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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AUTONOMOUS VEHICLE - “2025년 IT 산업이 자동차 산업 접수” 마르치오네 파문 

완성차 회사의 운명은 무인차 하청업체일까… 

글 박상원 모빌리스타 칼럼니스트
2015년 4월 29일 전세계 자동차 업계가 술렁였다. 피아트-크라이슬러 연합(이하 FCA)의 최고경영자인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사장이 1분기 실적투자가(IR) 콘퍼런스 콜에서 FCA가 다른 완성차 업체와 합병 또는 애플이나 구글과 제휴할 의사가 있다고 언급해서다. 일부 언론은 “FCA가 다급한 상황에 처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평범한 분석을 내놨지만 일각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라는 시각이 나왔다. 스위스계 거대 은행인 UBS 부회장 출신인 마르치오네의 언급은 사실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대변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자동차산업의 격변을 예고한 FCA 최고경영자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마르치오네가 공개한 자료가 그런 방증이다. 향후 완성차 업체들은 더 많은 연구개발비의 노예가 되며 궁극적으로 지금의 신차를 개발해 판매하는 사업모델은 갈수록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핵심이다.

자동차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거대한 투자가 필요한 설비산업이다. 일례로, 완성차 업체에서 연간 30만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신설할 경우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가 필요하다. 이런 막대한 투자가 필요했지만 지난 100년 동안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가장 국제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산업의 자리에 올랐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인류의 근대사에 있어 어느 산업보다도 영향력이 컸다.

미국 시사주간지인 타임지는 “포드자동차는 미국의 중산층을 만들어 낸 주체”라고 분석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포드자동차는 지난 1910년대 생산직 직원들에게 시간당 5달러라는 업계 최고의 임금을 주면서 미국 중산층의 구매력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방식을 창안해 수많은 제품을 수내 가공업 때보다 더 낮은 가격에 선보일 수 있게 했다. 아울러 다른 산업에 이 생산방식을 파급시켰다. 즉 포드자동차야 말로 새로운 임금체계와 생산방식을 통해 미국의 근대 중산층을 탄생시키고 동시에 여타 산업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해준 20세기 혁신의 주역이었다.

그로부터 30년 후인 1950년대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적기생산(適期生産) 으로 유명한 도요타 생산방식을 고안했다. 오늘날 전 세계 모든 제조업체에게 파급돼 제조원가를 더 낮추고 동시에 품질은 대폭 향상시켰다. 이처럼 선구자적인 완성차 업체들의 노고 덕분에 전세계 모든 소비자들은 그들이 어디 있던 간에, 어떤 소득수준이던 간에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살 수 있게 됐다.

완성차 업체들은 끝임 없는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 ‘글로벌 톱10’ 업체가 전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80%를 좌우한다. 이른바 균형적 상태(state of equilibrium)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급속한 기술의 발전 및 자동차의 친환경을 강조하는 미국ㆍEU 정부의 노력은 자동차 업체에게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마르치오네 회장이 지난 4월29일 ‘자본 중독자의 고백(Confessions of a capital junkie)’라는 자료를 공개하게 된 이유다.

그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는 오늘날 거의 무한대의 자본투자 요구를 받고 있다. 미국과 EU정부가 요구하는 연비향상 및 매연 절감의 과제에도 대응해야 하고 현재의 사업모델의 핵심인 내연기관의 연구도 계속해야 한다. 자동차 충돌 등 운전자는 물론 보행자 안전에도 투자하고 무인차로 대변되는 IT기술의 발전에도 대응해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과거에 비해 몇 갑절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톱10 완성차 업체들의 시설투자 및 연구개발 관련 비용이 대중차는 12%, 고급차는 10%씩 매년 증가했다. 이런 투자비용 증가는 다른 산업인 소비재, 건축자재나 화학산업에 비해 최대 5배가 많다는 게 마르치오네의 주장이었다. 투자가들의 입장에서는 완성차 업체들이 처한 연구개발비의 증가는 다른 산업에 비해 투자 매력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마르치오네가 판단한 최대의 문제는 이렇다. 엄청난 연구개발비 가운데 상당액이 일반 소비자가 구분하기 어려운 분야에 투자된다는 것이다. 신차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 가운데 45%는 소비자들이 경쟁 제품 간의 차별을 느끼기 어려운 분야였다. 55%만이 소비자가 차별화를 느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구글 자율주행자동차 프로토타입(왼쪽). 애플은 이미 자동차용 iOS를 상용화 했다.
전직 증권사 애널리스트였던 필자는 그의 분석을 보면서 애플ㆍ구글과 같은 IT업체가 자동차 사업에 진입할 경우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역으로 위험한 원가구조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진입장벽 역할을 해온 막대한 연구발비가 발목을 잡는다.

