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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기업으로 가는 길 ‘코치(COACH)’ - 도전정신(Challenge spirit) - 사업 초창기 ‘도전 DNA’ 늘 간직해야 

대기업은 혁신에, 중소·벤처기업은 시장에 취약 … CEO 덕목으로도 도전은 필수 


▎1. 벨연구소가 마운틴뷰에 신설한 안테나연구소 내부에 설치된 네트워크기기. 2. IBM 알마덴연구소 내부. 1 3. 포드 혁신기술연구소
혁신과 업력은 반비례한다? 얼핏 들으면 모순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다. 상식적으로 혁신하는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회사가 쓰러지지 않고 오랜 기간 버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실제로 ‘혁신 기업’이란 자랑스런 이름표를 찬 기업의 상당수는 대체로 업력이 짧다. 미국 경영 월간지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가 매년 선정하는 ‘50대 글로벌 혁신 기업(The World’s 50 Most Innovative Companies)’으로 선정된 기업들의 평균 업력은 27년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혁신 기업이 2000년 이후에 설립됐다는 말이다. 1995년 창간한 패스트 컴퍼니는 신기술·디자인·리더십 등을 주제로 연간 10회만 출간하는 저명한 비즈니스 잡지다.

‘안테나 연구소’ 세워 도전정신 키우는 벨연구소

도전정신으로 정평이 난 기업은 대체로 벤처기업이나 신생 기업인 이유가 뭘까. 기업이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도전정신을 받아들이기 힘든 구조로 변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일까? 실제로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연구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벤처의 혁신성은 20배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대기업은 혁신에 취약하고, 중소·벤처는 시장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장수기업의 첫 번째 DNA를 엿볼 수 있다. 바로 혁신에 도전하는 정신(Challenge Sprit)이다. ‘혁신 기업의 상당수가 업력이 짧다’는 사실을 거꾸로 보면 신생 기업의 도전 DNA를 오래 유지한 기업이야말로 장수기업으로 발돋움할 확률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기자는 약 일주일 동안 미국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유수의 혁신 기업을 탐방했다. ‘혁신의 심장’으로 불리는 알카텔-루슨트 산하 벨연구소는 여전히 설립 당시의 도전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1941년 뉴저지로 자리를 옮겼지만 최근 각지에 비교적 적은 규모의 ‘안테나 연구소’를 설립하며 도전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이스라엘에 벨연구소가상화연구소(Bell Labs Virtualization Research Facility)를, 7월에는 영국에 캠브리지비디오연구소(Cambridge Video Facility)를 열었다. 이어 9월 8일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마운틴뷰안테나연구소(Mountain View Antenna Office)를 오픈했다. 미래형 네트워크 구축에 핵심 역할을 할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 연구를 위해서다. 샌제이 카막 벨연구소 설팅 SDN/NFV그룹리더가 10월 1일 마운틴뷰 연구소장으로 부임하기 2주전에 직접 마운틴뷰 연구소를 방문했다. SDN 연구에 주력할 마운틴뷰 연구소에 공식 방문한 언론사는 이코노미스트가 최초다.

실리콘밸리에 안테나 연구소를 설립한 이유에 대해 벨연구소측은 “벨연구소 소속 연구원은 물론 대학·연구기관·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벤처기업처럼 유연한 연구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벤처의 도전정신을 살리기 위해 벤처와 같은 환경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벤처의 도전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벨연구소의 노력은 노벨상 수상이란 성과로 귀결됐다. 우리나라에서 단 한 명도 받지 못한 과학 분야 노벨상을 벨연구소는 무려 12명(7개)이나 받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이 옹기종기 모인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의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기업은 종류도 다양하다. 실리콘밸리에 혁신기술연구소(Ford Research and Innovation Lab in Silicon Valley)를 세운 포드자동차 관계자는 “실리콘밸리에는 테슬라모터스와 닛산 리프 등이 전기차를 상용화하는 등 최신 기술이 빛을 발하고 있다”며 연구소 설립 배경을 밝혔다. 벤카티쉬 프라사드 포드 혁신기술연구소장은 “실리콘밸리 포드연구소는 3D 프린터,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등 최신 기술이 집약된 곳이기 때문에 기존 미시간 소재 연구소의 일부 기능을 이전했다”며 “실리콘밸리의 도전정신을 받아들여 포드자동차에 이전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포드의 혁신은 소비자·주주 위한 가치창출

