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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높이는 현대차 브랜드 경영 - 브랜드 경영 3.0 시대 질주 시동 

첫 브랜드 체험공간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개관 … “품질 경영 10년의 성과 이어간다” 


▎창 밖에서 바라본 현대 ‘모터스튜디오서울’



현대자동차가 내세운 ‘품질 경영 10년’의 열매는 달콤했다. 어느새 세계 5위의 자동차 기업으로 고속 성장했다. 그러나 더 높은 자리를 노리는 현대차에게 중요한 과제가 있다. 현대차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2011년 ‘모던 프리미엄’이란 브랜드 전략을 발표했다. 단순히 인지도를 높이는 데서 벗어나 고객의 경험을 개선하고 선호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업계 최초로 만든 브랜드 체험공간인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은 현대차의 브랜드 경영 3.0 시대의 전초기지다.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감성 공간에서 현대차의 흥미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자동차 시장에 처음 진출했던 1.0 시대를 지나 가격과 품질, 성능을 한 단계 끌어올린 2.0 시대, 그 너머에 있는 3.0 시대의 새 전략이다.


2007년 호주에 머물던 시절 일이다. 유난히 일본차가 많았다. 미국 포드나 홀덴(호주 자국 브랜드였으나 GM에 인수), 현대자동차 등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일본차였다. 도요타·마쯔다·혼다·닛산 등 브랜드도 다양했다. 중고차를 구입하려 매장을 찾았더니 딜러들 또한 주로 일본차를 추천했다. 현대차는 어떠냐고 했더니 딜러의 답은 이랬다. “차는 좋은데 알려지질 않아서. 나도 잘 모른다.”

2008년 초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현대차의 호주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4% 정도였다. 이와 달리 일본 브랜드의 점유율은 55%에 달했으니 딜러가 그럴 만했다. 지금은 다르다. 현대차의 호주 시장점유율은 12%를 넘어섰다. 타는 사람이 늘면서 품질에 대한 신뢰도 두터워졌다. 일본차가 여전히 점유율 50%를 유지하고 있지만 현대차의 매서운 추격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현대차의 수출 비중은 80%에 육박한다. 현대차는 미국·호주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탄탄한 품질력과 공격적인 가격 전략을 무기 삼아 견고한 시장을 뚫었다. 현대그룹에서 독립하던 2000년 정몽구 회장의 취임 일성은 ‘2010년 글로벌 5대 자동차 메이커가 되겠다’였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뤘다.

현대차는 2010년 전 세계 시장에서 약 570만대(기아차 포함)의 완성차를 판매해 포드를 6위로 밀어내고 처음으로 5위에 올라섰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전통의 강자들이 실적 부진으로 쓰러지는 사이 현대차의 판매량은 2000년에 비해 오히려 3배 수준으로 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속형 소비가 늘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가 뛰어난 차’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판매량은 날개를 달았다.

그냥 얻은 결과는 아니다. 현대차의 급성장 뒤에는 악착 같은 품질 경영이 숨어 있었다. 사실 1990년대까지 현대차의 이미지는 ‘그냥 싼 차’였다. 하지만 2002년 정 회장이 새 경영방침으로 ‘품질경영’을 주창한 이후 회사는 달라졌다. 정 회장은 품질총괄 본부를 만들어 매달 두 번씩 직접 회의를 주재했고, 부품사들과 협의회를 만들어 개선과제를 내놓도록 했다. 불량이 나오면 핵심 임원이라도 과감히 해고했다.


2002년 6월 전장부품이 엔진이 멈추는 결함의 원인이란 지적이 나오자 전수검사 시스템을 갖추도록 한 일화는 유명하다. 센서나 컴퓨터를 달기 전에 일일이 다시 검사를 하라는 얘기였다. 이 지시로 공장마다 각각 1000억원 이상을 들여 시스템을 바꿔야 했지만 이후 전장부품으로 인한 엔진 결함은 크게 줄었다. ‘그냥 싼 차→가성비가 좋은 차’, 여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차를 많이 파는 회사 → 사랑 받는 회사

그 10년 동안 현대차는 업계 최고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시장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재빨리 내놓은 업체)로 불렸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앞으로의 현대차는 달라야한다. 1위를 위협하는 진짜 추격자가 되려면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2011년 현대차가 꺼낸 새로운 카드가 바로 ‘브랜드 경영’이다. 자동차 시장에 처음 진출했던 1.0 시대를 지나 가격과 품질, 성능을 한 단계 끌어올린 2.0 시대, 그 너머에 있는 3.0 시대의 새 전략이다. 차를 많이 파는 회사에서 가장 사랑 받는 브랜드로 변신하는 게 목표다.

