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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어디로-경제 구조개혁 가시적 성과 낼까? | 마지막 골든타임마저 놓치면… 

노동·금융 등 6개 분야 구조개혁 추진 … 이해당사자 간 의견 좁히기 어려울 듯 


▎12월 2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87차 노사정위원회 본위원회에서 김대환 노사정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 공공개혁, 중앙·지방 재정관계 등 우리 앞에 쌓여 있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의 사명이고 숙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월 22일 국민경제자문회의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 체질을 개선할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에 총력을 다해야겠다”면서 노동·금융·연금·교육·주택·공공기관 등 6대 핵심 구조개혁 분야를 제시했다. 2015년 경제정책의 첫머리에 경제 구조개혁을 놓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새 경제팀을 꾸린 뒤 2014년 하반기 내내 돈 푸는 정책에 힘을 싣다 확실히 키를 돌린 분위기다.

이런 의지는 같은 날 정부가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 방향’에 상당 부분 포함됐다. 특히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이 눈길을 끌었다. 비정규직의 계약 기간을 최장 4년(35세 이상)으로 늘리고, 실업급여 수령 기간을 최소 3개월에서 4개월로 연장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시작으로 정규직 과보호 완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중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구조개혁 필수


방향 전환은 일단 긍정적이다. 단기적으로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부양책은 엄밀히 말해 치료제가 아닌 진통제다. 잠깐 덜 아플 수 있겠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또 아플 수밖에 없다. 건강한 몸을 만들어 병에 걸리지 않게 만드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전 세계가 동시에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 것’이란 우려가 제기될 만큼 지금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작은 외부 변수에도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곤 했다.

정부가 생각하는 경제 구조개혁의 방향은 2014년 1월 박 대통령이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부분 담겨 있다. 방향은 1년 전에 내놨는데 그간 별 소득이 없었다. 세월호 사고 수습과정이 길어지며 좀처럼 동력을 얻지 못했고, 지방선거와 재·보선 등 선거 이슈도 중간에 흐름을 끊었다. 국회와의 협업에 실패한 것도 큰 이유였다. 생방송 토론회까지 개최하며 2014년 초 힘을 실었던 규제 개혁에 대해서도 ‘없애는 만큼 새로 생긴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속도를 못 냈다.

2015년이 경제 구조개혁의 적기라는 점은 많은 전문가가 인식을 같이 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 4%선을 지켰던 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대로 내려 앉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 시일 내에 획기적인 동력을 찾지 못하면 당분간 3%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여건은 나쁘지 않다. 일단 경제 구조개혁에 대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2015년에 대규모 선거 이슈가 없는 것도 호재다. 예측불허의 변수만 없다면 비교적 정책 추진에 힘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이다. 2년 동안 눈에 띄는 뭔가를 보여주지못한 박 대통령으로서는 집권 후반기 안정적인 통치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할 시점이다. 2014년 파트너 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여당도 2015년엔 경제 살리기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고용·소득·부동산 등 각 분야에서 체감 경기 개선이 나타나지 않으면 정권 책임론이 커질 것이고, 총선 승리는 어려워진다.

기대해 볼 만한 상황인 건 맞지만 빠르게 성과가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본적으로 구조개혁은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게 누구든 이미 기득권을 가진 집단은 그걸 놓으려 하지 않는다. 세부 분야별로 살펴보면 걱정이 더 커진다. 건건마다 난제여서다. 노동시장 개혁은 기업과 근로자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기업은 볼멘소리를 할 것이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규직 노동조합의 강력한 저항도 불가피하다. 연말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가 구조개혁 방향과 원칙에 대해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구조개혁의 출발점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도 삐걱대고 있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이 “당장 욕을 먹더라도 미래를 위해 돌파하겠다”며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예상대로 반발이 거세다. 공무원의 분노만 확인한 채 대화 채널은 사실상 가동조차 못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구조개혁 과제 중에서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한다. 개혁을 추진하는 공무원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어서다. 문제가 지적된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역대 어떤 정부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다.

‘소통·조율’ 잘 못하는 박근혜정부

서비스업 육성을 통한 내수 확대는 국회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책은 입법이나 법 개정이 필요하다. 큰 틀에선 여야가 인식을 같이하지만 법안별로는 입장이 크게 달라 난항이 예상된다. 제조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을 서비스산업으로 보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학교 근처에 사행 시설이 없는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 보험사가 외국인 환자를 끌어올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이 2년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는 이유다.

내수 시장이 잘 돌아가려면 소비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 결국은 일자리와 소득 문제다. ‘규제를 풀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야 소득이 늘고, 그게 소비로 이어지면 기업의 이익과 소득 증가로 선순환 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정책 목표지만 당장 성과를 내긴 어려워 보인다. 소비 기반 개선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가계대출 부담 완화를 내세웠지만 최근 전세대란 등으로 서민층의 대출은 오히려 더 늘고 있다. 저금리 여파로 자산 증식의 길이 상당히 좁아진데다, 소득 증가율이 뒤를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수 시장의 단기적 회복을 기대하긴 힘들다. 2014년 하반기 정부가 4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지만 내수 진작 효과는 크지 않았다.

일단 강력한 개혁을 선언했지만 시작부터 불안하다. 정부는 새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2015년 10월까지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다. 새누리당조차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며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처리 능력이 마뜩잖다. 어떤 개혁이든 성공하려면 끈질긴 설득과 강한 리더십이 동반돼야 한다. 그러나 2년간 현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설득보단 불평, 대화보단 지시에 가까웠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은 야당도 한심했지만 ‘도무지 소통 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정부의 태도도 문제였다. 강력한 개혁의지가 가속도를 얻고, 성과를 내려면 입법기관인 국회의 도움이 절실한데 2015년이라고 여야가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타협의 정치를 할진 의문이다.

사실 구조개혁은 정부만 쳐다보고 있을 일이 아니다. 기업 등 민간도 저성장 시대를 버틸 체력을 키워야 한다. 여전히 기업지배구조개선은 요원하고, 주주권은 약하다. 이런 게 안 바뀌면 대한항공 사태는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야당 일각에서 ‘조현아 방지법’을 추진한다는데 정치권이 이건 나설 일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주도한 기업 개혁 작업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결국 쓸데없는 규제만 양산할 뿐이다. 정부 눈치를 보며 대충 보조를 맞추는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뼈를 깎는 개혁을 해야 한다. 그렇게 안 하는 기업이 외면 받는 시대가 곧 온다.

1268호 (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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