혁신에 대한 포드의 생각은 무엇일까. 포드는 “경제학자들이 만든 단어인 혁신과 포드의 혁신은 조금 다르다”라고 구분하며 “우리들에게 혁신은 소비자나 주주를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포드자동차의 사사(社史)도 굴곡이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나 주주를 위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어떠한 도전도 받아들였고, 이 과정에서 장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추자 생산 프로세스나 상품 디자인, 비즈니스 모델 등에서 계속해서 거대한 혁신이 발생했습니다.”

포드자동차는 싱크(SYNC), 에코부스트(EcoBoost), 라이트웨이트(lightweight)가 바로 지속적인 도전정신의 결과물이라고 꼽는다. 싱크는 포드차가 마이크로소프트와 공동 개발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음성인식과 블루투스, 무선인터넷 등 다양한 편의 기능을 제공한다. 직분사 터보 기술인 에코부스트 덕분에 포드는 엔진 다운사이징이 가능했으며, 차량 경량화 기술인 라이트웨이트를 포드F-150 등 픽업트럭에 적용해 중량을 낮춰 연비를 높이고 있다. 덕분에 포드자동차는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 선정 ‘2013년 50대 글로벌 혁신기업’ 중 하나로 뽑혔다. 헨리 포드(Henry Ford)가 포드자동차를 설립(1903년)한 지 111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평균 업력 27년인 기업들 사이에서 100년이 넘은 포드가 당당히 50대 혁신 기업에 포함된 것이다.

기존 사업 접고 가능성 큰 신사업에 ‘다걸기’


일본 기업은 벤처의 ‘불굴의 정신’을 보유한 기업이 많다. 쌀과자를 만드는 아미다이케 다이코쿠의 고바야시 사장은 1995년 대지진 때 위기에 직면했다. 육로가 끊어지니 납품 기일을 맞추기 어려운 건 당연지사. 납품을 받는 업체들도 제대로 과자가 도착하지 못할 걸로 으레 짐작했다. 하지만 고바야시 사장은 아예 배를 빌려서 납품 기일에 맞춰 과자를 운송했다. 납품 기일을 맞추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아미다이케 다이코쿠를 보고 경쟁 업체들도 혀를 내둘렀다. 에도 시대인 1805년에 설립된 과자가게가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비결이다.

장수기업의 도전정신은 필요하면 주력 사업도 포기하게 만든다. 특정 분야에서 이미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갈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과감히 접고,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다는 의미다. 규모가 커질수록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는 늦어지게 마련이다. 대기업일수록 신사업을 추진하는 게 어렵다. 하지만 장수기업들은 신사업에 뛰어드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기존 사업을 접고 신사업에 ‘다걸기’를 하는 과감함이 돋보인다. 이윤철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장수기업이 한 영역만 고수하면 혁신할 수 없다”며 “영속하려면 업종을 뛰어넘는 과감한 도전과 혁신이 늘 필요하다”고 말한다.

IBM이 대표적 사례다. 원래 IBM은 제조 기업이었다. 계산기나 천공카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1990년대 ‘늙은 공룡’이란 불명예스런 수식어가 붙었다. 주력 사업인 컴퓨터 사업이 신흥 기업과의 원가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IBM은 사업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도전을 선택했다. 주력이던 PC, 스토리지, 프린터사업부를 매각했다. 대신 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앤드쿠퍼스(PwC)의 컨설팅사업부 등을 인수하며 IT서비스와 컨설팅 업체로 탈바꿈했다. 이런 결정은 IBM이 존경 받는 기업으로 거듭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수치트라 조시 IBM 기업전략부문 디렉터는 “IBM이 인수· 합병(M&A)을 통해 혁신 기업 DNA를 이식할 때는 명확한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원칙은 ‘전략·선택·이행’이라는 3요소다.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일치할 때 비로소 M&A를 추진한다는 의미다. M&A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립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IBM의 경우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시장의 중요 고객층을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 플랫폼을 확보하고, 지리적 커버리지를 늘리고, 투자 목록(portfolio)에 역량을 더하거나 투자 목록을 다양화하고, 핵심 사업과 핵심 역량에 집중할 수 있다면 M&A를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게 수치트라 조시 디렉터의 설명이다. IBM은 1000여개의 혁신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했다.