현대차와 같은 수출 기업으로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전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같은 업계만 놓고 본다면 BMW의 ‘드라이빙’, 볼보의 ‘안전’, 아우디의 ‘기술’, 이에 대응하는 ‘현대차=???’이라는 어떤 등식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었다. 현대차가 브랜드란 키워드를 처음 꺼낸 것은 정 회장이 2005년 글로벌 브랜드 경영을 선포한 때다.

여기에 2011년 새 브랜드 방향성으로 ‘모던 프리미엄(Modern Premium)’을 제시하면서 전략이 구체화됐다. 모던 프리미엄은 ‘대중 브랜드로서 현대차만의 프리미엄한 경험과 가치를 전달해 고객에게 자부심과 감동을 선사한다’는 의미다. 현대차 브랜드 담당 임원은 “기존의 프리미엄이란 키워드에 ‘가격 합리성’을 더한 개념”이라며 “소비자가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특별함을 느끼는 동시에 소비자가 부담할 수 있는 가격 접근성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브랜드 가치 전 세계 43위

자동차 한 대의 평균 판매 가격은 2만 달러(약 2050만원) 정도다. 집(아파트)을 제외하면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는 제품 중 가장 비싸다. 비싼 가격을 지불한 만큼, 소비자는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하게 된다. 앞으로는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브랜드로 키워가겠다는 게 현대차의 전략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간결하되 완벽하게, 본질에 충실하되 남다르게, 큰 그림을 그리되 세심하게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차를 개발하는 것, 새로운 자동차 생활과 문화를 제안하는 것, 사회·문화적 동반자로서 고객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한 소통과 교감 등을 모두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2011년 발표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현대차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은 브랜드 노출 극대화를 통한 인지도 향상이었다. 전략은 나름대로 성공했다. 이 기간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는 크게 상승했다. 세계 최대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지난해 발표한 ‘2013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현대차는 2012년보다 열 계단 뛰어올라 43위를 기록했다. 50위 이내 첫 진입이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0위권에서 정체돼 있었지만 2011년 이후 최근 3년 새 순위가 급등했다. 자동차 업체 중 현대차보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곳은 도요타·벤츠·BMW·혼다·폭스바겐·포드뿐이다. 아우디·포르쉐·닛산 등은 현대차보다 브랜드 가치가 낮았다.

가능성을 확인한 현대차는 ‘고객의 인지도와 선호도를 동반 상승시키는 방향(2014년 이후)’으로 전략을 전환하는 중이다. 브랜드 노출 극대화를 통해 고객층을 확대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객에게 현대차만의 감성을 심겠다는 의지다. 핵심은 예술을 접목한 감성 브랜딩이다. 현대차는 최근 세계적인 미술관인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과 최장 기간, 최대 규모의 글로벌 마케팅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와 관련해 정의선 부회장은 “자동차는 이동수단을 넘어 사람들을 감성적으로 연결시키는 기능을 한다”며 “이번 파트너십을 계기로 국경·이데올로기·역사관 등 전통적 장벽을 초월하는 다양한 예술 사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을 기념해 120억원 규모의 중장기 후원 프로그램을 발표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런 가운데 기획 단계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았던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이하 모터스튜디오)’이 문을 열었다. 현대차 ‘브랜드 경영 3.0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모터스튜디오는 자동차를 의미하는 ‘Motor’와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공간을 의미하는 ‘Studio’의 합성어다. 단순한 자동차 전시장이 아닌 업계 최초의 브랜드 체험공간이다. 벤츠나 BMW 등 수입차 브랜드가 각국에서 브랜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자동차에 예술을 접목해 스튜디오 개념의 브랜드 체험공간을 만든 것은 현대차가 처음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판매를 통한 고객과의 소통을 넘어 문화적 소통을 기반으로 고객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마케팅 활동의 일환이자, 자동차를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매개체가 바로 모터스튜디오”라며 “현대차가 고객과의 문화적 호흡을 위해 만든 공간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지상 6층, 약 3000㎡(940평) 규모로 지어진 모터스튜디오는 건물 내·외부 디자인은 물론 체험 위주의 콘텐트, 고객을 응대하는 휴먼웨어까지 곳곳에 공을 많이 들였다.

모터스튜디오는 1층부터 5층까지 문화·예술과 자동차를 주제로 한 층별 테마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의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과 부품, 그리고 자동차에 얽힌 문화와 새로운 트렌드까지 둘러보면서 자연스레 자동차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한 점이 독특하다. 층별로 현대차와 자동차 문화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Guru)을 배치해 다양한 스토리를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문을 연지 3주 만에 하루 평균 방문객이 500명을 넘을 만큼 인기가 좋다. 현대차는 올 3분기 러시아 모스크바에 두 번째 모터스튜디오를 열 계획이다. 중국 베이징에도 부지 검토에 들어갔다. 모터스튜디오를 모던 프리미엄이란 현대차의 DNA를 이식하는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각오다.




1239호 (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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