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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SWOT 분석’ 

강점 살리고 약점은 보완 … 기회는 잡고 위협은 회피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월 26일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한단다.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해. 그리되문 옥희는 언제나 손가락질 받구, 옥희는 커두 시집도 훌륭한데 못가구,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에 그까짓 화냥년 딸이라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

엄마가 여섯살 옥희를 붙잡고 결심한 듯 말한다. 1930년대. 그 시대는 과부가 총각과 재혼하기는 쉽지 않았다.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스물네살 청상과부인 어머니와 사랑방에서 하숙하는 아저씨와의 미묘한 애정심리를 다룬다. 1935년 [조광]지에 발표됐다. 아저씨는 죽은 아빠의 친구다. 이야기는 여섯살 옥희의 시선을 따라 간다. 태어나기 한 달 전 아빠가 죽어 나(옥희)는 아빠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라는 유복자다. 엄마와 나, 그리고 외삼촌이 사는 이 집에 낯선 아저씨가 들어온다. 동네 교사로 부임한 아저씨는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 우리집에 하숙하기로 한 것이다. 아저씨는 외삼촌과 사랑을 나눠 사용한다. 이른바 ‘셰어하우스’다.

나는 아저씨가 좋다. 아저씨 무릎에 앉아 그림책을 보기도 하고, 아저씨와 삶은 달걀을 나눠 먹기도 한다. 어느 날은 아저씨와 함께 뒷동산에 놀러갔다. 친절한 이 아저씨가 진짜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유치원에서 꽃을 가져와 엄마에게 주면서 “사랑아저씨가 엄마에게 갖다주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했더니 엄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하루는 아저씨가 준 하얀봉투를 엄마에게 전해줬더니 엄마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봉투 속 하얀 종이를 든 엄마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글을 다 읽고 난 뒤 그 종이를 든 엄마의 손이 이제 와들와들 떨린다.

아저씨의 사랑은 엄마의 새로운 기회

사랑 아저씨의 편지에는 무엇이 쓰여있었을까? 소설은 말하지 않지만 아마도 엄마에 대한 사랑고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엄마는 이날밤 잠을 좀처럼 자지 못한다. 잠을 들기 위해 옥희와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한 구절에서 반복한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시험에 들지 말게…시험에 들지 말게….”

엄마는 아저씨의 고백을 받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엄마의 이런저런 고민은 ‘SWOT 분석’으로도 정리할 수 있다. SWOT분석이란 기업의 내부 환경과 외부 환경을 분석해 강점(strength)·약점(weakness)·기회(opportunity)·위협(threat) 등 네 가지로 들여다보는 경영판단 기법을 말한다. 미국의 경영컨설턴트인 알버트 험프리(Albert Humphrey)가 고안했다.

강점(S)과 약점(W)은 내부 환경에 대한 분석이다. 내부 환경이란 분석 대상 자체를 말한다. 분석 대상이 가진 장점은 강점(S)으로, 단점은 약점(W)으로 표기한다. 예컨대 상품이라면 가격 경쟁력, 생산성, 브랜드 인지도 등에 관한 장점과 약점을 말한다. 기회(O)와 위협(T)은 외부 환경에 대한 분석이다. 외부 환경은 분석 대상을 둘러싼 경제·정치·문화적 환경을 말한다. 기회(O)는 외부 환경의 장점이고, 위협(T)은 외부 환경의 단점이다. 상품이라면 경기 상황, 소비자 기호 변화, 정부 규제 여부 등이 포함된다.

엄마가 사랑아저씨의 고백을 받아들였 때의 SWOT 분석을 해보자. 강점(S)은 사랑아저씨는 엄마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엄마도 아저씨를 좋아한다. 엄마는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조금 있고, 아저씨는 교사라 먹고사는 데도 문제가 없다. 약점(W)은 엄마는 어찌됐든 과부라는 것이다. 또 옥희라는 아이까지 딸렸다. 아저씨가 죽은 아빠의 친구라는 것도 불편하다. 엄마로서는 아빠에 대한 죄책감이 들 수 있다. 기회(O)는 옥희에게 좋은 아빠가 생긴다는 점이다. 옥희는 엄마에게 “나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조른다. 옥희로서는 같이 놀러갈 아빠가 생기고, 아빠가 없어 생기는 빈공간도 메워진다. ‘옥희만 믿고 살겠다’는 엄마로서는 옥희를 잘 키우기 위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위협(T)은 주변의 눈이다. 1930년대만 해도 과부의 재가를 보는 눈이 차가웠다. 엄마가 옥희에게 “화냥년이라고 욕한단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행여 딸이 주변으로부터 욕을 듣다가 어긋나거나 잘못될까 엄마는 두렵다.

SWOT 분석 끝에 엄마가 내린 결론은 ‘거절’이었다. 엄마는 위협(T)을 극복하지 못했다. 엄마는 나에게 손수건을 주며 아저씨에게 갖다주라고 한다. 손수건 안에 무슨 종이가 있는 것 같다. 손수건을 받은 아저씨의 얼굴이 몹시 파래진다.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면서 말 한마디도 못한다. 여러 밤이 지난 날 아저씨는 짐을 싸고 떠난다. 옥희와 엄마는 뒷동산에 오른다. 멀리 떠나는 기차가 보인다. 기차는 아마 아저씨를 태웠을 것이다.

SWOT 분석은 자신의 강점은 최대한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며, 외부로부터 온 기회는 최대한 살리고, 위협은 피하기 위해 고안됐다. 때문에 단지 분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네 가지 경영전략을 세우는 데도 유용하다. SO전략이란 강점(S)을 살려 기회(O)를 포착하는 전략이다. ST전략은 강점(S)을 살려 위협(T)을 피하는 전략이다. WO전략은 약점(W)을 보완해 기회(O)를 포착하는 전략이다. WT전략은 약점(W)을 보완해 위협(T)을 회피한다.

만약 엄마가 재가하려는 욕심만 있었더라면 여러 전략을 채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위협(T), 즉 사회적 비난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ST나 WT전략을 쓸 수 있다. ST전략은 엄마와 사랑아저씨의 사랑을 강조해 사회적 비난을 설득하는 방식이다. WT전략은 아저씨도 결혼한 뒤 이혼해 ‘돌싱남’이 된다는 가정 하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엄마와 아저씨는 둘 다 재혼의 입장이라 사회적 비난이 약화될 수 있다.

사회적 비난이란 위협 요소 결국 극복 못해

원제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이지만 많은 사람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기억한다. 1961년 신상옥 감독이 만든 영화 제목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저자 주요한은 1919년 3·1운동 당시 지하신문을 발간하다 출판법 위반으로 10개월 형을 받았다. 중국에서 머물던 1943년에는 일본의 대륙침략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방령을 받아 귀국한 전력도 있다. 하지만 대표작인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저자로 각인되면서 문제성을 지닌 작가가 아닌, 연애소설을 쓴 작가로 평가절하된 경향이 있다. 이 작품은 1935년 발표됐다. 그로부터 80년 뒤인 2015년 한국 사회에서는 기혼남녀의 간통죄가 폐지됐다. 기혼자의 만남을 주선하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 ‘애슐리 매디슨’도 한국 서비스를 재개했다. 사별한 이혼녀의 재혼도 어려웠던 시대에 살았던 주요섭이 본다면 기절초풍할 변화가 아닌지 모를 일이다.

1277호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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