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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하고 싶은 4종류의 골퍼] 배려하고 지혜롭고 용감하고 즐기는 

골프 기술뿐만 아니라 인생도 배워 … 조던 스피스 ‘예의 바른 청년’으로 유명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올해 마스터스 우승자인 조던 스피스(오른쪽)는 넉넉한 인품으로 남을 배려하는 ‘덕사(德士)’로 분류된다. 그에게 우승 재킷을 입혀주고 있는 버바 왓슨은 승부처에서 과감해지는 ‘용사(勇士)’에 가깝다.
영국의 골프작가 헨리 롱 허스트는 “골프를 하면 할수록 인생을 생각하게 되고, 인생을 보면 볼수록 골프를 생각하게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라운드를 하면 사귐이나 인생살이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은 골퍼는 대체로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넉넉한 인품으로 남을 배려하는 골퍼 ‘덕사(德士)’ - 조던 스피스, 필 미켈슨, 스티브 스트리커, 최경주

올해 마스터스 우승자인 조던 스피스는 예의 바른 청년으로 유명하다. 항상 선배들의 말을 경청하며 심지어 ‘선생님(Sir)’이라고 부른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여동생 엘리를 위해 골프 라운드를 더 신중히 한다’는 그는 버디를 잡았다고 요란을 떨지 않고, 더블보기로 스코어를 잃어도 태도에 변화가 없다. 친절하고 모범적인 게임 태도와 자세로 더욱 칭송받는다.

대회 관계자들이나 골프장에서 자신을 돕는 사람들에게 넉넉한 팁을 주면서 호평을 얻는 이는 필 미켈슨이다. 대회로 일주일간 머물던 호텔룸을 떠날 때 하우스키퍼에게 통상 1000달러의 팁을 준다고 한다. 2004년 그가 마스터스에서 우승하자 가장 애통해한 이가 1층 선수 라커 담당자였다. 다음해부터는 미켈슨이 챔피언스라커를 쓰게 되니까 더 이상 두둑한 팁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골프다이제스트]에서 ‘투어에서 가장 친절한 선수’를 설문 조사한 적이 있다. 친절한 선수 1등은 스티브 스트리커였다. 2011년 여름에 악천후로 인해 메모리얼토너먼트 대회가 늦게 끝났는데 챔피언인 스트리커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위스콘신의 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10시에 예정된 모 골프장 행사에 참석하려고 새벽부터 3시간 넘게 직접 차를 몰아갔다. 당연히 못 올 것으로 알았던 행사 담당자에게 스트리커의 한마디는 감동 그 자체였다. “약속한 일이잖아요.” 당시 친절남 순위에 최경주는 13위로 이름을 올렸다. 어떤 샷에서도 짜증을 내지 않고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항상 손을 들어 답례하는 그의 성실한 태도 덕에 팬클럽 ‘최경주의 친구들(Choi’s Bois)’이 생겼을 정도다. 제5의 메이저인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은 매년 TPC쏘그래스에서 열리는데 16번 홀부터는 난이도가 극도로 심해진다. 2010년 대회에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씩씩대면서 지나갔지만 최경주만 유일하게 갤러리에게 반응하고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모습에 반한 갤러리들이 팬클럽을 결성해 그의 경기를 보러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덕이 있는 골퍼, 즉 덕사는 마음 씀씀이가 넓어 꾸준하게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아마추어 골퍼 중에서도 함께 라운드 하는 캐디를 배려하고, 남의 디봇 자국까지도 가끔씩 정리하고 실력과 상관없이 동반자의 골프와 잘 어울리는 이가 덕이 있는 골퍼다.

현명하게 게임을 풀어가는 골퍼 ‘지사(知士)’ - 진 사라센, 샘 스니드, 톰 왓슨, 최상호


▎지난 2009년 브리티시오픈에서 59세의 나이에도 우승을 다툰 톰 왓슨은 자연에 순응하며 지혜롭게 게임을 풀어나가는 ‘지사(知士)’형이다.
골프 역사를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로 게임을 좀 더 현명하게 풀어낸 골퍼가 종종 등장한다. 1930년대 최고의 골퍼로 여겨지는 진 사라센은 벙커 샷을 할 때 웨지가 모래로 파고드는 문제를 골똘히 연구한 결과 수상 비행기가 물에 빠지지 않고 착륙하는 아이디어를 클럽에 적용했다.

