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미래 사물인터넷 시장의 주역은? - IT 공룡보다 스타트업 벤처에 주목 

 

대기업 주도의 운영체제에 종속되지 않아 … 창의력·순발력으로 시장 선점 가능



예비 창업자와 벤처 경영자, 엔젤투자자들이 3월 25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 모였다. 고영하 엔젤투자협회장이 2008년부터 매달 개최해온 고벤처포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날의 테마는 ‘사물인터넷’이었다. 사물인터넷 시장을 이끌 주체가 어디일까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참석자 대부분이 지금 시장에서 잘 나가는 거대 IT 기업이 아닌 새로운 기업이 등장해 미래 사물인터넷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스타트업 벤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사에 참석한 LG경제연구원 신동형 책임연구원은 “사물인터넷 시장이 초창기 애플리케이션 시장과 닮았다”며 “좋은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 벤처가 시장을 선점해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초창기 앱 시장과 유사해

사물인터넷이 미래의 먹거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시장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크다. 사물인터넷은 3세대 인터넷 사업으로 주목을 받는다. 1세대 인터넷이 PC와 PC를, 2세대 인터넷이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했다. 사물인터넷은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사물 간에 인터넷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파생되는 제품과 서비스 시장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아직 그 과실의 혜택을 누가 보게 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현재 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시장을 장악한 기업이 없다는 뜻이다. 누구나 사물인터넷 분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이 사물인터넷 시장을 노리려면 스타트업 벤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존 IT 기업이 사물인터넷 시장을 좌지우지 하기 어려운 새로운 분야기 때문이다. 사물 간 인터넷을 연결할 때 특정 운영체제(OS)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 중심의 2세대 인터넷 환경에서는 운영체제가 중요했다. 삼성·구글·애플 등 대기업이 제공하는 운영체제에 맞춰서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개발해야 했다. 시장의 주도권도 운영체제를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이 가져갔다.

사물인터넷의 통신 환경은 다르다. 예를 들어 집안의 카펫과 로봇청소기에 센서와 칩을 달았을 때를 보자. 카펫이 스스로 먼지의 양을 측정해 로봇청소기에 전달한다. 메시지를 받은 로봇청소기가 더러운 곳을 청소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스마트폰이나 PC와 같은 매개체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특정 운영체제에 종속될 필요가 없다. 벤처 기업 스스로 최적의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거기에 맞는 기술로 사업을 할 수 있다.

중소 벤처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사물인터넷의 적용 분야가 광범위해서다. 전화기와 책을 연결하고, 책가방과 신발을 연결할 수 있다. 센서가 달린 칩을 부착하고 소프트웨어만 장착하면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 특정 대기업이 모든 분야를 커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빅데이터나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기술과 적용 가능한 분야는 다양하다. 누가 더 창의력을 발휘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개발하는가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다. 의사결정 과정이 느린 대기업보다 빠르고 창의적으로 움직이는 중소 벤처기업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신동형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막대한 잠재력과 큰 성공 가능성에도 아직 사물인터넷 벤처시장은 걸음마 단계다. 한 정보통신 전문가는 “아직 국내 사물인터넷 관련 벤처가 해외 유명 기업에 인수되거나, 반대로 국내에 자금력을 갖춘 기업이 해외 사물인터넷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국내 사물인터넷 업계의 발전이 더디다는 뜻이다. 미래의 가치를 고려하면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물인터넷 벤처를 꿈꾸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특히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기술을 쌓은 개발자들이 창업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재규 매직에코 대표다. 최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디지털TV와 스마트폰, 클라우드시스템을 개발하던 개발자다. 2012년 삼성전자를 나와 사물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매직에코를 창업했다. ‘루미스마트’라는 이름의 스마트 전등이 대표 제품이다.

매직에코는 최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주관하는 ‘글로벌 K스타트업’ 프로젝트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최 대표는 “대기업에서는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 기술 개발에는 지원을 많이 하지 않고 분기나 1년마다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 개발에 어려움이 많다”며 “규모는 작지만 벤처 환경에서 훨씬 더 깊이 있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 기기들 사이에 호환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해 사물인터넷 기반의 환경을 만드는 벤처 기업 나란테크도 비슷한 사례다. 박태현 나란테크 대표는 미국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근무하며 기술을 쌓은 개발자다. 2009년 국내에서 나란테크를 창업했다. 주로 스마트·인터넷 기기 운영체제와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센서 보급의 증가로 미래 사물인터넷 시장이 확대될 것을 예상해 관련 플랫폼을 개발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대기업보다는 벤처 환경에서 활발한 기술 개발이 이뤄지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출신 창업자 늘어날 전망

벤처 기업이 사물인터넷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한 필승전략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이 “기술보다는 소비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많은 사물인터넷 관련 기술이 실생활에 적용되고 있다. 더 많은 기술이 이른 시일 내에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들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다. 사물인터넷 기술이 등장한 후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도 시장성이 있는 서비스나 제품이 등장하지 않아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표철식 연구원은 “사물과 기술 간의 결합과 응용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고민하는 게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나이키가 이동 거리를 측정하거나 칼로리 소모량을 알 수 있는 스마트 신발을 제작해 성공을 거둔 것도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게 표 연구원의 설명이다.

기술보다 소비자에 초점 맞춰야

다양한 분야의 기술과 사고를 하나로 묶어 의미 있는 결과물로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많은 개발자가 기술은 있지만 적용하려는 분야의 제품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시장성 있는 제품을 만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기술을 가진 IT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활용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다. 더 많은 고민을 통해 옷에 센서를 장착한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도 옷에 대한 기술이나 노하우가 전혀 없어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크라우드 소싱 같은 방법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기술을 모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번에 일상생활이나 제품 생산방식에 혁신을 이루기보다는 작은 분야부터 접근해 실질적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 “신발과 옷을 연결하고, 시계와 스마트폰을 연결하는 사소한 것이 사물인터넷이다. 이런 작은 부분이 모여 거대한 시장이 열린다. 작지만 특정 분야에 특화된 기술을 가진 벤처가 많이 등장해야 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IoE(internet of Everything)’를 강조하면 기술에 대한 환상이 생기고 거품이 끼기 쉽다. 이런 부작용으로 투자를 했다가 피해를 입고 기술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 ICT 전문가의 조언이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활용해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투자 방식. 예술가나 사회활동가들이 자신이 창작한 프로젝트나 사회공익활동을 인터넷에 공개해 투자를 받는 것이 시초다. 최근에는 기업이 투자자를 모집할 때도 이용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많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가 운영 중이다.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대중(crowd)과 외부자원활용(outsourcing)의 합성어. 기업의 제품 개발 과정이나 서비스 개발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나 대중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1235호 (2014.05.0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