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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지금 - 진입장벽 높고 노동력 확보 쉽지 않아 

예측 불허의 비용 자주 발생 … 중소기업들엔 여전히 미지의 땅 


▎남미 핵심 시장인 브라질에는 아직까지 대기업 위주로 우리 기업 진출이 이뤄져 있다. 브라질 피라시카바의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직원이 차에 부품을 장착하고 있다.



남미는 위기의 땅일까, 기회의 땅일까. 답은 남미에 진출한 기업들이 갖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반응은 조금씩 엇갈렸다. 기회를 만든 쪽은 아직까지 주로 대기업들이다. 현대차그룹은 남미 최대 시장인 브라질을 잘 파고든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HB20’, 브라질 국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다는 이 차는 현대차가 브라질 시장 공략을 위해 현지에만 출시한 전략 모델이다.

HB는 현대브라질의 약자, 20은 소형차급의 B세그먼트를 의미하는 숫자다. 최근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인기다. 현대차그룹은 2012년 11월에 7억 달러를 투자해 브라질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연간 18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로 2500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한다.

“브라질에서 현대·기아차에 대한 인지도와 만족도가 모두 높습니다. 진출 초기인 2009년만 해도 4개 정도 차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한국에 있는 전 차종이 거의 모두 들어간 상황이죠. 특히 HB20은 ‘모닝’과 ‘i30’의 중간 정도 크기로, 기름 값이 비싸서 소형차·해치백을 선호하는 브라질 시장 특성을 고려한 전략차종입니다. 1t 트럭도 꾸준히 잘 팔리는데 상파울루 같은 경우 시내에서 큰 트럭의 운반 가능 시간을 제한하는 등 규정이 좀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현지 소비자들은 1t짜리 작은 트럭을 많이 구매해서 씁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삼성전자·LG전자처럼 오래 전 남미에 진출한 대기업들도 ‘기회의 땅’ 혜택을 누리고 있다. 시장 조사 전문기관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두 회사는 올 1분기 기준 브라질 평판TV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강세다. 최신 제품을 좋은 품질로 생산하는 이미지로 부각된 지 오래다.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일부 중견·중소기업의 경우도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2009년부터 5년 동안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근무했던 이성희 KOTRA 과장은 “브라질 시장에서 우리나라 자동차 납품업체들은 검증이 끝난 걸로 여겨져 많은 글로벌 기업이 신뢰감을 갖고 거래에 나선다”고 말했다.

특히 GM(제너럴모터스)의 현지 법인인 GM브라질은 한국산 부품 수입에 적극적이다. GM대우 시절부터 한국에서 납품해 오던 협력업체들이 한국GM 출범 후 글로벌 소싱 대상으로 많이 추천됐고, 이 과정에서 전 세계 GM 바이어들이 품질에 신뢰를 가졌다는 후문이다. 남미도 예외는 아니었다.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은 탄탄대로

남미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와 가장 많은 인구, 그에 따른 수요를 갖춘 브라질은 우리 기업들이 남미 진출 때 어느 곳보다 중시해야 하는 국가다. ‘브라질에 진출해서 브라질에서 판매한다’는 이력은 다른 남미 국가들에 진출했을 때 중요한 거래 기준이 된다. 하지만 위의 사례들처럼 장밋빛 땅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희망을 갖고 진출했다가 큰 손실만 입는 잿빛 땅이 될 수도 있다고 현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우선 언어장벽으로 인한 애로점을 간과할 수 없다. 브라질은 우리에게는 낯선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며,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현지 기업인들도 생각만큼 많지 않다. 우리나라와 거리상 먼 것도 경영상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 기업들로서는 즉각 대처하기가 쉽지 않게 하는 요소다. 브라질 시장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이해도는 아직 높은 편이 아니다. 다른 지역보다 까다로운 통관 절차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수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있다.

브라질 시장에 정통한 소비재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지에 진출한 모 치킨 브랜드는 최근 뜻하지 않은 일로 곤혹을 치러야했다. 현지 세관이 갑작스럽게 파업을 벌여서다. 모든 재료를 한국에서 들여오는 것을 원칙으로 했던 이 브랜드는 세관 파업 때 양념소스를 들여오지 못하는 바람에 한동안 양념치킨을 팔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남미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걸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예산안을 짜더라도 거기서 벗어나는 요소가 많이 생깁니다. 이른바 ‘브라질 코스트(브라질의 낙후된 인프라와 행정 때문에 더 드는 비용)’죠. 세관이 파업하면 그 기간 동안 들이려던 물품을 보관해야 하는데 보관비를 고스란히 우리 기업들이 내야 합니다. 예상 못한 파업 때문에 순식간에 수 만 달러 규모의 타격을 입게 되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브라질에서 제조업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박모(52) 사장도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 사장은 “인구가 많아 노동력 확보가 쉬울 것으로 예측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대졸 이상 학력의 교육 받은 인구는 극히 적은 데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많이 진출해 있어 인력 시장도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인도나 유럽 등지에서 엔지니어들을 수입해 올 만큼 인력 대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브라질이 신흥국가라서 저렴한 비용이 들 거라 생각하는 건 오산입니다. 인건비뿐만 아니라 운영비·자재비 등의 비용 측면에서도 어려움을 많이 느낍니다.”

몇 년 사이 남미를 뒤흔들고 있는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변동도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원자재 가격 급락이 해당 국가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수록 우리 기업들의 소비재 수출에도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비재보다는 중간재인 부품, 기계 업종에서 진출이 많이 이뤄진 만큼, 단기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우리 기업들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남미에 대해 아직 애로점이 많은 시장이지만, 우리 기업들이 끈기를 갖고 멀리 보며 전략적으로 경영할 때 길이 보인다고 조언한다. 안성희 KOTRA 신흥시장팀 중남미담당 과장은 “칠레의 구리, 브라질의 철광석 등 남미는 원자재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지역이고 한국은 제조업에 정통한 나라로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며 “남미 특유의 언어·문화·지리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 스스로 진출 초기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지 기업인들이 “생각처럼 쉬운 시장은 아니다”며 이구동성으로 한숨을 내쉬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충분한 시장이란 이야기다.

메르코수르 국가 정세 예의주시해야

최근 중남미 지역의 정세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콜롬비아·페루 등 정부 주도 하에 해외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태평양동맹 국가들은 수출 비중이 커서 인프라 투자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근래 경제 상황도 양호한 편이라 우리 기업들로서는 보다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땅이다. 이와 달리 브라질 등 자국 산업 보호에 사활을 건 메르코수르 국가들은 보다 신중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내수 시장을 지키는 데 주로 역량을 집중하기 때문에 관세가 비싸고 규제가 많은 등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성희 과장은 “브라질은 성공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소요되는 기간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길어 빠른 결과만 바랄 경우 포기하기 쉬운 시장”이라면서도 “거꾸로 보면 한 번 진출하면 장벽이 높아 다른 경쟁상대가 진출하는 기회는 작아지는 이점을 가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지 기업사회가 정해 놓은 ‘이너 서클’에 들어가면 혜택을 누리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과장은 “대기업들이 소기의 진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도 중소기업들로선 진출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적절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1242호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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