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장수기업으로 가는 길 ‘코치(COACH)’-지역사회와의 상생(Coexistence) - 기업·직원·주민 손 잡으니 지역경제 ‘훨훨’ 

대기업 못지 않은 보수·복지에 직원은 생산성으로 화답 … 지속적 사회공헌도 존경 받는 비결 


이탈리아 산업 중심지인 밀라노에서 남동쪽으로 80㎞ 떨어진 크레모나는 인구 8만명의 소도시다. 시청사와 마주한 대성당을 제외하면 딱히 볼거리도 없는 작은 도시다. 그러나 이 곳엔 매년 수 만명의 연주가와 관광객이 몰려온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현악기의 성지(聖地)여서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름은 아는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의 고향인 크레모나는 15세기부터 바이올린·첼로 등 수제 현악기를 생산해왔다. 스트라디바리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아마티(Andrea Amati)와 과르네리(Giuseppe Guarneri) 가문도 이곳 출신이다. 이들이 300~400년 전에 만든 바이올린은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내는 명기로 꼽힌다. 가끔 100억~200억원을 호가하는 가격으로 세간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계속 장인 키우는 ‘현악기의 성지’ 크레모나



크레모나 골목을 걸으면 곳곳에 위치한 현악기 공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옷 가게든 식료품 가게든 진열장에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올려둔 것도 이 도시만의 특색이다. 지금도 크레모나엔 살아있는 스트라디바리를 꿈꾸는 현악기 장인이 많다. 현재 180명 정도의 제작자가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지오바타 모라시)의 대를 이어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시메오네 모라시도 그중 한 명이다. 크레모나의 터줏대감 격인 시메오네가 만들어 ‘모라시(Morassi)’ 브랜드를 달고 나가는 최고급 바이올린은 시중에 판매되는 바이올린 중 가장 비싼 축(약 2만~3만 유로)에 속한다. 사고 싶다고 바로 집어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명의 장인이 1년 동안 작업하는 바이올린은 채 10대가 안 된다.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만들고, 색을 입히니 그럴 수밖에. 지금 주문해도 약 2년 뒤에나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악기 제작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맡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됐지만 시메오네는 여전히 겸손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공방을 뛰어다니다 자연스레 배우게 됐죠. 5년 정도 배우면 혼자 힘으로 바이올린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진짜 시작은 이 때부터죠. 작업의 질을 높이는데 엄청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소리가 달라지고, 그 섬세함에 따라 작품이 되느냐 제품이 되느냐가 좌우되죠. 장인은 평생 공부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30년 넘게 바이올린을 만들었지만 매번 만들 때마다 실력이 는다는 걸 느끼고 있으니까요. 20년쯤 더 하면 진짜 좋은 악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수 백년 동안 전통을 이어온 이들의 장인정신도 놀랍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현악기 제조라는 작은 산업을 도시 전체의 먹거리로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16~18세기 전성기를 구가했던 크레모나는 19세기부터 현악기의 대량 생산체제가 갖춰지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더 큰 문제는 실력 있는 장인이 줄어드는 것이었다. 400년 동안 선조에게 물려받은 전통을 퇴색시켜선 안 된다고 생각한 이들이 선택한 건 ‘교육’이었다. 1938년 현악기제작학교를 열고, 힘을 모아 후진 양성에 나섰는데 이게 반전의 출발점이 됐다.

‘가족 같은 분위기’로 노사분규 적고 이직률 낮아

수제 현악기의 품질은 철저히 개인의 손기술에 따라 판가름 난다. 일종의 영업비밀인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과감히 비밀을 포기했다. 수준 있는 현악기 제작자가 늘어나면 다시 한번 도시가 부흥할 수 있으리란 공동의 목표를 먼저 생각했다. 시메오네의 아버지인 지오바타 모라시가 대표적이다. 현직에서 은퇴했지만 그가 지금도 지역사회의 존경을 받는 건 단순히 세계적인 명장이어서가 아니었다. 지오바타는 악기 제작보다 사람을 키우는 데 더 신경을 썼다. 교사로, 교장으로 오랫동안 학교에 몸 담으면서 제자를 키웠고, 현악기제작학교가 글로벌 교육기관으로 성장하는 데 큰 공을 들였다. 피렌체 등 지방으로 흩어진 공방을 모두 모아 이탈리아 악기제작협회를 만든 것도 그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였다.

지오바타와 같은 제작자들의 노력 덕분에 도시는 점점 활기를 찾아갔고, 전 세계에서 유학생들이 몰려왔다. 실력 있는 장인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각국으로 돌아간 유학생들이 크레모나 현악기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스트라디바리의 고향’ 정도로 잊혀질 뻔했던 크레모나는 이렇게 ‘현악기 제조의 메카’로 다시 도약하는 중이다. 인재를 육성해 산업을 키우고, 지역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낸 좋은 사례다.

