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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효성그룹 3형제에 무슨 일이 - “참담하기 그지 없으며 범인(허위사실 유포자) 얼굴 보고 싶다”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본지에 e메일로 심경 밝혀 … 현준·현상 형제는 공격적 지분 매입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효성 본사. 효성그룹은 최근 탈세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제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으며 이런 범죄행위를 저지른 범인들을 잡아서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효성그룹을 떠난 조현문(46) 전 효성중공업 PG장(부사장)이 이코노미스트에 보내온 e메일 내용의 일부다. 조 전 부사장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이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법무법인 현의 고문변호사로 새 출발한 그는 2월 말 서울 마포경찰서에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찾아달라며 수사 의뢰를 했다. 그가 회사를 떠난 지 1년여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간을 돌려 지난해 2월로 돌아가 보자. 1990년대 후반부터 일찌감치 효성에 입사한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인 조현준(47) 효성 사장, 조 전 부사장, 조현상(44) 효성 부사장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다. 조현준 사장은 무역과 섬유 부문을, 조현문 전 부사장은 중공업을, 조현상 부사장은 산업자재 부문을 각각 맡아 지휘했다.

2007년 부사장으로 승진해 효성중공업PG(Performance Group)를 맡은 조 전 부사장은 2007년 9980억원이던 중공업 부문 연 매출을 2010년 2조1251억원, 2012년 2조6149억원으로 끌어올리는 경영 수완을 보였다. 2011년 1분기 이후로 적자를 기록한 중공업 부문은 2012년 3분기 흑자로 전환했다. 그런데, 조 전 부사장이 돌연 사표를 던졌다. 그룹 내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리던 터라 효성그룹 안팎이 술렁였다.

그가 공식적으로 밝힌 사임 이유는 ‘법조계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것.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경영에 관해 가족들과 의견 충돌로 갈등을 겪었다는 설, 형제 간의 승계 경쟁에서 밀렸다는 설 등 소문이 파다했다. 조 전 부사장을 잘 아는 한 재계 인사는 “원칙주의자이자 정도경영을 꿈꿨던 그가 그룹 내부의 탈법과 비리 등 문제에 직면하며 고민을 많이 했다”며 “지분 하나 남기지 않은 것은 다시 그룹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전했다.

전직 효성 관계자는 “조석래 회장의 측근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조 전 부사장을 고립시켜 밀어낸 측면이 있다”며 “구조조정과정에서 가신들과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를 수석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법학박사를 딴 ‘수재 황태자’는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한 언론에 “적절한 시기가 오면 떠난 이유를 말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는 말만 남긴 채였다.

조현문 전 부사장 경찰에 수사 의뢰

이후 1년 간 조 전 부사장은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에 끊임없이 시달렸다고 한다. 증권가 정보지에 “효성이 검찰 수사를 받도록 비리를 제보한 것이 조 전 부사장”이라는 내용이 실린 것은 물론, 그의 사생활과 가족에 관한 허위 소문까지 등장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코노미스트에 보낸 e메일에서 최근 심경을 밝혔다.

“오랜 기간 동안 말할 수 없는 많은 음해와 루머에 시달려 왔다. 그중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악의적인 내용들이 있다.” 결국 그는 소문의 진원지를 밝히고자 수사 의뢰를 결심했다. 조 전 부사장은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한 행위이며 범법행위”라며 “이런 비열하고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범인을 잡아 법의 엄격한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을 상대로 루머를 퍼뜨린 사람은 누구일까? 1월 초 효성그룹의 홍보 담당 임원이 증권가 정보지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소환 조사를 받았다. 효성그룹 A 전무는 조 전 부사장의 언론홍보를 담당하는 홍보대행사 대표에 관한 허위사실을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퍼뜨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관련 혐의를 대부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개인의 일탈 행동일 뿐 회사와는 관계없다”고 말했다.

분식회계를 통한 탈세·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조석래 회장은 김앤장에 법률자문을 맡겼는데, 문제가 된 임원의 변호 역시 김앤장이 맡았다. 개인의 일탈을 회사에서 책임져주는 모양새다. 한편, 회사를 떠난 이후 조 전 부사장은 미련 없는 행보를 보였다. 7% 가량 보유하고 있던 ㈜효성 지분을 지난 한 해 동안 수 차례에 걸쳐 매각했다.

현재는 이 회사 주식이 한 주도 없다. 자신은 물론 아들 몫의 지분까지 모두 털어냈다. 효성토요타·더클래스효성·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신동진의 네 개 계열사 지분은 아직 보유하고 있지만 등기이사직을 사임하며 선을 그었다. 심지어 이사 사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자 사임 등기 절차를 완료해달라고 소송까지 냈다.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왼쪽)이 2010년 4월 카타르 부총리와 전력망 사업 수주 계약을 했다. 효성그룹 중공업 부문의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던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2월 돌연 회사를 떠났다.