소울이라 불리는 웨지 헤드의 아래 부분을 갈아서 바운스각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클럽 헤드가 모래를 파고들지 않고 사뿐히 볼을 파내는 효과를 거뒀다. 이후 클럽에는 바운스를 만드는 것이 클럽 제작의 일반적인 조형 스타일로 정착되었다.

통산 82승으로 PGA투어 최다승을 기록한 샘 스니드는 나이가 들어 퍼팅 입스(Yips, 불안 심리에서 오는 병)에 걸렸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날 한 라운드에서 60㎝ 이내 퍼트를 여덟 차례나 놓친 뒤로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퍼팅을 개발했다. 볼 뒤에 서서 두 다리를 벌리고 가랑이 사이로 스트로크하는 이색 퍼팅인 ‘크로켓(Croquet) 퍼트’를 창안한 것이다. 하지만 1968년 미국골프협회(USGA)로부터 ‘퍼팅 선상에 서는 자세가 규칙에 어긋난다’고 금지당하자 그 뒤로는 두 발을 선상에서 옆으로 돌리고 역시 뒤에서 퍼팅하는 ‘사이드 새들(Side Saddle)’ 퍼팅을 시도했었다(최경주도 한때 이 방식을 시도했다). 통산 82승이란 위업은 그런 각고의 노력과 연구에서 얻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지난 2009년 브리티시오픈에서 톰 왓슨은 59세의 노장임에도 마지막 라운드까지 선전하며 우승을 다퉜다. 스튜어트 싱크와 동타를 기록하면서 들어간 연장전에서 드디어 체력의 한계 때문에 손을 들어야 했지만, 비바람 심한 악천후에서 플레이를 풀어갈 수 있다는 건 지혜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는 최근 출전한 PGA투어 RBC헤리티지에서도 65세 7개월 13일의 나이에 컷을 통과했으며 올해 마스터스에서는 1언더파 71타로 최고령 언더파 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는 최상호 프로가 대표적인 두뇌 플레이어형 골퍼다. 지난 2005년 매경오픈에서 50세 나이에 최고령 및 통산 43승으로 최다승 기록까지 함께 세웠다. 30도를 오가는 뜨거운 날씨에 첫날 6언더파를 시작으로 와이어 투와이어 우승을 일궈냈다. 오픈 스탠스로 기막힌 퍼팅 실력을 발휘하면서 홀을 공략하는 노하우는 젊은이들이 따라갈 수 없는 지혜의 영역이었다.

지혜로운 골퍼, 즉 상황과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전략적으로 게임을 풀어간다. 노익장을 발휘하는 골퍼의 게임 스타일을 보면 힘이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고 코스 매니지먼트에 밝다. 비거리는 짧을지 몰라도 숏게임은 노련하면서 스코어를 잃지 않는 골퍼와 라운드 한다면 그에 1 게서 골프의 지혜를 꼭 배워야 한다.

