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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 천자의 아버지도 법 앞에 예외 아니다 

실록서 왕의 측근 처벌에 자주 인용 … 특권계층 생기면 법 기강 흔들려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문종 1년 9월 26일. 사헌부 관리들이 승려에게 칼(枷·형틀)을 씌워 끌고 가는 모습을 목격한 수양대군은 화를 내며 당장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도첩(度牒·신분증)이 없는 승려를 규정에 따라 한양에서 추방하기 위해서라지만,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형틀을 채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이 문제를 보고 받은 문종도 죄가 없는 사람에게 칼을 씌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련해 신하들은 수양대군을 탄핵했다. 관리의 행위에 잘못이 있다면 절차에 따라 책임을 물을 일이지 해당 업무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수양대군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군이고, 왕의 동생이라도 엄연한 월권행위였다.

효와 법 사이서 갈등한 순 임금

“도응(桃應)이 맹자에게 ‘순(舜)임금이 천자가 되고, 고요(皐陶)가 형벌을 관장하게 되었는데, 고수가 살인을 하였다면 어찌하겠습니까?’하고 물으니, 맹자는 ‘(법을) 집행할 따름이다’라 하였습니다. 이번에 수양대군이 사헌부에서 이송하고 있던 중을 탈취하고 칼을 벗기어 데리고 갔으니, 승려를 형틀에 씌워 끌고간 사헌부의 행동이 옳았느냐 잘못됐느냐와 별개로, 관리의 공적인 법 집행을 사사로이 방해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청컨대 수양대군의 죄를 물으소서.”(문종1.10.4). 사헌부 우정언(右正言) 윤서(尹恕) 등은 “이 일은 비록 사소하지만 사소하다 하여 처벌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찌 될지 그 조짐이 두렵습니다”라며 수양대군에 대한 견책을 요구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고수는 순 임금의 아버지다. 성인(聖人)으로 추앙 받는 아들과 달리 성품이 좋지 못했으며 다른 아들과 모의하여 여러 차례 순을 죽이려 들었다고 [사기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순은 지극한 효성으로 변함없이 고수를 섬긴다. [맹자]의 ‘진심(盡心)’장에 보면 순 임금과 고수를 두고 맹자의 제자인 도응이 스승에게 질문을 하는데, 위의 상소에서 인용된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문답에 이어 도응은 “순 임금이 자신의 아버지를 구속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으니, 맹자는 “순 임금이 어찌 금지하시겠는가”라며 “법은 감히 사사로이 할 수 없다”고 답했다. 효성이 깊은 순 임금이 법을 어길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버지가 죽는 것을 방관할 수도 없어 천자의 지위를 버리고 몰래 아버지와 도망을 가 숨어 살 것이라는 예측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법을 집행하는 관리는 형벌의 원칙과 위법 여부만을 판단해야지 대상의 지위고하를 고려해서는 안 된다. 천자와 같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절대로 사사로이 법을 좌지우지하려 하지 말고 앞장 서 준수하는 모범을 보여주라는 것이 맹자가 전하는 메시지다.

[맹자]의 이 대목은 실록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법을 어긴 왕족이나 고위직 신하, 왕의 측근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강조하며 인용되었다. 법은 천자의 아버지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정종 때 장사정(張思靖)이라는 무신(武臣)이 살인죄로 체포되었지만 개국공신이자 정사공신(定社功臣)이라는 이유로 귀양을 가는 데 그쳤다.그러자 사헌부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무거운 죄는 없습니다. 더욱이 장사정이 저지른 살인은 매우 잔인하여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전하께서는 마땅히 공의(公義)로 처리하셔야 합니다. 옛적에 함구몽(咸丘蒙, ‘도응’의 잘못)이 맹자에게 순 임금이 천자가 되고 고요가 사(士)로 있는데, 고수가 살인을 했다면 어찌 되겠냐고 물으니 맹자는 마땅히 구속했을 것이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살인을 하게 되면 설령 천자의 아버지라 할지라도 체포해 죄를 주는 것인데 하물며 공신이겠습니까? 장사정은 험하고 잔인하고 포학하고 패려하여, 자신이 공신임을 믿고 방자히 백주 대낮 길 한 가운데서 3품관의 아내를 마음대로 죽였고, 이웃 남녀들을 매질하여 임신한 여자가 거의 죽기에 이르렀습니다. 대체 장사정이란 자는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이와 같이 한단 말입니까? 법에 반드시 주살(誅殺)하도록 되어 있으니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 합니다”는 강경한 상소를 올렸다(정종1.5.21).

태종이 처남 민무회의 죄를 덮어주자 “순 임금은 그 아비에게 혜택을 베풀지 않았고 고요도 천자의 아버지라 하여 법을 폐하지 않았는데, 그저 친척일 뿐인 민무회에게 사적인 은혜를 보이는 것이 옳은 것인가?”는 비판이 나왔다(태종15.5.11). 성종 때 왕족 창원군이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도 신하들은 위의 구절을 거론하며 “법은 친하고 귀하다 하여 흔들 수 없습니다. 법이 낮아졌다 높아졌다 하면 어찌 백성이 평안히 살 수 있겠습니까? 옛날 성군들은 법을 엄격히 준수하였으니, 그래야 법이 신뢰를 받고 조정이 의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중략)…순 임금이 천자였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구하지 못한 것은 고수를 체포한 것이 바로 ‘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창원군이 비록 전하의 존속이기는 하나 순과 고수의 관계에 비하겠습니까? 순도 아버지를 위해 법을 사사로이 하지 못하였는데, 전하께서는 감히 창원군을 위해 법을 사사로이 하고자 하십니까?”라고 창원군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주청했다(성종9.3.14).


‘누구에게든 법은 하나’

얼마 전, 종영한 한 드라마에서는 ‘법은 하나야. 나한테도 당신 한테도’라는 대사가 자주 등장했다. 약자에게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자신에게는 관대한 지도층의 위선을 폭로하는 데 쓰인 이 말은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함을 환기시킨다. 비단 법뿐만이 아니다. 기업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집단에는 많든 적든 조직을 구축하고 운영하기 위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규칙이 불평등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기업의 오너 등 최고 지도부는 규칙을 만들 때부터 아예 자신들을 예외대상으로 만든다. 규칙을 어기더라도 상대적으로 관대한 징계를 받곤 한다. 같은 구성원이지만 규칙위에 존재하는 특권계층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규칙은 온전히 작동되지 않고 규칙을 근거로 세워진 조직도 흔들리게 된다. 결정적인 단초가 주어진다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규칙이 불평등해지면서 그것이 갖는 권위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맹자]에 소개된 순 임금과 고요, 고수의 비유가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 이유다.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278호 (201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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