특허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삼성은 234개, LG는 162개의 전기차 관련 특허를 미국에 등록했다. 특허 내용을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타이어, 모터, 차내 정보공유 전자장치 등 전기차 부품 신기술 특허를 주로 출원했다. LG전자는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경로 안내, 배터리 최적화, 전기차 운행과 컨트롤 시스템 특허를 냈다.

스마트폰 제조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기업은 구글이다. 모두 310개의 특허를 보유했다. 하지만 대부분 네트워크 시스템과 전자 장비 관련 특허라 한국 전자기업과 차이가 있다.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가 출원한 특허에는 전기차에 활용할 수 있는 부품과 기술이 많이 포함돼 있어 이 회사가 앞으로 전기차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특허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이 관련 시장에 진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미래에 다양하게 쓰일 기술을 확보해 두는 차원”이라고 확답을 피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전기차에 내장되는 주요 부품인 전기모터, 인버터, 컨버터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했고 이미 가전이나 프린터 등에 사용 중이다. 이것을 전기차에 사용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전기자동차용 운영체제(OS)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OS시스템 타이젠(Tizen)은 TV, 모바일 기기뿐만 아니라 자동차에도 확장할 수 있는 운영 시스템이다. 타이젠을 차량용 운영체제로 활용하면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처럼 자동차 안에서 e메일을 보낸다거나 혈압이나 맥박 등을 체크해 건강관리를 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LG화학은 최근 ‘배터리 안전성 강화 분리막’ 기술로 유럽과 일본에서 특허를 취득했다. LG화학은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주요 2차전지 시장에서 원천기술 특허를 확보하면서 글로벌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마트 기기 플랫폼 사업자들이 휴대폰에서 자동차로 전장을 옮기고 있다”며 “전기차가 보편화 될 것으로 보이는 2020년엔 전기·전자 기업의 경쟁이 전기차 분야에서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 종기원과 LG 인천캠퍼스가 컨트롤타워

전기차 사업을 위해 삼성은 지난 수년 간 전기차 관련 인력을 모았다. 2012년 삼성종합기술원은 석·박사급 R&D 인력을 100여 명을 채용했다. 모터와 파워트레인, 쇼프트웨어 등 전기차 관련 전반 연구를 위해서다.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연구인력들은 전기차 파워콘트롤 유닛 설계, 모터 제어평가, 배터리 설계 제어, 파워트레인 통합 제어, 전장용 소프트웨어 개발, 전기차 반도체 설계 분야에 투입됐다.

이전까지 삼성종합기술원은 연료전지 이외의 분야에서는 전기차 연구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2012년부터 삼성이 전기차 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고 해석한다. 지난 연말 삼성SDI 자동차 전지사업부는 인력 100여명을 새로 채용했다.

삼성SDI가 인력을 확충한 것은 울산공장 배터리 생산라인 2호와 3호 라인 두 곳이 증설을 마치고 가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2호 라인에서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용 전지, 3호 라인은 순수 전기차용 고용량 배터리를 만든다. 삼성SDI는 해외 완성차 업체들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LG전자는 인천 서부산업단지에 3만여평 규모의 R&D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R&D센터의 연구원은 현재 300명이다. LG는 이곳을 1000명이 상주하는 전기자동차 기술 핵심 클러스터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LG전자가 V-ENS를 인수합병한 이후 이 시설은 ‘LG전자 인천캠퍼스’로 불리고 있다. LG전자는 이를 계기로 자동차 부품 역량을 추가로 확보해 현재 육성 중인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정보와 오락의 합성어) 등 관련 사업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LG전자 인천캠퍼스는 주요 자동차부품 개발 및 설계 엔지니어링을 진행하는 ‘연구동’, 최첨단 설비로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테스트 하는 ‘부품시험동’, 강우·강설·강풍 및 혹한 등 다양한 기후환경을 구현해 시스템 성능과 내구성을 검증하는 ‘환경시험동’, 개발된 핵심 부품을 시험생산하는 ‘생산동’ 등 제품개발부터 시험생산까지 원스톱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LG전자가 자동차 동력 모터와 냉난방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는 만큼, V-ENS의 자동차 설계 기술까지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LG전자 관계자는 “LG화학의 전기차용 배터리, LG CNS는 충전 시스템, LG이노텍의 조향장치 모터 기술에 LG전자의 전기차 모터 제조 능력과 V-ENS의 설계기술을 더하면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전기차 개발이 아니라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용 부품 개발이 핵심”이라며 “LG화학이 2차전지를 만들고 전기차용 강화 플라스틱을 개발해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부품 사업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1224호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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