배터리 전기차(BEV)의 경우 엔진과 변속기가 없어지면서 부품 수가 8000개로 줄어든다. 기존 내연기관 차는 통상 2만개 부품이 필요하다. 부품 숫자가 60%나 감소한다. 테슬라의 전기차가 그렇다. 이는 현재 완성차 업체가 투자한 휘발유, 디젤을 쓰는 내연기관과 변속기 부품의 무효화를 의미한다. 기존에 투자한 설비에서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는 자동차 및 부품업체가 BEV의 대중화를 반길 수 없게 만든다. 역으로 전기차를 통해 완성차 제조에 진입하려는 IT업체들은 그러한 과거에 얽매이는 비용(소위 legacy cost)이 없어져 더 유리해진다.


▎배터리 전기차의 발전은 테슬라 같은 신생 자동차 업체의 등장이 수월해짐을 의미한다. 사진은 테슬라 공장.
테슬라의 캘리포니아 주 프리몬트 공장에 가보면 사람보다 로봇 및 무인 운송기가 더 많다. 완성차 업체들에게 닥칠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카메라 필름사업에 매달리다가 망한 코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더 큰 문제는 완성차 업체가 처한 환경이 코닥이 처했을 때보다 더 나쁘다는 점이다.

미국과 EU정부가 요구하는 연비향상 플랜을 보자. 미국은 매년 미국에서 팔리는 신차에 대한 연비를 상향한다. 2025년이 되면 신차의 평균 연비는 2015년 대비 50% 좋아져야 한다. EU 역시 이산화탄소를 매년 줄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연비를 높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규제에 자동차 업체들이 대응하기 가장 좋은 것이 전기차다. 이미 투자한 내연기관의 수명과 효율을 높이는 것이 기존 업체 입장에서는 최선의 방법일 수 밖에 없다. 업체들은 친환경차에도 투자하면서 기존 내연기관의 연비향상 기술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미국 보험회사들과 EU 정부는 자동차로 인한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각종 시험을 통해 자동차 업계에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압박을 가한다. 섀시 같은 구조물(structure)에 대한 투자 또한 지속해야 한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인 F015 자율주행 컨셉트카.
마지막으로 완성차 업체들은 무인차로 대변되는 IT기술의 발전에도 대응해야 한다. 전자부품은 납품업체와 공동개발로 대응하지만, 문제는 무인차의 핵심이 소프트웨어라는 데 있다. 무인차는 소프트웨어가 강한 IT업체들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게 해주는 트로이의 목마 역할을 한다. 자동차의 부품 수를 기존대비 60%나 줄이는 BEV의 확산은 IT업체가 자동차 시장 진입을 용이하게 해주는 요소일 뿐이다. 자동차 업체들이 100년 동안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내세워 수성해 온 철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핵폭탄과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마르치오네 사장의 4월29일 투자설명회는 새로운 압력을 가하는 자리였다. 공멸의 상황이 닥치기 전에, 투자가들이 산업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호소다. 그의 걱정처럼 자동차 산업은 향후 15년 이내 상상하기 어려운 격변기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최근 전세계 택시업계에 공적인 우버(Uber)가 무인차의 대중화 에 힘입어 세계 최대의 렌트카 또는 리스운용업체로 부상할 것이다. 거대 완성차 업체는 휴대폰을 찍어내는 폭스콘처럼 우버의 무인차를 조달하는 하청업체으로 전락해 있을지도 모른다.

상상력이야말로 투자의 필수요소다. IT업계는 이미 자동차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지금 어떤가.

1288호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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