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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초강세의 진짜 이유 - 안전 담보인 국채 부족에 달러 강세 

양적완화로 시장에 국채 말라.... 증시 급등도 같은 맥락 

이공순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미국 달러화가 초강세다. 최근 6개월간 절상 속도는 지난 1980년대 중반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빠르다. 왜 그럴까? 분석가들은 두 가지 요인을 든다. 하나는 미국 경제가 양호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선진국(유럽 및 일본) 중앙은행들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거나 이제 막 시작한 데 반해서, 미국은 반대로 금리를 올리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른바 ‘통화 정책 차별화’다.

그러나 이는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다. 우선, 미국 경제는 서구 경제언론이나 분석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만큼 좋지는 않다. 경기 회복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미국 경제는 지난해 4분기 고작 2.2% 성장률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또 노동시장에서 양적인 개선(실업률, 일자리 차출 등)은 관찰되고 있지만, 질적인 개선(임금 상승)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기준으로 미국 노동자들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로 2% 상승했을 뿐이다. 유가 하락으로 물가 상승률이 하락했기 때문에 실질 임금 상승률은 높아졌지만, 명목 임금 상승률은 중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에 간신히 동행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경제활동 참가율은 여전히 62.8%로 지난 1970년대 후반에 맞먹는 수준이다. 게다가 지난해 말부터는 미국 경제 지표들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지난 1월까지 3개월 연속으로 소비가 감소했고, 핵심 내구재 주문도 감소하고 있다. 공장 가동률도 미약하지만 하락 신호를 보내고 있다. 올 2월 실업률이 5.5%까지 하락한 것 역시 달러화 강세로 실질 구매력이 상승한 미국의 민간 가계가 유흥적 소비 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지난 한해 동안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일자리가 증가한 산업 섹터는 ‘유흥 접대업’이다. 지난해 4분기에는 미국에서 사상 최초로 가계 소비 지출 항목 가운데 ‘외식비’가 ‘가내 식료품비’를 넘어섰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미국의 경기는 달러화 강세에 의존한 내수 소비 섹터(서비스 산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경기회복은 근본 이유 안 돼


경제의 ‘질’은 오히려 악화하는 조짐을 보인다. 달러화 강세로 지난 1월 미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으며, 기업의 매출과 이윤에 부정적인 영향이 커지고 있다. 실시간으로 미국 경제성장률을 추종하는 애틀란타 연준의 국내총생산(GDP) 추정치에 따르면, 올 1분기 미국 성장률은 1.2%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 경기 회복은 달러화 강세 요인으로는 그럴듯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선진국 중앙은행 사이의 통화 정책 차별화가 달러화 강세의 원인일까? 그 전에 먼저 유럽·일본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가 미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 15일 미국 국채 시장에서는 반나절 만에 미 국채 가격이 25% 이상 폭등(10년물 기준)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미국 국채시장은 전세계 모든 채권 시장 가운데 가장 유동성이 풍부하며 가격 안정성을 자랑하는 곳이다. 분석가들은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소행성이 지구를 강타해 생물 대 멸종이 발생할 확률과 유사하다며 경악했다. 왜 이런 이벤트가 벌어진 것일까?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국채 시장의 유동성이 말라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변동성 확대를 의미한다.국채 시장의 유동성은 얼마나 감소했을까? 1년 전에는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고 2억8000만 달러어치의 거래가 가능했다. JP모건에 따르면 이제 그 액수는 8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유동성 감소는) 우리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다. 우리가 나가고 싶을 때(매도하고 싶을 때) 팔고 나가지 못 할 가능성이 있다.” 850억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는 페이드앤리 걸의 매니저 제임스 사르니의 말이다. 이처럼 국채 시장 유동성이 감소한 원인은 의외로 뜻밖의 곳에 있다. 노바스코티아은행의 수석 국채 딜러인 찰스 코민스키는 “매수세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국채가 (시장에) 없다”고 분석한다.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국채 물량이 모자랐던 것이다. 노바스코티아는 미 재무부의 21개 프라이머리 딜러 중의 하나다. 프라이머리 딜러들은 국채를 매입해 시장에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전세계의 유동성 공급자다.

왜 이 같은 국채 부족 현상이 발생했을까? 규제도 역할을 했다. 연기금이나 보험회사들은 안전 자산인 국채 의무 보유 비율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미 연준이 양적완화를 통해 시장에서 국채를 회수해갔기 때문이다. 이는 연준의 양적완화가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 2013년 여름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대부분의 금융 거래에는 담보가 요구된다. 무려 450조 달러 규모인 금리 스왑 파생상품의 경우에는 안전 자산인 미 국채가 주로 담보 자산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담보인 국채 물량이 감소하자, 시장 참여자들은 국채보다는 신용등급이 낮은 그 다음 담보로 몰려들게 된다. 그것이 바로 회사채였다. 따라서 국채 수익률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회사채 수익률과의 스프레드(수익률 격차)도 낮아졌다. 동시에 이처럼 낮은 스프레드는 기업의 금융 부담을 크게 감소시킨다. 따라서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며, 이에 따라 주가가 상승한다. 그리고 이 같은 주가 상승을 겨냥하고 더 많은 투기적 포지션이 설정된다.

