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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교수의 ‘유대 창업마피아’ ③ ‘페이팔의 두뇌’ 맥스 레브친 - 천문학적 재산의 거부 ‘놀기엔 너무 젊다’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페이팔 매각 직후 … 엘론 머스크와 영화 제작도 

‘창업만이 살 길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업에서 찾자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많은 청년이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 이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창업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집단은 유대인이다. 이들의 창업 생태계에서 성공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실리콘밸리의 창업네트워크를 분석한다.




▎맥스 레브친
유대인들은 창업에 성공한 뒤 거금을 받고 회사를 팔아 부자가 돼도 쉬는 법이 없다. 요즘 미국에서 한창 뜨는 것이 소셜 네트워킹 리뷰 사이트 ‘엘프’(yelp)다. 엘프 사이트에 올라오는 업소의 품평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하다. 엘프의 기업 가치는 2012년 상장 시점 기준 8억4000만 달러다. 엘프의 맥스 레브친 회장은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 가운데 한 명으로 페이팔의 실질적 창업주다. 그는 페이팔 이후에도 여러 창업에 관여해 ‘연쇄 창업가’로 유명하다.

온라인 송금시장에 등장한 해커 공격 막아

레브친은 1998년 스탠퍼드대 인근에서 피터 틸과 점심을 먹다 암호화 저장 소프트웨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창업을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레브친과 틸은 ‘컨피니티’란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레브친의 아이디어는 실패했다. 개인용정보단말기(PDA)는 보급이 느렸을 뿐 아니라 보안 요건이 까다로웠다. 그는 계획을 수정했다. PDA가 아닌 PC용 보안 소프트웨어로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그 뒤에도 계속되는 실패를 거치면서 레브친은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정보를 암호화해 보낼 수 있다면 돈도 암호화해 송금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마침내 그들은 일곱 번째 도전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인터넷 결제시스템인 페이팔로 진화해 오늘날 온라인 결제 분야를 장악했다.

레브친은 1975년 우크라이나 키에프 태생이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를 피해 16살 때 미국 시카고에 정착했다.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며 레브친은 중고 컴퓨터를 선물 받았다. 그는 일리노이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특히 암호화에 관심을 가졌다.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레브친은 대학을 다니며 3번 창업했다. 이 가운데 자동화 마케팅 툴 ‘넷메리디안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렸다.

그는 더 큰 무대인 실리콘밸리에 가서 제대로 창업을 해보고 싶었다. 1998년 팜 파일럿(Palm Pilot) 등 당시 유행한 휴대용 컴퓨터에 암호화된 정보를 저장하는 필드링크(Fieldlink)라는 보안 서비스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싶어 했다. 대학 동기인 유대인 루크 노섹이 실리콘밸리에서 피터 틸로부터 투자를 받자 레브친도 틸을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러셀 시먼스와 제러미 스토펠만을 함께 데려갔다. 24살의 맥스는 틸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필등링크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틸은 레브친의 아이디어에 끌렸다. 그는 필드링크 아이디어에 투자 의사를 밝히고 공동 창업을 제안했다. 틸이 CEO로 경영을 맡고, 레브친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기술을 담당했다.

소문이 나자 빠르게 경쟁사들이 나타났다. 이 가운데 하나가 페이팔을 본떠 만든 엘론 머스크의 ‘X.com’이었다. 둘은 경쟁을 피해 2000년 3월 합병했고 엘론 머스크가 대표이사를 맡았다. 또한 ‘X.com’에 투자했던 세쿼이아캐피탈의 유대인 투자자 마이클 모르치가 이사회에 합류했다. 2000년 10월 엘론 머스크와 실무진 사이에 의견차가 심해지자 피터 틸이 페이팔의 대표를 맡게 된다. 이때 우후죽순처럼 기업이 늘어난 온라인 송금 업계에 큰 사건이 터진다. 해커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활약 하면서 허위 정보로 돈을 빼내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도산하는 기업이 많아졌다. 해커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힘들어 하기는 페이팔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가장 실력 있고 악랄한 해커는 러시아의 ‘Igor’였다.

페이팔의 기술이사 레브친에게는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그는 인턴이던 가우스벡과 해커들의 공격을 막기 위한 연구에 몰입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가우스벡 - 레브친 테스트’다. 기계나 컴퓨터가 아닌 사람의 눈으로만 판독 가능한 숫자판 형태다. 그리고 컴퓨터가 허위로 생산한 가짜 정보들을 식별해 내는 솔루션 ‘IGOR’도 발명했다. 프로그램 이름에 아예 해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공로로 MIT는 올해의 발명가로 레브친을 선정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젊은 유대인 창업주들은 여생을 편안히 지내기보다 다시 투자가가 되거나 새로운 창업에 도전한다. 레브친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시기가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해 거금을 손에 쥔 뒤라고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내면을 찾는 생활을 하자며 1년여 간 멋진 해변에서 여자 친구와 놀았다. 하지만 금방 시들해졌다. 자신이 놀기에는 너무 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더구나 ‘게으름은 죄’라는 유대인 고유의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다 핫오어낫(HotOrNot)을 공동창업해 거금을 번 후 회사에 들어온 제임스 홍과 신세한탄을 하며 지내다 둘은 다시 창업의 길로 나섰다. 레브친은 2004년에 사진과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슬라이드닷컴을 만들어 하루 18시간씩 일했다. 그는 2004년 슬라이드닷컴 창업과 동시에 투자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는 페이팔 엔지니어였던 제레미 스토플만이 만든 ‘옐프’의 창업을 도우며 100만 달러를 투자해 현재 옐프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게으름은 죄’ 끊임없는 창업과 투자


레브친은 영화 제작에도 관심을 보여 2005년 틸, 머스크와 함께 영화 <생큐 포 스모킹>의 공동기획자로 참여했다. 2010년에는 구글이 슬라이드닷컴을 1억 82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그는 현재 구글의 이사이기도 하다. 페이팔 이후 그가 창업한 두 번째 회사도 잘 키워 매각에 성공한 것이다.

레브친은 그 뒤에도 야후와 에버노트 이사로 활동하며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핀터레스트(Pinterest)·유누들(YouNoodle)·위페이(WePay) 등 10개가 넘는 회사에 투자했다. 현재는 ‘Kaggle’이라는 대용량 데이터 분석회사 회장이다. 그는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Hard, Valuable, Fun(HVF)’이라는 테크 인큐베이터를 운영하며 투자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레브친이 결국 엘프를 비롯해 현재 관계를 맺고 있는 회사들도 떠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업을 키우는 것보다,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는데 더 큰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유대인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홍익희 - 배재대 교수. KOTRA 근무 32년 가운데 18년을 뉴욕·밀라노·마드리드 등 해외에서 보내며 유대인들을 눈여겨보았다. 유대인들의 경제사적 궤적을 추적한 <유대인 이야기> 등을 썼으며 최근에 <달러 이야기>, <환율전쟁 이야기>, <월가 이야기>를 출간했다.

1273호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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