재미난 경기를 보여주는 골퍼 ‘낙사(樂士)’ - 존 댈리, 앙헬 히메네즈, 이안 폴터, 허인회


▎길게 기른 꽁지머리를 휘날리며 항상 쿠바산 시가를 피우면서 라운드하는 멋쟁이 앙헬 히메네즈는 골프를 즐기는 ‘낙사(樂士)’ 유형이다.
우승과는 상관없이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선수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 재미가 있다. 풍운의 장타자 존 댈리가 그렇다. 댈리는 지난 1991년 메이저인 PGA챔피언십에 대기 선수 9번으로 있다가 출전 기회를 얻어서 나가 벼락처럼 덜컥 우승을 차지했고, 95년 브리티시오픈에서도 우승했으나 골퍼들은 그의 메이저 우승 때문이 아니라 골퍼로서 그가 좋아서 갤러리로 따라다닌다. 개인사는 좀 특이하다. 결혼은 4번 했고,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국 골퍼들에게 대단한 인기다. 자신을 뮤지션으로 여기고 있는 그는 음반까지 냈으며, 이동식 주택을 끌고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방탕한 것 같기도 하고 무모한 것 같기도 한 그에게서 골퍼들은 한없는 자유를 느낀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지난 2003년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댈리는 이듬해 디펜딩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하기로 해놓고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주최사인 코오롱은 댈리의 이름을 건 브랜드 용품사업을 도와주기도 약속했으나, 그의 돌출 행동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다들 ‘이번에도 또’ 하면서 넘어간다. 심지어 ‘몸 상태가 안 좋다’는 이유로 브리티시오픈까지 불참한 적이 있으니 말 다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한 경력으로 ‘정비공’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미구엘 앙헬 히메네즈는 길게 기른 꽁지머리를 휘날리며 항상 쿠바산 시가를 피우면서 라운드하는 멋쟁이다. 바짓단은 칼이 서도록 잘 다리고, 빨간색 페라리를 몰면서 와인을 즐기는 그는 ‘멋진 인생’을 즐기는 사내다. 지천명 나이에 세 번째 장가를 든 점도 부럽거니와 올챙이처럼 볼록 튀어나온 배를 뒤뚱거리면서 젊은 선수들에게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플레이하는 것도 간지 넘친다. 특히 지난해 5월 스페인오픈에서 연장 접전 끝에 최연장 50세로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유러피언투어 통산 21승 중의 14승을 마흔 너머 수확했으니 동년배 골퍼들의 우상 아닌가.

잉글랜드의 이안 폴터는 대표적인 패셔니스타 골퍼로 이안폴터디자인이란 자신의 의류 라인을 전 세계에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PGA투어에서는 2승에 그치지만 인지도는 아주 높다. 소셜미디어사이트인 트위터에서 팔로워가 186만명을 넘을 정도에 영국 골프잡지에는 골프백으로 가린 채 누드로 표지 사진을 찍을 정도로 실험적이다. 영국 축구팀 아스날의 광팬인데 이런 일도 있었다. 아스날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파이널이 열렸던 2006년에 아이리시오픈의 프로암 대회를 마치고 밤 비행기를 전세 내어 가서 경기를 관전한 뒤에 다음날 아침 7시50분 티오프에 맞춰 경기장에 도착했다. 주로 유럽무대를 뛰지만 그의 인지도 때문에 2008년 한국오픈에도 초청 출전해 2위를 했다.

한국 선수 중에는 상무에서 군 생활을 보내는 허인회를 재미난 골퍼로 꼽을 수 있다. ‘게으른 천재’라는 별명처럼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으로 이름난 선수였다. 한때는 수입차 대리점을 운영했다. 그러면서 골프에 대한 열정은 잃지 않아 지난 2009년부터 일본투어를 뛰면서 지난해 10월 일본골프투어 도신토너먼트에서 28언더파로 일본 역대 최소타 신기록 우승 기록을 세웠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도대체 긴장하는 법이 없는 선수다. 플레이 스타일도 독특하다. 대회장에서 코스에 대한 기록을 상세하게 적은 야디지북을 보는 일이 거의 없다. 남은 거리를 캐디에게 묻지도 않는다. 대회 최소타인 28언더파를 한 날도 드라이빙레인지에서 연습 샷을 세 번 하고 티 박스에 올라가 화제가 됐다.

즐거움을 주는 골퍼, 즉 낙사는 그와 함께 라운드 하는 것만으로 동반자들이 즐겁다. 다양한 농담으로 캐디까지 즐겨 서비스를 한다. 여기에 스코어가 좋고 나쁨은 개입할 여지가 하나도 없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웃고 즐기고 돌아가는 펀(Fun) 골프이기 때문이다.

