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회복은 근본 이유 안 돼
기업이 투자보다 자사주를 매입하는 이유즉, 이런 조건 하에서는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으며, 따라서 고용도 아주 완만하게만 증가한다. 동시에 기업들은 금융 비용 감소 및 경쟁 약화에 따른 추가 이윤을 새로이 생산에 투자할 유인이 감소하기 때문에 이를 현금 형태로 보유하거나, 혹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금 증액과 같은 주주 이익에 돌린다. 그리고 경쟁 압박의 감소와 자사주 매입은 다시 기업 밸류에이션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과 같이 완전 독점이 보장되며, 경쟁으로 인한 자본 파괴(경쟁 생산시설의 파괴)가 존재하지 않는 환경 하에서는 굳이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기업 생산성 하락의 진정한 원인이며, 낮은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이유다.이런 조건 하에서는 기업은 투자를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훨씬 금융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장사에 해당한다. 바로 이것이 양적완화 정책의 성공 비밀이었다. 또한 이는 미국 기업들이 그만큼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기업이 망하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기업의 부도 위험 평가치는 크게 낮아지며, 이는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크게 줄인다. 지난 2월 중에 미국 경제 지표가 그토록 부진 했음에도 미 증시가 큰 폭으로 상승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업들은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보이자, 투자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사주 매입을 늘렸다. 심지어 올해 매출 전망치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는데도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 규모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의 자사주 매입 발표 규모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것이 지난 2월 미국 증시가 급등한 가장 중요한 이유다.지난해 10월 15일 미 국채시장의 ‘이벤트’는 이 같은 국채 부족 현상을 극단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담보 부족 현상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금융 시장 내에서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기존 거래를 청산토록 하는 압력이 나타난다. 즉, 거래 당사자들 사이에 상대방이 보유한 담보(국채) 가격의 변동성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추가 담보를 요구하거나 혹은 아예 거래를 청산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어느 한곳에서 이 같은 청산 압력이 나타나면 이는 연쇄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즉, 매도가 매도를 부르거나, 매수가 매수를 부르는 ‘파이어 세일 또는 파이어 바이(fire sale or buy)’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거래 청산 압력으로 달러화 유동성 감소미국 달러화는 전세계 금융 거래의 기본 통화이기 때문에 이같은 담보 부족으로 인한 거래 청산 압력이 나타나면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다. 즉, 시장에서 거래가 감소하고, 이는 금융 거래 수단인 화폐의 유동성을 감소시킨다. 다른 말로 해서, 달러화가 갑자기 시장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달러화가 희귀해지면, 달러화 가격이 폭등한다. 이것이 소위 달러화 강세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즉, 국채 부족으로 인한 거래의 청산 압력 때문에 시장에서 달러화 유동성이 감소했고, 이것이 달러화 강세를 불러온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더 많은 부채를 발행하든지,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재개하거나 금리를 낮춤으로써 기존 담보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여주든지, 중앙은행들이 보유 자산를 시장에 매각하든지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그러나 미 연준은 지난 1월 FOMC 회의에서 보유 자산(미 국채와 모기지 담보부 채권)을 시중에 매각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선진국 정부들은 긴축 명목 하에 국가 부채를 늘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연간으로 부채는 증가하고 있지만, 이제까지 상승한 자산 가격을 뒷받침할 수 있거나, 혹은 추가로 상승을 이끌어낼 만한 정도의 국채 발행은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쌓이는데 연준이 여기서 양적완화를 재개할 도리도 없다. 오히려 금리 인상을 서둘러야 하는 형편이다.
미·일·EU, 사실상 국제공조지난해 11월의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확대나 3월 초부터 시행되는 유럽중앙은행의 통화 완화 정책이 국제 금융 시장에서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해결책 가운데 두 번째를 선택한 것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의한 것이든, 또는 연준의 금리 인상 시그널에 반응한 것이든 간에, 국채 수익률이 상승 추세(국채 가격 하락)에 있다. 만일 외부에서 사주지 않는다면, 누가 미국 국채를 사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 대답은 유럽·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에 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통화정책 차별화지만 실상은 미 국채 시장의 동요로 전세계 금융 시장이 뒤집히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현상은 환율 전쟁이 아니라, ‘누이 좋고 매부 좋고’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는 마치 겉으로는 통화정책 차별화 때문에 유로화는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는 것처럼 나타난다. 그러나 일단 이 수익률 추구 메커니즘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미 국채 시장이 안정되고, 달러 강세도 멈출 수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럽·일본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더 빠른 속도로 국채를 퇴장시켜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한계에 봉착한다.비유하자면, 현재의 세계 자산 시장은 간신히 평형을 유지하는 자전거와 같아서 속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휘청거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돌아가면서 페달을 밟고(QE) 있는 중이다. 왜 달러화가 강세가 되는가? 그것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국제 통화체제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라는 불을 질렀기 때문이며, 자산 버블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도달했다는 징후이기도 하다. 이 자전거 여행은 몹시 험난할 것이다.- 국제경제 분석 전문 매체 Global Monitor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