동시에 기업들로서는 기존 업체들의 금융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제품 가격을 낮출 여력이 증가한다. 이는 반대로 신생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경쟁이 감소한다. 경쟁이 감소하면, 기업들은 굳이 생산설비에 투자할 유인을 느끼지 못한다. 이 같은 과정이 한 섹터가 아니라, 전 산업과 금융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기존 설비를 보수해 가동하는 것에 만족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윤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의 생산설비 연한이 평균 8년을 넘어 사상 최장치에 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이 투자보다 자사주를 매입하는 이유

즉, 이런 조건 하에서는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으며, 따라서 고용도 아주 완만하게만 증가한다. 동시에 기업들은 금융 비용 감소 및 경쟁 약화에 따른 추가 이윤을 새로이 생산에 투자할 유인이 감소하기 때문에 이를 현금 형태로 보유하거나, 혹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금 증액과 같은 주주 이익에 돌린다. 그리고 경쟁 압박의 감소와 자사주 매입은 다시 기업 밸류에이션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과 같이 완전 독점이 보장되며, 경쟁으로 인한 자본 파괴(경쟁 생산시설의 파괴)가 존재하지 않는 환경 하에서는 굳이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기업 생산성 하락의 진정한 원인이며, 낮은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이유다.

이런 조건 하에서는 기업은 투자를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훨씬 금융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장사에 해당한다. 바로 이것이 양적완화 정책의 성공 비밀이었다. 또한 이는 미국 기업들이 그만큼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기업이 망하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기업의 부도 위험 평가치는 크게 낮아지며, 이는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크게 줄인다. 지난 2월 중에 미국 경제 지표가 그토록 부진 했음에도 미 증시가 큰 폭으로 상승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업들은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보이자, 투자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사주 매입을 늘렸다. 심지어 올해 매출 전망치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는데도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 규모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의 자사주 매입 발표 규모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것이 지난 2월 미국 증시가 급등한 가장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10월 15일 미 국채시장의 ‘이벤트’는 이 같은 국채 부족 현상을 극단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담보 부족 현상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금융 시장 내에서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기존 거래를 청산토록 하는 압력이 나타난다. 즉, 거래 당사자들 사이에 상대방이 보유한 담보(국채) 가격의 변동성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추가 담보를 요구하거나 혹은 아예 거래를 청산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어느 한곳에서 이 같은 청산 압력이 나타나면 이는 연쇄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즉, 매도가 매도를 부르거나, 매수가 매수를 부르는 ‘파이어 세일 또는 파이어 바이(fire sale or buy)’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거래 청산 압력으로 달러화 유동성 감소

미국 달러화는 전세계 금융 거래의 기본 통화이기 때문에 이같은 담보 부족으로 인한 거래 청산 압력이 나타나면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다. 즉, 시장에서 거래가 감소하고, 이는 금융 거래 수단인 화폐의 유동성을 감소시킨다. 다른 말로 해서, 달러화가 갑자기 시장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달러화가 희귀해지면, 달러화 가격이 폭등한다. 이것이 소위 달러화 강세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국채 부족으로 인한 거래의 청산 압력 때문에 시장에서 달러화 유동성이 감소했고, 이것이 달러화 강세를 불러온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더 많은 부채를 발행하든지,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재개하거나 금리를 낮춤으로써 기존 담보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여주든지, 중앙은행들이 보유 자산를 시장에 매각하든지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미 연준은 지난 1월 FOMC 회의에서 보유 자산(미 국채와 모기지 담보부 채권)을 시중에 매각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선진국 정부들은 긴축 명목 하에 국가 부채를 늘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연간으로 부채는 증가하고 있지만, 이제까지 상승한 자산 가격을 뒷받침할 수 있거나, 혹은 추가로 상승을 이끌어낼 만한 정도의 국채 발행은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쌓이는데 연준이 여기서 양적완화를 재개할 도리도 없다. 오히려 금리 인상을 서둘러야 하는 형편이다.

미·일·EU, 사실상 국제공조

지난해 11월의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확대나 3월 초부터 시행되는 유럽중앙은행의 통화 완화 정책이 국제 금융 시장에서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해결책 가운데 두 번째를 선택한 것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의한 것이든, 또는 연준의 금리 인상 시그널에 반응한 것이든 간에, 국채 수익률이 상승 추세(국채 가격 하락)에 있다. 만일 외부에서 사주지 않는다면, 누가 미국 국채를 사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 대답은 유럽·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에 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통화정책 차별화지만 실상은 미 국채 시장의 동요로 전세계 금융 시장이 뒤집히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현상은 환율 전쟁이 아니라, ‘누이 좋고 매부 좋고’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는 마치 겉으로는 통화정책 차별화 때문에 유로화는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는 것처럼 나타난다. 그러나 일단 이 수익률 추구 메커니즘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미 국채 시장이 안정되고, 달러 강세도 멈출 수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럽·일본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더 빠른 속도로 국채를 퇴장시켜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한계에 봉착한다.

비유하자면, 현재의 세계 자산 시장은 간신히 평형을 유지하는 자전거와 같아서 속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휘청거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돌아가면서 페달을 밟고(QE) 있는 중이다. 왜 달러화가 강세가 되는가? 그것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국제 통화체제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라는 불을 질렀기 때문이며, 자산 버블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도달했다는 징후이기도 하다. 이 자전거 여행은 몹시 험난할 것이다.

- 국제경제 분석 전문 매체 Global Monitor 특약

1277호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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