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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으로 화제 모은 루게릭·알츠하이머병 - 아직은 정확한 원인도, 치료제도 없어 

글로벌 제약사도 치료제 개발 난항 … 치명적인 증상 때문에 영화·드라마 단골 소재 


▎영화 [스틸 앨리스]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루게릭병 환자를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줄리안 무어(오른쪽)와 에디 레드메인(왼쪽).
‘난치병이 아카데미의 주인공이다’. 영화계의 축제 아카데미 시상식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지난 2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불치병 환자로 분한 배우가 나란히 남녀 주연상을 차지했다. [스틸 앨리스]의 줄리앤 무어(55)가 여우주연상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에디 레드메인(33)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무어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언어와 기억은 물론 자신의 존재까지도 잊어 가는 50세의 유능한 언어학자 앨리스를 소화했고, 레드메인은 루게릭병 환자의 신체적 변화, 감정의 굴곡 등을 판박이처럼 잡아냈다.


알츠하이머병과 루게릭병은 영화나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알츠하이머병을, [내 사랑 내 곁에]가 루게릭병을 핵심 소재로 다뤘다.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기억과 인지능력을 잃어가는 여주인공을, [내 사랑 내 곁에]는 몸이 굳어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알츠하이머병은 액션 영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딥 블루 씨] 등의 영화에서는 뇌의 기능과 재생력을 향상시키는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사건의 발단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영화가 이들을 소재로 삼는 이유는 병의 증상이 매우 극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알츠하이머병은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 기능이 악화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쉽게 말해 치매를 일으키는 병이다. 이런 점에 주목해 사랑하는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연인, 바보가 돼 가는 천재, 이를 둔 환자 자신의 자괴감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 등이 영화의 소재로 다뤄졌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주요 원인이다. 치매의 원인은 70여 가지로 매우 다양하지만, 이 중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것과 뇌혈관이 막힌 혈관성 치매가 가장 흔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치매 진료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치매 환자 중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 환자가 64.1%로 가장 많았다. ‘상세불명의 치매’가 18.4%, ‘혈관성 치매’가 10% 순이었다.

노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 환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치매환자(상병코드 F00∼03, G301·308∼309) 수는 43만974명이었다. 2013년 38만2017명보다 12.8% 증가했다. 진료비용은 18.8% 늘어 지난해 1조1668억원에 달했다. 2012년과 비교하면 환자 수는 24.8%, 진료비는 43.6%가 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비율은 2008년 8.4%, 2010년 8.8%, 2012년 9.1%로 해마다 치솟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치매 인구는 2030년 127만명, 2050년에는 271만명으로 20년마다 2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알츠하이머 발병률 유방암의 2배 수준”


해외에서도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증가 추세다. 특히 미국의 알츠하이머병 환자수는 5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알츠하이머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67%의 미국 고령 인구에서 알츠하이머가 발생하고 있다. 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대부분의 60세 이상 여성들은 유방암을 가장 크게 걱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유방암 보다 2배 가까이 높다”고 밝혔다.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은 치매 환자 수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2012년 추계에 따르면 일본은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간병이나 지원이 필요한 치매 환자가 305만명에 이른다. 일본 정부에서 시행 중인 간병보험제도에 가입하지 않은 인구까지 감안하면 2012년 시점에서 치매 환자가 약 4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알츠하이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치매 환자는 4435만명에 달한다. 2050년에는 지금의 3배인 1억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학계에선 아직까지 알츠하이머병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단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사망 후 뇌 검사 등 관련 연구를 통해 기억력 장애가 신경세포 사멸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하는 수준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조직을 검사하면 아밀로이드라는 독성 단백질이 덩어리 진 ‘플라그’가 관찰되는데, 이것이 마치 쇠의 녹처럼 뇌 섬유에 껴서 기능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치매치료제 시장은 에자이의 ‘아리셉트’, 노바티스의 ‘엑셀론’, 룬드벡의 ‘레미닐’, 얀센의 ‘에빅사’ 등 4개 품목이 주도하고 있다. 이 중 아리셉트와 그 제네릭(복제의약품)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약은 증상 완화에만 목적을 둔 것으로 근본적인 치료제는 아니다. 약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뇌 내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고갈되지 않도록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AchE)라는 효소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AchE를 억제하면 전신에서 아세틸콜린의 작용이 강해지게 마련이고, 근육경련·피로감·불면증·어지럼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들은 플라그 생성 자체를 억제하는 신약 개발에 공을 들여 왔다. 그러나 세계 굴지의 제약사들도 여기서 잇단 실패의 쓴 맛을 봤다. 대표적인 게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기대를 모았던 ‘솔라네주맵’과 ‘바피뉴주맵’이다. 솔라네주맵을 개발하던 릴리는 2012년 임상실험 실패를 선언했고, 화이자와 존슨앤존슨이 개발 중이던 바피뉴주맵 역시 임상 3상에서 실패한 바 있다. 인지기능 등 개선 평가 목표에 달성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시장 규모 5000억 달러


▎1.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루게릭병 탓에 손가락 두 개만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40년 이상을 살았지만, 이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다. / 2. 지난해 열풍을 일으킨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해 고안된 캠페인이다.
연구·개발(R&D)에 강점을 갖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들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에 연이어 실패하는 것은 중추신경계 약물이다 보니 약물의 메커니즘 자체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목표는 뇌로 전달되는 것인데, 혈뇌장벽(BBB) 등이 뇌조직으로의 물질 이동을 막고 있고, 복합적인 원인균과 질환 자체의 불명확한 원인으로 인해 실패 확률이 높은 것이다.