나아가 IBM은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업을 지속적으로 M&A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세기 초 ‘국제기업(International Company)’에서 20세기 후반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mpany)’으로 변신을 추구했다면, 최근엔 국가 간 경계를 허물고 생산수단을 통합하는 ‘글로벌 통합기업(Globally Integrated Enterprise)’으로 다시 한 번 혁신을 꾀하는 중이다.

기술재 기업으로 출발했던 제너럴일렉트릭(GE)도 비슷하다. 에디슨이 설립한 것으로 유명한 GE의 현재 잘나가는 분야를 보면 창업 당시와는 전혀 다르다. 산업재 기업에서 에너지 기업, 금융 기업으로 끊임없이 모습을 바꿨다. 최근에는 모태였던 가전 부문을 아예 매각해버렸다. 스웨덴 가전제품 대기업인 일렉트로룩스(electrolux)는 올해 10월 GE 가전사업 부문을 33억 달러(약 3조38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2009년 부터 추진했던 GE 소비자사업 부문은 전 부문이 GE에서 떨어져나갔다. 설립 당시 모습이 아예 사라진 셈이다. GE가 소비자 사업 부문을 모두 판 건 성장성이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최근 GE가 투자하는 부문은 에너지사업, 환경사업, 의료헬스케어사업 등이다. GE는 “미래 성장성이 큰 산업을 중심으로 체질을 바꿨다”고 말한다.

미래 성장성 중심으로 체질 바꿔

HP도 마찬가지다. 한때 HP는 PC사업이 회사 전체 매출의 30%가 넘었다. 하지만 HP는 주력인 PC사업에서 과감히 철수했다. 대신 공격적 M&A를 멈추지 않았다. 고성능 서버업체 탠덤컴퓨터를 1997년 인수한 데 이어 업계 2위 컴퓨터 기업 컴팩을 2001년 합병했다. 1998년엔 유서 깊은 기업 디지털이큅먼트를 인수해 서버 제품과 서비스 역량을 높였다.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8년엔 IT서비스업체 EDS를 인수했다. IT서비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어 2010년에는 네트워크 장비와 보안솔루션 업체인 쓰리콤을 인수하며 IBM·시스코와 경쟁 체제를 구축했다.

PC사업에 매진하던 델컴퓨터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IT서비스 부문에 이어 헬스케어와 공공부문 서비스 매출이 늘었다. 기업용 서비스 확대도 추진 중이다. IT 서비스사업 확대를 위해 페롯시스템즈 등 IT서비스 업체를 인수했다. 이들의 공통점을 뚜렷하다. 회사의 체질을 바꾸는데 성공한 기업은 돈은 되지만 이윤은 낮아 버리기는 아까운 ‘계륵’ 사업을 과감히 접었다. 과감한 선택이 현재의 장수기업을 만든 밑거름이다.

이런 도전에는 CEO의 전략적 판단도 큰 영향을 미친다. 김상근 상보그룹 회장은 “기업의 모습은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라 정답은 없다”며 “격동의 시대에 잘 적응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영자가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미쉘 콤버 알카텔-루슨트 CEO는 지난해 6월 취임하면서 ‘쉬프트 플랜(Shift Plan)’을 선언했다. 쉬프트 플랜은 현재 텔레콤 장비(Telecom equipment) 시장에 집중하고 있는 회사 체질을 ‘IP네트워킹과 전송 그리고 무선을 포함한 초광대역 액세스 분야 전문 리더(IP/Optics Networking & Ultra-Broadband specialist)’로 바꿔버리겠다는 내용이다. 회사 내부 분석에 따르면 쉬프트 플랜이 실행될 경우 2015년까지 고정 비용 10억 유로가 절감된다.

