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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도덕성 도마에 오른 금융감독원 - 금융감독원은 누가 감독하지? 

 

팀장급 직원이 대출사기 주범 도피 도와 … 외부의 청렴도(국민권익위원회 27개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 평가 23위, 자체 평가 2위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지난해 동양그룹 회사채·기업어음(CP) 사태로 감사원의 감사를 받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1월 주요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까지 터지면서 곤경에 처했다. 처음엔 ‘2차 유출은 없다’며 큰소리를 쳤다가 시중에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드러난 후에야 추가 검사에 나서 더 큰 비난에 직면했다.

그나마 두 사건은 외부에 대한 부실한 감독이 문제가 됐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금감원 팀장급 간부가 KT ENS 협력업체 대출사기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회사의 탈선을 감시하라고 만든 조직에서 발생한 비리 사건이라 여론의 십자포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책임론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KT ENS 사건은 금액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대출사기 사건이다. 부정 대출 금액은 1조8335억원에 달하고, 이 중 2894억원은 상환하지 않았다. 무려 7년 동안 하나·농협·KB 등 16개 금융회사를 상대로 벌인 사기극이었다. KT ENS는 네트워크 설계 등을 주로 취급하는 KT의 자회사다. 이 회사 시스템영업부장이던 김모씨는 중앙티앤씨 등 8개 협력업체 대표들과 공모해 허위 매출채권 등을 발행했다. 김씨가 가짜 서류를 만들어주면 협력업체 대표들이 ‘KT ENS에 납품하기로 계약했으니 돈을 빌려달라’고 해 대출을 받은 것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 내놓은 쇄신안 휴지조각

이들은 일단 대출을 받았다가 만기가 다가오면 또 다른 은행에 가서 동일한 방법으로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돌려막기를 했다. 총 463회에 걸쳐 허위 대출이 이뤄졌는데도 KT ENS는 김씨가 법인 인감을 무단 사용한 사실을 알지 못했고, 은행들은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거액의 대출을 해줬다가 피해를 입었다. 경찰은 미상환된 2900억원 중 약 1100억원은 중앙티앤씨 서모 대표 등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별장을 짓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지난 7년 간 호화생활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를 해외로 빼돌렸을 가능성도 크다.

핵심 용의자인 서모 대표는 구속됐지만 또 다른 협력업체인 NS쏘울 전모 대표는 수사가 진행 중이던 2월 4일 홍콩으로 출국해 뉴질랜드·바누아투공화국 등으로 행선지를 옮긴 뒤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금감원이 검사에 착수하자 자본시장조사국 김모 팀장은 1월 29일부터 세 차례 납품업체 대표들을 만나 조사 진행 상황을 설명해줬다. 조사가 급진전된 2월 3일에도 김 팀장은 이들을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전모 대표가 다음날 도피성 출국을 선택한 것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김모 팀장과 서모 대표는 동향 출신으로 2005년 만나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왔다. 김모 팀장은 서씨 등으로부터 해외 골프접대를 받고, 서모 대표가 인수한 농장 지분의 30%를 무상으로 받는 등 꾸준히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내부 감찰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하고 김모 팀장을 직위해제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김모 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담을 요청해와 어쩔 수 없이 만난 건 사실이지만 도피에 도움을 준 적은 없다”고 범행을 부인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워낙 발이 넓은 사람이었지만 비리에 연루됐을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고 말했다.

내부 직원의 비리가 불거지자 금감원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감독기관 직원이 금융범죄 피의자의 뒤를 봐준 셈이라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애초 금감원은 내부 감독 체계를 통해 KT ENS 사기 대출 사실을 적발했다며 공적처럼 말했으나 직원이 사건에 직접 연루된 것이 밝혀져 제 발등을 찍은 모양새가 됐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이번에 한치의 의혹도 없이 철저하게 자체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금감원 전·현직 고위직이 민간 금융회사나 금융 관련기관 감사로 옮기는 ‘금피아(금감원+마피아)’가 문제인 마당에 내부 직원 중 공범까지 나왔으니 곤란할 만하다. 하지만 금감원의 내부 비리가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어서 신뢰를 회복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2011년 금감원 직원 여럿이 저축은행으로부터 고가의 승용차 등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 사건으로 전·현직 감독기관 직원 22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혐의를 받던 국장급 직원 한 명이 자살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예고도 없이 금감원을 찾아 “용서받지 못할 범죄”라면서 “지금은 조직 최대 위기”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후 금감원은 태스크포스팀(TF)을 꾸려 약 3개월 동안 감독 업무 혁신 방안을 논의했고, 2011년 5월 전 직원 대상 청렴도 평가, 직무 관련 외부인 접촉 시 신고 의무화, 전·현직 직원의 금융회사 재취업 금지 등을 담은 강도 높은 쇄신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금감원 관계자는 “이후 국장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한 청렴도 평가가 한 차례 있었지만 전 직원 대상으론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엔 슬그머니 금융회사 재취업을 부활시키려다 논란에 밀려 취소하기도 했다. 국장급 직원이 지방은행의 감사직을 제안 받고 자리를 옮기려 했다가 포기한 일이다.

감독체계 이원화 급물살 탈 듯

6개월 새 부실한 감독기능과 도덕성이 연이어 도마에 오르면서 금감원의 조직 개편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이하 금소원)을 신설해 금융감독원과 양대 금융감독 체제를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금소원은 금융회사의 영업행위에 대한 감독과 분쟁 조정 등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전담하게 된다.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정부가 2월 25일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도 포함돼 있다. 현재 정무위원회 계류 중이다.

상황이 이런데 금감원 내부는 체감을 못하는 듯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3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종합청렴도 3등급(8.22)을 받았다. 27개 기타 공직유관단체 중 16위로 중하위권이다. 금감원은 외부청렴도 평가에서 8.17점으로 23위로 처졌지만, 내부청렴도 평가에선 8.48점으로 중소기업은행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외부청렴도는 부패발생 가능성이 큰 주요 업무의 상대방을 대상으로 부패 경험 및 부패 인식을 측정한 결과고, 내부청렴도는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조직내부 업무에 관련한 부패 경험 및 부패인식을 측정한 결과다. 금감원과 업무를 하는 외부인들은 금감원이 청렴하지 않다고 보는데, 직원들은 조직 내부가 청렴하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러니 아무리 좋은 쇄신안을 내놓은들 변화가 있을까.

1230호 (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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