유럽의 많은 장수기업의 가진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한다는 점이다. 오랜 연방제 전통에 기인한 것이지만 유럽 장수기업의 상당수는 수도가 아닌 지방을 토대로 발전해왔다. 중소기업의 70%가 소도시 또는 지방에 소재한 독일과 70%가 수도권에 집중된 우리나라는 차이가 크다. 대기업 역시 지방에 본사를 둔 곳이 많다. 당연히 지역 균형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유럽 주요국에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소득·인프라 격차가 크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큰 장점은 고용의 안정성이다. 특정 기업이 작은 도시 전체를 부양하는 일이 흔하다는 얘긴데 젊은이들도 굳이 나고 자란 지역을 떠나지 않고, 고향에서 일자리를 찾는다. 독일 서남부 바트 크로이츠나흐에 위치한 렌즈회사 슈나이더 크로이츠나흐는 회사 이름에 이미 도시명이 들어가 있다.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약 400명의 직원은 대부분이 이곳 출신이다.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대기업 못지 않은 보수와 복지혜택을 주고, 직원들은 높은 생산성으로 보답한다. 요제프 슈타웁 사장(CEO)은 “고용을 했으면 퇴직까지 책임진다는 경영 마인드를 늘 가지고 있다”며 “직원들 역시 혜택을 받는 만큼 회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신의가 있다”고 말했다. 경영자와 근로자가 ‘함께 일구는 회사’라는 인식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자연히 노사 분규가 덜하고, 이직률도 낮다. 직원이 곧 주민이니 직원의 만족도가 높아 지면 지역사회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프랑스 에너지 설비 유통업체 르 고엑스(LE GOUEIX)의 프랑소아 꽁땅 회장은 “많은 유럽 중견기업은 이익을 직원들에게 배당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만큼 가족이나 개인생활에 맞게 일하는 시간을 조절해주거나,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직원의 만족도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영국 종 제작회사 화이트차펠 벨파운드리의 앨런 휴즈 대표 또한 “실적이 좋아 보너스를 분배할때도 사장이라고 특별히 더 많은 돈을 받아가지 않는다”며 “이런 사소한 것에 대한 불만이 없어야 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기업이 존경 받아야 사회의 부(富)도 증가


가족기업에게 ‘부의 대물림’이란 곱지 좋은 시선을 보내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 장수기업은 지역사회의 존경을 받는 경우가 많다. 기업 규모가 작아도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사회공헌 활동에 투자한 덕분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몬지노(Monzino)그룹은 1750년에 설립된 악기 제조·유통회사다. 8대를 거치며 회사를 지켜온 가족기업이지만 이탈리아 내에서 이 회사는 본업보다 자선사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빈민 거주지역이나 교정시설에 음악학교를 세우고, 악기를 후원하는 일부터 젊은이들이 음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까지 영역도 다양하다. 베네수엘라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뜻하는 ‘엘시스테마(El Sistema)’와 유사한 사업이라 보면 된다. 안토니오 몬지노 회장은 “사업과 사회공헌이 각각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족기업의 최대 장점은 긴 흐름에서 생존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몬지노그룹이 이익만 생각하고 사업을 해왔다면 전쟁이나 대공황 등 250년 동안 수 차례 마주한 위기를 넘기지 못했을 겁니다. 저와 직원과 그들의 가정, 기업과 사회는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요즘 기업들은 공익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 못해 하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사업의 연장선에서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이 존경을 받고, 그런 기업이 많아지면 사회 전체의 부(富)도 증가하는 거죠.”

영국·프랑스·이탈리아의 장수기업 - 기술은 진보를 지향하되 경영은 보수적으로

유럽 장수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범접할 수 없는 기술력이다. 제품군이 좁은 대신 오랜 역사 속에 축적된 전통을 그대로 살려 가치를 높인다. 그만큼 비싸지만 품질이 따라주기 때문에 수요는 꾸준하다. 700년 전부터 지금껏 입으로 불어 유리를 가공하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이탈리아 조명회사 바로비에 앤 토소(Barovier&Toso),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 제작회사 화이트차벨 벨 파운드리, 100년 넘게 진공펌프 한 분야만 개척해 온 독일의 파이퍼 배큐움 등이 대표적이다. 돈 되는 제품으로 영역을 넓힐 만하지만 그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기술은 ‘진보’를 경영은 ‘보수’를 지향하는 사업방식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제품군을 확대하거나 신사업에 도전하는 일이 흔치 않다. 해외 등으로 판매망을 확대하는 것도 매우 신중을 기한다. 앞서 프랑스 강소기업으로 소개한 르 고엑스(LE GOUEIX) 역시 당분간 해외진출 계획이 없다. 프랑소아 꽁땅 회장은 “여전히 프랑스 내 유통망을 완성하지 않았다”며 “외국에 나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외부 시스템에 흔들리지 않을 준비가 됐을 때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실적에 따라 ‘고무줄 고용’을 하지도 않는다. 여력이 있다고 고용을 한꺼번에 늘리거나, 어렵다고 직원을 자르는 일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소유 구조에 따라 구분하면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은 가족기업 형태가 많다. 이들은 가족기업의 장점을 살려 대대로 물려받은 기업의 가치를 적절히 계승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왔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특히 가족기업이 자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가족중심 문화가 발달한 역사와 비교적 유연한 상속제도가 그 배경이다. 주주들의 불필요한 간섭을 받지 않고,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비전에 중점을 두는 것도 특징이다.

하지만 최근엔 가족경영의 단점도 부각되고 있다.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한 탓에 리더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회사가 일순간에 위기를 겪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급변하는 산업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도 있었고, 상속에 따른 분쟁으로 무너진 가족기업도 많았다. 구찌(Gucci)가 대표적이다. 창업자인 구찌오 구찌가 1921년 피렌체에서 가죽 전문매장을 열며 시작된 꾸찌는 당시 상류층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1953년 구찌오의 사망이후 두 아들 알도와 로돌프가 경영권을 50%씩 나눌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손자 세대에 와서 일이 터졌다. 알도의 아들 파울로와 로돌프의 아들 마우리치오가 경영권 분쟁을 시작했고, 회사는 얼마 못 가 재정난에 휩싸였다. 미국 출신 전문가를 잇따라 영입하며 회생에 나섰으나 1993년 결국 중동 투자회사에 지분을 매각했다. 지금도 구찌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창업자 가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265호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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