구체적 실천 전략도 이행 중이다. 구(舊) 기술 투자는 현재의 60% 수준으로 줄이는 대신, 성장 기술 분야 투자는 85% 늘린다. R&D 투자를 조정하면 어쩔 수 없이 인력 구조도 바뀐다. 알카텔-루슨트는 1만5000명을 감원하고 5000명을 신규 채용한다. 감원 대상은 현재 주력하는 사업 인력이며, 신규 채용 대상은 IP, 초고속 광대역, 4G 등 신규 주력 분야 인재들이다. 현재 직원 수가 7만2000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인력의 5명 중 1명이 송두리째 바뀌는 셈이다.

일본 나라시에 있는 장수기업 나카가와 마사시치 쇼텐도 과거 유명한 공예기업이었다. 하지만 나카가와 현 사장이 취임하면서 유통 업종으로 업태를 바꿔 버렸다. 직접 공예를 하기보다는 일본 전역에서 만든 공예품을 소개·전시하고, 컨설팅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나아가 나카가와 마사시치쇼텐의 브랜드로 상품을 출시한다. 본사 인력 70명 중 디자인인력이 18명이나 될 정도로 인적 구성이 확 바뀌었다. 업종 변경 이후 결과는 성공적이다. 매출은 약 3배 증가했고 직원도 275명으로 늘었다. 김창봉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장수기업의 대표적인 특징이 신속성과 유연한 실행력”이라며 “기업 환경은 끊임없는 변화에 노출돼 있는데 예기치 않은 변화에도 신속하게 대응해야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숱한 위기에서 벗어나 장수기업이 된 기업들은 신속한 대응력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끊임없이 변신하되 기업의 핵심 가치는 유지해야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면서 핵심 가치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장은 장수기업의 공통적 특징으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꼽는다. 새로운 도전에서 옛것을 마냥 무시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김 연구소장은 “대부분의 명문 장수기업은 창업 가치를 지켜왔다고 얘기한다”며 “혁신만 하면 정신이 훼손돼서 망하고, 반대로 정신만 갖고 있으면 시대에 밀려 망한다”고 말한다. 창업 정신이나 경영 원칙 등의 옛 것을 지키면서 혁신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다.

IBM은 토마스 왓슨 IBM 설립자가 100년 전에 설정한 핵심 가치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IBM의 핵심 가치는 ‘세상을 위한 혁신(Innovation that matters for the world).’ IBM은 “IBM에서 핵심 가치는 윤리와 준법정신보다 상위 개념으로 통용된다”며 “전략의 기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결정의 토대가 된다”고 말했다.

벨연구소는 핵심 가치가 ‘기술 혁신(technology innovation)’이다. 마커스 웰던 사장은 아예 “우리가 바로 기술 혁신(We are technology innovation)”이라고 말할 정도다. 모기업이 수 차례 바뀌며 풍파를 경험했던 벨연구소가 이제껏 한결같이 벤처기업의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도 핵심 가치 자체가 기술 혁신이기 때문이다. HP도 마찬가지다. HP는 ‘HP Way’라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유능한 CEO도 60세가 되면 은퇴해야 한다. 칼리 피오리나처럼 젊은 CEO가 영입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 기업의 경우 가게 정문이나 출입구에 ‘노렌(暖簾)’이란 발을 쳐놓는다. 노렌에는 상호나 가몬(家紋, 가문의 문장)이 적혀있다. 이 노렌이 바로 서양 기업의 핵심 가치 역할을 한다. 아미다이케 다이코쿠의 창업주부터 지금의 고바야시 사장도 모두 ‘계속 새로 만들어 가자’는 노렌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장수기업으로 발돋움하길 원하는 한국 기업에게 수치트라조시 IBM 디렉터는 “한때 IBM은 저울·시계·도표작성기계 등을 만드는 소규모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40만여명이 넘는 임직원들을 고용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IBM의 일하는 방식, 변화 과정, 위기와 극복, 교훈을 살펴보면 장수기업의 비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기니 로메티IBM CEO가 사내에서 했던 언급으로 답변을 갈음했다. “성장과 안정은 함께 공존하지 못합니다. 지속적인 재도전만이 장수 기업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마커스 웰던 알카텔-루슨트 최고기술경영자(CTO) 겸 벨연구소 사장 - “혁신에 정면으로 도전하라”