“음해와 루머에 시달려 왔다”

조 전 부사장은 이들 계열사에 대해 회계장부열람 가처분신청을 내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의 측근은 “본인이 주주인 만큼 회사 경영에 혹시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전 부사장은 e메일에서 “회계장부 열람은 대리인을 통해 끝냈다. 여러 명의 전문회계사들이 장부를 분석하고 있다.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때 조 회장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다던 차남이 승계 구도에서 밀려나자마자 장남과 삼남이 경쟁적으로 회사 지분을 늘려나가는 상황이다. 한 전직 임원은 “냉전이 아닌 온전(溫戰)”이라며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경영권을 둔 물밑 다툼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3월 초 7.26%였던 조 사장의 ㈜효성 지분은 6월에는 8.38%, 12월 말에는 9.85%로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꾸준히 지분을 매입해 현재 9.95%에 이른다. 조 부사장은 지난해 3월 11일 기준 보유지분이 7.9%로 당시에는 큰형보다 더 많았다. 역시 주식을 수 차례 사들여 3월 말에는 8.76%, 12월 말 9.06%로 늘었고 현재는 9.18%로 조 사장에 비해 적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두고 3세 경영이 본격화 되는 것이 아니냐는 재계의 관측이 잇따랐다.

효성그룹의 공식입장은 “경영권 승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이 블록딜로 매각한 지분 때문에 경영권 위기가 올 수 있는 상황이었고 방어 차원에서 오너 일가가 지분을 사들였다는 주장이다. 효성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협의해서 주식을 매입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횟수가 너무 잦다는 점에서 다른 의도를 의심케 한다. 조 전 부사장이 주식을 한꺼번에 대량 매각했다고는 해도 시장에서 이 지분을 사들이는 적대적 주체도 딱히 없었다. 효성 지분 중 26%는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경영권을 확실하게 장악했다.


효성 측 “오너 일가 협의해서 주식 매입”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형제들간 지분 경쟁이 붙었다는 소문에 효성 주가가 오르기도 했는데 이후에도 매입은 계속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4월에 최저점을 찍은 주가(4만8850원)는 3월 13일 기준 7만4500원을 기록할 정도로 뛰었다. 두 형제는 가격에 관계없이 꾸준히 주식을 늘려나갔다.

공시에 따르면 두 형제는 보유한 효성 주식을 담보로 금융권으로부터 주식 매입 자금을 마련했다. 또한 올해 들어 나란히 섬유 원료 생산업체인 카프로의 주식을 매각하는 등 자산을 현금화하는 움직임을 보여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두 형제가 매각한 주식은 각각 약 118만주, 91만주다. 조 사장은 22억 5000만원, 조 부사장은 약 17억원을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 24일 조 사장과 조 회장이 함께 지분 100%를 소유한 공덕개발이 유상감자를 결정했다. 효성 본사 건물 임대업와 부동산 매매업을 하는 이 회사는 발행 주식 16만주 중 보통주 9만2000주를 유상감자 해서 주식 가액 일부를 주주에게 돌려줬다. 덕분에 조 부자는 500억 가량의 현금을 손에 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 마련 방편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일었다. 효성그룹 측은 “세무당국이 부과한 추징금 4700억원을 납부하기 위해 자산을 현금화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회사 측의 부인에도 끊임 없이 ‘3세 경영’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조 회장이 고령인데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 담낭 종양 수술을 받은 조 회장은 최근에는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탈세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며 건강을 더 해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렇다면 효성그룹의 차기 경영권은 누가 쥐게 될까. 효성 지분의 10.32%를 가진 조 회장의 의중에 달렸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한 사람에게 지분을 몰아주는 식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현재로서는 장남인 조현준 사장이 유리해 보인다. 그의 두 어린 딸도 ㈜효성의 지분을 각각 0.3%씩 보유했을 정도다. 조 회장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차지한 조 사장은 계열회사 40여 개 중 10곳에 등기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CEO스코어의 조사에 따르면 효성그룹 주요 주주들이 가진 상장사 주식가치만 따져봤을 때 조 사장의 지분 가치는 2824억원(2월 10일 기준)으로 아버지인 조 회장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 회장 보유 주식가치는 2320억원이었다.

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 장남인 조석래 회장에게 주요 회사를 물려주고 차남 조양래 회장에 한국타이어를, 삼남 조욱래 회장에게 대전피혁을 물려준 역사를 봐도 장남이 대를 이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효성 관계자는 “집안 문화 자체가 장남 중심”이라며 “현재 회사 내부에 미치는 영향력을 비교해봐도 조 사장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전했다.

1229호 (201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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