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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et management | 펀드의 과거·현재·미래 - 역적립식·펀드랩으로 진화 중 

저금리-부동산 침체기에 유용한 투자 수단 … 분산투자가 중요 

박세환 미래에셋증권 자산배분센터 과장

펀드의 과거·현재·미래

2000년대 중반 국내에서는 펀드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떠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이미 ‘1인 1펀드’ 시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보편화 됐다. 하지만 펀드 시장의 성장 초기 단계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 투자자들에게 펀드는 고위험 투자 대상으로만 인식되는 듯하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자산관리 상품이다.

최초의 펀드는 18세기 네덜란드에서 탄생했다. 네덜란드는 17세기부터 활발한 해상무역으로 쌓은 부 덕택에 당시 최초의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가 있었던 세계 금융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1770년대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영국 동인도회사와 영국은행 채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후 분산투자, 소액투자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런 수요를 반영해 탄생한 것이 1774년 최초의 폐쇄형 펀드 ‘엔드 라그드마크트마그트’이다. 주로 외국 정부의 채권과 식민지 농장에 투자하는 플랜테이션론이었고 20개 이상의 종목에 투자했다. 놀라운 점은 최초의 펀드에서부터 특정 종목에 집중 투자되는 것을 제한하는 분산투자 장치가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운용보고서 제출, 운용수수료 공개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수단도 갖추고 있었다.

펀드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전파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개방형 펀드(수시로 투자와 환매가 가능한 펀드)는 1929년 경제대공황의 위기를 통해 탄생했다. 대공황 이 발생하자 투자자들은 급전이 필요하게 됐고, 즉시 환매가 가능한 개방형 펀드가 주류로 떠올랐다. 1970년대에는 오일쇼크가 계기가 되어 머니마켓펀드(MMF)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고금리 정책으로 연방기금금리는 20%까지 상승했다. 금융당국은 금리 폭등을 억제하기 위해 은행 예금에 이자 상한 규제를 시행했던 것이다. 이자 제한을 적용 받지 않았던 MMF는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뤘다.

미국의 펀드 시장이 현재와 같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1990년대였다. 1980년대까지는 채권형 펀드와 MMF가 전체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1990년대 이후 미국 주식시장으로 개인 투자자금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베이비붐세대가 노후에 대 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401k(확정기여형 연금제도)·개인퇴직계좌(IRA) 등 연금 시장이 성장한 것도 주식형 펀드 시장 확대에 큰 영향을 줬다. 2000년 미국의 IT버블 붕괴 이후 주식의 분산 투자가 더 강조되기 시작했고, 해외 주식·채권 등에 투자하는 펀드도 빠르게 성장했다.

펀드 시장이 양적으로 성장하면서 펀드의 투자 자산과 형태 도 다양해졌다. 주식·채권 등 전통자산뿐 아니라, 원자재·부동산 등 실물자산, 파생 등을 활용한 대체자산까지 투자할 수 있다. 또한 시장 지수에 투자하는 인덱스펀드가 생겨나고, 주식처럼 실시간 가격으로 매매할 수 있는 ETF(상장지수 펀드) 시장도 열렸다. 헤지펀드도 발전했다. 투자 대상, 기대수익률 수준 등 투자자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고를 수 있는 금융상품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펀드 시장의 양적 성장은 다소 정체돼 있다. 하지만 질적으로는 꾸준히 레벨업 되어 왔다. 투자 시기를 나누는 적립식에서 인출 시기를 나누는 월지급식으로 투자 방식이 역진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자산배분을 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 펀드 랩도 등장했다. 한국의 저금리 환경, 부동산 시장 정체를 감안하면 글로벌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는 자산관리 주력 상품의 자리를 공고히 할 것이다. 이제 ‘예금이냐, 펀드냐’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어떤 펀드에, 어떻게 나눠 투자할지’를 고민할 시기다.

1257호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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