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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아베노믹스 - 자민당에서도 ‘더 이상은 무리’ 우려 목소리 

돈은 돌지 않고 엔저 부작용만 아베 총리 “임금 인상 절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오는 12월이면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지 2년을 맞는다. 반짝 성과가 있었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엔저는 그리 반갑지 않다’. 9월 24일 자민당 본부에서 내각·재무금융합동부 회의를 마치고 나온 시바야마 마사히코 재무금융부 회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소비세 인상으로 내수가 침체된데다, 엔저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있어 이대로 간다면 더 어려운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며 초조한 기색이었다. ‘1달러=102엔’ 전후로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달러-엔 환율은 8월 말 이후 한 때 ‘1달러=110엔’에 도달하는 등 엔저가 가속화되는 중이다. 아베 정권 출범 전 ‘6중고(엔고, 높은 법인세, 인건비 부담, 엄격한 환경규제, FTA 체결 지연, 전력 수급 불안 등 일본 기업이 겪고 있는 고비용 구조의 경영 환경)’를 지적하며 과도한 엔고를 걱정했던 경제계에서 조차 ‘엔저가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2년 간 진두지휘하면서 2가지 화살(양적완화, 재정 지출 확대)만 쐈다. 아직 3번째 화살(구조개혁을 통한 신성장 전략)은 제대로 쏘지도 못했다. 경기 하락을 피하기 위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선다면 경제계가 우려하는 엔저를 오히려 가속시킬 수 있다. 일본은행과 재무성 관료들이 출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내외 경제 동향을 설명하는 자료가 배포됐다. ‘개인 소비는 회복세로 돌아서다 최근 들어 제자리걸음’ ‘가솔린, 전기, 신선 식품 가격 상승 부담’ ‘수출은 답보 상태, 생산은 약세’ 거시경제 지표에 대해 긴박함을 나타내는 제목들이 난무했다. 이 난감한 수치가 악천후에 따른 일시적인 상황인지, 앞으로 일본 경제가 봉착할 심각한 위기의 전조인지 속 시원한 답을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한 달 후인 10월 22일 소비세 재인상에 소극적인 ‘아베노믹스를 성공시키는 회의’ 소속 의원들이 자민당 내 회합을 가졌다. 이날 강사는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사 중 한 명인 내각 관방고문 혼다 에츠로였다. 79명의 의원 앞에서 혼다는 의기양양했다. “아베노믹스는 살아있다. 하지만 이를 부정하는 듯한 소비세 인상 효과가 나오고 있다. 증세는 18개월 연기해야 한다.” 하지만 회의를 주최한 야마모토 코조 의원의 표정은 어딘가 신통치 않았다. 야마모토 의원은 이제껏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 시대의 대응을 격렬히 비판하며 국채 대량 매입에 따른 대담한 양적완화를 주장했었다. “아베노믹스가 추진된다면 소비세 인상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큰 오산이었다. 소비세를 지나치게 올리면 아베노믹스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더 이상의 엔저는 바람직하지 않다”


아베노믹스로 엔저와 주가 상승의 효과를 얻어냈지만 수출은 생각처럼 늘지 않고, 소비자들은 더 이상 주머니를 열려고 하지 않는다. 디플레이션 탈출의 포인트인 예상 인플레이션율도 하락하고 있다. 이날 모임에서 야마모토 의원이 한 말은 ‘아베노믹스의 현재’를 제대로 보여준다. “냉수를 뒤집어쓰고, 아베노믹스와 소비세 인상에 따른 영향 사이에서 싸움 중이다. 소비세 인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최대 과제다.”

