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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 파이터’로 나선 인민은행 왜? - 개혁의 필수 조건은 경기 안정 

Global Monitor - 석 달 사이 기준금리 두 번 내려 경기 둔화기에 디플레이션 압력 커져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중국 인민은행이 또 다시 기준금리를 내렸다.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모두 25bp(0.25%포인트) 인하했다. 주말(2월 28일)을 기해 기습적으로 단행된 이번 금리 인하는 상징성이 크다. 연중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정협+전인대)를 앞두고 이뤄진 조치이기 때문이다. 올해 당 지도부 정책방향의 최우선 순위가 경기 안정에 맞춰졌음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리커창 총리를 비롯한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 역시 “순조로운 개혁을 위해서라도 경기 안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중국의 실물경기는 상당히 민감한 지점에 와 있다. 불과 석 달 사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나 인하하고 지준율까지 내렸다는 것은 지금의 경기 상황이 간단치 않다는 방증이다. 무엇보다 인민은행으로선 고조되는 디플레이션 압력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잠시 중국의 소비자물가(CPI) 추이를 보자. 최근 발표된 1월치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비 0.8%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CPI 상승률(소비세인상 효과 포함)이 2.4%를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이런 격세지감도 없다. 2~3년 전만 해도 일본의 소비자물가가 중국의 소비자물가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중국의 소비자물가는 왜 이렇게 급하게 가라앉고 있는 것일까. 국제 유가 급락에다 소비와 투자가 둔화되고 있는 게 주요인이지만, 주변국들의 공격적인 자국통화 절하정책 탓도 크다. 경쟁국(일본과 유로존) 대비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빠르게 절상되면서 본토에선 상대적으로 긴축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즉, 해외로부터 계속해서 디플레이션이 수입되고 있다는 이야긴데, 이론적으로 가격을 낮춘 외국산 재화가 수입되면 물가는 둔화될 수밖에 없으며 자국 산업은 황폐해지게 마련이다.

주변국의 통화 절하정책 영향 커


생산자물가(PPI)의 경우 중국 제조업 내 디플레이션 압력이 30개월 넘게 이어져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외 수요 감소에다, 공급 능력 과잉으로 기업들은 가격 결정력을 상실한 채 마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올 들어 국가통계국이 내놓은 제조업 PMI(구매관리자지수)는 두 달 연속 기준점인 50을 하회하고 있다. 이대로 3월을 보내면 1분기 성장률은 7% 아래로 떨어질 게 뻔하며 경제 주체들의 심리는 더 얼어붙게 된다.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금리 인하를 단행한 인민은행도 이를 간과할 수 없었다.

물가상승률이 둔화된다는 것은 소비자나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근로소득만 유지된다면 물가상승률 둔화는 반겨야 한다. 그러나 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나타나는 디플레이션 압력은 실질금리를 끌어올려 경제 주체들의 부채 부담을 가중시키고 만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디폴트가 빈번해지고 신규 투자가 위축되기 쉽다. 고용시장에도 균열이 나타나게 된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중국의 기존 민간부채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 명목성장률은 어느 정도 돼야 할까. 중국의 지난해와 올해 그리고 향후 몇 년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대략 8% 안팎이다. 중국 내 민간부채는 GDP의 200%, 즉 2배에 달한다. 현재 중국의 평균 대출금리가 대략 6~7% 정도니, 명목 GDP의 2배를 차지하는 부채에서 발생하는 금융비용, 즉 이자는 대략 GDP의 12~14%라는 계산이 나온다. 계산식은 ‘2xGDPx6~7%=GDPx12~14%’이다. 이론상 명목 GDP 성장률이 12~14%가 돼야 경제 주체들이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 부채는 지속되지 못하고 디폴트에 들어가야 한다. 지난해 크고 작은 디폴트가 빈발했던 것은 명목 GDP 성장률이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라앉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따라서 민간의 디폴트를 최소화하려면 이자 부족분에 해당하는 명목 GDP의 4~6%가량을 누군가 메워줘야 한다. 누가? 인민은행이다. 인민은행은 실제로 기준금리를 내리고 지준율도 낮추는 한편 틈틈이 단기 유동성 공급수단을 가동해왔다. 그런데 중국의 금융환경은 오히려 긴축적으로 바뀌고 있다<그래프 참조>. 붉은 선은 블룸버그가 자체 산출하는 중국의 금융환경지수이고, 검은 선은 GDP 성장률 추이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인민은행의 완화조치에도 물가상승률이 빠르게 둔화되면서 실질금리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본토의 자본 유출까지 겹쳐 유동성 환경은 더 팍팍해졌다. 인민은행으로선 제때 제동을 걸지 않으면 ‘경기 위축→디플레이션→디폴트’의 악순환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주농민공의 임금상승률은 5년 만에 처음으로 두 자릿수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이들의 임금상승률은 9.8%를 기록, 피크였던 2011년의 21.2%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올해 임금상승률 역시 작년 수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뉴노멀을 외치는 지도부지만 일자리가 불안해지면 경기방어책의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번 금리 인하는 경착륙과 무질서한 디폴트는 피하겠다는 당국의 의지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실물경기는 그다지 탄력을 받지 못할 것 같다. 신규 투자를 일으키고 내수를 진작하는데 금리 인하는 분명 보탬이 되지만, 이미 과중한 부채와 과잉설비, 주택 부문의 재고를 감안하면 잘해야 현상 유지다. 그나마 원만한 현상유지를 위해선 적기에 재정지출 사업이 이뤄져야만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경기 회복에 마중물을 댈 주체는 정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민은행의 이번 조치로 환율정책 방향은 한결 뚜렷해졌다. 당국 스탠스는 ‘위안화 약세 용인 혹은 유도’로 돌아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절하 속도가 가파르지 않도록 틈틈이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겸할 것이다. 지나친 위안화 절하는 자본 유출을 심화시켜 금융환경을 위축시키고 기업들의 달러 부채 부담을 키우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압박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미국 정치권에서 달러 강세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커지고 있고 보호무역주의 기운이 거세지는 상황이라, 중국의 지나친 위안화 약세 유도는 마찰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중국도 어느 정도 이를 계산에 넣고 움직일 것이다.

‘경기 위축 →디플레이션→디폴트’의 악순환 피할까?

중국으로선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중 환율변동폭을 확대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커졌다. 환율개혁이라는 명분하에 일중 변동폭을 확대하면서 위안화 약세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월이나 4월 중 일중 환율변동폭이 현행 2%에서 3%로 확대된다면 이 때를 전후로 추가 지준율 인하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본토의 자본 유출로 위안유동성이 긴축될 것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수라면 유럽은행(ECB)의 양적완화(QE)가 중국 내 자본흐름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느냐다. ECB 양적완화로 유럽계 자금이 중국으로 밀려든다면 추가 지준율 인하 없이도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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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6호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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