승부처에서 과감해지는 골퍼 ‘용사(勇士)’ -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 버바 왓슨, 김세영


▎현재 골프 황제 로리 매킬로이(왼쪽)와 예전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호쾌한 드라이브 샷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용사(勇士)’형 골퍼다.
아마추어들의 내기 골프에서는 페어웨이가 좁고 OB(아웃오브바운즈)가 좌우로 도사린 홀임에도 드라이버를 들고 티잉 그라운드에 오르는 골퍼는 호구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샷이 기막히게 잘 맞아 하늘을 가를 듯 쭉 뻗어 날아가고 워터해저드를 넘는 장면을 보면, 내깃 돈은 제쳐두고 속이 시원해진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로리 매킬로이의 골프를 설명하는 건 무엇보다도 호쾌하고 멋진 드라이버 샷에 있다. 1997년에 프로에 데뷔해 곧장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우즈는 동반 선수들보다도 드라이버샷에서 월등하게 앞서 나갔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도 나이를 먹고 부상에 시달렸다. 파워를 끌어내던 왼발 무릎 수술을 받는 등 비거리가 줄어들자 코치를 교체하면서까지 비거리를 유지하려 갖은 공을 들였다. 그 사이에 2005년의 마스터스 16번 홀의 칩샷 버디와 2008년 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US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그의 경기 대부분은 과감한 모험을 걸어 그것이 드라마틱하게 성공하는 장면들로 점철되어 있다.

차세대 황제를 노리는 로리 매킬로이도 가장 자신있는 샷이 드라이버샷이고 항상 그 샷을 위주로 연습한다. 지난 시즌에 PGA투어 평균 비거리는 310.5야드로 3위였고(정확성은 60% 이하로 108위), 한 라운드 버디를 4.58개 잡아 1위에 올랐다. 위험한 상황에서 과감하게 승부를 걸고 회피하지 않는 용감한 스타일은 아놀드 파머에서부터 지금까지 골프팬들에게 가장 어필하는 당대 최고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마스터스에서 2번 우승한 왼손잡이 골퍼 버바 왓슨 역시 용감하고 과감한 골퍼다. PGA투어에서 올해 비거리는 평균 310.3야드로 2위(정확성은 59.2%로 129위), 이글 수는 54개로 1위, 버디는 라운드당 4.17로 8위에 올라있다. 그의 용감함을 잘 드러낸 건 지난 2012년 마스터스 연장전의 10번 홀에서였다. 왓슨의 드라이버 샷이 오른쪽 숲으로 들어갔다. 그린까지 155야드가 남았고 키 큰 나무들이 그린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갭웨지를 잡고서 오른쪽으로 30m가량 휘어지는 훅샷을 쳐서 그린 3.3m 지점에 붙이면서 그린재킷을 입었다. 그의 영웅적인 샷은 두고두고 마스터스 역사에 남을 것이다.

한국 선수 중에 최근 LPGA롯데챔피언십에서 연장전 우승한 ‘역전의 여왕’ 김세영의 마지막홀의 과감한 칩 샷과 연장전의 이글이 바로 그런 용감한 장면에 들 것이다. 김세영은 지난 2013년 한화금융클래식에서도 17번 홀에서의 홀인원으로 엄청난 역전 드라마를 쓴 바 있다.

용감한 골퍼, 즉 용사는 필요한 순간에 승부를 걸고 그것이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 클러치(Clutch) 샷으로 우승을 따낼 줄 아는 골퍼다. 게임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을 때, 그리고 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아경(無我境)의 상태에 들어갔을 때 그런 샷들이 나오고 그런 샷을 하는 바탕에는 용기가 깔려 있다. 집중해야 할 때 제대로 집중하는 사람은 골프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이다. 내기 골프에서 OB가 양 옆에 도사린 홀에서 과감하게 드라이버샷을 성공한다면 그는 용감한 골퍼이고 박수받을 만하다. 다만 아쉽다면, 그럴 확률은 몹시 적다는 것이다.

1286호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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