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2014 한국인의 삶을 바꾼 히트상품 5선 - 소소한 행복 속에 희망을 갈망했다 

국민 위로한 <명량> <미생> … 해외 직구 열풍 거세지고, 배달앱·셀카봉도 대세로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셀카봉을 보며 많은 사람이 한 생각이다. 아날로그적인 막대기 하나가 디지털(카메라)의 흐름마저 바꿔버렸다. 대중은 늘 새로운 걸 원하지만 하늘 아래 완전한 새로운 건 없는 법이다. 작은 아이디어, 발상의 전환이 새롭지 않은 걸 새롭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렇게 유행이 바뀌고, 세상도 바뀐다. 본지가 각종 연구 보고서와 각계 전문가의 추천 등을 참고해 2014년 한국인의 삶을 바꾼 히트상품을 선정했다. 경제는 불황에 허덕댔고, 사회는 내내 불안했지만 그 속에서도 국민의 마음을 위로한 제품과 콘텐트가 있었다. 생활의 불편을 줄여주는 작은 아이디어가 우리를 미소 짓게 했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가 아니라 ‘같은 다홍치마라도 더 싸게’ 라는 합리적 소비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 대형 히트작은 없었지만 불황과 우울 사이에서 소소한 행복을 선물한 히트상품은 분명 있었다.

본지는 매년 연말 한국인의 삶을 바꾼 히트상품을 선정해왔다. 올해로 4년째다. 히트상품은 주요 경제연구소의 소비자 동향 조사,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제품의 판매량, 대중적 인기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한다. 역대 히트상품을 살펴보면 한국 사회의 트렌드 변화상을 살펴 볼 수 있다. 2011년 히트상품은 갤럭시S2, 카카오톡, 스티브 잡스 전기, 꼬꼬면, 금이었다. 히트상품 5개 중 3개가 스마트폰과 관련 제품이란 게 눈에 띈다.

<명량>에서 리더를, <미생>에서 ‘나’를 돌아봐


2012년에도 그런 추세가 이어져 삼성전자를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선두주자로 도약시킨 갤럭시S3와 갤럭시 노트2가 히트상품에 선정됐다. 유튜브를 타고 세계 팝 문화의 아이콘이 된 가수 싸이, ‘국민 게임’으로 떠오른 애니팡, 움직이는 CCTV로 자리잡은 블랙박스, 대형 항공사를 위협하는 저비용항공 등도 히트상품에 이름을 올렸다. 2013년엔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류현진을 비롯해 응답하라1994, 짜파구리, 미생, 알뜰폰, 송강호, UV 등 7가지가 히트상품에 뽑혔다. 올해는 해외 직구, 영화 <명량>, 배달 애플리케이션(이하 배달앱), 드라마<미생>, 셀카봉이 선정됐다. 지난해까진 스마트폰 브랜드가 꾸준히 히트상품에 선정됐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었다. 2014년 2월 출시한 갤럭시S5가 유력한 후보였지만 반응도 판매량도 기대에 못 미쳤다.

올 한해 한국인은 대체로 우울했다. 나라 경제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리저리 흔들렸고, 너도나도 얇아진 주머니 사정에 소비 심리는 위축됐다. 청년 실업과 전세값 상승이 청춘의 발목을 잡았고, 장년층의 노후 불안도 그대로였다. 좀처럼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정치인들은 위로는 커녕 담뱃값·주민세 인상 등으로 서민에 부담을 안겼다.

불안과 걱정이 국민의 삶 속으로 깊숙이 퍼져가는 가운데 상상하기도 싫은 참사(세월호 침몰)가 터졌고, 엄청난 충격에 휩싸여 집단 우울증을 경험해야 했다. 기대가 컸던 3대 스포츠행사(동계올림픽·월드컵·아시안게임)가 연이어 열렸지만 오심 논란, 체육계 파벌, 지방 부채 등 우울한 소식만을 남긴 채 조용히 끝났다.

약간의 새로움을 더해 히트상품 대열에

그런 우리를 위로한 이들이 있었으니 영화 속 ‘이순신’과 드라마 속 ‘장그래’였다. 7월 30일 개봉한 영화 <명량>은 176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단숨에 역대 흥행 순위 1위에 올라섰다. 국민들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리더상을 영화에서 찾았다. 그는 평시엔 백성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전시엔 가장 앞에 나서 싸우는 대장이었다. 수세에 몰릴 때 탁월한 전략으로 조직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영화 속 이순신의 모습은 대중의 목마름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명량>에서 리더를 찾았다면 <미생>을 통해 국민들은 ‘나’를 돌아봤다. 프로 바둑기사에 도전하다 실패한 주인공 장그래가 대기업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겪는 회사 생활을 그린 <미생>은 올해 드라마로 제작돼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웹툰에 이어 2년 연속 선정이다. 고졸에 영어조차 못하는 장그래가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동료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공감을 느꼈다. 탁월한 업무 능력을 갖췄지만 비주류 취급을 받는 장그래의 상사 오 차장과 김 대리의 모습 또한 내 회사를 옮겨놓은 듯, 직장인의 서글픈 가슴을 제대로 두드렸다.

사실 <명량>이나 <미생>은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명량>은 워낙 많이 알려진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활용했고, <미생> 역시 웹툰으로 스토리가 공개된 터라 결말에 대한 궁금함이 덜했다. 하지만 두 작품은 찰진 현실감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의 힘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셀카봉과 배달앱 역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셀카 찍기를 좋아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그 취향에 막대기 하나를 추가했을 뿐이다. 단돈 만원이면 충분한 이 막대기는 카메라 화소수 높이기에만 매진했던 스마트폰 제조사들을 머쓱하게 만들었고, 여행에 빠져선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배달앱 또한 전 국민이 일상에서 쓰는 배달 서비스에 약간의 편의를 더해 대세 애플리케이션이 됐다.

해외 직구(직접 구입) 열풍에선 가치소비 문화 확산이란 트렌드 변화가 확실히 감지된다.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직접 물건을 구입하는 해외 직구액은 올해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귀찮아도 조금 더 절약하고, 꼭 필요한 물건이면 몇 달을 기다려서라도 구입하는 게 직구족의 소비 패턴이다.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미국·중국·독일 세계 어디든 나만의 백화점이 열린다. 직구족의 증가세는 앞으로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소비의 국경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1266호 (2014.12.22)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