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Issue | 경영 실패 딛고 재기 나선 윤석금·박병엽 - 새 사업으로 샐러리맨 신화 재현 노려 

윤석금은 화장품 시장 세 번째 도전 … 박병엽은 큐알티반도체 인수 유력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었다가 경영 실패로 어려움을 겪은 기업가들. 왼쪽부터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새 휴대전화 출시를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를 중심으로 회사 임원진이 모두 모였다. 모두들 상대하기 버거운 기업이라며 혀를 내두르는데도 그는 두려움을 몰랐다. 신제품의 성능과 디자인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질 무렵, 그의 눈에 한 임원이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경쟁사 제품이었다. 그는 다가가 휴대전화를 빼앗아 집어 던졌다. “우리가 이보다 좋은 휴대폰을 만들 수 있다.”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그만의 표현법이었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인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이 팬택을 이끌던 시절 이야기다. 이제는 과거일 뿐이다. 박 전 부회장은 경영 악화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9월 자신이 설립한 팬택을 떠났다. 하지만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IT 업계에 따르면 박 전 부회장은 팬택C&I를 통해 6월 27일 큐알티반도체라는 회사의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인수가 유력하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얘기다.

큐알티반도체는 SK하이닉스의 자회사로 반도체와 전자부품 등의 품질·신뢰성을 시험하는 전문 업체다. 박 전 부회장이 새로운 사업을 통해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 전 부회장 외에도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등 몰락한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들이 재기를 꿈꾸고 있다.

가장 잘 아는 분야에서 재기 노려

시스템 통합·관리 업체인 팬택C&I는 팬택과는 지분 관계가 없다. 박병엽 전 부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개인 회사다. 큐알티반도체 인수에 박 전 부회장의 뜻이 100% 관철됐다는 뜻이다. 팬택C&I는 그간 자회사인 라츠와 TES글로벌을 통해 휴대폰 관련 부품의 유통과 제조를 맡아왔다. 지난해 매출은 4426억원, 영업이익은 147억원이다. 박 전 부회장은 팬택 대표이사에서는 물러나면서도 팬택C&I 대표이사직은 유지하면서 재기를 노렸다. 팬택C&I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은 것이다.

그가 팬택C&I를 기반으로 새 사업을 모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팬택C&I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진행한 스포츠토토(체육진흥투표권발행) 수탁사업자 입찰에도 뛰어들었다. 케이토토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박 전 부회장의 계획도 어긋나는 듯했지만 법원이 7월 16일 허위제안서 제출을 사유로 선정 무효를 결정했다. 팬택C&I가 참여한 해피스포츠컨소시엄이 임시 우선협상대상자가 됨에 따라 연 매출 3조원 규모의 황금알을 낳는 스포츠토토 시장에 눈독을 들였던 박 전 부회장의 계획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스포츠토토와 반도체 품질 검사. 언뜻 보면 연결고리가 전혀없는 사업 분야이지만 박 전 부회장이 눈독을 들인 이유가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모두 박 전 부회장이 재기에 적격인, 투자할 만한 분야로 보고 (사업에)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리스크는 적고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인데다, 기존에 해오던 IT 사업과도 연관이 있다. 스포츠토토는 온라인 복권 사업 특성상 IT 업체가 비교적 리스크 없이 해볼 만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박 전 부회장은 지난해 퇴진 이후 “휴대폰 제조가 아니더라도 뭐든 돈이 되는 사업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스포츠토토 수탁사업자 입찰과 이번 큐알티반도체 인수전 참여는 당시 발언의 연장선상에 있다. 물론 큐알티반도체를 인수하더라도 갈 길은 멀다.

팬택과 선 긋기에 나선 박 전 부회장이 정작 팬택 임직원과 협력업체 등을 돕는 대신 개인의 재기에만 초점을 둔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큐알티반도체 노동조합도 박 전 부회장의 인수에 반발하고 있어, 불리하게 형성된 여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다. 팬택C&I는 이르면 7월 말쯤 큐알티반도체 인수 계약을 정식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에서 실패경영인으로 격하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역시 최근 다른 사업으로 재기를 모색 중이다. 분야는 화장품이다.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윤 회장은 올 5월 미국 에스테틱 화장품 브랜드 ‘더말로지카(Dermalogica)’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인수했다. 이미 웅진투투럽이라는 화장품 및 건강기능식품 부문 계열사를 설립해 새 사업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윤 회장은 과거 샐러리맨 신화 창조의 발판이 됐던 방문판매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는 한편, 면세점 진출 등으로 사업을 키울 것으로 전해졌다.

윤 회장의 화장품 사업 시도는 이번이 세 번째다. 그는 1980년대 코라이나화장품을 공동 창업하면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때 코리아나화장품은 업계 2위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때 매각 대상이 됐다. 이후 웅진코웨이(현 코웨이)를 통해 리엔케이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운영하기도 했다.

윤 회장으로서는 본인이 잘 아는 익숙한 분야에 다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재기를 노린다는 점에서 박병엽 전 부회장의 전략과 닮았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방문 판매는 온라인판매 등이 대세가 된 요즘 시장 트렌드에 잘 맞지 않는다”면서도 “윤 회장이 풍부한 경험을 앞세워 트렌드를 새로 주도할 수 있을지 업계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강덕수 전 회장은 재기 쉽지 않을 듯

같은 샐러리맨 출신으로 ‘M&A의 귀재’라는 별칭을 얻으며 조선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이보다 조금 더 혹독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강 전 회장은 2008~2012년 회계연도 당시 2조3000억원대 회계분식으로 사기성 대출을 받고 회사채를 불법 발행한 혐의로 기소돼 공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변호인단을 통해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강 전 회장은 지난해 STX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오너 지분이 다른 지분에 비해 높은 100대 1 비율의 차등 감자가 이뤄지면서 경영권을 잃었다. 길게 이어질 공판이 설령 강 전 회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매듭지어진다 해도 기업인으로 재기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기의 발판을 잃은 데다, 그가 가장 잘 아는 조선업과 해운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극심한 침체 일로를 걷는 업종이라 새 사업을 구상하기도 쉽지 않다. 강 전 회장은 지난해 말 임직원들과 청계산에 오르면서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 재도약의 기회가 찾아온다”며 재기를 다짐한 바 있다. ‘재기는 어려울 것’이란 세간의 평을 뒤집고 강 전 회장은 샐러리맨 신화의 후속편을 쓸 수 있을까.

1247호 (2014.07.2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