신약 개발에는 보통 5000억~1조원가량이 든다. 안 그래도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난 상황에서 도박과 같은 모험을 해야 한다는 건 제약사에 큰 부담이다. 그럼에도 알츠하이머 약제 개발에 너도 나도 뛰어들고 있는 건 그만큼 현존하고 있는 약제들이 소수인데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시장 확대 폭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시장 규모는 약 5000억 달러(약 5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에는 1조2000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개발 중심의 제약사들로서는 군침을 삼킬 수밖에 없다. 개발의 어려움 속에서도 점점 확대되고 있는 새로운 블루오션 시장에 대한 글로벌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알츠하이머병이 신경전달 물질의 문제가 뇌에서 나타난 거라면, 루게릭병은 팔다리에서 증상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루게릭병의 정식 명칭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으로 손과 발을 움직이는 등의 자발적 움직임을 조절하는 신경계의 단위를 담당하는 운동 신경원이 손상되면서 근육들이 운동신경의 자극을 받지 못하고 쇠약해지는 병이다. 운동신경세포는 중추신경계와 근육 사이에서 중요한 연결 작용을 한다. 따라서 이 운동신경세포가 죽으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감각신경과 자율신경 등의 장애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즉, 정신은 멀쩡한데 몸만 말을 듣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 못 가누는 루게릭병

루게릭병은 한 해에 10만명 당 1~2명에게서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다. 증상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생기거나 혀와 목 근육 마비로 혀와 입, 목 근육의 힘이 약해져 후두 기능을 상실하면서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워진다. 또 말하는 것과 발음이 힘들어지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가슴과 횡경막 근육까지 영향을 받으면서 호흡근이 약해져 결국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혼자서 숨을 쉬지 못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증상이 발현된 지 3~5년 사이에 호흡마비와 폐렴 등으로 인해 사망한다. 간혹 일부 환자는 10년 이상 살기도 하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다. 그는 현재 40년이 넘게 생존해 있다.

미국 ALS협회에 따르면 이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는 세계적으로 35만명 이상이다. 우리나라에도 2500명 이상이 이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희귀병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루게릭병 환자 수는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루게릭병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09년 2370명에서 2013년 2861명으로 5년 사이 20.7% 증가했다. 50대 후반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데, 드물지만 20~30대에 발병하기도 한다. 남성의 발병률이 여성보다 2배 가까이 높다.

루게릭병은 정확한 발병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제도 없다. 환자의 10% 정도는 유전적인 요인으로 발병한다. 이 중 약 20% 환자에게서 21번 염색체 위의 SOD1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확인되고 있다. ‘SOD1’는 유해성 물질인 ‘활성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유전적 요인이 아닌 나머지 90%는 원인조차 알 수 없다. 바이러스와 알루미늄 및 납 등의 중금속, 흥분성 신경 전달 물질, 칼슘 결합 단백 등과 관계가 있다는 등의 여러 가지 가능성만 제시되고 직접적인 증거는 없는 실정이다.

분명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치료법도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현재는 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치료제만 개발된 상태다. 지금까지 많은 치료제의 개발이 시도되기는 했다. 동물실험에서 수명연장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온 약물이 100가지가 넘고, 이 가운데 8종은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까지 들어갔지만 모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물은 ‘릴루졸’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 또한 2~3개월 정도 생명을 연장하는 수준에 그친다. 근본적인 치료제라고 할 수 없다.

병의 진행 속도 늦추는 약만…

최근에는 국내의 바이오기업 코아스템과 함께 한양대학교병원의 난치성 신경계질환 세포치료센터가 최초의 루게릭병 치료제인 ‘뉴로나타-알’을 개발해 올해 3월 상용화를 계획 중이다. 줄기세포 치료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지만, 이 역시 완치를 기대하기는 힘들고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정도다.

루게릭병 치료제의 개발이 시급한 상황에서 지난해 이슈가 됐던 것이 ‘아이스버킷 챌린지’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미국 ALS(루게릭병) 협회가 루게릭병의 치료방법을 개발하고, 환자들을 돕기 위한 취지에서 고안한 캠페인이다. 캠페인 수행자는 얼음물을 뒤집어 쓰거나 ALS협회에 100달러를 기부하고, 후속 수행자 3명을 지명하는 방식이다. 지난 여름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8000만 달러(약 870억원)이 모금됐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슈화하면서 치료제 개발 지원과 관심 환기라는 원래 의도와는 달리 흥미 본위의 이벤트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1275호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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