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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모파상 <목걸이>의 ‘과시적 소비’ 

체면·심리 등에 영향 받는 소비자 행동의 근원 카드사태 등 후유증 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열린 해외 명품 대전 행사에 사람들이 몰렸다.
‘그녀는 옛날 비단으로 벽을 두른 큰 살롱을 상상해 보았으며,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골동품들이 놓인 우아한 가구들, 모든 여성들의 선망과 관심을 받는 사교계의 인기 있는 남성들과 가장 친밀한 친구들이 모여 오후 다섯 시의 담화를 즐기도록 만든 향기롭고 아담한 밀실을 상상해보았다.’

현대 경제학은 인간의 행복을 ‘소비’에서 찾는다. 원하는 물건을 사서 원하는 만큼 소비할 수 있을 때 인간은 행복(쾌락)을 느끼고, 그렇지 못할 때는 불행을 느낀다는 것이다. 쾌락을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 소비도 곧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다. 개개인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맘껏 소비할 수 있으면 사회 전체적인 행복감도 높아진다. 그리고 생산과 소비를 많이 할 수 있는 국가가 ‘부유한 국가’라고 봤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국가의 부는 ‘금과 은’이 아니라 ‘생산능력과 소비능력’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는 ‘소비’도 미덕으로 해석된다. 소비가 이뤄져야 생산도 이뤄지기 때문이다. 금과 은을 모으기 위해 ‘소비’를 악덕으로 치부했던 과거와는 다르다.

현대사회에선 소비가 미덕

모파상은 인간의 소비 본능을 잘 꿰뚫어 봤다. 그가 1885년 쓴<목걸이>에는 한 프랑스 여인의 과시적 소비욕구가 생생히 담겨있다. 모파상은 미국의 애드가 앨런 포,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와 함께 3대 단편 소설가로 불린다. 모파상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묘사한 사실주의 소설가다. <목걸이>는 사치스럽고 우아한 생활을 갈망하던 한 여인의 허영심이 빚은 몰락을 담고 있다.

세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마틸드는 하급 관리인 루아젤의 부인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낀다. 때묻은 커튼과 썰렁한 벽, 낡아빠진 의자가 있는 누추한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동경하는 것은 고상한 기품과 우아한 취미, 기민한 재질이다. 훌륭한 만찬, 번쩍이는 은그릇, 동양풍의 벽지, 새들과 고대의 인간들을 수놓은 태피스트리를 갈망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쾌락과 사치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는 드레스도 보석도 전혀 없다. 그의 남편 루아젤은 성실한 하급 관리다. 박봉에 시달리지만 성실하고 아내를 매우 사랑한다.

포레스티에 부인은 마틸드의 친구다. 수녀원 동창이지만 지금은 부유하다. 어느 날 저녁 루아젤이 마틸드에 초대장 하나를 내민다. 고위 관료들이 참석하는 야외 파티 초대장이다. 하지만 마틸드는 불만이다. 당장 입고 나갈 드레스가 없기 때문이다. 남편 루아젤이 모은 비상금 400프랑으로 옷을 마련해놓고 보니 장신구가 없다. 마틸드는 남편에게 “옷에 어울리는 보석이 없다”며 다시 불만을 터뜨린다. 보석을 차마 살 돈이 없었던 마틸드는 친구 포레스티에 부인으로부터 다이아몬드를 빌렸다. 환상적인 하룻밤의 파티가 끝났다. 아뿔싸, 그런데 목에 걸려있어야 할 보석이 없다. 가격은 무려 4만 프랑. 깎아서 3만 4000프랑이다. 사방을 다 뒤졌지만 보석을 찾지 못한 루아젤 부부는 상속받은 1만 8000프랑에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보석을 사 포레스티에 부인에게 되돌려줬다.

전통 경제학자들은 인간은 합리적이라 비싼 물건은 사지 않는다고 봤다.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가격 대비 가치가 있는 물건을 합리적으로 구매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소스타인 베블런이 1899년 <유한계급론>을 내기까지는 말이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을 통해 “유한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자각 없이 행해진다”고 주장했다. 유한계급(the Leisure Class)이란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여유(레저)를 즐길 수 있는 상류계층을 의미한다.

고전학파와 한계효용학파 등 주류 경제학자들이 수요공급법칙으로 가격을 설명하려 들자 베블런은 비웃었다.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책상머리 이론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행동은 체면과 심리 등 사회 제도와 관습의 영향을 깊게 받는다고 봤다. 여기에는 소비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르웨이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사회아웃사이더로 주류 경제학의 밖에서 세상을 관찰한 결과물이었다.

그는 이런 개념을 정리해 ‘과시적 소비’라고 정의했다. 과시적 소비는 가격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을 명쾌히 설명했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거나 허영심을 채우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베블런 효과가 재조명 받은 것은 1950년대였다. 라이벤스타인이 <수요이론에 있어서의 유행, 속물, 베블런 효과>라는 책을 내면서다. 라이벤스타인은 물건값이 오를 수록 잘 팔리는 과시적 소비 형태를 베블런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루이뷔통·프라다·벤츠 등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을 올릴수록 잘 팔리는 이유가 베블런 효과로 명쾌히 설명됐다. 값만 비싸고, 별 소용이 없더라도 남들에게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다면 지갑을 여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다. 특히 물건이 풍부해진 오늘날에는 합리적 소비보다 과시적 소비가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진다.

과시적 소비의 또 다른 형태로 ‘파노블리 효과’가 있다. 파노블리 효과란 어떤 물건을 사면 자신도 그 집단에 속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말한다. 고급 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농구화인 에어조단이나 박지성 축구화를 사는 소비자들의 심리도 비슷하다. 파노블리란 프랑스어로 청진기 세트라는 뜻이다. 어릴 때 청진기를 갖고 의사나 간호사 놀이를 하면 자신이 진짜 의사나 호사가 된 것처럼 느끼는 것처럼 값비싼 명품을 들고 다니면 자신도 마치 부자가 된 듯한 기분에 빠질 수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신의 능력을 무리하게 벗어난 과시적 소비는 큰 후유증을 남긴다. 꿈은 짧고 현실은 길기 때문이다. 마틸드는 하룻밤의 파티를 위해 값비싼 드레스를 사고 보석을 빌렸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잃어버린 보석을 사느라 늘어난 빚에 눌려 그녀의 삶은 추락했다. 그녀는 하녀를 내보내고 지붕 밑 다락방으로 집을 옮겼다. 집안일을 직접 해야 했고, 식료품점에서는 욕을 먹어가며 가격을 깎아야 했다. 남편 루아젤도 ‘투잡’을 하며 돈을 갚았다. 그렇게 10년을 보냈다. 마틸드는 이제 억세고 고집쟁이에 거칠고 가난한 살림꾼이 됐다.

2003년 카드버블 당시 능력을 벗어난 카드소비를 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사람이 많았다. 신용불량자 탈출에는 수 년이 걸렸고, 많은 사람의 삶이 망가졌다. 비단 개인뿐 아니다. 최근들어서는 무리하게 국제대회를 개최했다 빚더미에 오른 도시도 적잖다. 그래도 마틸드처럼 노력해 빚을 갚으면 다행이다. 빚이 너무 어마어마해지면 갚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되레 배짱을 내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냥 탕감을 해주던지 같이 죽자는 식이다. 유로존 탈퇴 카드로 유럽연합을 압박하는 그리스가 딱 그런 모습이다.

1269호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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