아베노믹스를 그대로 추진해도 좋을까? 소수이긴 하나 아베노믹스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10월 7일 열린 자민당 총무간담회에서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베테랑 중의원으로 정치윤리심사회 회장인 무라카미 세이치 의원은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에 슬슬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며 “양적완화를 계속하는데 한계가 찾아온 만큼 방향을 전환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는 국민 생활을 힘들게 하는 정책에 손을 대야 한다”며 “특히 재정면에서 사회보장 부담이 너무 큰 상황이므로 ‘고복지 저부담’ 구조를 ‘중복지 중부담’ 정도로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0월 20일 2기 아베 내각의 간판이었던 오부치 유코 경제산업상이 정치자금 문제로 사임했고, 후임인 미야자와 요이치도 헌금 스캔들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12월이면 아베 정권은 출범 2년을 맞이한다. 어수선한 내각을 하나로 모으는데 성공했고 주가도 순조롭게 상승해왔으나, 세계 경제의 저성장 우려로 일진일퇴를 반복하고 있다. 무라카미 의원은 “아베노믹스의 유통기한이 다 된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과연 아베 총리가 당내 소수파의 경고를 들으려 할까?

생업 현장을 돌아보면 이런 경고가 더 와 닿는다. 도쿄 메구로구에서 선대부터 니트 가공업체를 운영해온 나카시마 겐이치 대표는 최근 아베 정권에 실망을 느끼고 있다. “아베노믹스로 미래가 밝아질까 기대했지만 역시 안 되겠다. 일이 잘되려나 싶던 차에 소비세 인상이 시작됐다. 이래서는 하시모토 정권의 전철을 밟는 셈이다.” 섬유업계는 소비세 인상에 보통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카시마 대표는 소비세 재인상에 대해 주저없이 반대한다. 이 회사는 주로 골프 셔츠를 생산하고 있다. 2001년과 2011년에 중국과 방글라데시로 각각 진출했지만 경쟁 악화와 엔고로 어려움에 처했다. 유니클로나 시마무라 등 대형 제조 소매기업이 곧바로 따라오며, 중소기업의 생존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나카시마씨는 “경영자로서 내 월급은 가장 잘 나갈 때의 4분의 1수준”이라며 “최근에는 여행도 못 간다”고 한탄했다. 주위 동료 중에는 해외 공장을 매각하고 폐업하거나 부동산 업종으로 방향을 튼 경영자도 있다고 한다.

도쿄 아키하바라에 있는 오노덴(가전 대리점)의 오노 카즈시 사장은 요즘 걱정이 많다. 지난 4월 가전 업계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사재기 수요와 증세 반발에 시달렸다. 상대적으로 지금 아키하바라 경기는 좋은 편이다. 환율이 ‘1달러=100엔’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무렵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엔저 영향으로 중국인만큼 엄청난 기세는 아니지만, 동남아나 유럽 관광객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관광객을 상대로 한 디지털 카메라나 고급 밥솥 판매가 늘었고, 10월 초에 중국 국경절 판매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마냥 좋은 게 아니다. 외국인에만 의존하고 있어서다.

엔저로 늘어난 외국 관광객이 일본 먹여 살려


“아베노믹스로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 2013년에는 중·장년층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서 자산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게 오노 사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올해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여름 보너스가 늘었다는데 내국인 손님은 영 뜸하다. 그는 “4월 소비세 인상에 따른 부작용은 엔저에 따른 외국인 관광객 증가 효과가 없었다면 우리에게 상당한 타격이 됐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본 제조사 제품의 판매가 시들한 것도 걱정스럽다. 실제로 오노 사장의 매장 진열대에는 일본 회사 제품이 줄어들었고, 테팔 등 외국계 상품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어렵긴 지방도 마찬가지다. 특히 엔저의 역풍을 맞은 곳이 많다. 꽁치와 고등어 잡이가 한창인 치바현의 조시항. 9월까지 고등어 어획량은 약 9만7000t으로 전년 대비 2.6배 증가했다. 하지만 약 2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조시시 어업협동조합장 사카모토 마사노부씨는 침울한 표정이다. 그는 “생선 가격은 전혀 오르지 않는데, 엔저로 기름값 변동이 심해서 당해낼 수가 없다”며 “원가 절감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가뜩이나 어업 업계는 만성적인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조시시에서도 선원을 늘리고자 외국인 연수생을 받아온 지 15년이 넘었다. 현재 55명의 인도네시아 직원이 들어와 있지만 생산성에서 일본인과의 차이가 크다. 고령화도 심각하다.

