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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가전·자동차산업에서 치열한 ‘소재 전쟁’ ... 촉감이 중요한 차별화 요인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5에 전시된 스테인리스 외관의 가전제품.
독특한 디자인, 탁월한 기능, 세련된 브랜드 로고….모두 기업이 제품을 차별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이다. 최근에는 이 중에서도 디자인의 아주 작은 요소인 ‘재질’이 새로운 경쟁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는 다채로운 오감 중에서 손끝으로 느끼는 감각인 ‘촉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어서다.

촉감을 통한 차별화를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건 패션 분야다. 패션에서 촉감은 사실 표현하기 쉬운 감각은 아니다. 개성 있는 디자인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단숨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재질적인 차별화를 꾀한 옷이라면 손으로 직접 만져보기 전에는 차이를 쉽게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패션계의 화두는 디자인도, 색상도 아닌 소재다. 2014년 패션계를 강타한 네오플랜 소재의 의류가 대표적인 사례다. 잠수복 소재로 유명한 네오플랜은 구김이 잘 가지 않는데다 체형 커버에도 효과적이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세련된 질감의 차이에서 오는 독특한 아우라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도 소재 전쟁이 한창이다. 고가 명품을 뜻하는 ‘위버 럭셔리(uber-luxury)’라 불리는 사치품 브랜드에선 자사만의 독특한 디자인과 로고를 앞세우기보단 지독할 정도로 무난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이태리 수공예 가죽 브랜드 발렉스트라(Valextra)는 최상의 가죽을 쓰고 수준 높은 마감 처리를 하지만 로고를 감추기로 유명하다. 가방 디자인도 자사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나타내기엔 지극히 평범하다. 대신 이들이 선택한 무기는 소재다. 재질에서 느껴지는 미묘하지만 세련된 질감의 차이로, 언뜻 보기엔 평범하게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것이다.

가구나 생활용품에서도 재질적 차별화가 발견된다. 한동안 한국 주부들은 아기자기한 디자인에 총천연색 컬러의 향연으로 이루어진6 ‘프로방스 스타일’의 인테리어에 열광했다. 하지만 이젠 북유럽 스타일의 심플한 디자인에 푹 빠져 있다. 예전 스타일에 비해 직선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스칸디나비아 가구 역시 핵심적인 차별화 요인은 다름아닌 소재다. 원래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나무 소재는 물론이고,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나 따뜻한 패브릭의 느낌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국내에 성공적으로 뿌리 내린 이케아는 물론이고 서울 한남동과 이태원 일대에 자리 잡은 각종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을 돌아보면, 디자인은 극도로 심플하게 그러나 소재에 온 힘을 준 생활 소품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패션에서부터 시작된 소재 전쟁은 이제 다른 산업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플라스틱 일변도이던 스마트폰에도 소재 전쟁이 치열하다. 데님섬유·메탈 등 다양한 소재를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충격이나 흠집을 방지해 내구성을 강화하면서도 질감과 그립감을 살려 사용자의 감성적 경험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 손에 착 감기면서 달라붙는 듯한 촉감과 광택은 소비자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후 애플은 지속적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의 신소재를 채용하며 소비자들의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 노트3를 출시하면서 후면 케이스에 가죽느낌의 스티치 마감을 시도해 아날로그적인 부드러운 질감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생활가전 부문에서도, 프리미엄 제품이 되려면 소재부터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한 때 냉장고·세탁기와 같은 생활가전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기술적 요소와 기능적 요소로 차별화해야 했다. 예를 들어 에너지 효율이 1등급이어야 하거나, 냉각기 모터가 두 개 이상이라던가, 살균기능이 추가됐다거나 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고가 라인 대열에 들어서려면 소재 측면에서의 차별화가 급선무다. 스테인리스 외관을 자랑하는 냉장고와 세탁기는 평범한 백색 가전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훨씬 더 잘 팔린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소재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고민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에서의 소재 전쟁은 시트와 같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볼보자동차는 자동차 시트 가죽을 천연물질로 가공하고, 금속 제품에 대해서도 알레르기 테스트를 실시하는 등 자재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엄격하게 자제를 선정해 소비자의 접촉성 알레르기를 예방한다는 목적에서다. 덕분에 볼보자동차의 V40 모델은 ‘스웨덴 천식·알러지 협회’로부터 ‘올해의 건강한 환경을 구현한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산업에서 디자인 차별화와 성능 차별화를 넘어, 사소하다면 사소한 소재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특별한 소재를 채택해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가령 노트북이라면 가볍고, 스크래치가 잘나지 않으면서도, 외부 충격에 강한 소재를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소재는 단지 기능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걸 만져볼 때 손끝의 감촉으로 전해지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 차별적인 소재에서 ‘프리미엄함’을 지각할 만큼 소비자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내가 이만큼 세련된 사람이다’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디자인적 차별화만 신경 쓰던 사람들이, 이젠 예민하고 소소한 감각인 촉감에까지 신경쓰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기능 강화 이상의 의미

고가 패션 제품을 중심으로 ‘놈코어(Normcore)’ 스타일이 확산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놈코어(normcore)는 평범을 뜻하는 노멀(normal)과 단호한·철저한을 뜻하는 하드코어(hardcore)가 결합한 신조어다. 일부러 소박하고 평범한 것을 택해 오히려 더 스타일리쉬하고 럭셔리함을 드러내는 현상을 뜻한다. 뉴욕의 트렌드 분석기관인 K-Hole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이 단어는 품격 있는 소재가 곧 제품의 가치를 좌우하는 현상으로 확대돼 사용되고 있다.

약 5년 전만 하더라도 백색가전의 대명사인 냉장고가 메탈의 옷을 입을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스테인리스 재질이라 해서 음식이 더 오래 보관되는 것도 아니므로, 당시 소비자들은 외관 소재를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 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1277호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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