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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빈부격차’ 

브라질의 열악한 현실 담아 … 세계적으로 자본소득 논란 커져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타.
다섯 살 나이에 구두통을 메고 거리에 나가야 하는 아이가 있다. 가난에 찌들기는 했지만 결코 기가 죽지는 않는다. 천방지축의 장난꾸러기다. 집에는 나를 좋아하는 엄마와 글로리아 누나가 있고, 내가 아끼는 막내동생 루이스가 있다. 언제든 말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 ‘밍기뉴’도 있다. 주머니에는 구슬과 딱지가 가득하다. 친구들과 따먹기를 해서 진 적이 없다. 그러다 나를 정말로 좋아하는 뽀르뚜까 아저씨를 만났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다.

조제 마우로 데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제제는 묻는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는 건가요?” 철이 든다는 것은 인생이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적·돈·자녀·직장 걱정….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근심거리로 가득하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다섯 살 제제의 성장통을 기록한 소설이다. 제제는 조제의 애칭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의 방구시에서 자란 바스콘셀로스의 자전적 경험을 담았다. 1968년 발표되자마자 브라질에서 유례없는 판매기록을 세웠다. 제제는 아버지 실직으로 집이 어려워지자 외곽으로 이사를 갔다. 새 집에서 키 작은 라임오렌지나무를 만난다. ‘밍기뉴’다. 제제는 기분이 좋을 때면 밍기뉴를 ‘슈르루까’라 부른다. 밍기뉴는 제제가 카우보이 놀이를 할 수 있도록 가지를 뻗어 말이 되어 주기도 하고, 제제가 속내를 털어놓고 말할 수 있도록 등을 내 주기도 한다.

브라질의 부실한 복지제도

사람들은 제제의 짓궂은 장난에 ‘속에 악마가 들어있다’며 싫어하지만 사실 제제는 따뜻한 아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지 못한 아빠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구두를 닦아 돈을 마련해 담배선물을 산다. 항상 빈 꽃병인 세실리아 선생님을 위해 깜짝 꽃선물을 한다. 제제는 누구나 만나면 조잘대고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고 상상 놀이를 즐긴다. 불우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했던 ‘빨강머리 앤’과 닮은 점이 많다. 그런 제제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생긴다. 포르투갈인 마누엘 발라디리스다. 제제는 아저씨의 차에 매달렸다가 혼쭐이 난다. 자존심이 상한 제제는 원한을 품는다. “언젠가는 죽여버릴 거야”라고. 하지만 발을 다친 것을 계기로 제제는 아저씨와 가까워진다. 이제 발라디리스는 제제의 동심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어른이 된다. 제제와 함께 드라이브도 하고, 맛난 것도 챙겨준다. 제제는 이제 아저씨를 ‘뽀르뚜까’라 부른다. 포르투갈 사람이라는 뜻의 애칭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면에는 브라질의 부실한 복지제도와 빈부격차가 숨어있다. 제제의 아버지가 실직한 지 6개월 만에 제제 집은 극빈층으로 전락한다.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을 위한 선물 하나를 마련할 수 없을 정도다. 큰 누나인 라라 누나는 공장에서 일을 한다. 엄마도 영국인 방직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한다. 쉬는 날은 일요일 단 하루다. 그런데도 집세는 8개월째 밀려있다. 그런 상황이니 다섯 살 제제가 구두통을 메고 길거리에 나가는 것을 가족들은 당연시 한다. 점심 때 도시락이나 간식을 사간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저자인 바스콘셀로스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920년대 브라질이다. 바스콘셀로스는 1920년 브라질에서 태어났다.

발라디리스는 제제와 대칭되는 부자다. 그의 차는 방구시에서 가장 멋지다. ‘바퀴는 언제나 새것처럼 반짝였고, 차에 달린 쇠붙이들도 사람이 비칠 정도로 빛나는’ 그런 차다. 동네꼬마들이 감히 그의 차에 매달릴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다. 아저씨는 부자촌인 ‘바라웅데까 빠네마공작’ 거리 끝에 산다. 카나리아와 파랑새가 지저귀는 새장 2개를 갖고 있고, 아저씨 혼자 살기에는 큰 집이다. 청소는 도우미가 해준다. 전기료를 내지 못해 등불을 켜야 하는 제제에게 발라디리스 아저씨의 생활은 딴세상이었음이 틀림없다.

역탄력성의 법칙 우려로 자본소득세 대폭 인상 어려워

브라질은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다. 빈부격차를 알 수 있는 국제적 통계가 있다. 지니계수다. 2012년 세계은행의 자료를 보면 브라질의 2012년 지니계수는 0.519다. 1982년 0.579에서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에서 1까지 있다. 1로 갈수록 빈부격차가 크다. 통상 0.4보다 크면 소득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본다. 한국은 2012년 기준 0.311이다.

빈부격차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은 “이상적인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의 소득은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4배 이상 많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잉생산 시대로 접어들고 금융산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양극화는 거침없이 확대됐다. 프랑스 경제학자의 피케티는 빈부격차가 날로 커지는 이유를 자본 소득에서 찾았다. 자본소득이란 이자·배당 등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을 말한다. 근로소득을 누진세율로 매기면서 근로소득으로 인한 소득불평등은 낮췄지만 자본소득은 단일과세가 되면서 빈부격차가 크게 확대됐다고 피케티는 주장했다. 워런 버핏은 “내가 얻은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은 17%지만 내 사무실에서 일하는 비서는 30%가 넘는 세금을 낸다”며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을 올릴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연두교서에서 자본소득세 및 배당이익 최고세율을 28%까지 올릴 것을 제안했다.

한국도 소득세의 최고세율은 38%지만 자본소득은 얼마를 벌든 15.4%로 과세한다. ‘불로소득’으로까지 평가절하 되는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을 양껏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램지의 ‘역탄력성의 법칙’ 때문이다. 역탄력성의 법칙에 따르면 세금도 탄력성이 있다. 세율을 높이더라도 납세자들이 세금을 더 낼 수밖에 없는 세금이 있는가 하면, 세율을 올리면 경제활동 자체를 중단할 수도 있다. 근로소득세는 세금을 올린다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자본소득세는 다르다. 이자와 배당에 대한 세율을 올리면 저축을 적게 하고 주식투자를 하지 않게 된다. 저축률과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세형평성이나 소득재분배를 생각하면 자본소득에 고율의 과세를 매기는 것이 온당해 보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또 있는 셈이다.

제제가 짓궂은 장난을 즐기는 이면에는 지독한 가난이 있다. 제제가 말한 ‘내속의 악마’는 자존심이다. 제제는 굶는 것은 견뎌도 자존심이 상할 때면 여지없이 악마가 됐다. 종이풍선을 찢은 잔디라 누나, 선의로 부른 노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버지, 자신의 자동차에 올라타려 했다는 이유로 망신을 준 발라디리스 아저씨에게는 모진 구타와 매질을 당하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제제 속 ‘악마’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분노하게 되면 사회적 일탈로 이어질 수 있다. 과도한 복지는 국민을 나태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과부족한 복지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복지 수준의 균형점을 어디에 맞출 것인가,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1275호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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