혁신과 도전정신 DNA를 사내에 이식할 때 고려할 부분은?

“문제 해결 단계에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는 거죠. 벨연구소의 경우 항상 커뮤니케이션과 정보기술(IT) 문제 해결이 초점입니다. 항상 단순한 문제는 배제하고,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문제 선정 이후 현실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있다면?

“문제 선정 이후엔 그걸 해결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인재를 확보하는 일입니다. 특히 저희가 추구하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 세계에서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들이 전인류적인 문제를 풀려면 ‘발견(discovery)’이 필요합니다. 배경과 출신이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특성이 다르고 서로 다른 식견과 관점을 갖고 있어요.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도 다르죠.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문제를 풀기위해 달려들면 발견이 가능합니다. 이 발견이 종종 노벨상을 타곤 합니다. 노벨상은 목표가 아닙니다. 거대한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이죠.”

한국 기업이 장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한다면?

지난 140여년 동안 벨연구소가 상이한 진화의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사실에 기반을 둔 혁신’이었습니다. 기술 혁신, 비즈니스 모델 혁신, 리더와 인재의 혁신이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진다면 어떤 기업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장수기업이 되고 싶다면, 혁신에 정면으로 도전하세요(face to innovation).”

미국의 장수기업 - ‘실리콘밸리式 혁신’ 배우기 열풍


미국 장수기업은 특정 유형으로 구분하기 애매할 정도로 다양하다. 200년 이상 된 미국 장수기업 중 업종이 같은 장수기업은 금융업(뱅크 오브 뉴욕 멜론, 워싱턴 트러스트 뱅코프, 하트포드 파이낸셜) 단 한 업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업종이 다르다. 가장 오래된 기업 소더비는 경매업을 주로 영위하며, 화학·담배·치약 등 한 가지에 집중해 200년을 영속하는 기업도 있다.

혁신에 도전하는 역량을 잘 갖춘 장수기업은 주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려 4000여개의 기업이 몰린 실리콘밸리 기업의 뿌리는 벨연구소(Bell Laboratories)다. 벨연구소에서 1947년 12월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인 고체물리학자 윌리엄 샤클리(William Shockley)는 1955년 샤클리반도체연구소(Shockley S emiconductor Laboratory)를 설립한다. 이 연구소에서 일하던 8명의 기술자들은 다시 1957년 캘리포니아 팔로알토(Palo Alto) 지역에 페어차일드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설립한다. 이 기업은 향후 AT&T,인텔(Intel), AMD(Advanced Micro Devices), 내셔널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 등 40여개 장수기업의 모태가 된다. 실리콘밸리 장수기업의 태동에 벨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때문에 도전정신 DNA를 갖춘 실리콘밸리 장수기업은 주로 정보통신(IT) 업계인 경우가 많다. 알카텔-루슨트(145년), GE(136년), IBM(103년), HP(75년) 등이 100년 안팎의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제조업체들도 실리콘밸리의 도전정신을 배우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연구소 등을 설치하는 추세다. 실제로 11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포드자동차가 연구소를 실리콘밸리에 설립했다. 이 밖에도 1920년대에 나란히 설립된 쉐브론(88년)이나 세이프웨이(88년)같은 기업도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다. 애완용 음식을 제조하는 빅하트펫브랜드(98년), 비누와 세제를 제조하는 클로록스(101년), 농장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농산물 유통 기업 윌버-엘리스(93년) 등도 100여년 안팎의 역사를 이어가는 독특한 장수기업들이다.

1265호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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