연이은 전기요금 인상도 부담스럽다. 홋카이도 전력은 11월부터 전기요금을 개인용 15.33%, 법인용 20.32% 각각 인상하기로 했다. 홋카이도 왓카이나이시에서 수산가공회사를 운영하는 나카진 켄이치씨는 “지난해에 가격을 올려놓고 1년도 안 돼 인상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환율이나 유가 문제도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분개한다. 도내 수산가공회사는 인건비나 운송비 상승과 함께 전기료 상승이라는 트리플 펀치를 맞았다. 나카진씨는 “다행히 어획량은 그럭저럭 괜찮지만 가격 인상분을 판매가에 반영하려고 하면, 도매상에서는 ‘그렇게 비싸면 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홋카이도 소비자협회 전무이사인 야지마씨도 전기료 인상으로 인한 가계 타격을 걱정했다. 그는 “지난해 7% 인상에 이어 또 인상하는 것은 전에 없던 일로, 이는 비상사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홋카이도는 본격적인 겨울 시즌을 맞이한다.

기업 도산이 이상할 정도로 감소한 것도 찝찝하다. “전후 처음으로 인위적으로 도산을 억제했다.” 일본 기업의 성쇠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도쿄상공회의소 베테랑 신용조사원 도모타 노부오씨의 솔직한 평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도산 건수는 언뜻 평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2014년 상반기 도산 건수는 5049건으로, 199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2008년(7863건)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이후 빠르게 줄었다. 도모타의 견해는 이렇다. “정부의 거듭되는 정책 지원 덕에 실적이 나빠도 중소기업이 도산하지 않는다. 살아 남을 수 없는, 살아 남아서는 안 되는 회사가 남게 됐다.”

이는 2009년 12월 도입된 중소기업금융활성화법 때문이다. ‘헤이세이의 덕정령(빚을 탕감해주는 법령)’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법은 중소기업이나 개인을 대상으로 은행이 대출 조건을 재고(리스케줄링)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금융청에 따르면 2009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중소기업 대상 520만건, 약 142조엔 규모의 대출에 대해 조건 변경이 이뤄졌다. 이 법 덕분에 실적이 나쁜 중소기업도 한 박자 쉬어갈 수 있게 된 것인데 당연히 부작용이 있다. 도모타씨는 “성장하는 기업이 있으면 반드시 쇠퇴하는 기업이 있다”며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회사가 흐지부지 살아남아 과잉 채무를 끌어안고 버티면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흘러가야 할 자금 흐름이 엉킨다”고 경고한다.

이와 달리 중소기업 재생지원협의회가 담당하는 재생 안건은 급증했다. 연간 300건 정도였던 재생 안건은 2012년 이후 급증해 올해는 3000건에 육박한다. 이처럼 많은 기업에게 좋은 대출 여건을 만들어 주고,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질적 효과는 크지 않다. 오히려 경영자의 위기감이 약해지고, 미봉책으로 대응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기업은 임금 올려줄 여력 없다는데…

10월 17일 도쿄 오차노미즈에 있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노조연합) 빌딩은 열기에 휩싸였다. ‘내년 춘투(춘계 투쟁)에서 2% 이상의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결정한 중앙집행위원회가 끝난 후다. 고가 노부아키 연합회장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하고 엔저도 진행됐으나, 기대만으로 실물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내년 춘투는) 다시 디플레이션으로 돌아서느냐, 새로운 사이클을 만들어내느냐 하는 분수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연합이 2% 이상의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1998년 이후(2.9%) 처음이다. 1999년부터 3년 간, 2008년을 제외하고 구체적인 수치를 내건 것도 오랜만이다.

경기가 살아난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일본 국민은 경기 회복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년 간 아베 정권이 엄청난 돈을 풀었지만 그 효과는 미약했다. 소비세 인상에 꺾인 내수 시장을 다시 살리려면 임금 상승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일본 기업들은 그럴 여유가 없어 보인다. 아베 총리까지 나서 “임금 인상이 없으면 경제의 선순환을 끌어낼 수 없다”며 임금 인상을 요청하고 나섰지만 수출이 나아질 기미는 안 보이고, 엔저에 따른 업계의 부담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3개의 화살을 모두 쏘고 기댈 곳이 없어진 아베 정권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1262호 (201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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