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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여움·두려움·호감·걱정 모두 경계해야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감정 조절은 임금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공동체와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루에도 수없이 내려야 하는 임금은 반드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바르게 헤아리고 옳게 판단할 수 있다. 좋아하고 즐기는 감정에 취해 이면에 숨겨진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두려움이나 걱정하는 마음이 지나쳐 결단을 내리지 못하며, 노여움으로 인해 판단이 흐려지게 되면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여움은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 사람은 분노에 휩싸이게 되면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현종이 보여준 사례가 대표적이다. 1664(현종5)년 4월. 갈수록 심화되는 당쟁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오던 현종이 폭발했다. 이조에서 지나칠 정도로 당파에 치우친 인사서류를 올린 것이다. 화가 난 현종은 인사 안을 180도 뒤집고 담당 관리를 모두 파직했다. 대간이 이를 비판하자 자기 붕당만 위한다며 지방관으로 쫓아냈다. 재상 정태화가 극구 만류했지만 “요즘 보면 하는 짓들이 너무 속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벌을 내린 것이다”며 철회하지 않았다(현종5.4.20). 더욱이 해당 붕당의 관료들이 업무를 거부하고 성균관 ‘공관(空館, 동맹휴업)’을 하는 등 반발하자 현종은 더욱 진노하며 강경 조치를 취한다. 당사자를 해임하고 공개 탄핵했으며 유생들의 과거시험 응시자격을 정지시켰다. 성균관의 빈자리도 반대 붕당의 유생들로 채우게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살펴 달라”고 신하들이 거듭 요청했지만 현종은 “오로지 자기 당류를 두둔하고 임금을 업신여기려고 한다”며(同.4.21) “그대들이 비록 일만 번 시끄럽게 굴어도 끝내 이익 될 게 없을 것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며 요지부동이었다(同.4.22).이 사태는 시간이 흘러 현종의 분노가 잦아들면서 진정되어 갔지만, 현종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만약 현종이 신하들의 잘못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대의와 원칙에 따라 이를 징계했다면 신하들은 감히 반발하지 못했을 것이고, 현종은 정국의 주도권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를 조절하지 못해 절차를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함으로써 간언을 억압하고 선비를 함부로 대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송준길은 이런 현종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진언한다. ‘성상께서 이런 분부를 내리신 것은 안타깝게도 분노로 인해 올바름을 얻지 못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요즘 화가 난 마음에서 하신 명령들, 이를테면 인사담당 관리를 파직하고 직첩을 회수한 것, 대각의 신하를 지방관으로 내보낸 것, 관학 유생들을 부황하고 정거시킨 일 등에 대해서 모두 밝게 성찰하신 후 도로 거두어 들여 후회하고 사과하는 뜻을 보여주시옵소서. 그리 되면 해와 달이 다시 밝아지는 것과 같아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게 될 것입니다.’(현종5.5.10). 송준길 또한 현종이 문책하고자 한 당파에 속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못한 점이 있었겠지만, 그의 상소를 받은 현종은 오래도록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과하라는 송준길의 요구가 불만스럽더라도 자신 역시 도가 지나쳤으니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그렇다면 현종은 ‘노여운 감정’ 자체를 가지면 안 됐던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정자(程子)는 〈대학〉의 ‘전 7장’을 해설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여움(忿 )·두려움(恐懼)·호감(好樂)·걱정(憂患)의 네 가지 감정은 모두 마음의 작용으로서 사람에게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제대로 살피지 못해 욕심이 동하고 정이 치우쳐 올바름을 잃게 되는 것이다.” 명종 때 남언경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하께서는 마음을 허공처럼 담담하고 맑게 가지시어 이 감정이 마음속에 먼저 와 있도록 하지 마시고 그저 사물이 접근해 올 때에 따라 응하게 하셔야 합니다. 사물이 접근하여 감정이 일어날 때에는 치우치고 있진 않은가를 생각하시고 그것이 지나간 뒤에는 마음에 머물러 있지 말게 하시옵소서.’(명종21.9.12).바른 마음이라고 해서 감정의 작용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외물(外物, 마음에 접촉되는 객관세계의 모든 대상)’이 내게 오면서 그에 따라 감정이 생겨나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런 감정을 미리 내 안에 쌓아놓고 있다가 외물을 핑계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나의 편향된 집착으로 인해 감정을 심화시키거나 왜곡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 아울러 감정에 흔들려서도 안 되며, 외물이 떠나면 그 감정을 깨끗이 잊을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감정을 없앨 게 아니라, 외물에 얽매이고 감정에 집착함으로써 생겨나는 내 마음의 동요를 막으라는 것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